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놀라운 소식(1)
‘복지리 총각’
음원 차트 순위 50위까지 올랐었다. 100위 권 안에는 정확히 한 달 머물렀다.
별거 아닌 거로 볼 수도 있지만, 2013년 보이그룹과 걸그룹들이 판치는 가요계에서 솔로 가수가, 그것도 트롯으로 이 정도 성적을 거둔 건 대단한 거였다.
이런 성과를 거두는 데 있어서 보뉘의 영향이 컸다. 처음 보뉘를 하기 전 정동희와 세웠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곡의 퀄리티와 가창력으로 평단의 좋은 평을 듣기도 했지만, 역대급 보뉘였던 덕군이 곡을 냈다는 것.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가능한 스케줄 내에서 섭외된 모든 프로그램은 다 하려 했다.
특히 가요 프로그램은 최우선순위로 두었으며, 예능도 가리지 않았다.
정말 바짝 일했고, 돈도 좀 벌었다.
착실히 겨울잠을 잘 준비를 한 것이다. 이 시기가 오래가지 않을 걸 알고 있기에.
아무리 실력 좋은 농부가 좋은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후나 환경이 돕지 않으면 풍작을 거두기 어렵다.
지금이 그런 시기였고, 내 기억상 앞으로도 몇 년간은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난 한 우물만 팔 것이다.
이젠 한눈팔지 않는다.
가수의 길만 간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작황이 좋지 않을 뿐, 건강한 토양을 갖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긴 시간 버틸 수 있는 영양분이 있으면, 때가 되었을 때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
정동희는 나의 뜻을 믿어 주었다.
그런데.
.
.
.
.
생각보다 겨울은 많이 춥고 길었다.
‘복지리 총각’의 기세는 딱 6개월 갔다.
* * *
2018년 9월.
양주 천만 송이 천일홍 축제.
“덕군~ 고마워요~ 앵콜 곡도 두 개나 해주고.”
“하하. 네 고맙습니다.”
“’복지리 총각’은 우리 고을 주제가예요. 알죠?”
“알죠~”
“오늘도 너무 신났어요~ 요를레잇디~”
배불뚝이 아저씨가 허리를 흔들며 웃었다. 활짝 웃는데 앞니 사이에 낀 고춧가루가 보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아직 여름에 가까운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은 일찍부터 추운 건지…….
그래도 양주시가 참 고맙다.
양주에서 축제가 열릴 때면 나를 꼭 불러 준다.
“자~ 요건 마음입니다~”
난 이쑤시개 우산을 펼쳐서 건네었다.
“바빠서 양치할 시간이 없으시죠?”
“하하~ 역시 센스쟁이 덕군~”
올해 내 나이 21세.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은 가지 않았다.
“다음에 또 불러 주실 거죠?”
“당연하지~ 우리는 덕군 없으면 안 돼에~ 양주는 덕군이지~ 복지리 총각 만들어 줬는데.”
‘양주 천만 송이 천일홍 축제’는 백석읍에서 하는데, 복지리의 전체 주소는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이다.
이럴 때 새삼 노래 제목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마케팅 요소가 있으니까.
양주시가 더 발전해서 더욱더 많은 축제가 생기길 바랄 뿐이다.
“그럼 덕군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어어~ 조심해서 가게~”
차에 타서 정동희에게 전화했다.
“형, 나 방금 행사 끝났어. 어디야?”
[어디긴 촬영장이지…….]
지난 5년간 난 겨울을 보냈지만, 영원 엔터테인먼트는 그렇지 않았다.
정동희는 소수 정예 아티스트를 영입했으며, 나 빼고 모두 잘되고 있다.
특히 송이수.
그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보뉘를 2년 한 후, CF와 예능으로 얼굴을 알리다가. 2년 전에 조연으로 출연한 드라마가 대박이 났다.
그는 여전히 상큼했고, 성인이 되어도 순백의 미소를 유지하고 있다. 사생활도 깔끔하고,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순수한 얼굴의 일 중독자라고 할 수 있다.
꾸준히 호평의 연기를 보여 오다가, 올해 초에 대작 드라마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가장 핫한 배우.
영원 엔터테인먼트 매출의 90%를 담당하기에, 당연히 정동희는 그를 전담 마크한다.
[이제 뭐 할 거니?]
“오늘 스케줄 없으니까 쉬어야지.”
