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상을 받다
조회 시작 전.
수상자들은 단상에 모여 리허설을 했다. 간단하게 각자의 순서와 위치를 확인하는 건데.
교감도 와 있었다.
보통 리허설 할 때 수여자까지 오진 않는다.
“엇, 교감 선생님.”
리허설을 봐주던 담당 쌤이 달려가 깍듯이 맞았다.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습니까.”
“허허, 행사 당사자니 당연히 리허설에 나와야지요.”
“역시~ 교감 선생님은 다르시네요.”
대머리 선생님은 교감이 된 이후부터 태도가 완전 달라졌다.
안하무인에 거만하고 목적이 뚜렷한 사람이었는데, 목적이 달성되니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잘 보일 윗사람은 이제 한 명밖에 없다. 이제 아랫사람들, 즉 일반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리허설까지 나올 정도로 부지런을 떨 정도는 아니었으나, 오늘은 이유가 있었다.
교감은 덕군에게 말했다.
“덕군~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담당 쌤은 웃으며 물었다.
“서로 아는 사입니까?”
“허허. 덕군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덕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면접에서 처음 보는 학생에게 무시하는 말을 하고, 같은 면접관들에게 목에 핏대 세우며 막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교양 넘치는 얼굴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선생님에게도 깍듯이 존댓말을 해도 보면 안다.
사람이 바뀐 게 아니다. 예전보다 소문은 더 안 좋아졌고, 인상도 그때보다 더 드러워졌다.
“저도 기억합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입학 면접 때 교감 선생님과 얘기 나눴던 게 인상적이어서요.”
교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허허, 면접관으로 들어간 지가 오래돼서 난 잘 기억이 안나네~ 그랬었구나.”
이 말에 덕군은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기억 안 나는 척하긴.”
담당 쌤은 덕군의 중얼거림을 못 들었지만, 교감은 똑똑히 들었다. 온 신경을 덕군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
하지만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교감은 덕군이 무섭고 어려웠다.
교감은 잔머리를 굴렸다.
“선생님?”
“네.”
“오늘 식순이 어떻게 되죠?”
담당 쌤은 뻔한 걸 묻는 게 의아했다.
“하던 대로입니다. 순서대로 시상을 하고요, 마지막에 재원인 상을 받는 학생이 대표로 수상 소감을 할 겁니다.”
“아~ 그래요.”
교감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도 더운데 소감은 안 하는 게 어떻습니까?”
“날이 덥다고요?”
담임 쌤은 황당해서 되물었다.
‘5월의 아침이 뭐가 덥다는 거야? 그리고 체육관에서 하는데?’
교감도 변명이 궁색했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아니, 뭐 학생들 서 있기도 힘들고.”
“짧게 할 겁니다. 길어야 2분?”
덕군이 대신 대답했다.
“왜요? 길게 할까 봐 걱정되세요?”
“…….”
교감은 뭐라 대답은 못 하고 입만 벙긋거리며 덕군을 바라봤다.
“역시, 교감 선생님은 학생들 생각을 많이 해 주시네요~ 염려 마세요. 정말 짧게 할게요.”
강제로 못 하게 할 수도 있지만.
좋은 사람처럼 티는 다 내놓고, 이제 와서 강압하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허허, 그래. 그러면 해야지. 덕군이 소감을 얘기하고 싶은가 보구나? 알았다~ 하지만 꼭 짧게 해라.”
* * *
[재원인 상입니다. 김덕후 군, 앞으로 나와 주세요.]
공식적인 자리라서, 본명으로 불렸다.
‘김덕후’로 불리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색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어쨌든 난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덕군~ 덕군~
―선배님~ 사랑해요~!
―덕군 오빠악!
―형님은 사랑입니다~
―어제 데뷔 무대 멋졌어요~!
학생들의 환호성 소리가 들린다.
예전부터 응원은 많이 받아 왔지만, 이젠 ‘선배’, ‘오빠’ 소리가 많이 들린다.
어딜 가나 막내에 동생 취급을 주로 받았는데. 이젠 재원예중의 최고 학년이니까.
