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75화 (175/250)

175화. 복지리(1)

‘복지리 총각’

머리에 꽂혀서 떠나질 않는다.

소스만 주어지면 가사는 순식간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아빠의 관계.’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평범하지 않으며 깊은 이야기가 있다.

전생에 나의 직장 상사였던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매력적인 가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캬아~ 역시. 중요한 건 가까운 데 있었어.”

“얘야, 자꾸 뭔데 그러니?”

옆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내가 신나서 좋아하니 덩달아 좋아하셨다.

“좋은 일인 거 같은데~ 엄마한테도 얘기해 주라~ 같이 기뻐하게. 응?”

난 씩 웃고 말했다.

“제가 작사를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고민이 많았었어요. 하하. 근데, 지금 막 해결됐거든요.”

“그래? 고민이 갑자기 해결되기도 하니? 확실히 예술가는 뭔가 달라~ 호호.”

예술가라는 말에 난 싱긋 웃었다.

소처럼 일만 하셔도

세간 살림은 마냥 그 자리

우리 어머니 고생시키는

아빠를 원망했어요~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동동주 한 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난 집중해서 들었다.

우리 집 얘기를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이 노래를 듣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많겠지?

가사 참 기가 막히네.

따라 주던 동동주 한 잔

따라 주던 동동주 한 잔~! 에이~!

가사는 구슬픈데, 곡은 경쾌하다.

슬픈 가사에 경쾌한 멜로디가 덧입혀지니,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칠순 잔치 때, 눈물 흘리며 신나게 ‘진도 아리랑’을 부르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정동희가 작곡한 세 번째 곡이 경쾌한 리듬이지만, 가사는 이런 느낌으로 가면 어떨까 싶었다.

“덕군아?”

“네…… 네?”

놀라서 어머니를 보았다.

“호호. 진짜 영감이라는 게 왔나 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몇 번을 불러도 듣지를 못하고.”

“하하. 그랬어요?”

“더 얘기 좀 해 봐~ 엄마도 궁금해~”

난 어머니에게 데뷔곡 가사를 쓰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지금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도.

“어머~ 잘됐네. 영광이다, 얘. 우리 김 가수님 역사적인 순간에 엄마가 함께 있어서 말이야. 호호.”

“하하. 영광은요~ 근데,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할 것 같긴 해요.”

데뷔곡을 부를 때마다, 거실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가요 무대를 본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아! 어머니, 복지리요.”

“복지리? 거긴 왜?”

“어머니도 혹시 거기 살았었어요?”

“아니~ 엄마는 의정부에만 살았었어. 복지리는 시댁의 본적이었지.”

큰삼촌의 말로는 어머니가 아빠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했다고 했다.

“아빠랑 어릴 적에 만나셨죠? 그럼 복지리에 살던 아빠를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양측의 주장을 들어봐야 한다. 난 사실 확인을 위해 모르는 척 물어봤다.

“응? 그냥 뭐…….”

어머니는 표정이 어색해졌다.

“오다 가다 만난 거지 뭐.”

“오다 가다 만나서 사랑에 빠져요?”

“뭐, 남녀 간에 그럴 수 있는 거 아니겠니?”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어요?”

“…….”

깊게 파고들수록 어머니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큰삼촌의 말이 맞았구나.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나는구나. 그냥 자연스럽게 만났어.”

들은 바로는 자연스러웠던 게 아닌 거 같은데…….

난 혼잣말로 말했다.

“아빠한테 물어봐야겠다.”

“물어보지 마라.”

“왜요?”

“하지 말라면 하지 마.”

“…….”

어머니는 정색하셨다.

꿀꺽.

어머니의 포스가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가사 쓰는 거 때문에 그래요.”

“사랑 이야기 쓸 거니?”

“그건 아닌데요…….”

“그럼 엄마, 아빠 만난 부분은 빼고 여쭤봐.”

“그게, 얘기하다 보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정식 바짝 차리면 돼. 내가 나중에 확인할 거야.”

