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세상에 이런 일이(2)
교육 방송 1층 로비.
김 부장은 덕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덕군은 게이트 밖에서부터 김 부장을 향해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하하~ 덕군아~!”
두 남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달려가서 와락 안았다.
“하하하!”
“대박! 대박!”
껑충껑충 뛰고 난리였다.
김 부장도 지금만큼은 달랐다.
십수 년간 어깨를 눌러 온 무게를 벗어던진 듯, 아주 가볍고 후련한 표정이었다.
“와~ 아빠, 축하해!”
“하하! 네 덕분이야~ 우리 가족 모두가 축하할 일이지! 하하!”
사람들이 보든 말든 두 사람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은 보뉘였다.
대한민국 초통령 보뉘 덕군.
방송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덕군이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절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복권이라도 당첨됐나?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잘생겼다아~ 배우인가?
“덕군아~”
결국 누군가 말을 걸었는데, 송이수였다.
“엇, 형~!”
덕군은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끌어안았다.
“허헉! 숨 막혀~ 뭐 좋은 일 있니? 아, 맞다.”
송이수는 김 부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 먼저 했다.
“안녕하세요~ 덕군아, 누구셔?”
덕군은 그런 송이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참 잘 컸다. 뉘집 아들인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덕군과 친해 보이고 어른이니까 인사부터 하는 것이다.
함께 방송 활동을 하면서 덕군은 송이수의 이런 사소한 행동을 보며 배우는 게 많았다.
“우리 아빠야~”
“아~ 그 유명하신 아버님이시구나?”
송이수는 김 부장을 향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덕군이랑 같이 방송하고 있는 송이수라고 해요~”
“오냐~ 인사성이 참 밝네.”
김 부장은 그러면서 송이수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김 부장은 터치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송이수에게는 사람 간의 경계를 무력화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송이수는 처음 본 사이지만, 해맑게 물었고.
김 부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덕군 덕분에 집에 경사가 났구나~ 하하.”
이 말에 송이수는 덕군과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덕군이 복덩이인가 봐요. 보뉘하뉘는 덕군 덕분에 매일 경사인데. 헤헷.”
덕군은 이 말에 피식 웃었다.
‘이수 형은 참 말 이쁘게 해. 이런 건 좀 배워야 해.’
송이수는 덕군과 김 부장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자, 그럼 계속 기뻐하세요~ 전 이만 사라지겠습니당~ 하핫, 뭔지 몰라도 축하드려요~”
송이수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김 부장이 의외의 제안을 했다.
“얘야. 시간 되면 같이 저녁 먹고 갈래?”
송이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좀 전에 어머니가 밥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 주셔서요. 하하. 다음에 할게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본인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덕군을 향해 손이 보이지 않게 흔들며 말했다.
“덕군아~ 내일 봐~ 축하해~ 안뇽~”
“어~ 형아, 안녕~ 고마워~”
송이수가 사라졌고.
김 부장은 그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저 인간 비타민은 뭐니?”
덕군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미래의 대형 스타.”
“뭐어?”
김 부장은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내 아들이 최고지. 자, 가자!”
* * *
아웃백 하우스.
비싼 데 왔다.
약 7억 3천 만 원의 차익을 거두었는데, 이 정도는 와도 되지 않나?
전생에는 몇 번 가 봤지만 이번 생에는 처음이다.
“덕군아~ 많이 먹어.”
“아빠도 먹을 거지?”
“당연하지~ 너랑 같이 먹으려고 아무거도 안 먹었다.”
세트 메뉴 따위는 보지 않았다.
그냥 단품으로다가 스테이크도 시키고 파스타도 시키고.
내 얼굴을 알아본 직원이 구석진 자리로 안내해 줘서 번거롭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아빠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얻은 수익으로 아직 뭘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세상이 달라진 것 같은 기분.
우리 분위기는 마냥 화기애애했다.
“나, 오늘부터 싸인 팬 할 거야.”
“아빠도 오늘부터 강동스타일을 18번으로 하려고 한다.”
어느덧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아빠, 이 돈으로 뭘 먼저 하고 싶어?”
“흠…… 글쎄.”
난 그가 대답하기 전에 단도리를 했다.
“저축은 안 돼. 미래를 위한 저축 이런 건 하지 마. 우선 지금 잘사는 게 중요하잖아.”
“엇? 어, 그래. 그렇다면…….”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통장에 고이 모셔 놓고 손도 대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선수 치길 잘한 것 같다.
“음…… 우리 집 말이다.”
“응.”
“상태가 안 좋잖아. 이게 아빠는 내내 마음에 걸렸거든? 특히 곰팡이 때문에 네 기관지에 안 좋을까 봐.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에도 그렇고.”
“…….”
예상 답안이다. 난 아빠가 이 얘기를 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우선 이사를 갔으면 한다.”
“어디로?”
“그건 고민해 봐야지.”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 생각 좋은 거 같거든?”
“…….”
“최대한 빨리 실행했으면 좋겠어. 나 지금 집 너무 싫단 말이야.”
싫을 것까지는 없다. 아빠를 움직이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집을 구하는 건 너무 큰일이어서, 밍기적댈 수 있다. 아빠가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쁘기도 하고.
지금은 2012년. 앞으로 매매가의 연간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디테일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21년까지 살았던 내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사는 게 좋다.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전세나, 월세 갈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사야 해.”
