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81화 (181/250)

181화. 호통 소리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나와 하뉘는 박청수에게 인사했다.

“와…….”

‘커트’ 소리가 났지만, 박청수는 여전히 얼빠진 표정이었다.

폭풍우가 휘몰아쳐 간 듯. 정신없어 보이는 얼굴.

“진짜 장난 아니다.”

나와 하뉘는 그의 반응이 재밌어서 그저 웃었다.

“우리 지금 녹화 몇 시간 한 거니?”

“하하.”

박청수는 녹화 시간을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인사하고, 돌림판 돌리고, 끝인사 하고.

이걸 약 5분 동안 다 진행했다.

“진이 다 빠지네. 정말 이런 생방송을 매일 하는 거야?”

“하하. 네, 매일 이렇게 해요~”

하뉘가 웃으며 대답했다. 시작하기 전만 해도 어려워하더니, 이젠 좀 편해졌나 보다.

“녹화 시간이 몇 분?”

“60분이요~”

“와…… 이런 수준의 생방송을 매일 60분 동안 한다고…….”

박청수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물었다.

“춤추고 노래도 한다던데? 연기도 하고.”

“맞아요. 살리도, 갈팡지팡 경찰서, 그럴 만한 보하스쿨, 보뉘하뉘쇼 게임원정대, 우당탕탕 라이브 갈라쇼.”

“…….”

“매일 코너 주제가 달라요.”

“대박이다, 진짜.”

박청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그렇게 못 해. 절대 못 해. 니들이 진짜 선배다, 야.”

“하하.”

그의 말이 재밌어서 나와 하뉘는 큰 소리로 웃었다.

“생방송이 어렵지만, 특히 시청자 연결 생방송은 훨씬 더 어렵거든. 아저씨가 라디오를 하고 있어서 알아요. 시청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깐…… 초등학생들은 더 그럴 거 아니야?”

난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초등학생들이 튀기는 하지만, 급발진이나 또라이는 없어요. 대부분 착해요.”

“와~ 단어 선택 봐 봐. 완전 내 스타일인데? 하하.”

흠……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한 건데. 좀 그랬나?

“불쾌하셨다면 사과할게요.”

“아니야~ 불쾌한 거 없어.”

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저씨도 제 스타일이네요.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라요.”

박청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물었다.

“생각했던 이미지가 뭔데? 만나면 막 욕이라도 할 줄 알았어? 안하무인에?”

“네.”

“……여긴 다 들 왜 이래? 왜 이렇게 솔직한 거야?!”

-하하하.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도 큰 소리로 웃었다.

“좀 전에 전화 한 친구가 예나라고 했었나? 진땀 뺀 거 생각나네. 전집 세트 당첨됐는데, 제일 싫어하는 게 책이라니…… 너무 솔직해.”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이제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바쁘신 분이잖아요.”

“왜 이래~ 왜 자꾸 보내 버리려고 해~ 나~ 박청수야~ 같이 있기 싫어?”

싫지 않다. 말투는 좀 틱틱대지만, 사람이 진솔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재밌었다.

“아니요~ 바쁘실까 봐 그랬죠.”

“매니저~!”

박청수는 큰 소리로 매니저를 불렀다. 체격 좋은 남자분이 조르르 달려왔다.

“네, 형님.”

“다음 스케줄 있어?”

“없습니다.”

“이제 초저녁인데, 스케줄이 없으면 어떡해? 일 안 할래?!”

“죄송합니다, 형님.”

박청수는 어이없는 이유로 매니저를 혼내다가 날 바라봤다.

“아저씨가 코코아 사 줄까?”

* * *

방송국 내부에 있는 카페.

박청수는 커피, 난 우유를 주문했다.

난 항상 키 크는 데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티타임에도.

중2가 되면서부터 키가 부쩍 크기 시작했다.

얼마 전 160을 넘겼는데, 중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170 넘기는 게 목표다.

“하뉘도 오라고 하시지.”

“아, 아저씨가 사실 사람 많은 걸 안 좋아해. 항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촬영하고…… 여가 시간에는 혼자 있는 게 좋아.”

