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셀럽과 함께(1)
이 집안은 대대로 유복했던 적이 없다.
큰 고모와 작은 고모는 잘살고 있지만, 그건 잘사는 집안에 시집가서 잘살고 있는 것이며.
집안 인물들은 모두 능력이 좋은데, 이상하게도 돈은 안 따르는 액운이 꼈다는 말이 들릴 정도였으니.
김 부장이 서울대에 차석으로 입학하고, 대기업 부장임에도 이렇게 절절매며 살아가는 걸 보면 돈 운은 참 없다는 생각이 들 만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항상 살 만큼. 딱 살아가는 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만 돈이 생겼다.
덕군이 음악을 하게 되면서 교육비로 돈 쓸 일이 많아졌었는데.
때맞춰 흙장난 저작권료가 생겼고, 뒤이어 보뉘하뉘 출연료. 김 부장의 이른 부장 승진, 큰삼촌의 출가 등.
그 시기에 맞게 수입이 늘어나면서 교육비 지출이 많아도 부족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돈에 대해서 초연한 마음을 갖는 습관이 들여 있었다.
좋은 동네, 좋은 집에 사는 욕심 따위는 없었으며.
돈 쓸 일이 생기면 다른 곳에서 아끼거나, 때맞춰 돈이 생길 거라는 가치관.
그런데 오늘.
이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은 일이 발생했다.
절대 그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잭팟.
터진 것이다.
“와…… 형, 믿기지가 않아.”
막냇삼촌은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도대체 주식 투자를 어떻게 한 거야? 그리고 형이 한 주식에 2억 원이나 투자할 생각을 했다고? 난 그것부터가 안 믿기는데?”
김 부장은 원리원칙주의자답게 안정주의에 저축신봉자다. 돈은 모으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거라고 믿는 사람.
그 좋은 머리로 돈 불릴 생각은 안 하고 살았다. 대대로 이어진 집안 분위기에 세뇌된 것이다. 봉급 외에 돈 버는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며, 불로소득은 죄악이라 여겼던 것.
그런 김 부장의 성향을 잘 알기에 가족들은 더 놀라운 것이다.
“형이 그렇게 꽉 막히진 않았다. 확실한 정보가 있으면 투자하는 거지.”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상기된 얼굴로 김 부장과 막냇삼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이상하다? 많이 막혔던 거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확실한 정보는 어디서 얻었대?”
막냇삼촌은 꼬치꼬치 물었다.
“대기업 부장 돼 봐라.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오…….”
옆에서 잠자코 듣던 덕군이 탄성을 질렀다.
‘뻥 잘 치시는데?’
막냇삼촌은 덕군의 탄성이 대기업 부장의 파워에 대한 것으로 생각했다.
“쳇, 대리는 서러워서 살겠나. 그래서 부장들이 잘사는 거구나? 뭐, 어쨌든 축하해~ 형! 다음엔 그런 정보 있으면 나도 좀 알려줘~”
“얀마, 넌 아직 그럴 짬밥 아니야. 일이나 잘 익히고 열심히 해.”
김 부장은 잔뜩 상기되어 있는 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너무 기쁜 일이에요. 저도 벅찹니다. 이런 행운이 생겼다는 게. 하지만 다른 친척들이나 이웃들에게는 알리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말했고. 가족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할까 했지만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얘기하는 겁니다.”
김 부장은 상의 없이 전 재산을 투자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결과로 보여 줬으니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족들도 그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김 부장에 대한 무조건인 신뢰.
십수 년간을 혼자서 이 집안의 경제를 책임졌다. 가장으로서의 김 부장에 대한 존중이 가족들 사이에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집을 살 겁니다. 이게 이 돈으로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김 부장은 아내를 보았다.
“여보, 당신이 수고 좀 해 줘야겠어. 개포동에 있는 아파트로 알아봐 줘. 금액은 7억 원 상당. 필요하면 대출도 받을 생각인데…… 가급적이면 대출 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겠어요.”
“그래, 나도 알아볼 테니까. 다른 분들도 좋은 정보 있으면 뭐든 공유를 해 주세요. 최대한 빠르게 진행합니다.”
김 부장은 덕군이 요청한 대로 행동했다.
‘개포동의 대단지 아파트로 최대한 빨리 매수해서 이사 간다.’
그는 정확하고 빠르게 모든 사람들이 본인의 지침을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했다.
