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멀리멀리 울려 퍼지는(2)
욜로레이오우~ 두리두릿 릿디 요로레이호~~
야라라우디~ 요롤라~ 야랄라우디~ 요라라 레히 릿디리~~
덕군의 혀에 모터가 달린 것 같았다.
조그만 구멍에서 경쾌한 소리가 나오는 호루라기처럼. 작은 입에서 대학로 창공을 울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욜라레이오우 두리루릿 릿디 요롤레이호~
야랄라우히~ 요랄라 야랄라우디 요랄라 로휘~~
동대문에 있는 양 떼들을 대학로로 부르는 것처럼 요들은 높고 경쾌하게 퍼져 갔다.
정동희는 갑작스러운 요들에 놀라서 연주를 멈췄다. 사비에 딱 한 구절 들어가는 거였지, 이렇게 요들로 묘기 부리는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요들을 넣기로 한 지 이제 1시간 지났다.
‘얘는 예중에 들어가더니 민요를 배운 게 아니라 요들을 배웠나? 스위스에서 살다 온 애 같잖아.’
무반주 요들.
쉴 새 없이 혀를 놀리던 덕군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
구경하던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는데. 진기한 구경거리를 보는 눈빛이었다.
―우와…… 이게 뭐야?
―나 아주 어릴 적 봤던 거 같은데. 기억도 잘 안나.
―요들 아니야?
요들이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요들이라는 건 대부분 알아보았다.
짝! 짝! 짝!
처음엔 놀라서 얼었던 사람들.
이젠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좋아했다.
어떤 노랑머리 외국인은 덕군의 노랫소리에 폴카(독일민속춤)를 췄으며, 그 외의 사람들도 머리를 끄덕이거나 발장구를 치며 온몸으로 요들을 즐겼다.
이휘~ 오휘~ 이~~휘!
덕군은 요들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줄이며, 정동희에게 어서 연주하라고 사인을 보내었고.
♪♬♩ ♪♬ ♪♬♪♬♩
기타 연주는 다시 시작되고, 곡의 마무리로 접어들었다.
복지리 총각~
양주 복지리이~~ 총가악~~!
띵디리딩 띵리디리딩딩 빠바밤~!
노래가 끝났다.
―우와아~~!
―이~휘~!
―좋다~~
―요를레잇디~~
사람들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난리였다. 환호성 속에 정동희와 덕군은 머쓱해져서 짐을 챙겼다.
―뭐야~ 이러고 끝이에요?
―버스킹을 한 곡만 하는 게 어딨어요?
―앵콜! 앵콜!
―이대로는 못 가요~
어느새 정동희와 덕군 주변을 가로막은 사람들. 빠져나갈 길은 없어 보였다.
“형, 어떡해?”
“아…… 하여간 너랑 뭐 좀 하면 항상 이런 식이네. 사람 이목 끄는 재주는 진짜.”
“…….”
“그리고 아까 그 요들 메들리는 뭐야? 계획되지도 않은 걸.”
“몰라…… 어쩌다 보니 나왔어.”
정동희는 난감해했다.
“하아~ 이거 진짜. 한 곡 더 할 수도 없고.”
맛집이라고 소문나면 사람이 더욱 몰리는 법. 환호성 소리가 들리니 사람들도 더욱더 몰려들고 있었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 * *
중년…… 아니 장년에 가까운 남성이 통기타를 치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우리 옆으로 들어왔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익숙한 노래. 확실한 건 쌍팔년도 향이 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님 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
또~ 또~
이 사람 누군지 알 것 같다. 마로니에 버스킹의 터줏대감. 항상 사람들 네다섯 명 앞에 세워 놓고 개그 하면서 노래 부르는 아저씨.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던 버스커 1세대.
―하아~ 이 아저씨 또야?
―왜 꼭 볼만하면 끼어들지?
―야, 가자.
그가 노래를 한 곡을 완곡할 동안 우리는 가만히 있었고.
노래를 이어 갈수록 우리 주변을 꽉 메웠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사람들이 말이야, 명곡을 몰라보고.”
노래를 끝낸 아저씨는 입맛을 다시며 목에 맨 기타를 쓰다듬었다.
“너희들, 오랜만이다?”
