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93화 (193/250)

193화. 가지 마(1)

큰삼촌이 어쩌다가 여기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덕용이의 행동을 지켜봤다.

“쨔~ 쨔! 쨔!”

덕용이는 몇 달 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팔을 양옆으로 휘두르며 춤을 췄다.

발장구를 치며 바둥거리고.

흥겹게 즐기는 게 분명했다.

“조아~ 조아~”

“엇?! 말을 하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말을 못 했었는데.

큰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말 잘해~ 아가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와…… 신기해.”

통통한 편인 덕용이는 동그란 배를 내밀고 계속 ‘쨔! 쨔!’거리면서 양팔을 휘둘렀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 노래에 신나 하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했지만…… 너무 귀여웠다. 움직일 때마다 볼살 흔들리는 거 하며…….

“아우~ 미치겠네.”

난 빨리 곡이 끝나길 기다렸다.

끝나는 대로 덕용이를 번쩍 안고, 뽀뽀를 수십 번 해 주고 싶다.

“조아~!”

드디어 노래가 끝났고.

덕용이는 만세를 외치며 소리를 질렀다.

“어이구~ 미쳐~ 미쳐~”

난 곧바로 달려가 덕용이를 번쩍 안아서, 오동통한 볼살에 내 볼을 비볐다.

“와~ 우리 덕용이는 갈수록 잘생겨지네?”

“형아!”

덕용이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랐지만, 난 바로 입이 귀에 걸렸다.

“너 방금 나 부른 거니?”

“어!”

“또 불러봐!”

“형아!”

“우하하하!”

너무 귀여워서 꼭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이잉~ 이이잉~”

너무 세게 끌어안았나?

얼굴을 찌푸리고 귀찮아하는데, 이 모습마저 귀엽다. 내가 뽀뽀를 수십 번 하자, 옆에서 큰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덕용이 계 탔네~ 덕군 팬들은 부러워 죽겠구만~ 하하.”

“어째 덕용이는 갈수록 잘생겨져~”

“오빠, 나도 있어. 난 안 이쁘고?”

다율이가 옆에서 날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언제 안 이쁘다고 했니? 다율이는 더 이쁘지~”

“흥.”

먼저 아는 척 안 했다고 토라진 것 같다. 난 웃으며 다율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제야 궁금해졌다.

애들에게 시선을 뺏겨서 정신이 없었다.

“삼촌, 근데 어쩐 일로 온 거야? 연락도 없이?”

“동희가 불러서 왔다. 덕군이 신곡 녹음하는데, 우리 아들 눈썰미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

정동희가 불렀구나.

난 좀 전에 덕용이의 열정적인 반응을 떠올렸고, 애써 딴청을 피우고 있는 신바람을 불렀다.

“선생님.”

“…….”

“선생님?”

“흠. 왜?”

“덕용이가 3살이거든요?”

“…….”

“선생님께서 문제가 있다고 하신 노래요, 덕용이는 좋아하는 거 같아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신바람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말했다.

“다시 들어 보니까 좋네.”

“네?”

아니, 무슨 엿가락 뒤집듯…….

조금 전에 노래가 이게 뭐냐며 이마에 핏대를 세우시더니.

“덕용이가 좋다고 해서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신바람과는 이렇게 격의 없이 얘기해도 되는 사이다.

“당연하지.”

그 또한 둘러서 답하지 않았다.

“심플하네요.”

“나보다 아기 귀가 정확해. 아기가 반응을 보이면 적어도 망하지는 않더라. 무조건 옳아.”

“덕용이 취향이 특이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3살까지는 딱히 취향 안 탄다.”

대답에서 경험이 느껴졌다. 아가들한테 테스트 많이 해 봤나 보다.

신바람은 재킷을 들고 일어났다.

“더 들어 볼 거 없을 것 같은데, 나 먼저 일어난다.”

큰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신 선생님~ 오랜만에 뵈었는데, 식사하고 가시죠?”

큰삼촌이 말에 신바람은 눈을 깔았다. 아빠에게 보였던 깍듯한 모습과 비슷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여전히 불편해하시네.”

큰삼촌의 심드렁한 대꾸에 신바람은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사라졌다.