요즘엔 쉬는 게 일이다.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심심하면 촬영장 올래? 와서 얼굴도장도 좀 찍고…….]
“아니야. 형.”
[너 언제까지…… 휴우~ 아니다.]
정동희는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연예계는 날 이제 퇴물 취급을 하지만, 영원 엔터테인먼트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정동희와 송이수는 여전히 날 탑으로 대우하며,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히 했다.
“형, 난 괜찮아. 거의 다 왔어. 이제 곧이야.”
난 2020년에 헬로우 트롯맨이 반드시 할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려면 헬로우 트롯우먼이 2019년에 먼저 시작을 해야 한다. 이맘때쯤 참가 접수를 받아야 할 텐데…… 아직 별다른 소문을 못 들었다.
일단 그것부터 해야 안심이 될 것 같은데. 만약에 안 한다면…….
“어으~ 안 돼. 안 돼.”
도리질을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4년을 기다려왔는데.
[뭐가 안 돼?]
“아니야~ 형~ 내일 스케줄은 그대로지?”
[의정부 부대찌개 축제 말이지? 어, 변동사항 없어.]
“왜 자꾸 축제는 가까운 데서 하냐. 하하. 바람 좀 쐬러 멀리 가고 싶은데.”
[형이 내일 갈까?]
“아니야~ 형 바쁘잖아. 그리고 내일은 나 혼자 아니야. 어서 일 봐~”
[그래…….]
* * *
“다녀왔습니다~”
집 도착. 강남구 개포동 내미안 포레스트. 두 달 전에 입주했다.
싸인의 신곡 덕에 샀던 개포시영아파트는 머지않아 재건축에 들어갔고,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천지가 개벽했다.
시영아파트가 내미안 포레스트가 된 것이다!
강남 8학군 지역의 40평대 새 아파트! 그것도 자가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어머니는 밝게 웃으며 맞아 주셨다.
“어~ 왔니? 밥은?”
“안 먹었죠~”
“그래, 조금만 기다리렴.”
“누나는요?”
“친구들 만난다고 나가더라.”
“언제 미국 들어가죠?”
나 때문에 일반고에 진학했던 지아 누나는 그래도 서울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 스탠포드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방학이라고 잠깐 들어왔다.
“누나는 말이야~ 오랜만에 왔으면 동생 무대 응원하러 올 생각은 안 하고.”
“내일 의정부 부대찌개 축제에 행사 있다며?”
“맞아요.”
“부대찌개 좋아한다고 내일 보러 간다고 하더라.”
나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부대찌개 먹으러 온다는 거잖아?
누나답다. 난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거참 고맙네요.”
발 닦고 TV를 보고 있는데,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이제 저녁 7시.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아빠는 요즘도 야근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 시간에 오는 경우는 잘 없는데.
띠리리리~
“다녀왔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현관에 나서서 인사했고,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오냐. 오늘 좀 일찍 왔구나?”
“요즘 일 없어서 항상 일찍 오는데.”
“…….”
“겨울엔 행사가 잘 없거든~”
“그래? 마침 잘됐네. 아빠랑 쇠주나 한잔하자.”
“좋지~”
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어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근데, 김 이사님이 어쩐 일이셔요? 이 이른 시간에?”
아빠는 2년 전, 48세가 되던 해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젠 김 부장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잠재적 경쟁자였던 반기철은 아빠가 임원 승진하던 해에 이직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확실한 건 반기철이 아빠한테 밀렸다는 것이다. 아마 그게 이직을 한 이유였을 것이다. 반기철은 야망이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그 회사에 남아 봐야 아빠한테 계속 밀릴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또한 싸인의 빌보드 1위처럼, 전생과 크게 달라진 점이다.
“텔레파시가 왔다. 덕군이 집에 있을 거라는.”
“하하, 나 맨날 집에 있다니깐~”
반백수 노릇을 하는 게 자랑도 아닌데, 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고.
아빠 또한 개의치 않고 웃었다.
“자, 한잔 받아라.”
“제가 먼저 드릴게요.”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빠한테 반말하는 게 점점 어색하게 느껴져서 요즘엔 반말과 존대 섞어 쓴다.
“어허~ 어서 받아.”
“넹~ 이제 제 잔 받으셔요~”
흐뭇한 표정으로 잔을 내미는 아빠의 얼굴. 보기 좋다.
이렇듯 우리 가족은 너무 잘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정정하시고, 막냇삼촌도 아주 늦었지만 장가를 가긴 했다.