정동희가 물었다.
“저희를 아세요?”
“당연히 알지. 너 많이 컸다?”
그는 날 향해 무심한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진짜 아는 건가? 이번이 마로니에 공원 세 번째 버스킹인데.
더군다나 두 번째 버스킹에서는 뒤에서 연주만 했으며 노래는 안 불렀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무심한 눈길로 말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트롯으로 버스킹 하는 사람은 없거든.”
“…….”
“네가 아기 때였던 거 같은데.”
“8살이요.”
“노래 스타일이랑 목소리는 기억하는데, 얼굴은 가려서 안 보이고, 너무 어릴 때라 좀 긴가민가했어. 근데 옆에 있는 네 형아 덕에 알았다.”
난 뿔테 안경을 벗고 말했다.
“저도 아저씨 알아요.”
“여기서 나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 짜식, 이쁘게 잘 컸네.”
그는 안경 벗은 내 맨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어? 연예인 같은데? 얼굴이 낯익다?”
“하하. 네. 보뉘하뉘라고 아실지 모르겠는데.”
“아~~ 알지! 당연히 알지. 이야~ 성공했네~ 축하한다!”
그는 내가 보뉘인 걸 단번에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근데 연예인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웬 버스킹이냐?”
우리는 악기를 챙겨 옆에 벤치에 앉았다.
“아, 그게요…….”
처음 대화하는 사이지만, 이 아저씨한테는 이상하게 마음이 열렸다. 어릴 적의 날 기억한다는 말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술술 말했다. 보뉘를 관두고, 가수에 올인 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이야…… 그걸 놓는다고?”
“하하. 네.”
“너무 무모한 거 아니니? 그 정도 입지를 쌓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기는 한데, 하고 싶은 걸 못 하니까요.”
“오~”
아저씨는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귀중한 걸 놓더라도 원하는 걸 하겠다?”
“네.”
“둘 다 할 수는 없는 거니?”
“네,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학교도 다녀야 하고요, 무엇보다도 보뉘하뉘가 매일 생방이라…….”
“아~”
“가수 활동을 뜨문뜨문하면 가능하긴 한데. 그러긴 싫어서요. 할 거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아저씨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물었다.
“성공을 자신하니?”
“네?”
“네가 선택한 결과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믿냐고.”
어려운 질문이다. 믿기야 하지만…… 솔직히 100% 확신까지는 아니다.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가 나처럼 될 수도 있는 거야.”
잠자코 듣고 있던 정동희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가만히 있으라고 그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어떠냐? 지금 아저씨 모습 보기 좋냐?”
“…….”
완전 거지는 아니고, 준거지에 가깝다. 옷은 여기저기 해지고, 희끗희끗한 수염은 마지막으로 면도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은은한 고린내도 난다.
“좋아하는 거 하면서 꿈만 좇다 보면 이렇게 되기도 해. 본래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잘 안 된 사례는 눈에 안 들어오거든. 극소수의 잘된 것만 보이지.”
“그래서요? 아저씨는 후회하세요?”
삶이 비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질문에 쉽게 답을 못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회…… 안 하지. 아니, 할 수가 없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지나온 삶까지 후회하면……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하지 않겠냐?”
“…….”
“하기 싫은 거 안 하고, 좋아하는 거 하고 살았으니…… 이 정도는 값 지불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지금이 꼭 행복하다고는 말 못 하겠어. 하하.”
정동희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덕군아, 이제 가자.”
“어, 형.”
꾸벅 인사하고 가려는데. 아저씨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2,000원만 주면 안 되겠니? 컵라면 하나만 사 먹게.”
정동희가 그의 손에 만 원을 쥐여 주었다.
* * *
연습실에 들어온 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이~ 진짜. 왜 신장개업 하려는데 초를 쳐?!”
정동희는 그 아저씨와의 대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곡 반응 좋아서 기분 좋았는데. 왜 심각한 얘기를 하고 난리야.”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 난 괜찮아~ 최악을 알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뭐. 그래야 나중에 잘 안 되어도 충격이 덜할 것 아니야.”
“무슨 소리야? 긍정적인 면만 보고 살아야지. 안 그래도 힘든 세상.”
“…….”
