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세 번째 곡(2)
“어서 앉아라.”
큰삼촌이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어쩌냐? 덕용이 만나러 멀리까지 왔는데?”
큰삼촌의 집은 안산에 있다.
신길온천역 근처의 빌라에서 사는데, 직장과 가까운 곳에 터를 잡은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전철 여행을 했다.
도대체 몇 개의 역을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덕용이 잠든 지 얼마 안 됐어?”
“어, 좀 전에 잠들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두 시간 정도 자지?”
“맞아, 낮에는 보통 그 정도 자. 오래 잘 때는 세 시간.”
“맞아, 그랬던 거 같아.”
“뭐가?”
“응? 아니야.”
습관적으로 세 살 적 경험담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난 당연히 다 기억하고 있다.
큰삼촌은 피식 웃고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나의 유년기를 같이 살면서 지켜봤기에 좀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왔냐?”
“…….”
“아무리 놀러 오라고 해도, 멀다며 안 오더니.”
“…….”
그렇다. 멀어서 엄두가 안 났다.
오늘은 용건이 있어서 온 것이다.
너무 속 보여서 그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툭. 툭.
난 정동희를 건드렸지만, 그 또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요것 봐라? 얘기 안 하네? 덕군아, 삼촌이 널 모르냐?”
“…….”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왔겠지. 괜찮아~ 어서 얘기해 봐.”
난 괜히 정동희에게 핀잔을 주었다.
“에이~ 이런 건 형이 얘기해야지.”
“야아, 네가 삼촌이랑 친하잖아.”
난 입맛을 다셨다.
덕용이 깨어나면 양해를 구하고 해야 할 일. 어차피 말해야 한다.
“덕용이한테 음악을 들려줘 봤으면 해서.”
큰삼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음악? 이게 뭔 소리냐?”
“히트곡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덕용이에게 있거든.”
큰삼촌의 눈이 더 커졌다.
결론만 짧게 얘기하려 했는데, 좀 이상하게 들리려나?
난 다시 처음부터 상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데뷔곡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며, 정동희가 후보곡을 몇 개 작곡했고, 아기에게 흥을 캐치 하는 본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서 찾아온 거야.”
“그래서 오자마자 덕용이를?”
이제야 큰삼촌은 이해하는 눈치였고,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덕용이가 무당인 거야?”
무당? 생각지 못한 단어에 당황했다.
정동희도 당황해했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 그렇게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곧바로 손사래를 치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야, 삼촌! 그런 의미가 아니야.”
“말도 못 하는 아기 반응을 보고, 히트곡 판별한다는 게…… 삼촌이 보기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큰삼촌의 굳은 얼굴을 보니, 식은땀이 났다.
“아기는 본능에 충실하잖아. 그 반응을 보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난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떠올려봤는데.
그나마 적절한 단어는 이거였다.
“덕용이한테 컨펌 받으러 온 거야, 컨펌.”
“컨펌…….”
큰삼촌은 그 말을 되뇌더니, 피식 웃었다.
* * *
“컨펌? 하하! 하여간 재밌는 녀석들이야.”
큰삼촌의 표정이 풀리는 것 같아서, 우리는 한숨을 내쉬며 따라 웃었다.
큰삼촌이 오해하는 게 싫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들면 좀 무섭다.
나에게 아빠처럼 잘해 주고, 한없이 편한 삼촌이지만 어딘가에 어두운 ‘포스’가 있다.
아빠와 행동하는 건 완전 다르지만, 어두운 포스만은 닮았다.
“어쨌든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덕용이 깨어나거든 해라. 단, 조건이 있어.”
“뭔데?”
“오늘 하루 자고 가. 애들이랑도 좀 놀아 주고.”
엥? 이게 조건이라고?
큰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안산에 회사 사람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삼촌이 심심했단 말이야. 조카들이 보고 싶기도 했고.”
“아…….”
“볼일만 싹 보고 가 버릴까 봐 미리 얘기하는 거야. 내가 덕군을 잘 아니깐.”
큰삼촌은 말한 후 내게 윙크를 했고, 난 머쓱하게 웃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자고 가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난 흔쾌히 허락했다.
“알았어! 대신 엄마한테는 삼촌이 허락받아 줘야 해.”
