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77화 (177/250)

177화. 세상에 이런 일이(1)

1절 가사는 완성됐다.

후렴과 2절 가사도 고민하고 있지만, 급하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본격적인 데뷔곡 작업은 정동희 전역 후에 진행될 것이다. 정동희의 전역은 12월. 아직 9월이니 시간이 남았다.

여느 때처럼 보뉘하뉘 촬영 후 늦은 시간에 집에 와서 TV를 보며 쉬고 있었다.

TV를 보는 것은 내게 인풋의 과정.

여가 시간에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며 흐름과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뉴스도 보는데,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년이 넘게 지났고, 신곡 나온 지도 꽤 되었는데…….

덜컹.

“다녀왔습니다~”

아빠가 퇴근했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오냐~ 덕군 있었구나.”

아빠는 싱글벙글이다. 요즘 얼굴이 너무 좋다.

“오늘도 늦었네?”

“아~ 좀 늦었지. 그래도 아빠는 기운이 넘쳐~”

“…….”

한평생 회사 일만 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약간의 다른 가능성만 보여도 들뜨는 기분을 느낀다.

나 또한 전생에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김 부장에게 갈굼을 당하던 어느 날 주식을 산 적이 있었다. 차트만 보고 저점에 산 거였는데, 일주일 만에 10% 올랐었다.

그래봐야 5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 같고, 회사가 우습게 보이는 기분. 김 부장에게 푼돈이나 열심히 벌라며 통쾌하게 사표를 뿌리는 꿈을 꿨었다.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고.

결론은 마이너스 20%의 엔딩이었다.

“덕군아~ 아직도 팔면 안 되는 거냐?”

작년 19,200원에 매수했던 와이씨 주식이 지금 77,700원이 되었다.

네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예상대로 싸인의 신곡이 올해 7월에 발매되었고, 와이씨 주식은 8월부터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빠는 애가 닳았다.

총매수한 와이씨엔터테인먼트 주식 금액은 2억 원.

아빠 심정을 이해는 한다. 당장 팔아도 약 6억 원의 수익을 얻으니까.

“응, 아직 안 돼. 조금만 더 기다리자.”

“여기서 뭘 더 기다리냐. 이러다가 갑자기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렇다. 떨어질 수도 있다.

내가 주식을 잘 모르지만, 회사 실적뿐 아니라 여러 상황과 요인에 따라서 수시로 가격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또한 최근에 빠르게 올랐으니, 갑자기 빠질 가능성 또한 높다.

하지만…….

‘강동스타일이 아직 빌보드에 2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건 정확히 기억한다.

산속에서 도 닦는 사람 아니라면 2012년을 살았던 사람 중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 때가 안 됐어. 조금만 더 기다리자.”

주식은 해 본 적도 없고 회사 생활만 착실히 하고 살았으며, 더군다나 미래를 모르는 아빠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야야, 뭔 때야. 언제까지 기다려? 욕심부리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거야.”

옆에 가만히 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도대체 둘이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뭐 샀어요?”

“…….”

나와 아빠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주식 매수 얘기는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었다.

2억 원 빚져서 주식 샀다는 얘기를 어머니가 알면 졸도하실 것이다.

“아하~ 피곤하다~”

난 아빠에게 눈짓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그는 날 따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 * *

아빠가 들어온 후, 난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아빠, 진정 좀 하라니까. 들킬 뻔했잖아.”

“2억 원이 8억 됐는데, 진정하게 생겼냐? 아빠가 보기엔 너야말로 이상하다.”

“…….”

난 가만히 아빠를 보았다.

정말 평소 같지 않다.

평소에는 항상 침착하고 냉정하며 사리 분별이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확실한 김 부장이다.

그런 아빠가 눈이 빨갛게 충혈돼서는 요즘 나만 보면 안절부절못하며 주식 얘기만 한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해 보이면서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몰라, 어쨌든 때가 아니야.”

“언제까지 때 타령 할 거냐. 모레부터 연휴인 거 알지?”