정동희는 키보드 앞에 앉아서 말했다.
“자, 그 얘기는 그만하고, 곡 작업 마저 하자.”
“…….”
“즉흥으로 했던 요들 메들리 말이야,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도 반응 괜찮은 거 같은데 차라리 요들을 길게 넣어 볼까?”
지금은 라이브였고, 분위기를 탔다. 이것만으로 판단하기엔 무리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그 정도로 요들을 길게 넣으면 장르가 바뀌어 버린다.
내가 아무리 트롯 곡이라고 해도, 듣는 사람들은 요들송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장르적인 문제 때문에…… 그건 좀 아닐 거 같아.”
“흠…… 그래. 무리수 두지 말자. 신인가수니까.”
정동희는 시계를 본 뒤 말했다.
“이런 많이 늦었네. 덕군아, 내일 시간 되지?”
“응.”
“내일 바로 레코딩 가자. 괜찮지?”
“응 좋아.”
* * *
다음 날 일요일.
2년간 기다려왔던 만큼, 막상 곡 작업을 시작하니 속도가 빨랐다.
변성기가 끝난 데다가, 민요로 발성이 탄탄해져 있기에 난 언제든 노래 부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청담동의 녹음실
“덕군아, 바로 녹음실로 들어가.”
“알았어~ 여기 대여료 비싸지?”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에 들 때까지 해~”
제작자가 부잣집 아드님이라 참 든든하다.
녹음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 때.
“여기가 맞나?”
입구에서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엇?! 난 헤드셋을 내려놓고, 바로 녹음실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어쩐 일이세요?”
신바람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쩐 일은, 인마. 부르니까 왔지. 오늘 신곡 녹음한다며?”
난 정동희를 바라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어~ 내가 모셨어. 전문가시잖아.”
신바람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서 들어 보자. 난 시간이 돈이야. 오늘도 뽑아내야 할 곡이 열 개나 된다고.”
난 녹음실로 다시 들어가 불렀고. 노래를 듣는 내내 신바람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노래를 마친 뒤, 신바람의 손짓에 난 녹음실 밖으로 다시 나왔다.
“곡이 왜 이래?”
“네?”
“이게 트롯이야?”
신바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장르적 파괴는 정도껏 해야지. 그리고 신인가수가 이런 시도를 한다고? 덕군아, 너 자기만족으로 곡 내려는 거니?”
“…….”
“대중들에게 사랑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받아야죠.”
“야야, 이건 아니야. 이렇게 하면 안 돼~ 이게 트롯이야, 요들이야? 이거, 정동희 씨가 만든 곡이죠?”
“네.”
“편곡까지?”
“네.”
“편곡은 다른 전문가에게 맡기지. 신인 작곡가가 욕심을 내면 안 돼요. 흥행 법칙이라는 게 있다니깐.”
“…….”
“히트곡을 만들어야지, 히트곡을.”
신바람이 기술자를 향해 말했다.
“곡 다시 한번 틀어 줄래요? 제가 편곡 좀 볼 테니까.”
나와 정동희는 시무룩해졌다.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버스킹 통해서 봤을 때 반응도 좋았는데.
♪♬♩ ♪♬ ♪♬♪♬♩
노래가 나오고.
“자, 인트로 비트를 좀 더 쪼개고. 박자가 느려.”
“…….”
“사비에 ‘요를레잇디’ 빼. 트롯 곡에 무슨 장난질이야?”
“…….”
“브리지 이후 박자가 너무 빨라, 뒷부분은 좀 낮춰야 해.”
그렇게 그의 지적을 들으며 1절을 다 들은 뒤.
“내가 말한 부분 생각하면서 다시 잘 들어 봐.”
♪♬♩ ♪♬ ♪♬♪♬♩
원곡이 다시 한번 나오고 있는데.
덜컹.
엇?! 또 다른 방문자가 있었다.
“큰삼촌?!”
아장. 아장.
큰삼촌의 뒤를 따라 들어 오는 3살 덕용이.
“짜~ 짜~”
덕용이는 노래를 듣자마자 신나게 발장구를 치며 좋아했다.
‘엇, 이 반응은…….’
난 곧바로 신바람을 돌아보았고.
쓰읍―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