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멀리멀리 울려 퍼지는(1)
탁― 탁탁. 탁― 탁탁.
정동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가사를 읽었다.
“흠…….”
탁타다다닥. 탁타다다닥.
“역시…….”
정동희의 입가에 미소가 점점 더 크게 번져 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덕군아~”
“응?”
“내가 얘기했지? 너 작사에 천부적인 재주가 있다고.”
“…….”
“가사가 곡이랑 찰떡이잖아. 가사의 음률이 곡의 멜로디를 살려주기도 하거든. 그게 쉬운 게 아닌데.”
정동희는 가사를 몇 번을 되뇐 후말했다.
“라임이라는 게 꼭 랩에만 있는 게 아니야. 같은 모음으로 음절을 맞추면 멜로디가 살아나. 따라 부르기도 훨씬 쉽고. 너, 공부했니?”
덕군은 정동희의 말이 꽤 전문적으로 들렸다.
“아니, 그냥 형이 보내준 멜로디에 듣기 좋게 붙여 본 거야. 내가 봤을 땐 형이야말로 공부한 거 같은데?”
정동희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형은 공부 많이 했지~ 어쨌든!”
정동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래서 덕군을 천재라고 하는 거야. 안 배워도 감으로 알잖아.”
“하핫. 고마워. 그냥 한 건데.”
“그래, 앞으로도 그냥 해라. 어느 작곡가가 흥! 하고 풀면 유행가라더니……. 우리 덕군이 딱 그 격이네.”
그는 또다시 가사를 되뇌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올해 나온 가사 중에 최고다.”
옆태 보든 뒤태 보든 양주 복지리
무스 발라 가르마를 양주 복지리
경기 북부 소문났네 양주 복지리
복지리 총각
온 동네에 소녀들이 따라다니네
지나가던 고양이도 따라다니네
청바지에 청남방을 깔 맞춰 입은
양주 복지리 총각
그는 멜로디를 붙여서 1절 가사를 불렀다. 역시, 음정, 박자는 정확하다. 하지만 듣기에 좋지는 않았다.
“복지리 총각이 큰삼촌 말하는 건가?”
“응, 맞아.”
“이거 실제 얘기지? 네가 지어낸 거 아니고.”
“어떻게 알았어?”
“하하.”
정동희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느껴져. 그냥 느껴진다고. 이래서 예술의 힘이 대단하다고 하는 거야.”
“…….”
“이런 걸 살아 움직이는 가사라고 한다고. 리듬, 스토리가 융합되어 움직이고, 가사도 어렵지 않잖아. 뭔 말인지 다 알겠고.”
그는 웃네~ 그를 보네~ 좋아하네~
그를 원해~ 나를 보네~ 이럴 수가~
그다음 사비(후렴)를 불렀는데, 여기서는 잠시 고민하고 넘어갔다.
“사비는 나중에 다시 보자. 그다음 2절.”
용기 내서 다가가리 양주 복지리
무서워도 어려워도 양주 복지리
이젠 나도 마음 열게 양주 복지리
복지리 총각
타닥! 타닥!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기가 막혀. 신나는 곡인데, 감동마저 느껴져.”
“형, 좀 오바 아니야?”
“오바 아니야. 진짜야.”
내게 상처 줬었지만 좋아해 보리
피 물보다 진하니깐 좋아해 보리
근엄하고 숨 막혀도 나의 아버지
양주 복지리 총각
“…….”
2절 가사가 끝난 후, 우리는 침묵했다. 나로서는 굉장히 용기를 낸 가사다.
한때 그토록 싫어한 김 부장이었던 나의 아버지.
어릴 적 그에 대해 짓궂고 모질게 굴었던 것에 사죄의 마음을 담아 쓴 구절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릴 적부터 난 아빠를 미워했지만, 그는 계속 날 기다렸다. 미워할 만한 행동을 아무리 해도 날 미워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의 기다림과 세월은 내 마음을 열게 했다.
전생이야 어떻든 더 이상 날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김 부장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다.
이걸 깨닫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걸 반성한다. 상처가 깊었기에 그런 거긴 하지만 지금은 죄송한 마음만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속마음이 겉으로 잘 나오지는 않지만.
“딱 네 마디인데.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
“큰삼촌이 가사 보면 감동받아서 우시겠어.”
“에이~ 설마. 우리 아빠가.”
정동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가사에 무너지지 않을 아빠가 세상에 어딨냐? 괜히 나까지 코가 시큰한데.”
“…….”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사실 너 진짜 너무했었거든. 아빠한테 하는 게 아주 싸가지도 보통 싸가지가 아니었지.”
갑자기 확 깨는데?
“형…… 심한 거 아니야? 반성하고 있다고. 사정이 있었다니깐?”