‘확실히 아빠가 일을 잘하네. 상사들이 좋아할 만해.’
가만히 지켜보던 덕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일사천리였다.
아빠는 집을 구하는 동안 야근을 하지 않았다. 온전히 아파트 매수에 집중했다.
전 재산을 들여 집을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좋은 물건을 사야 하고,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
아빠는 퇴근하고 나면 어머니와 함께 매일 집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한 2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저녁, 아빠는 날 불렀다.
“덕군아.”
“응?”
“내일 계약하려고 하거든?”
난 솔직히 많이 놀랐다.
“벌써 구한 거야?”
“그래. 빨리해야 한다며? 이미 2주 지났는데, 오래 걸린 거 아니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진짜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하네. 기대 이상이다.
“어차피 갈 거 더 고민해 봐야 뭐하냐? 물건도 다 비슷비슷하고.”
“응~ 그래. 그럼 아빠가 결정한 대로 계약해~”
개포동의 대단지 아파트.
살 수만 있다면 어디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는 난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건 부모님이 해야 할 일이고, 내가 끼어드는 건 주제넘는 거라고 생각했다.
“좀 오래된 아파트인데…… 괜찮겠냐? 개포동 아파트 가격이 많이 비싸더라.”
“…….”
“리모델링 하면 괜찮을 거 같아. 호재도 있는 것 같고.”
“호재?”
“어, 재건축 이슈가 있는 곳이야. 얼마 전에 정밀안전진단 통과도 한 거 같더라. 1년만 더 빨리 샀으면 훨씬 더 싸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 이름이 뭔데?”
“재원예중 바로 뒤에 있는 큰 아파트 단지 있잖아. 개포시영.”
“개포시영?! 거기 7억으로 살 수 있어?”
“7억은 좀 넘는데, 지금 사는 집 보증금도 있잖아. 이거까지 합하면 대출 안 끼고 살 수 있겠더라.”
개포시영이면 개포동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 중 하나인데?
잭팟이잖아?!
거기 살 생각을 하다니……!
전생 기억을 떠올려 봤다.
개포동에 구축 아파트들은 2021년 이전에 대부분 재건축이 완료된 걸로 기억한다.
하도 큰 사업이라 뉴스에서 어렴풋이 본 기억이…….
확실히 아빠가 머리가 좋으셔.
안 해서 그렇지 막상 하면…….
“아빠.”
“어?”
“축하해.”
난 악수를 건네었다.
“뭘? 뭘 축하하냐? 내일 아파트 계약하는 거?”
“어, 그것도 그렇고. 한…… 8년 뒤면 알게 될 거야. 대박이야.”
“뭐어?”
너무 점쟁이처럼 말했나?
“하하. 아니면 뭐 10년?”
아빠는 싱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얀마, 그 정도 지나면 당연히 오르겠지.”
아빠…… 그냥 오르는 정도가 아니야.
가수 잘 안 되더라도 부잣집 아들내미 소리 듣겠네, 뭔가 좀 든든해진다.
두근. 두근.
심장이 두근거린다.
“평수는?”
“거기서 제일 큰 평수. 아파트가 크지 않아서.”
난 다시 한번 악수를 건네었다.
“아빠, 정말 축하해.”
“어? 어…… 그래, 고맙다?”
김 부장은 미심쩍은 눈으로 날 보며 물었다.
“어쨌든, 좋다는 거지?”
“무조건 좋지!”
“그럼 내일 계약한다?”
김 부장의 말에 난 눈에 힘을 빡주고 또박또박 말했다.
“어! 꼭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해!”
“하하. 왜 이렇게 오바냐?”
“오바 아니야. 집주인 맘 바뀌지 않게 잘 설득해서. 알겠지? 꼭 계약해야 해?!”
김 부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우리 가족은 개포시영아파트에 입성했다.
* * *
스튜디오의 공기.
이젠 익숙하다 못해 집처럼 느껴진다.
곧 있으면 12월. 벌써 2년이 좀 넘었다.
정동희가 전역할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2년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보뉘가 된 후 얼마 안 있어서 갔었으니까.
“덕군아, 오늘 컨디션 어때?”
처음에 신건이 아닌 내가 보뉘가 되었다고 틱틱대던 하뉘 누나. 2년이 지난 지금은 태도가 완전 바뀌었다.