“그럼 혼자 차 드시지 그랬어요.”

“너 자꾸…… 적당히 팅겨~ 나 박청수야아~”

방송용인 줄 알았는데, 과시욕이 실제로도 있는 것 같다. 툭하면 나 박청수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싫게 느껴지진 않았다. 재밌었다.

“하하, 알았어요~”

“너 방송한 지 얼마나 됐냐?”

“음…… 2년? 좀 안 됐어요.”

“풉!”

박청수는 커피를 마시다가 사레가 걸렸다.

“2년?! 진짜?”

“네.”

“아역 배우 출신인 줄 알았는데?”

“하하, 그래요?”

“누가 봐도 그렇지~ 너무 잘하잖아~”

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전 천재네?”

천재…… 아기 때부터 많이 듣던 말. 이제 그렇게 불리는 건 별로 어색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아는 유명 연예인이 그렇게 부르니 좀 다르게 들렸다.

“에이~ 천재는요. 하뉘 누나도 잘하잖아요.”

“그래. 잘하긴 하더라. 걔는 얼마나 됐니?”

“보뉘하뉘만 3년 차고…… 나머진 모르겠네요.”

“거봐, 거봐. 네가 걔보다 더 능숙하단 말이야. 아주 프로그램 주도를 하더만. 그리고 네가 동생이지?”

“네, 누나가 3살 더 많아요.”

“와…… 대박이다. 진짜.”

그는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집이 어디야?”

“개포동이요. 여기 산 지 얼마 안 됐어요.”

“그전에는?”

“월계수동이라고 있는데요.”

“아, 나 알아.”

이를 시작으로 박청수는 디테일하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거의 호구조사 수준이었다.

왜 이렇게 자세히 물어올까.

계속 대화를 나누다가.

박청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매니저는 어딨니?”

“아…….”

매니저가 없다고 해야 할까? 음…… 없다고 하면 이상해 보일 것 같다. 정동희가 매니저 역할도 해 주고 있으니…….

“군대에 있어요.”

“아~ 어?! 뭐?”

“군대요.”

“총 쏘는 군대? 진짜 군대?”

“네, 연천군에서 군 복무 중이에요.”

“…….”

박청수는 할 말을 잃은 듯 가만히 있다가.

“너, 스케줄 있을 때마다 외출 나오니?”

“하하하!”

그의 말이 재밌어서 한참 웃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아서 더 웃겼다. 황당하다.

“어떻게 그래요~ 형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동안 혼자 활동하는 거죠.”

“그럼 2년 동안…….”

“네, 정확히는 21개월인데요. 이제 전역 얼마 안 남았어요.”

“와…… 이건 의리가 아니라 열사 수준인데? 매니저한테 큰 빚이라도 졌니?”

“하하.”

“매니저 형이 콩팥 하나 떼 준 거 아니지?”

“…….”

이번 건 오바였다. 재미없었다.

정색하자 박청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애가 참 칼 같네. 거 좀 웃어 주지. 아저씨가 노력하는데.”

“…….”

“소속사는?”

“소속사는 준비 중이에요.”

“준비 중이라니? 무슨 뜻이냐? 아직 소속사가 없다는 거야?”

정동희가 준비 중이다. 소속 연예인이 되기로 예약은 되어 있지만, 아직 없는 게 맞다.

“네, 없어요.”

“오…… 볼수록 신기하네?”

박청수의 눈빛이 번쩍였다.

“아저씨가~ 소속사를 하고 있는데, 거인엔터테인먼트라고.”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대화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뭐야?”

박청수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고.

그 남자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MBD 10기 노재섭이라고 합니다!”

뽀글 머리의 남자.

보뉘하뉘에 출연 중인 사람이었다.

* * *

“엇! 경찰서장님~”

난 반갑게 아는 척했고, 그는 날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보뉘하뉘에서 다수의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으며, 메인 캐릭터로는 ‘갈팡지팡 경찰서’에서 경찰서장 역할을 맡고 있다.

“노재섭?”

“네~ 선배님.”