“왜?”
“또 이사 다니기 싫어서. 친구들도 다 다시 사귀어야 하고.”
이 말에 아빠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게 친구는 소수다. 이사 안 다녀도 친구 사귀며 만날 시간 없었다.
이 또한 아빠가 집을 사도록 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네가 친구를 중시했었구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네.”
“맞아. 일석이, 기덕이, 종권이 등 다 보고 싶어.”
“흠…… 그래.”
아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학교랑 방송 때문에 이 근처에 있어야 하잖아. 개포동에 7억으로 살 수 있는 집이 있을까…….”
7억이면 가능한 집이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미래 가치도 중요하니까. 한 가지 조건을 더 걸었다.
어차피 지역은 개포동이 될 테니, 이 조건만 맞으면 어디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파트 살고 싶어.”
“뭐? 아파트 살아 본 적도 없는 애가?”
“친구네 집에 가 봤는데, 좋더라고.”
“아파트는 비쌀 텐데…….”
아빠는 잠시 생각하고는 물었다.
“오래된 아파트도 상관없냐?”
“응. 나홀로 아파트만 아니면 돼. 최소 500세대 이상 단지.”
아빠는 내게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흠, 구체적으로 말했나?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딴청을 했고.
아빠는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뭔가 좀 이상한데.”
* * *
집 앞에 도착했다.
아빠가 들어가려는데, 난 그의 소매를 잡았다.
“아빠, 잠깐만.”
“왜?”
아빠는 여전히 신나 있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내 앞에서 보인 적이 거의 없어서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그만큼 좋은 걸까? 성격을 숨겼던 걸까? 아니면…… 변한 걸까.
“들어가면 가족들한테 얘기할 거지?”
“오늘 일 말이냐?”
“응.”
“글쎄다.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큰돈이 생겨서 이사할 거라고 하면 가족들이 의아해할 테니까.”
“…….”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아빠가 가장이어도, 엄마와 상의 없이 집 전 재산을 걸고 투자했었다.
물론 혼자 한 건 아니고, 나와 함께한 거지만…… 더 이상 가족들에게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 그럼 나 한 가지만 부탁할게.”
“얘기해 봐.”
아빠는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날 돌아봤다.
“너, 오늘 참 조언을 많이 한다?”
“흠. 뭐 그럴 때도 있는 것이지.”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식에 내가 관여했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줘.”
“왜?”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니야. 일련의 과정이 정상적으로 보긴 어렵잖아.”
14살 아들 말 듣고 대출까지 해서 와이씨주식 2억 원 상당을 매수하여 1년 만에 7억 원이 웃도는 수익을 거뒀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아들도, 그 말 듣고 2억 원을 투자한 아빠도, 실제로 그 수익을 얻었다는 것까지.
다 이상하다.
“아니, 그래도…… 흠…….”
그 또한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얘기를 했는지 아는 듯했지만, 망설였다.
내 말대로 하려면 아빠 혼자 다 해낸 것처럼 말을 해야 하는데, 그게 내키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내가 기억하는 김 부장과는 많이 다르다. 전생에는 좋은 일은 본인이 안 한 것까지도 했다고 말하던 위인이었으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그게 낫겠다.”
그리고 날 향해 싱긋 웃는데.
그 미소에서 오늘 내내 들었던 의구심에 대한 답을 확실히 찾았다.
“아빠, 변한 거 같아.”
“하하, 그러냐?”
“응.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는데, 변했네.”
아빠는 내 머리를 헝클고는 말했다.
“너도 많이 변했어, 짜샤. 들어가자.”
삐비비빅―
그리고 그는 도어락을 열었다.
* * *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삼촌~ 덕군이 왔습니다으다으~”
김 부장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고. 덕군은 노래로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호호. 뭐야? 두 부자가 엄청 신나 보이네?”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김 부장과 덕군을 맞았다.
TV를 보고 있던 할머니도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둘이 만나서 들어 온 거냐?”
김 부장은 대답 대신 활짝 웃었고.
덕군은 계속 노래 부르듯 말을 했다.
우리 가족들~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
우리 아빠가~ 크은~ 일을 하셨습니다으다으~
막냇삼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뮤지컬 하냐? 혹시 보뉘하뉘 뮤지컬 진출하냐?”
난 출연 안 하지만 출연자들 중 일부는 뮤지컬도 하고 있다. 저작권사용료 내고, 배우들 써서 소규모로 한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덕군의 노랫말에 가족들은 집중했다.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경사가 났구나!’
할아버지가 김 부장을 향해 물었다.
“아비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냐? 혹시 임원으로 승진이라도 한 거냐?”
잔뜩 기대가 담긴 눈빛이었고.
김 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보다 더 좋은 일입니다. 하하.”
“그래? 도대체 뭔데 그러는 거냐?”
가족들은 모두 일어섰다.
김 부장의 입만 보고 있었다.
“음…… 제가 주식투자를 좀 크게 했었는데요, 오늘 일괄 매도하고 큰 수익을 얻었어요.”
“오~?”
막냇삼촌은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큰형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큰가 본데? 얼마나 벌었길래 그래? 한 몇 천이라도 되는 거야?”
막냇삼촌 딴에는 과장해서 부른 금액이었다.
“훗, 아니.”
김 부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몇 억 된다.”
“뭐어?!”
가족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고.
덕군이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7억 3천이랍니다으다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