정동희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알았어~ 알았어~ 하하.”
“…….”
내가 따라 웃지 않고 째려보자, 정동희는 헛기침을 하고 주제를 바꿨다.
“흠! 흠! 어쨌든 가사 다 좋은데, 딱 한 부분만 보완했으면 좋겠어.”
“얘기해 봐.”
“사비가…… 좀 심심해.”
* * *
“왜? 어떤 부분이?!”
덕군은 달려들 듯 물었고.
정동희는 손으로 휘저으며 말했다.
“워워. 왜 이렇게 들이대?”
“궁금해서 그러지. 뭐가 문젠데? 어서 말해 줘. 빨리 고치고 싶어.”
정동희는 이런 덕군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여간 완벽주의자라니까? 어쩌면 성격까지 큰삼촌을 똑 닮았냐.’
그는 웃네~ 그를 보네~ 좋아하네~
그를 원해~ 나를 보네~ 이럴 수가~
“뭔가 비어 보이지 않니?”
“글쎄…… 인트로, 브리지 모든 부분이 빡세잖아. 멜로디에 가사를 꽉꽉 채워 넣어서.”
“음, 그렇지.”
“그래서 사비에 ‘여백의 미’를 넣어 리듬감을 살린 건데. 이 의도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에헤이~ 잘못된 건 하나도 없어. 그냥 형 의견을 얘기하는 거야. 너 자꾸 흥분할래?”
“나 흥분 안 했는데.”
“목소리 톤이 올라갔잖아.”
“흠, 그랬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덕군이 날카로운 창이라면, 정동희는 견고한 방패. 성격적으로 봐도 두 사람은 참 잘 맞았다.
“그 의도는 좋아. 형도 동의해. 하지만 한 박자만 더 썼으면 좋겠어.”
“흠…….”
“가사가 아니면 추임새라도. 다시 봐도 확실히 좀 심심해. 형이 군에서 천 곡이 넘는 인기 가요를 들었다고. 사비가 이런 전개로 가는 건 한 곡도 없었어.”
정동희는 군 복무 중 제작자로서 각성했다.
작곡, 작사, 대중가요 관련 이론서 수십 권을 독파했으며, 트롯, 발라드, 댄스, 힙합, 락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웬만한 인기 가요는 다 들었다.
상병 말부터는 2번 노래방은 정동희의 독방이라 불렸으며, 그 두꺼운 노래방 책도 다 외웠다. 노래방 번호 부르면 제목이 술술 나올 정도다.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서일까, 시간을 정말 소중히 보냈다. 전역하면 바로 달릴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글쎄…… 생각 좀 해 보자.”
각자 고민에 빠졌다.
정동희는 이어폰을 꽂고 댄스곡을 들었으며, 덕군은 너튜브에 ‘추임새’를 검색해 영상들을 보았다.
그렇게 30여 분 지났을 즈음.
“어?!”
덕군은 뭔가 발견한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핫. 이거 재밌겠는데?”
“뭔데?”
덕군의 반응이 궁금해서 정동희가 가까이 다가왔다.
“형, 이거 어때?”
덕군의 보여준 핸드폰 영상 속.
무릎까지 오는 하얀색 양말을 신고 검은색 멜빵 옷을 입은 60대 아저씨가 커다란 아코디언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 머리에 하얀색 두건을 쓴 여자가 네버랜드 놀이동산에서 많이 본 듯한 중세 시대 펑퍼짐한 옷을 입고 아코디언을 안고 있다.
[요를레히요~ 요를리엣디~]
정동희는 황당한 표정으로 덕군을 바라봤다.
“사비에 요들을 넣자고?”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이거 큰삼촌 집에 놀러 갔을 때 삼촌이 장난으로 불렀던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그렇네?”
“흠…… 재밌는 건 둘째 치고, 대중이 좋아할까? 마이너한 거 같은데.”
“하지만 곡이 이런 느낌인걸? 잘 어울리잖아? 큰삼촌도 그렇지만 이 노래, 요들 같다는 말은 형도 했었어.”
“그건 그냥 장난으로 한 소리지. 누가 진짜 요들을 하자고 했냐?”
최근 요들을 부르는 가수는 없다. 인기 가요 톱 10은커녕, 100위권에도 없다. 아니 200위 권에도.
그냥 하는 가수가 없다.
“그냥 추임새로 하나 넣는 건데, 그것만으로 요들송으로 분류될까?”
“’요를레잇디’라는 단어가 너무 존재감이 커서…….”
두 사람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덕군이 말했다.
“내가 일단 한번 불러 볼게. 느낌 봐 봐.”
흉내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 요들 영상을 여러 번 다시 본 뒤 불렀다.
그는 웃네~ 그를 보네~ 좋아하네~ 요를레잇디~
그를 원해~ 나를 보네~ 이럴 수가~ 요를레잇디~
“오…….”