* * *

아이들이 지겨워해서 최대한 빨리 녹음을 마치고,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기 의자가 있을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오게 되었다.

작은엄마는 애들 먹이느라 정신없고, 큰삼촌은 차를 가지고 와서인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큰삼촌,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어, 뭔데?”

“아빠랑 큰삼촌 말이야. 신바람 선생님이랑 무슨 관계야?”

큰삼촌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 같은데. 신바람 선생님이 훨씬 연장자임에도 아빠랑 삼촌에게 너무 깍듯하게 대한단 말이야. 내내 궁금했었어.”

“흠…… 덕군이 15살이지?”

“응, 이제 곧 16살 돼. 한 달도 안 남았어.”

큰삼촌이 망설이는 기색이어서, 난 채근했다.

“그냥 얘기해 줘~ 저번에 아빠 과거 다 얘기해 줬잖아~ 웬만한 건 이미 다 알고 있는데.”

“하아…… 그땐 술이 좀 취했었고, 우리끼리 있었으니깐…….”

큰삼촌은 건너 자리에서 아이들 밥 먹이는 작은 엄마를 보았다. 우리 얘기를 들을 정신은 없어 보였다.

“그래,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뭐.”

큰삼촌은 나와 정동희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우리 형이 경기 북부를 주름잡는 사람이었다고 얘기했었지?”

“응.”

“형이 어리지만. 머리도 좋고, 실력이 좋으니까 빠르게 성장했거든? 그쪽 세계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지만, 그에 앞서는 건 실력이야. 실력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서 생각해.”

나와 정동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 영화 같은 얘기라서.

하지만 난 어릴 적 목욕탕에서 봤던 아빠 등짝의 용 두 마리와 어깨에 새겨진 일심(一心)을 기억한다.

“아빠 소속된 곳 이름이 혹시 일심파야?”

“엇, 어떻게 알았냐?”

“어깨에 써 있는 거 봤어.”

“흠…… 형이 전성기 때 양주의 주요 업장 관리를 했었어. 신바람 선생님은 업장에 출연하는 가수 중 한 명이었고.”

“아…….”

신바람은 아빠를 만날 때 간혹 ‘김 상무’라고 호칭했었다. 아빠가 눈치를 주면 곧바로 바로 잡았지만, 왜 그런 실수를 하나 싶었는데. 이런 이유였군.

“나는 형 따라다니다가 신바람 선생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어. 그래서 아는 거야. 막내는 그때 너무 어려서 모르고.”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건 이해했어. 근데, 아빠가 신 선생님을 해코지라도 한 거야? 왜 이렇게 어려워해? 아빠만 보면 왜 이렇게 어려워하셔?”

이 말에 큰삼촌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그 시절에 우리 형을 본 사람이라면 어려워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보통 포스가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거야. 형은 적 아니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거든? 근데…….”

큰삼촌은 천장을 향해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형이 다른 건 몰라도 무대를 보는 기준이 높았어. 그리고 어느 정도로 퀄리티가 안 나오면 한 소리 했었지. 그러고 보니 형이 신바람 선생님 혼내는 거 본 기억이 있네.”

“그럼 그렇지.”

신바람 선생님도 털렸었구나? 아빠의 눈을 피하는 이유. 이제 이해가 된다.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꼈다.

* * *

다음날 월요일.

5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육 방송 가는 길.

지난 주말을 아주 알차게 보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내내 정동희를 만나서 곡 준비로만 꽉 채워서 보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던 상황이라 하루면 끝낼 줄 알았는데, 첫 곡이다 보니 신중하게 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여러 번 수정하고, 버스킹과 덕용 님을 통한 흥행 가능성 확인, 수십 차례 재녹음.

주말 이틀을 하얗게 불태웠고, 덕분에 어젯밤 레코딩까지 완벽하게 끝내었다.

이제 퍼포먼스 및 의상 등 컨셉 준비만 하면 된다. 하지만, 정동희는 좀 기다리자고 했다.

우선 그 전에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자며.

“왔냐~”

“와~ 형. 이러다 정들겠어.”

교육 방송 정문 앞에서 정동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더 정들게 남았냐? 하하. 많이 피곤하니?”