이번 주말부터 추석 연휴에 개천절까지 껴있어서 5일간 쉰다.

“주식 좀 아는 동료들한테 물어보니까, 긴 연휴 끝나면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

“와이씨가 최근에 많이 올랐잖아. 아빠 생각에는 연휴 전에 처분하는 게 좋겠어.”

그래서 오늘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하는 거였구나.

연휴 전이면 내일밖에 없는데.

솔직히 나도 좀 불안하긴 하다.

전생의 일이 이번 생에도 100% 일어난다는 법은 없으니까.

우선 아빠의 집안이 그렇지 않은가. 전생에 김 부장의 집 사정을 자세히 들은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딸만 하나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김 부장의 집안에는 나, 김덕후라는 아들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지금 팔고 6억 원 수익이라도 얻는 게 좋을까?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좀 아쉽다.

“만약 연휴 이후에 떨어진다고 해 봐야 얼마나 떨어지겠어.”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아빠의 눈빛이 급해 보인다. 아무리 내가 말을 해도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아빠, 처음 와이씨 주식 살 때만 해도 반신반의 했었지? 지금 봐 봐. 내 말대로 흘러가고 있잖아?”

이 말에 아빠의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게 있어서 그래. 응?”

아빠는 답답한 듯 말했다.

“그럼 얘기나 들어 보자, 도대체 뭘 기다리는데? 너도 근거도 말해 주지 않고 기다리라고만 하면 믿을 수 있겠어?”

내가 난감해하며 말을 못 하자.

“말도 안 되는 거라도 괜찮아. 네 말 믿고 담보대출 받아서 와이씨 주식 2억 원 매수했는데. 이제 와서 뭔 말인들 못 믿겠냐?”

“…….”

이 말을 하면 미쳤다고 생각 할텐데.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 하자, 아빠는 채근했다.

“아, 어서 말해! 같은 배를 탔는데 서로 숨기는 게 없어야지.”

에라이 모르겠다.

“강동스타일이 빌보드 차트 2위를 할 거야.”

“뭐, 뭐어?”

김 부장은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미쳤구나.”

꿀꺽.

나도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소리인지.

[빠바밤바밤 빰바밤 빠밤~]

그때 방문 밖에서 익숙한 전주음이 들려왔다.

[오빤~ 강동스타일~]

싸인의 강동스타일.

지금 평일 9시가 넘은…… 뉴스 하는 시간인데, 왜 저 노래가?

아빠도 이상한 낌새에 눈을 번쩍 떴다.

“나가자.”

* * *

[오빤 강동스타일~]

덕군은 재빨리 어느 프로에서 나오는 소리인지부터 살폈다.

TV를 보고 있던 어머니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왜 뉴스에 저 노래가 나오는 거냐?”

9시 뉴스!

분명 9시 뉴스였다!

덕군은 주먹을 불끈 쥐고 김 부장을 보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덕군을 바라봤고, 서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됐어!’

직감이 왔다. 혹시나 했는데, 맞았던 것이다.

‘역시 빌보드 2위를……!’

[네~ 방금 노래 잘 들으셨습니까? 요즘 강동스타일 모르시는 분 없으시죠?]

앵커의 표정이 밝다. 좋은 소식을 들려줄 것 같았다.

[지금 막 미국 현지에서 들어온 소식입니다. 싸인 씨의 강동스타일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헉!”

덕군은 넋이 나갔다.

‘1위?! 웬 1위?’

“우와아악~! 만세! 만세다~!”

김 부장은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우와아~! 만세! 대한민국 만세~!”

영문을 모르는 어머니와 할머니는 황당한 얼굴로 김 부장을 바라보았고.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아비가 애국자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빌보드가 그렇게 대단한 거니?”

“호호. 어머니~ 저도요. 이이가 너무 좋아하네요. 덕후 낳았을 때도 이렇게 안 좋아했던 거 같은데. 호호.”

김 부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만세~ 싸인 만세~ 강동스타일 만세~ 와이씨 만세~”

김 부장은 너무 좋은 나머지 눈물도 살짝 맺혔다. 그 눈으로 덕군을 보며 말했다.