한번 불러 보고 나니, 느낌이 확 왔다.
“나쁘지 않은데?”
“그치 형.”
“근데 너 왜 이렇게 잘해? 처음 맞어?”
“에이~ 겨우 두 단어인데. 잘하긴.”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 거야?”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꽂히는 느낌. 덕군은 계속 요들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입이 악기가 된 것처럼, 흥이 살아 있었다.
요들은 스위스의 민요. 민요는 민요끼리 통하는 걸까? 요들은 처음 불러 봤으나 민요 전공자인 덕군에게 많이 낯설지 않았다.
“어때? 형, 이걸로 갈까?”
“나쁘진 않은데, 검증되지 않은 길을 가는 건 위험한데.”
“…….”
“다른 게 있을지, 우리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그리고 1시간여 더 생각을 해 봤으나.
요를레잇디~ 요를레히요~ 요롤레이호~
계속 두 사람의 머릿속에 요들이 메아리쳤다.
“아! 안 되겠다. 이거 중독성 있네.”
정동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군아, 테스트해 보자.”
“테스트?”
“어, 버스킹 가자.”
“신곡인데…… 보안 유지 중요하지 않아?”
“보안보다 검증이 더 중요해. 일단 일어나.”
* * *
마로니에 공원.
붉은색 담벼락 앞에 두 남자는 자리를 잡았다.
덕군은 혹시나 사람들이 알아볼까 싶어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이제 밖에서 뿔테 안경은 필수템이 되었다.
정동희는 기타를 메면서 말했다.
“덕군아, 오늘은 1절만 부르자.”
“좋아.”
“그러니까, 2절 부분에도 1절을 부르는 거야. 1절만 두 번 반복.”
“오케이.”
덕군은 가볍게 목을 풀었고, 정동희는 기타 줄을 튕기며 덕군 목소리에 맞게 튜닝을 잡았다.
아! 아~!
덕군이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좀 모여들었다.
―어머, 잘 부를 거 같아.
―둘이서 하는 건가?
―애가 노래 부르고, 어른은 연주하고.
한겨울의 저녁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아으~ 손 시려. 덕군아. 우리 한 곡만 하고 빨리 가자.”
“알았어.”
“꺾기는 하지 말고. 사람들 알아볼지 모르니까.”
“그게 맘대로 되려나. 노력해 볼게.”
띵~ 동~ 띠리띵~ 띵~~
정동희는 핑거 주법으로 시작을 알렸고. 곧이어.
쳉체게 챙챙! 챙체게 챙챙! 체케체케체케
신나는 기타 반주가 흘러나왔다. 6/8박자의 빠른 리듬. 말 두 마리가 끄는 말발굽 리듬이다.
―오~ 신나는데?
―경쾌하다~
기타 반주 소리에 구경꾼들이 좀 더 모였다.
덕군은 훅 들어갔다.
옆태 보든 뒤태 보든 양주 복지리~
무스 발라 가르마를 양주 복지리~
경기 북부 소문났네 양주 복지리~
복지리 총각~~
겨울바람에 썰렁하던 마로니에 공원. 단 네 마디만에 공원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온 동네에 소녀들이 따라다니네~
지나가던 고양이도 따라다니네!
청바지에 청남방을 깔 맞춰 입은~
양주 복지리 총가악~~
짝! 짝! 짝!
빽빽이 모여든 사람들은 박자에 맞춰서 박수를 쳤다.
―와~ 뭐야? 왜 이렇게 신나는데?
―기타를 잘 치시는 건가?
―박자감 미쳤어~
―쟤는 왜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거야?!
―중학생 정도로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노래는 사비에 진입했다. 이제 검증의 시간.
덕군은 아랫배에 힘을 줬다.
그는 웃네~ 그를 보네~ 좋아하네~ 요를레잇디~~
그를 원해~ 나를 보네~ 이럴 수가~ 요를레잇~디~~
탁 타닥! 탁 다닥!
모인 사람 모두 발장구를 치면서 들었고.
사비를 끝내고 1절을 다시 부르자.
박자를 맞추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더 커져 갔다.
요들. 박수. 발장구.
새해를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기대엔 찬 얼굴.
덕군의 흥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고…….
그는 웃네~ 그를 보네~ 좋아하네~ 요를레잇디~~
그를 원해~ 나를 보네~ 이럴 수가~ 요를레잇~디~~
두 번째 사비를 끝낸 후.
덕군은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여, 급발진하고 말았다.
오롤로 레호로레이리 요히히레히리 요호리요 로호로래힛리
야랄라후두 야랄라우디 야랄라우릿도리
오롤로 레호로레이리 요히히레히리 요호리요 로호로래힛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