[상장. 재원인 상. 3학년 1반 김덕후. 위 학생은 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려 위상을 높임으로써…….]
교감은 상장에 시선을 두고, 묵묵히 서 있었다.
난 단상 앞에 서서 그의 얼굴만 또렷이 보았는데, 그는 고개를 살짝 들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바로 다시 숙였다.
단순히 면접 때 내게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하여, 이 사람에게 적대감을 품은 게 아니다.
난 교감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담임 쌤에게 민요 TO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바로 눈치를 챘다. 내가 애도 아니고, 어느 정도 들으면 바로 견적 나온다.
[이에 위 상장을 드립니다. 2013년 5월 교장 이학수.]
짝! 짝! 짝!
―우와아~
―덕군 화이팅!
―왜 덕군이 이 상을 안 받나 했어~
―그러니까. 학교에 공헌한 게 얼만데.
[오늘 상 받은 학생들 모두 축하드리고요~ 대표로 김덕후 군이 소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내가 마이크를 잡자…….
―꺄아악~
―오빠악~
―선배님~
강당 안은 난리가 났다.
고맙긴 한데, 진정시켜야 한다.
난 손을 흔들어 답례한 후 말했다.
“자자, 조용. 조용.”
―…….
난 꾸벅 인사하고 힘차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재원예중의 예술단장 덕군 인사드립니다!”
난 일부러 소속감을 드러내기 위해 이렇게 인사했고.
―우와아~~
―덕군이 우리 학교 예술단장이라고!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형~
―너무 멋있어~ 진짜 멋있어~
예상대로 학생들은 아주 좋아했다.
“하하. 고맙습니다. 우선…… 저에게 이런 귀한 상을 주신 교장 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전합니다.”
짝. 짝. 짝.
수상 소감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이제 조용히 하고 집중했다.
“입학한 지 벌써 3년째인데요,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지난 역사는 아마 다들 아실 것 같고요. 하하. 그런 여러 좋은 일들이 가능했던 건 재원예중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선생님들과 친구들, 선후배님들의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짝. 짝. 짝.
박수 소리 때문에 소감을 중간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도 아니고…….
박수 소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다시 이어갔다.
“제가 사랑하는 재원예중이 앞으로도 항상 지금처럼 위대한 예술학교이길 바랍니다. 특히, 가능성 있는 친구들에게 문이 활짝 열린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는 배우러 오는 곳이지, 완성된 자가 오는 곳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저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입시 학원에 다녀 본 적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난 두 손을 올리고 물었다.
“보십시오. 저 어떻습니까? 학교생활 나름 잘하고 있죠?”
―네~!
―말해 뭐 해!
―민요 천재!
“하하, 감사합니다. 아, 이런 2분만 하겠다고 교감 선생님께 약속드렸는데, 좀 길었네요. 학생들 힘들어한다고 최대한 짧게 해 달라고 하셔서.”
―안 힘들어요!
―누가 힘들어?!
―누가 말했다고? 교감이?!
교감은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저희 학교에 입시 비리 소문이 있는데요. 이게 소문만이 아니라는 건 여기계신 웬만한 분들은 다 알 겁니다.”
난 교감을 바라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걸 관행처럼 받아주는 선생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단 냄새 나면 몰려드는 일부 똥파리들 때문에 올바르고 귀한 선생님들까지 욕먹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감 선생님! 그런 선생 같지 않은 사람들 발본색원하여 뿌리 뽑아 주시길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
“교감 선생님? 요청드린다고요.”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강당. 교감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재원예중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 이 학교가 내게 준 선물에 보답하고 싶었다.
“왜 대답을 안 하십니까?”
“흠! 우리 학교에 그런 일은 없습…….”
“있나 없나 조사해 보면 알겠죠.”
“…….”
“경찰에 요청하는 것보다는 자체 조사가 낫지 않겠습니까?”
교감의 동공의 흔들렸다.
이리저리 궁리하더니.
