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05화 (205/250)

205화. TV고려(1)

전생에 트롯 오디션의 처음은 ‘트롯맨’이 아니라 ‘트롯우먼’이었으나.

이번 생엔 ‘트롯맨’이 처음이다.

내 기억엔 트롯 오디션을 시작했을 때 초반에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우승자 송가진의 스타성 때문에 중반부터 입소문을 타면서 붐을 일으켰었다.

처음에 예선쯤은 우습게 생각했었는데, 접수하려고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Q&A 숫자가 어머어마했었다.

또한 트롯 관련 커뮤니티도 분위기가 아주 뜨거웠다.

3차 추가 모집을 하는 이유가 지원자 부족 때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터 꽤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게 확실히 느꼈고, 예선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합격이 1분 컷?

마치 지원 하길 기다린 것처럼…….

혹시 장난 전화가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진짜 TV고려 맞습니까?”

[맞아요~]

“전화 주신 분은 누구시죠?”

[이해선 작가라고 합니다~]

일부러 이름을 물어봤다. 마침 노트북을 켠 상태이니, TV고려 홈페이지 검색해봤다.

‘이해선.’

곧바로 설명이 나왔다.

‘예능국 보조작가.’

진짜, 맞네?

정말로 된 거구나?

갑작스러워서 기뻐할 정신도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근데 TV고려 일 처리 속도가 굉장히 빠르네요.”

[호호. 덕군님이 참가해 주신다면 당연히 모셔야죠.]

이해선은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요?]

“네…… 3년 전 가요무대가 마지막이었으니까요.”

[네, 그게 2015년 대보름 특집이었죠?]

……잘 아네?

아무래도 내 출연을 기다렸던 것 같은데……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제성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근데 왜 저한테는 연락은 안 주셨나요? 보아하니 트롯 기성 가수들에게 참가 요청을 하신 거 같던데.”

[아~ 내부적으로 실수가 좀 있었습니다.]

“네? 실수요?”

[네~ 보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도 하고요. 대표곡도 좀 헷갈려서…… 저희 내부적으로 트롯 가수를 분류할 때 누락됐었어요. 죄송합니다.]

“아…….”

[결코 덕군 님을 낮게 봐서 연락을 안 드리거나 한 게 아니니까요.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이해선은 공손한 어조로 거듭 사과했다. 내가 출연 결심을 번복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아, 서운하게 생각 안 합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호호. 네. 그럼 참가하시는 거죠?]

“하하, 참가 신청을 이미 했잖아요. 뻔한 걸 자꾸 물어보시네.”

[얏호!]

수화기를 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최근 3년간은 지방 행사만 다녔었는데, 오랜만에 내가 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럼 3일 뒤에 TV고려 본사로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시간과 장소는 메시지로 다시 한번 보내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네~ 그럼 그날 뵐게요.]

“아, 잠깐만요.”

통화 분위기를 봤을 때 얘기해 봐도 될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혹시 정진 형도 합격했나요?”

[정진 님이요? 호호. 물론이죠, 합격하셨죠.]

“정진 형이랑 같은 날 예선 심사 보면 안 될까요?”

[네~ 그렇게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 * *

“따이쉬!”

전화를 끊고 나서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쨌든 합격.

더욱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우도 좋다. 어쩐지 출발부터 느낌이 좋았다.

똑똑.

어머니가 사과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아들~ 과일 먹고 해라. 뭐 좋은 일 있니?”

어머니는 내 밝은 표정을 보며 웃으셨다. 스무 살을 넘은 아들이 대학도 안 가고 이러고 있는 모습 보는 거…… 부모님 입장에서 쉽지 않을 텐데.

나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느껴져서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다.

“하하. 네, 좋은 일 있어요. 저 방송 출연해요.”

“방송?”

“네.”

“어머, 웬일이니? 방송 출연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엄밀히 말하면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였는데…… 굳이 그런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았다.