어머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제 큰삼촌이 준 정보에 확신이 든다.

“노력해 볼게요.”

“애매하게 대답하지 마라.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정색할 때는 어머니가 아빠보다 더 무섭다.

“……알겠어요.”

* * *

다음 날 평일 저녁.

촬영이 있는 날이라 덕군은 평소처럼 늦은 시간에 집에 왔다.

덕군이 도착 후 얼마 뒤.

김 부장은 평소처럼 야근을 하고 늦게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덕군은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가 인사했고.

“오냐~ 밥 먹었냐?”

“응, 아빠는?”

“아빠도 먹었지.”

두 부자의 대화가 눈에 띄게 다정해졌다.

덕군이 마음을 열기로 마음먹으니, 관계가 좋아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김 부장은 덕군을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아빠 기다리고 있었어.”

“왜? 뭐 할 말 있냐?”

김 부장은 옷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가려다가 멈추고, 소파에 앉았다.

피곤한 아들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옷 갈아입고 씻고 와.”

“아니다, 얘기 먼저 듣고 하마.”

덕군은 전생 회사 생활 경험이 있기에 정장이 사람을 얼마나 숨 막히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먼저 씻고 와. 급한 얘기 아니니까.”

“긴 얘기 아니겠네. 듣고 씻을게.”

거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중얼거렸다.

―얼마 전까지 으르렁거리던 부자 사이 맞냐?

―왜요? 보기 좋은데요, 아버님.

―덕군이 철들었나 봐~

―철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들었지~ 그냥 큰형을 싫어했을 뿐~

결국, 덕군은 김 부장을 밀면서 말했다.

“아유~ 하라면 해! 쫌! 씻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알았다, 알았어. 밀지 마라.”

잠시 후.

김 부장이 씻고 방으로 들어오니, 덕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이번 주 토요일에 출근해야 해?”

“토요일?”

김 부장은 요즘 주말에도 출근한다.

“그건 왜 묻냐?”

“아빠랑 어딜 좀 갔으면 해서.”

“동희 면회 가려고?”

“아니. 말년 병장한테 무슨 면회야? 그리고 요즘 너무 자주 보고 있어서.”

“하하, 그러냐?”

김 부장은 피식 웃었다.

“아빠랑 ‘복지리’를 갔으면 해.”

‘복지리’라는 말에 김 부장의 표정이 굳었다.

“……복지리?”

“응.”

“설마, 양주 복지리를 말하는 거냐?”

“당연히 거기 말하는 거지. 설마는 무슨.”

“…….”

김 부장의 표정이 복잡해지면서, 얼굴에 순간 당혹스러움이 드리워졌다가 사라졌다.

“거길…… 왜 가자고 하는 거냐?”

덕군은 그의 태도가 의아했다.

‘뭐야, 반응 왜 이래? 나 뭐 잘못했어?’

“어? 어, 뭐…… 그냥. 취재를 했으면 해서.”

“…….”

“왜? 가면 안 돼?”

김 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러니까 무슨 취재?”

“신곡 가사를 쓰려는데, 복지리가 어떤 곳인지 좀 봐야 해.”

“신곡?”

김 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복지리를 주제로 신곡을 쓴다고?”

“응.”

“왜 하필 복지리냐? 국민들 중에 복지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덕군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글쎄, 그냥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할 뿐이야.”

“대중 가수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곡을 쓰면 어떡하니? 대중성을 고려해야지.”

“글쎄…… 데뷔곡만은 그렇게 하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

김 부장은 이 말에 대꾸하지 못 했다.

“그래서 아빠한테 부탁하는 거야.”

“하아…… 왜 하필 복지리냐.”

“아빠 고향이잖아. 왜 그러는데?”

“…….”

김 부장은 뜸 들이다가 말했다.

“그래, 그건 네 맘대로 해라. 다만…… 복지리는 혼자 가든지, 다른 사람이랑 가라.”

덕군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돼. 그럴 거면 아빠한테 얘기도 안 했지.”

김 부장은 황당한 눈길로 덕군을 보았다.

