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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69화 (169/250)

169화. 학교의 얼굴(1)

“뭐야?”

덕군은 평소처럼 황나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툭하면 밀폐된 공간에 불러내어 단둘이 있고 싶어 하는데, 그럴 때마다 유교 경전을 읊어 줬었다.

3학년 선배들 10여 명이 도열해 있는데, 표정들이 심각한 게 위압감이 느껴졌다.

“아, 안녕하세요.”

머쓱해져서 먼저 인사했다.

그러면서 덕군은 최근 한 행동을 돌아봤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딱히 없었던 거 같은데?’

약간 건방진 부분은 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캐릭터. 상대가 먼저 싸가지 없게 나오지 않는 이상 선배들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아니며, 싸가지 없게 대하지도 않는다.

그냥 좀 친절하지 않을 뿐.

“덕군, 어서 와.”

3학년 선배들 정중앙에 서 있는 황나비가 손짓했다.

“뭐 해? 어서 가까이 와.”

“…….”

덕군은 조심스럽게 몇 발자국 다가갔다.

막상 가까이 다가가니, 선배들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와, 이렇게 가까이서 덕군 처음 봐!

―잘생겼다……

―확실히 아우라가 달라.

덕군은 학교에서 유명인사였다.

아니, 학교뿐만이 아니라 개포동에서 유명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만 치자면 유명세는 전국 단위로 바뀐다.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덕군은 우러러보다 못해 어려워하는 존재.

선배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흠. 누나, 왜 불렀어?”

덕군이 부르자, 황나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나라니? 선배라고 해야지.”

“뭐야, 언제는 선배라고 하지 말라며?”

“지금은 좀 공식적인 자리거든.”

평소 누나는커녕 ‘야’라고 불러 달라며 치근대던 황나비답지 않았다.

“알았어. 앞으로 꼭 ‘선배님’이라고 부를게.”

“야아~ 앞으로는 아니고~ 지금만~”

다른 선배들이 있지만, 다급한 나머지 황나비는 결국 콧소리를 내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덕군은 정중하게 말했다.

“황나비 선배님, 어서 말씀하시지요. 왜 부르셨사옵니까?”

“알았어~ 미안해~ 그냥 누나라고 해.”

툭. 툭.

옆에 예술단 임원 중 한 명이 황나비의 어깨를 쳤다.

“나비야, 애들 봐.”

“아, 몰랑!”

황나비는 예술단장으로서의 체면보다 덕군의 관심이 더 중요했다.

“덕군아, 응? 미안~ 그냥 하던 대로 해. 응? 미안~ 아잉~!”

덕군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아오, 진짜.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스톱. 스톱.”

“진짜지? 삐진 거 아니지?”

“손톱만큼도 안 삐졌어.”

“칫, 왜 안 삐져?”

덕군은 황당해서 황나비를 바라봤다.

‘뭐야, 어쩌라는 거야?’

조금도 안 삐졌다는 말은 황나비에게 서운하게 느껴졌다.

“아, 몰라. 빨리 본론 얘기해. 더 못 기다려. 지금 얘기 안 하면 나 그냥 간다?”

“알았어! 알았어!”

황나비는 덕군이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서서 말했다.

“네가 다음 예술단장이야.”

뭐어?!

* * *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나보고 예술단장을 하라고?

황나비와 옆의 선배들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진심이었다.

확고한 진심이 느껴졌다.

“음…… 누나,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알잖아?”

“알지.”

보뉘하뉘 녹화에 학교생활.

이 두 가지만 해도 차고 넘칠 정도로 바쁘다.

더군다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툭 하면 행사 사회를 요청하는데, 그 또한 안 할 수가 없었다. 인간적으로 세 번 거절하면 한 번 정도는 해 줘야 했다.

근데 나보고 예술단장을 하라고?

이찬우 활동하는 거 보니까, 스케줄이 연예 활동 못지않던데?

예술중학교라고 그런지 거의 일 년 내내 행사가 있었고, 행사마다 예술단장의 역할은 매우 컸다.

“알면서 그래? 나 정신없이 바쁜데 예술단장을 어떻게 하라고?”

“그럼 어떡하니? 너 말고 없는데.”

황나비는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완곡한 거절의 뜻을 내비쳤으나, 바로 받아쳤다.

“왜? 많잖아?”

“2학년 중에 너보다 유명한 애가 있니?”

“…….”

“아니, 전교생 통틀어도 없을 거 같은데? 가장 인지도 높고, 특출한 학생이 예술단장이 되어야지. 우리 학교 얼굴인데.”

그래서 예술단장 후보는 투표로 선출하지 않는다. 가장 실력 있고, 누가 봐도 이의가 없을 만한 인물을 예술단장과 단원들이 함께 선정한다.

―그래, 덕군아. 네가 해야 해.

―만장일치야.

―거부하지 마. 부탁할게!

다른 선배들도 한목소리로 말했다.

난 1학년 때부터 예술단 일에 참여를 해 왔기에, 그들의 결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음…… 잠시 생각해 봤는데.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요즘 좀 키가 자라고 있는데, 자칫하다간 키 또 안 큰다.

“죄송합니다~!”

난 황나비와 선배들에게 90도 각도로 인사한 후, 뒤돌아 도망치듯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덕군아~ 야! 덕군아~!”

멀리서 황나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난 그대로 달려 나갔다.

* * *

위이잉― 위이잉―

[황나비]

핸드폰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되면서 난 핸드폰을 장만했다.