“왜 안 해요~ 당연히 하는데, 제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호호. 그러니? 당연히 가요 프로그램이겠지? 와~ 우리 아들이 TV에서 노래 부르는 거 오랜만에 보겠네~”

어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앞으로 많이 보시게 될 거예요.”

“호호, 정말?”

난 ‘헬로우 트롯맨’에서의 나의 성공을 의심치 않는다.

목표는 우승.

못해도 3등 안에는 들지 않을까?

노래 실력을 갈고닦았고, 선곡이나 무대 컨셉 등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 두었다.

“그래~ 엄마는 우리 아들이 이럴 줄 알았어~ 그동안 얼마나 한심해 보이던지~ 호호.”

“…….”

괜찮은 게 아니라, 그냥 참으신 거였구나?

* * *

“덕군아~ 방송 나간다고?”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이것부터 물었다. 오후에 톡으로 얘기해 줬다.

아빠와 나는 이제 친구 사이처럼 수시로 톡을 주고받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던 일.

어릴 적 아빠와 기 싸움을 벌였던 탓인지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게 친구 같은 부자 관계가 되었다.

특히 ‘복지리 총각’의 역할이 컸다. 금전적으로는 아쉬운 게 많은 곡이지만.

“어, 아빠.”

“무슨 프로그램 나가는데? 예능은 아니지?”

“음…… 이것도 예능 범주에 들어가지 않나?”

“뭔데 그래?”

“오디션 프로그램.”

“오디션?”

“응.”

“슈퍼스타 K 같은 거 말이냐?”

“에이~ 아빠는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슈스케가 큰 인기를 끌었던 건 5년도 넘게 지났다. 내가 보뉘로 활동하던 2011년쯤이 최전성기였다.

“어쨌든 그런 거지?”

“맞아.”

아빠는 못마땅한 눈길로 날 보며 말했다.

“트롯 외에는 안 된다고 한 우물만 파더니…… 지친 거냐? 뭐 현실적인 걸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내 아들이 이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네.”

난 장난 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피식 웃고는 물었다.

“그래서 아빠는 반대라는 거야?”

“그래. 반대야.”

“…….”

“너, 어리잖아. 아직은 너 하고 싶은 거 더 해 봐도 된다고 본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빠는 낌새를 눈치채고 내게 물었다.

“그 표정 뭐냐?”

“하하.”

“요 녀석이 어른을 갖고 장난쳐? 어서 말해! 뭔데 그래?”

“트롯 오디션이야.”

“트롯…… 오디션?”

아빠는 내 말을 한참 생각했다.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라 그럴 것이다.

“트롯으로 오디션을 한다고?”

“응.”

“이제 방송국에서 별짓을 다 하는구나? 참나, 방송국이 너무 많다 보니.”

“방송국 많은 건 연예인 입장에선 쌩유야.”

아빠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가는 거야 둘째 치고…… 그게 되겠냐? 본인들만의 잔치가 되어서야…… 대중들이 봐 줘야 의미가 있잖아.”

“맞아, 인기 많을 거야.”

“주제만 들었을 때는 선뜻…….”

아빠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어쨌든 아들이 지원했다고 하니 말을 가리려는 것이다.

난 씩 웃고는 말했다.

“아빠, 나 믿지?”

“당연히 믿지.”

“그럼 응원만 열심히 해 줘 봐.”

“알았다. 어떻게 해 줄까? 용돈 좀 주랴?”

나도 돈이야 좀 있지만, 집이 풍족하기에 가뿐하게 말했다.

“좋지, 옷 좀 좋은 거로 사 입게 넉넉하게 좀 줘 봐.”

“짜식이 맡겨 놓은 것처럼 말하네.”

부모님에게 용돈을 잘 타 쓰지 않지만, 간혹 받을 때도 전혀 눈치 보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집은 이제 풍족하고, 이만큼 잘 사는 데에 내가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기에.