“꼭 아빠랑 가야 해.”

덕군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김 부장을 바라봤다.

‘이 곡의 주제가 복지리와 아빠. 복지리 총각인데. 주인공이 빠지면 안 되지.’

복지리에 서 있는 김 부장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빠, 부탁할게.”

덕군이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 건 김 부장 기억에 처음이었다.

“하아…… 미치겠네.”

김 부장은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명확하게 수락은 하지 않았지만, 난감해하는 그의 표정에서 덕군은 확신했다.

‘됐다.’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토요일 오전에 출발할까?”

휴우―

김 부장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왜 복지리야, 복지리. 하아…… 복지리.’

“오전에는 회사 좀 다녀와야 하니까, 점심 먹고 출발하자.”

* * *

“덕군아~ 준비 다 됐냐?”

김 부장은 마뜩잖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약속은 지켰다.

정확히 오후 1시. 김 부장은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당연히 다 됐지.”

덕군 또한 정확하게 시간 맞춰서 방에서 나왔다.

“그럼, 가자.”

1시간여를 달렸다.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의정부 시내에 진입하여 가능역에서 서쪽으로 빠졌다.

“오…….”

덕군은 창밖 풍경에 탄성을 질렀다.

서울 북부에서 차로 한 30분 정도?

서울과 굉장히 가까운 곳인데도 눈앞에 논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완전 시골이네?”

김 부장이 어린 시절은 1980년대고, 지금은 2012년이다.

큰삼촌에게 완전 시골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지금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김 부장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곳처럼 변화가 없는 곳도 잘 없을 거다.”

2차선 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단지가 꽤 컸음에도 전혀 도회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골 논밭 풍경에 잘 어울리는 아파트였다.

아파트마저 시골이었다.

“어디부터가 복지리야?”

“저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부터.”

“아…….”

김 부장은 차를 몰며 말했다.

“저기도 원래 다 논밭이었어. 살던 주거지에 재개발한 건 아니야.”

“알아. 이렇게 땅이 많은데 굳이 재개발을 왜 하겠어? 그냥 개발하면 되지.”

“복지리 무시하냐?”

이 말에 덕군은 피식 웃었다.

“뭐야? 고향 부심이야? 언제는 오기 싫은 것처럼 말하더니?”

덕군의 눈에는 ‘복지리’라는 단어가 김 부장 얼굴에 오버랩되면서, 미소가 번졌다.

“흠!”

“아빠가 살던 곳에 가 보자. 확실히 같이 오니까, 느낌이 오네.”

김 부장은 묵묵히 차를 몰았다.

논길 사이를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

도로에 오가는 차도 없다.

새파랗고 높은 하늘.

황금빛이 찰랑이는 논 사이를 계속 갔다.

“다 왔다.”

마을 초입에 커다란 안내석이 있다.

‘복지리’

끼이익. 철컹.

덕군과 김 부장은 차에서 내렸다.

“예전엔 여기가 마을 중심지였어.”

“…….”

“집도 몇 개 안 보이지?”

평지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그 뒤로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다.

“흠~”

덕군은 공기를 맡으며 말했다.

“와~ 아빠, 되게 좋은 냄새 난다.”

“야산에 참나무가 많아서 그래.”

“반전이야. 난 소똥 냄새만 날 줄 알았는데.”

“…….”

마을 초입을 걸어 올라가는데, 폐가가 많이 보였다.

“거의 반은 폐가네?”

“예전엔 다 사람들이 살던 집이었어.”

그렇게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데.

맞은편에서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걸어왔다.

그는 김 부장에게 시선을 꽂은 채로 걸어오더니…….

김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자네…… 진하 아닌가?”

김 부장은 그를 몰라보는 기색이었다.

“아, 네 맞습니다만…… 뉘신지.”

“아이고~ 위인 왔네~ 위인 왔어!”

할아버지는 갑자기 뒤로 돌더니.

사자후를 토해 냈다.

“동네 사람들~! 진하가 왔어요! 진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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