“어휴 말도 마.”

오늘은 꼭 함께 출근해야 한다고 했었다.

“왜 같이 들어가야 해?”

“탁 피디님이 협박을 무섭게 하더라고. 혹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협박?”

“그래. 금요일에 형이 폭탄 던졌잖아.”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정동희가 재계약은 안 하겠다며, 즐거운 주말 보내라고 탁 피디에게 문자 보냈었다.

“그게 과연 폭탄일까? 오히려 탁 피디가 좋아하고 있지는 않을까?”

언젠가부터 탁 피디가 날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었다.

“글쎄다. 너무 연락이 많이 와서 형이 전화기를 꺼놓을 정도였으니까. 분명 할 말이 많아 보이긴 하는데…….”

정동희도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뭐,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이미 2년이나 했으니, 새로운 보뉘를 맞고 싶어 할지도.”

“그러니까. 괜한 걱정일 수도 있어.”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만나보면 알겠지.”

이제 교육 방송 건물로 들어가면 되는데. 오늘따라 발을 들여놓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덕군아, 들어가자.”

“응.”

정동희가 먼저 들어가고, 난 그를 뒤따랐다.

덜컹.

“가지 마!”

탁 피디의 목소리가 교육 방송 로비에 울렸다.

현관 바로 앞에 탁 피디와 조승헌, 그 외의 스태프들이 모여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당연히 오늘 만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바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 인사에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안 돼! 가지 마!”

―뭐야? 쟤 보뉘 아니야?

―어디 간대?

―왜 자꾸 가지 말라는 거야?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우리 주변을 기웃거렸다.

일단…… 상황 파악은 됐다.

새로운 보뉘를 생각하고 있기를. 쉽게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랐는데. 그 기대는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

정동희는 난감해하며 탁 피디의 어깨를 잡았다.

“저, 피디님. 일단 들어가서.”

“이거 놔.”

“…….”

“너 왜 전화 안 받았어. 나보고 선배라며? 선배한테 그래도 되는 거야?”

“네? 아, 네…… 그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

“생각할 시간이 뭐가 필요해?! 절대 안 돼!”

옆에 있던 조승헌이 말했다.

“그래, 덕군아. 우리가 더 잘할게. 가지 마.”

이를 시작으로 함께 나온 다른 작가, 조연출 등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 보뉘는 덕군뿐이야!

―어딜 간다고 그래?

―이제 16살 되는 거잖아! 최전성기인데!

팻말만 안 들었지. 거의 데모 수준이다. 예상을 벗어나는 격정적인 반응에 몹시 당혹스러웠다.

“저를…… 불편해하신 거 아니었어요?”

내 물음에 탁 피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거 땜에 그래? 티가 많이 났었니? 잘못했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갑자기 왜 자아비판을…….

나와 정동희는 당혹스러워서 서로 마주 보았다.

“형, 이걸 어째?”

“그러게 말이다.”

어서 대본 숙지, 메이크업 등 오늘 녹화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걸 챙겨 줘야 할 사람들에게 가로막혀서 이러고 있다.

정동희가 손을 펼치고 말했다.

“자자, 일단 들어가시죠. 들어가서 얘기해요.”

“발언 철회한다고 얘기하기 전엔 안 돼.”

관계없는 사람들까지도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동희는 스태프들을 진정시키려고 말했다.

“알았어요. 그것까지 포함해서 원점에서 다시 얘기할게요. 일단 들어가서…….”

“형~!”

안 된다. 번복은 없다.

내 외침에 정동희는 내 귀에 가까이 와서 작게 말했다.

“나도 네 생각이랑 같아. 하지만, 이분들 얘기도 들어 봐야지. 그리고 지금 상황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냐? 동네방네 소문 다 나겠어.”

정동희는 스태프들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길을 좀 터 주세요.”

어느새 주변에 가득 모인 사람들.

홍해 바다 갈라지듯 게이트를 향해 길이 만들어졌고.

나와 정동희는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고 게이트를 재빨리 통과했다.

근데, 게이트 안에…….

하뉘, 노재섭, 하트맨, 가르마 걸 등 출연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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