박청수는 떨떠름하게 인사했다.

“어, 그래. 반갑다. 교육 방송에서 일하는구나?”

“엇? 혹시 저 아십니까?”

“내가 너를 어떻게 알아. 처음 봤는데.”

“네~ 아~ 네~”

딱 봐도 박청수는 방해받아서 짜증 나는 얼굴이었는데.

노재섭은 눈치 없게 옆자리에 앉았다.

“선배님~ 저도 음료 한 잔 사 주세요.”

“그래. 사 줄 테니까, 들고 가라.”

박청수는 보뉘하뉘의 친구들 못지않게 솔직하다.

얼굴에 보인 불편한 표정 그대로 행동했다.

“에이~ 저 선배님 팬인데.”

“그래, 팬인 건 고마운데, 지금 대화 중이니까.”

“우이쒸!”

노재섭은 갑자기 박청수 성대모사를 했다.

“후배가 인사하는데 이러기에요! 진짜 팬이라고요~!”

“…….”

노재섭은 어떻게든 박청수의 눈에 띄려고 애를 썼다. 만날 기회가 잘 없으니, 뭐라도 해서 눈에 띄고 싶은 것이다.

“옆에서 같이 음료 마시고 싶다고요~”

근데, 눈치를 좀 챙겨야지.

그리고 언제 적 호통 개그를…….

“우이쒸.”

노재섭은 눈을 반쯤 뜨고, 박청수의 시그니처 포즈를 따라 했고.

“아오, 확 그냥.”

결국 박청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고, 노재섭의 뒤통수 앞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꺼져.”

이건 간절함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눈치가 없는 것일까.

설마 지금 박청수가 본인의 개그를 받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손까지 올라왔는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아오, 진짜. 신사적으로 대해 주려고 해도.”

이미 ‘꺼져’라고 말했는데…….

“야, 나보고 선배라고 하니까 말해 주는 건데, 네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네?”

“대화 중이라고. 나중에 보자고 했잖아. 재미도 없는 성대모사나 하고 있고 말이야.”

“…….”

“주변 사람들 눈치 안 보여? 재능이 없으면 노력을 하든가. 노력도 못 하겠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될 거 아니야아~! 이런 식으로 선배 눈에 띌 생각만 하고 말이야!”

박청수는 진짜 호통을 쳤고. 독설들이 쏟아졌다.

노재섭은 입을 꾹 다물고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중간에 끼기도 뭐했지만.

그래도 내 직장 동료인데……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난 박청수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너무 좋아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신 거 같은데, 너무 뭐라 하진 마세요. 무안하게…….”

“저거 순수한 마음 아니야. 척 보면 알지. 눈에 욕심이 그득하구만.”

노재섭은 꽉 다문 입술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럴 때는 곧바로 오해를 푸는 것보다 거리를 두는 게 낫다.

“아저씨, 어서 가세요. 제가 박청수 아저씨한테는 잘 말씀드릴게요.”

“니가 뭔데 가라 마라야?”

“네?”

노재섭의 눈빛을 마주했는데.

날 향한 증오와 적대심이 보였다.

내가 뭐 잘못했나? 왜 나한테 그래?

황당해서 멍하니 서 있는데.

“선배님, 그럼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인사드리겠습니다.”

노재섭은 박청수에게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그가 멀어지자, 박청수는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그러니까, 소속사 말이야…….”

* * *

박청수와의 독대는 대화로 시작했지만 미팅으로 끝났다.

난 옷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아~ 오늘 좀 늦었네. 배고프다.”

배를 쓰다듬으며 세트장을 지나치는데, 하뉘 목소리가 들렸다.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왜? 내가 내 입으로 말도 못 하냐?”

하뉘가 누군가와 입씨름을 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험악하다.

항상 화기애애한 보뉘하뉘 녹화장에서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8시가 좀 늦은 시각.

이 시간까지 스튜디오에 있어 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괜히 관여했다가 귀찮아질지도.’

그리고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아니야. 보뉘하뉘의 호스트로서 두고 볼 수 없지!’

결국 난 말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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