나만 겨울을 보내고 있었지만.
가족만큼은 날 향해 한숨 쉬지 않았다. 여전히 날 존중하며, 특별하게 봐 줬다.
* * *
[의정부 부대찌개 축제.]
[출연가수 : 덕군, 정진, 진조아…….]
오늘 공연은 밤에 한다.
이 축제에 맞게 부대찌개 모양을 형상화하여 무대를 만들었다. 마이크도 소시지 모양이다.
“형~”
“덕군아~”
하얀색 정장을 입은 정진이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나이 올해 23세.
트롯계에 겨울이 찾아온 이후로 정진을 자주 만나고 있다.
“또 보네?”
“하하, 자주 보고 좋지 뭐~”
요즘 트롯 가수가 설 무대가 지방 행사와 나이트클럽이 주이기에 동선이 자주 겹쳤다.
정진은 ‘네바퀴’가 끝난 이후 예능 철새가 되었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고정 출연을 얻지 못했다.
‘네바퀴’는 그를 빛나게 했지만, 그의 이미지를 고착화시켜 버렸던 것이다.
네바퀴에서 주접떨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어느 프로그램을 가도 쉽게 융화되지 못했다.
그를 찾는 방송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시 무대로 돌아왔고.
우리는 트롯 무대를 함께 서며,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전국 각지에서 심심찮게 만났다.
지난주에 순천에서 만났었는데, 오늘 의정부에서 또 보게 된 것이다.
[정진 씨. 리허설 준비하세요.]
“갔다 올게.”
“형, 김밥 사다 놓을까?”
“좋지~”
[덕군~ 리허설 준비하세요]
“엇~ 형~ 츄러스 사다 놨네?”
“짜샤~ 당 충전해야지.”
지방 행사 스케줄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서로 알아서 척척이다. 한 명이 일할 때, 다른 한 명은 준비를 해 준다.
전 국민이 알아보던 정진. 그가 다시 인기를 잃었을 때, 처음엔 난 걱정했었다. 어릴 적 아침마당놀이에서 좌절을 겪고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하지만 괜한 기우였다.
정진은 어릴 적 원미당에서 처음 만났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꼬마가 아니었다.
비 온 뒤에 단단해진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덕군아, 신바람 선생님은 잘 지내시니? 요즘 통 연락을 안 드려 봤네.”
“일 안 하고 노셔.”
“하긴 사람들이 트롯을 안 들으니까…….”
“그래도 저작권료 때문에 먹고살 만하신가 봐.”
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5년 전에 열일하시더니. 저작권으로 연금저축 들어 놓으신 거지. 하여간 현명하셔.”
“그러니까.”
서늘한 밤공기.
해가 지니 깊어진 가을밤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낮엔 덥더니. 좀 춥다. 그치?”
난 웃으며 말했고.
“그러게 말이야.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나 봐.”
난 손에 입김을 불며 말했다.
“올해는 겨울이 일찍 오려나 보다. 형, 겨울이 춥고 눈이 많이 올수록 다음 해에 농사가 더 잘된다는 거 알어?”
“하하, 그러니? 하여간 조그만 게 아는 것도 많어.”
“이제 안 조그맣거든?”
난 이제 정진보다 키가 크다.
“내 눈엔 넌 여전히 귀여워~ 얀마.”
정진은 내 머리를 쓰다듬은 뒤, 텅 빈 관객석을 바라봤다.
오늘 초대 가수 중에 아이돌 한 명만 있었어도 이렇진 않았을 것이다.
“TV고려에서 트롯으로 뭐 한다던데. 에휴~ 이렇게 인기도 없는 걸 대중들이 관심이나 갖겠어?”
2019년에 헬로우 트롯우먼이 시작한다. 안 그래도 소식이 없길래 궁금했었는데.
참가 모집을 하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활발하게 연예계 활동을 했던 정진이 나보다는 아는 사람도 많고 소식이 빠르니까.
난 모르는 척 물었다.
“뭘 한다는데?”
“트롯으로 오디션을 한대. 나도 거기 참가나 해 볼까? 어쨌든 상금이 있으니까.”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 거기 남자가 어떻게 참가해~”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어? 너도 알았니?”
“그냥 대충 소문만…….”
“근데 무슨 소리야? 남자가 어떻게 참가하다니? 트롯맨 뽑는 오디션인데?”
.
.
.
.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