내게 굉장히 친절해졌고, 내 키가 160을 넘어 하뉘 키보다 조금 더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날 보는 눈빛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리고 신건은 요즘 뭐 하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언젠가부터 제이스트림이라는 그룹 자체가 안 보인다.
“똑같지 뭐~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박청수 오는데 안 떨려?”
오늘 게스트로 박청수가 온다. 대한민국의 유명 개그맨 중 한 명인데, 스스로를 일인자가 아닌 점오라 낮춰 부르며 포지셔닝을 잘 잡은 개그맨이다.
‘돌려 돌려 돌림판’ 돌리러 오는 건데.
요즘 보뉘하뉘가 방송가에서 화제가 많이 되면서, 간혹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나온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이나 아나운서 정도였지, 박청수와 같은 거물급은 처음이다.
“떨릴 게 뭐 있어. 그리고 호스트가 떨면 어떡해.”
“아오. 난 떨려.”
“누나 곧 있으면 19세 아니야? 왜 이래? 소녀같이.”
“야! 그럼 19세가 소녀지. 아줌마냐?”
난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니, 숙녀지…… 성숙한 숙녀.”
“어머.”
하뉘는 얼굴이 벌게졌다.
“너 자꾸 누나한테 장난 칠 거야?”
그러면서 내 어깨를 때리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때리는 게 아니라, 토닥거린 것 같았다.
난 하뉘의 이런 리액션이 재밌어서, 평소에도 이런 류의 농담을 종종 한다.
[스탠바이~ ]
휴우~
하뉘는 한숨을 몰아쉬고 말했다.
“덕군아, 박청수 아저씨 오면 네가 말 많이 해야 해. 알겠지?”
“알았어~ 걱정 말어. 누난 잘할 거야.”
“에휴…… 이럴 때는 녹화로 하지. 굳이 뭘 생방으로 한다고. 실수할까 봐 걱정돼 죽겠네.”
“난 그 아저씨가 걱정되는데.”
방송으로 봤을 때, 박청수는 말하는 데 거침이 없어 보였다.
교육 방송이니까 어느 정도 자제를 하겠지만, 그래도 불안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 이제, 들어갑니다~]
스태프의 사인에 나와 하뉘는 이제 대화를 멈추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하이~ 큐!]
보뉘 보뉘 보~ 하뉘 하뉘 하~
하루종일 이 시간을 기다려 와써~!
보뉘하뉘는 항상 노래로 시작한다.
전국 초등학생들이 사랑하는 오프닝 송. 나와 하뉘는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프로그램과 시청자들을 위한 쇼이지만. 이건 우리 자신을 위한 신성한 의식이기도 하다.
오프닝 송을 함으로써, 텐션을 끌어올리고. 교육 방송은 유치하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고, 나 자신을 놓으면서 병맛 수치를 올리는 것이다.
노가다 하기 전에 막걸리 한잔하는 것처럼, 본격적인 녹화 전에 오프닝송은 보뉘하뉘에게 필수다.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하뉘를 향해 총을 쏘며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긴장된 표정이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오프닝 송은 정말 위대하다.
보뉘~ 하뉘~ 보뉘하뉘 얍!
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친구들 안녕~ 보뉘예요~”
“안녕~ 안녕~ 하뉘예요.”
하뉘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정확히 1옥타브 올라갔다. 확실히 프로는 프로다. 아무리 긴장되어도 몸이 기억하는 거다.
“보뉘! 보뉘! 요즘 날씨가 너~무 춥지 않아요?”
“맞아요~ 너무 추워요. 우리 친구들도 너무 춥죠? 제가 녹여 드릴게요~”
‘호오~’
난 두 손을 모으고 카메라를 향해 입김을 불었다.
“꺄악~ 친구들 좋겠다~”
“하뉘도 해 드릴까?”
하뉘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말했다.
“전 오래 살고 싶어서요~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당~”
내 팬들을 의식한 멘트. 센스 좋다. 하뉘답다.
방송은 순탄하게 이어갔고.
어느덧 마지막 코너 ‘대신 전해 드릴게요.’ 시간이 되었다.
“전화해 준 친구~ 너무 고맙고요~ 오늘은 돌림판을 저희 말고 다른 분이 돌려 주실 거예요!”
난 카메라를 향해 검지를 펼치고 말했다.
“보뉘와 하뉘가 특별히 모셨습니다~!”
난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박청수 아저씨~ 나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