“엇, 형수한테? 그건 고난도 미션인데.”
“하핫.”
큰삼촌 옆에서 인형을 갖고 놀고 있던 다율이가 날 올려다보았다.
“오빠―!”
동그란 눈에 양 갈래머리.
올해 6살이 된 다율이는 너무 예쁘고 귀엽다.
“보뉘 해죠!”
“엇? 우리 다율이, 보뉘도 알어?”
“응! 좋아해.”
다율이는 내 팔을 붙잡고 얼굴을 비볐다.
“아우~ 귀여워. 보뉘도 다율이 좋아한대~”
“그럼 해죠!”
“뭘 해 줄까?”
“보뉘하뉘 시작할 때 하는 거 있잖아? 그거 해죠!”
난 곧바로 목소리를 보뉘의 하이톤으로 올리고, 두 손을 팔랑이며 말했다.
“다율 친구~ 안녕~ 보뉘예요~”
“…….”
다율이는 무표정으로 날 지켜봤다.
아주 좋아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없다.
“오빠.”
“응?”
“제대로 해.”
“…….”
“그거 아니자나! 춤추면서 해야지, 007빵 자세!”
다율이는 보뉘 오프닝 시그니처 포즈. 엄지와 검지를 펼치고 총 모양을 만들어 코 위에 올렸다.
“너…… 진짜 제대로 아는구나.”
갑자기 좀 피곤해진다.
“좋아한다니까.”
“어릴 때부터 TV 많이 보면 안 좋아.”
“뭐 어때? 교육 방송인데.”
“…….”
그래, 보뉘하뉘도 교육 방송이기는 하지. 할 말이 없었다.
“덕군아, 한번 제대로 보여 줘라. 다율이가 원하잖아~”
정동희가 옆에서 키득거리며 말했고, 큰삼촌은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말은 하지 않아도, 큰삼촌의 마음이 전해졌다.
부탁하러 온 입장인데, 뭐라도 해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시작했다.
보뉘 보뉘 보~
다율이가 화답했다.
하뉘 하뉘 하~
정말 찐 시청자인가 보다. 타이밍이 서연우만큼 정확했다.
하루종일 이 시간을 기다려 와써~!
큰삼촌댁 거실에서 보뉘하뉘 오프닝은 시작되었다. 난 다리에 힘주고, 각 잡아서 제대로 했다.
성공적인 데뷔곡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여기 모여 우리 만나
오늘도 좋을 거란 느낌적인 느낌
보뉘가 된 이후. 이 오프닝 송을 외부에서도 몇 번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오프닝이니 방송을 촬영할 때마다 부르는데, 그 못지않게 밖에서도 많이 부르게 된다.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집 안에서 불러 보는 건 처음이다. 단 한 명의 관객, 다율이를 위해서.
다행히 이번엔 반응이 아주 좋았다. 다율이는 깡충깡충 뛰며, 온몸으로 좋아했다.
보뉘~ 하뉘~ 보뉘하뉘 얍!
“와아~!”
끝났다. 다율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짝짝짝.
큰삼촌과 동희 형도 옆에서 박수 쳤다.
“와~ 코앞에서 직관했다. 영광입니다, 보뉘님.”
정동희가 박수를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빠! 오빠!”
“응?”
“한번 더!”
“뭐? 뭘?”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방금 한 거, 한번 더 해죠!”
눈동자가 흔들렸다.
농담이지?
“어서~ 어서~”
진담이었다. 다율이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다율아~ 오프닝은 한 번만 하는 거야. 그래서 오프닝인 거야.”
“싫어~ 또 해죠. 해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큰삼촌을 바라보자.
스윽―
그는 내 시선을 피했다.
“…….”
아, 실수했다. 애들은 무한루프인데. 그걸 깜빡했다.
10번 이상 할 거 아니면 시작을 말았어야 했는데…….
“다, 다율아, 오빠가 무릎이…….”
당황한 나머지, 내 나이 14살에 말도 안 되는 관절염 핑계가 나오려 했다.
“빨리 해죠~ 해죠~”
다율이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덜컹.
그때 안방문 열렸다.
“아유~ 시끄러워서 깼네. 다율아, 동생 잘 때는 좀 조용히 하랬지!”