“허허, 그래요. 더 깨끗해지길 위하는 길인데 해야죠.”
“…….”
이미 벌어진 일을 색출하며 처벌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 없길 바라는 마음에, 만인 앞에서 교감에게 경종을 주고 싶었다.
강당 안에 모인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교감 선생님께서 어떤 결과를 보여 주실지 기대해 볼까요?”
―네에~!
―교감 선생님 멋져요!
―공정한 재원예중 화이팅!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충 넘어갈 생각은 없다.
“허허…….”
교감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 * *
방과 후에 청담동 연습실에 왔다.
두 달 전, 시간 절약을 위해 이곳에 연습실을 마련했다.
임대료 비싼 곳이라 아주 좁은 곳밖에 마련할 수 없었지만 이제 대학로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
“형~”
“어~ 왔냐?”
정동희는 반갑게 날 맞아 주었다.
“야~ 보뉘 때처럼 5교시까지만 하고 오면 안 돼?”
“에이~ 그러면 안 되지~ 학교생활 얼마 안 남았는데.”
“뭐야? 결정한 거야?”
“고민 중~”
학교는 중학교까지만 다니는 걸 생각하고 있다. 아빠가 허락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잘 판단하겠지, 뭐.”
“하하. 형 어때?”
난 어제 데뷔 무대 반응을 물어본 거였고, 정동희는 바로 알아들었다.
“음원 차트 순위는 그냥 그래.”
“응~”
“그래도 생각보다는 낫다. 100위권 안에는 진입했으니까.”
요즘 트롯이 인기도 없는 데다가, 특이한 곡이다 보니 음원 차트는 별 기대 안 했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 잭팟이 터지길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너튜브 반응은 괜찮은 거 같던데?”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폰으로 확인했었다. 영상 조회수가 하루 만에 10만을 넘겼다.
“맞아. 너 기다려 온 팬들이 많더라. 너튜브도 그렇고, 다른 방송사에서도 러브콜이 많이 왔어.”
정동희는 핸드폰을 메시지를 보면서 읊었다.
“JBS, MBD, SBC, NNET…….”
음악과 예능을 다루는 방송국에서는 거의 다 연락을 준 것 같다.
심지어…….
“EBC 교육방송에서도 연락 왔다. 보뉘하뉘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줄 수 있냐고.”
“하하, 그래?”
난 잠시 생각했다.
“보뉘하뉘는 빼자, 이수 형 이제 막 자리 잡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괜히…….”
“맞아, 내 생각도 그래. 이수가 다른 소속사면 모르겠는데, 우리 가족이잖아.”
“하하. 그러니까.”
내 가족 밥그릇을 뺏으면 안 되지. 정동희는 날 향해 물었다.
“그럼, 계획했던 대로 다 해?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응, 섭외 들어온 곳은 다 하자.”
그를 설득하기 위해 ‘예측’처럼 말했었다.
현재 상황을 들며 몇 년간 트롯의 빙하기가 시작될 것이며, 데뷔곡 나왔을 때 바싹 땡겨서 비축을 해야 한다고.
“근데 말이야. 아무리 트롯이 빙하기여도 너 정도면 예능 출연 등 방송활동이 충분할 텐데?”
“알아. 근데, 빙하기 때는 움츠러들어야 임팩트가 있어.”
“너 자꾸 임팩트 얘기를 하는데, 도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트롯 가수를 꿈꿨을 때부터 기다려왔던 순간.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사연이 있어야 그림이 아름답다.
초통령의 보뉘로서 전국민의 사랑을 받다가, 자신의 꿈을 찾아 인기 없는 트롯 장르에 도전.
빙하기를 겪다가, 대국민 트롯 오디션 ‘헬로우 트롯맨’에 짠 하고 나타나는 그림.
계획과 확신이 있기에 난 조금도 두렵지 않다.
그동안 어금니 꽉 깨물고 보뉘 손동작 많이 했다. 과정이라 생각하고 꾹 참았다.
변성기도 끝났고.
이제부터는 나만을 위해 노래 실력을 쌓으며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