“아들아~ 뭐 해? 안 기쁘니?”

“아, 좋지, 좋은데…….”

전생과 달라진 현실.

물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잘된 일이며 완전히 달라진 일은 아니지만.

원인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를 수도 있다?’

“만세~ 만세~!”

여전히 김 부장이 방방 뛰는 가운데, 덕군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걸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크게 다르지 않아서?’

생각해 봤을 때, 이번 생에 열심히만 살았지, 주변을 살피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 등 덕군이 기억하는 굵직한 일들은 분명 벌어졌었다. 정확히 날짜까지 맞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1위 2위는 등수 하나 차이지만, 이건 큰 거 같은데……?’

새삼 2회차 인생이라는 자각이 오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헐…… 대박!”

난 쉬는 시간마다 주가 상황을 확인했다.

개장부터 와이씨엔터테인먼트는 불기둥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과치가 너무 기대 이상이라 무섭기도 했다.

개장 시부터 주가는 82,600원.

이후 쉬는 시간에 확인할 때마다 계속 오르고 있다. 주춤할 기세가 보이지도 않는다.

“자기야~ 뭐 그렇게 바뻐?”

황나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찾아오는데, 같은 반에서 수업 듣는 학생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 좀 일이 있어서.”

이젠 ‘자기야’라고 불러도 난 뭐라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포기했다.

이젠 예술단장이신 황나비께서 내게 하도 들이대는 게 소문이 나서, 학교 아이들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나 3학년 얼마 안 남았는데, 추억을 만들어야지. 자꾸 딴짓만 할 거야?”

“누나, 종 쳤어. 어서 가 봐.”

“무슨 종을 쳐? 쉬는 시간 막 시작했는데.”

오늘은 황나비의 장난을 받아 줄 정신이 없다.

“아이고, 화장실.”

난 자리를 피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공간을 찾은 뒤, 아빠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어, 덕군아.]

“어떻게 됐어?”

아빠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매도 안 했어. 너도 보고 있냐? 계속 가격이 올라서…….]

연휴 전인 오늘 와이씨 주식을 일괄 처분할 것이다.

연휴가 끝나고 더 오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발목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격언대로 하는 것이다.

이 거래에 집중하기 위해서 아빠는 오늘 연차를 썼고, 증권사에서 대기 중이다.

“알았어. 아빠. 이따 또 통화해.”

[그래, 아빠가 잘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해라.]

“신경을 어떻게 안 써. 그럼 고생해.”

[오냐.]

잔치는 이미 벌어졌다.

얼마나 큰 잔치가 되느냐만 남았다.

5교시 마치고 방송국 가는 길.

아직까지 아빠에게 별다른 메시지는 없었다.

아빠 스타일 아니까.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단을 내리겠지.

일 잘하는 김 부장님이 작은 욕심에 타이밍 놓쳐서 폐장까지 거래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방송국 도착.

메이크업을 하고.

대본을 외우고.

집중이 안 된다. 난 계속 핸드폰만 봤다.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었다.

‘왜 연락이 없지?’

나도 증권사에 같이 갈 걸 그랬나.

하아…… 그냥 빨리 팔지.

[덕군! 대본리딩 준비하세요!]

“네!”

이제 핸드폰을 꺼야 한다.

지금 꺼 놓으면, 방송 시작 전 쉬는 시간까지 켜지 못한다.

불안하지만…….

‘이젠 아빠 손에 달린 거야.’

눈을 질끈 감고 핸드폰을 껐다.

.

.

.

.

오후 5시 40분.

방송 20분 전, 대기 시간.

출연자 대기실에 괴성 소리가 들렸다.

“우와~ 대박~!”

덕군의 목소리였는데.

“우하하하!”

그는 핸드폰을 잡고 미친 듯이 웃으며 소리쳤다.

발신자 : 아빠(김 부장)

시간 : 3시 5분.

메시지 : 89,300원에 전량 매도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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