다른 가족들은 몰라도 아빠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띵동.

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

[입금 ― 100만 원]

“고마워~ 잘 쓸게.”

“부족하면 얘기해라~”

* * *

ND 아울렛 강남점.

정장 한 벌 빼 입으러 왔다.

우리집이 풍족해지긴 했지만, 아직 명품관 가서 정장 살 정도는 아니다.

100만 원이면 아울렛 메이커 브랜드에서 풀 착장 정장 하나는 충분히 살 수 있다.

체크 정장을 장만할 생각이다.

블랙이나 네이비 정장은 너무 노멀하고…….

“오랜만이네.”

쇼핑 와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프로그램 참가를 앞두고 옷을 사러 오다니…… 설레면서도 괜히 좀 긴장도 되었다.

전투를 앞둔 군인이 무기를 준비할 때 이런 기분일까?

“저기…….”

정장 브랜드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데.

“저기요?”

“네?”

날 부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판매 인턴’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는 젊은 아가씨였다.

“저 구경 좀 할게요~”

옷 추천을 하려는 건가 싶어서, 먼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날 보는데 볼에 홍조가 어려 있다.

“혹시 보뉘 오빠 아니에요?”

“네에?”

보뉘…… 보뉘라 불린 건 5년 만인데.

더군다나 다 큰 성인이 날 ‘보뉘 오빠’라 부르는 게…… 기분이 묘했다.

“아…… 보뉘였었죠.”

“어머! 어머!”

인턴사원은 갑자기 손뼉을 파닥파닥 치며 오두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보뉘 오빠~ 완전 팬이에요~”

“아…… 네, 고맙습니다.”

보뉘 관둔 지가 언젠데. 내가 7대 보뉘였고, 송이수를 거쳐서 지금 10대까지 왔다.

인턴사원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동안 왜 TV에 안 나왔어요.”

“…….”

“계속 기다렸는데.”

“그게…….”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궁색한 변명 같아서 관두었다. 나 자신을 위한 거였지, 팬들을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저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덕군 오빠 기다리는 팬들 많아요.”

“근데, 제가 오빠가 맞습니까?”

“1998년 9월 4일생 호랑이띠. 올해 21세잖아요? 저 20이에요. 한 살 어려요.”

내가 한창 보뉘를 하던 15세 때, 14살이었던 소녀가 이젠 성인이 된 것이다.

난 동생 대하듯 편하게 말했다.

“오빠가 준비하던 게 있어서 좀 늦었거든. 이제 TV에 많이 나올 거야.”

“정말요?!”

난 인턴사원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래, 정말이야. 오빠가 보답할 테니까, 지켜봐 줘.”

아직도 날 아껴 주는 팬들. 건강한 모습으로 날 자주 보이는 게 보답이다.

이제 곧 질릴 정도로 TV에서 내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네~ 오빠.”

그리고 난 인턴사원에게 옷을 샀다. 직원 할인 받아서.

* * *

시청역에 내려 5분 정도 걸었다. 가을 낙엽이 곱게 물들어 있는 덕수궁 길을 지나쳤다.

185의 훤칠한 키.

날씬하지만 벌어진 어깨에 건장한 체격.

넓은 어깨에 비해 작은 얼굴. 날카로운 턱선.

머리는 8:2 가르마에 포마드를 바르고, 회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덕군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한눈에 봐도 일반인이 아니었다.

[TV고려]

갈색의 건물 꼭대기에 새겨진 사명을 확인했다.

“후우~”

제작진 미팅 겸 예심이지만, 덕군은 풀 메이크업에 풀 착장 정장을 하고 왔다.

첫인상이 중요하며, 중요한 일을 임할 때는 모든 것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김 부장의 가르침에 따라서.

“덕군아~”

먼저 와서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진이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너 뭐냐? 어디 행사 뛰고 오는 길이니?”

“하하, 아니.”

덕군은 정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TV고려 정문을 향해 걸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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