작은엄마와.
덕용 님께서 나타나셨다.
* * *
“오…… 덕용아.”
덕군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손을 벌벌 떨면서 덕용에게 다가갔다.
‘고맙다, 이 타이밍에 나와 줘서!’
22개월. 한국 나이로 올해 3살인 덕용이는 은혜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허엉!”
“오, 오! 날 불러 줬어!”
덕군은 고마운 마음에 손을 꼭 잡았다.
큰삼촌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핫. 덕용이가 형이라고 하네?”
“삼촌! 방금 형이라 부른 거 맞지?”
발음이 약간 애매했었다. 덕군의 물음에 큰삼촌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난 명절 때 너 본 거 기억하나 보다.”
“…….”
덕군은 빙그레 웃었다.
‘세 살짜리가 어떻게 날 기억하고 형이라고 불러? 하하, 엄마 아빠 되면 거짓말쟁이 된다더니…… 큰삼촌도 똑같네.’
“덕군아~”
“네, 작은엄마.”
“방에서 들었어. 덕용이한테 부탁할 일이 있다며?”
“허엉?”
자기 이름을 부르자, 덕용이가 반응했다.
“하하. 네, 맞아요.”
“그래~ 그럼 어서 해라. 덕용이가 얼마 못 자서, 곧 다시 재워야 하거든?”
“알겠어요.”
정동희는 핸드폰을 꺼내어, 음원 파일을 플레이할 준비를 했다.
“아, 그리고 덕군아.”
작은엄마의 부름에 대답했다.
“네.”
“녹음 끝나고 작은엄마랑 사진 좀 찍자. 사인도 몇 장 좀 해 주고.”
“네…….”
작은엄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정동희가 말했다.
“덕군아, 준비됐어.”
덕군은 고개를 끄덕인 후, 덕용이를 불렀다.
“덕용아~”
“허엉?”
“형이 노래 들려줄 건데, 좋으면 좋다고 해 줘?”
“어떻게?”
옆에 큰삼촌이 황당한 듯 대신 물었고.
흠!
덕군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어떻게든. 형이 알아볼 테니까. 알겠지, 덕용아?”
“어!”
덕군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삼촌을 바라봤다.
“뭐야? 얘 신동인가?”
“짜샤, 보통 22개월쯤 됐으면 웬만한 말은 알아 들어. 대답도 하고.”
“아…….”
덕군은 보통의 기준을 잘 모른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기억이 있는 2회차였다.
삑!
정동희가 첫 번째 곡을 틀었다.
블루스 스타일의 트롯 곡.
끈적거리는 음감.
이 노래를 들으면, 피부에 꿀을 발라서 문지르는 느낌이다.
처음엔 미끌거리다가 나중에 가서는 너무 끈적여서 찝찝한 기분이 드는…….
“…….”
덕용이는 미동도 없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정동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반응을 어떻게 캐치하냐? 전혀 덕용 님의 의중을 모르겠는데?”
덕군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헛다리 짚었나? 일단…… 끝까지 들어 보고.’
“형! 다음 곡!”
“어, 그래.”
다음 곡으로 바꿨다.
쿵짝 쿵짝 쿵짝 쿵짝 쿵짝
단조롭고 빠르게 반복되는 테크노 리듬.
이번에도 아직까지 덕용의 반응은 없었다.
타닥. 타닥.
바닥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서 바라봤더니, 큰삼촌이 발장구를 치고 있었다.
“야아~ 이거 신나는데? 내 스타일이야. 우쭈 쮸~ 쮸~ 쮸~”
큰삼촌은 음치에 박치다.
그런 삼촌이 좋아하니, 덕군은 불안해졌다.
‘노래가 별로인가?’
30초쯤 지나자.
“뱌~ 뱌! 뱌! 뱌뱌~”
덕용이는 발버둥을 쳤다.
“오~ 반응 보였어!”
정동희는 반가워서 소리쳤지만.
이건 누가 봐도…….
좋아서 보이는 반응이 아니었다.
‘아……. 그래도 반응이 있긴 하네.’
덕군은 음악을 멈추라고 손짓을 보낸 후 말했다.
“형, 세 번째 곡 틀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