핸드폰이 생긴 지 이제 반년쯤 됐는데, 사실 좀 산 걸 후회하고 있다.

황나비를 포함한 학교 선후배들에게 수시로 연락 왔고,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수십 통 연락 오는 건 다반사다.

어떻게 폰 번호를 알았는지, 초등학생 팬들에게도 수시로 전화와 메시지가 온다.

그 외에 방송국, 매니지먼트, 협찬 등등…….

오는 연락 다 받으면 온종일 아무것도 못 할 정도. 이래서 매니저가 있는 건가 싶다.

그래도 폰을 없애지 않고 참는 건 동희 형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년이 가까워 오면서 휴가도 자주 나오고, 연락을 자주 하며 곡과 비즈니스 얘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따르릉―

핸드폰을 안 받으니, 집 전화기가 울린다. 안 봐도 누군지 알 것 같다.

덜컥.

“여보세요? 어~ 잠깐만.”

어머니가 말했다.

“덕군아~ 나비한테 전화 왔는데?”

“없다고 해 주세요.”

“이미 있다고 했는데?”

“나중에 전화한다고 해 주세요.”

“네가 직접 얘기하지 그러니? 벌써 몇 번째니?”

“어머니……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부탁드려요.”

“흠…….”

어머니는 잠시 후 전화를 끊었다.

“나비랑 싸웠니?”

“아니요.”

“근데 왜 전화를 안 받어?”

“비즈니스 때문에 그래요.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해 달라고 해서.”

“뭔데 그래? 엄마한테 얘기해 주면 안 되니?”

난 잠시 고민하다가, 어머니에게 예술단장 선임 건을 말씀드렸다.

“아…….”

얘기를 다 들은 후,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그렇네. 덕군이 많이 바쁘지. 그것까지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겠네.”

“그쵸.”

하지만 어머니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 나왔다.

“근데, 예술단장이라면 학생회장 같은 거 아니니?”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내 아들이 그거 하면…… 진짜 멋지긴 하겠다.”

“네?”

어머니는 더 대답하지 않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내 아들이 어릴 적부터 너무 연예인으로만 사니까. 엄마도 나름 로망이 있어~”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시고는 넘기듯 말했다.

“뭐, 그냥 그렇다고~”

“아…….”

무슨 마음이신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근데,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예술단장이 그렇게 바쁜 거니?”

“그렇죠~ 정신없어요.”

난 예술단장이 해야 하는 역할. 일 년 내내 정신없이 다녀야 하는 스케줄 등을 말해 주었다.

어머니 또한 내 편에 서서 말려 주길 바라는 마음에.

“근데, 예술단장이 대장인 거잖아?”

“……?”

“그럼 대장 정하기 마음 아니니? 예를 들어 얼굴마담을 세운다든지…….”

진심이신가 보네.

하긴, 보통 어른들은 자식이 감투 쓰는 걸 좋아하시지. 난 어릴 적부터 반장 같은 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게 좀 아쉬우셨던 건가?

“에구~ 우리 아들이 하면 폼 나긴 하겠다~ 그럼 쉬렴~”

말씀을 끝마치고 일어나셨지만.

어머니의 아쉬운 표정이 잔상으로 남는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덕군!”

등교 시간 맞춰서 황나비가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누나 안녕.”

“너 왜 자꾸 피해?”

“…….”

“너무한 거 아니야?”

덕군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야아~”

황나비가 덕군의 소매를 잡아끌었고.

덕군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놔.”

“왜 그래…….”

“왜 그러긴? 교실로 들어가게.”

“너 정말…….”

황나비는 울 것 같았다.

덕군이 자신을 피하는 게 속상했다.

무시하고 들어가려다가.

“휴우~”

덕군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누나는 누나 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 나도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데. 왜? 안 돼?”

“…….”

“난 누나가 나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불러내서는 예술단장을 하라고 시켜? 누나 편할 때만 친한 동생이야?”

“난 널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아유~ 됐어! 또 그 소리.”

“…….”

“예술단장 하는 건 고민 중이야. 그러니까. 이만 가 봐.”

이 말에 황나비는 다시 배시시 웃으려 했다.

‘아, 솔직히 이럴 땐 싫다. 피곤해.’

“고마워, 덕군아.”

“누나 때문에 고려하는 건 아니니까, 고마워할 거 없어.”

“힝…….”

황나비는 다시 울먹였고.

덕군은 교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반 아이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지만,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었다.

그저 조그만 목소리로 수군댈 뿐.

―대단하다, 진짜. 예술단장이…….

―그러게, 덕군한테 꼼짝을 못 하네.

―나비 누나 인기 장난 아닌데.

덕군은 생각에 빠져서 이런 수군거림을 듣지 못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이상하게 나비누나한테는 말이 자꾸 심하게 나가네.’

그날 내내 덕군은 전방위적 압박을 받았다.

예술단장에 대해 고민하고 온 거였지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선생님들까지 나서서 덕군을 설득했고.

같은 학년 아이들도 합세했다.

―덕군아, 너 아니면 할 사람 없어.

―너 말고 누가 우리 학교를 대표해?

―우리가 도울게 해~

―내 마음속 예술단장은 덕군뿐이야.

‘환장하겠네. 안 했다가는 대역 죄인 되는 분위기인데…….’

덕군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서연우를 불렀다.

“연우야.”

“응?”

“너, 혹시 예술단장 관심 있냐?”

서연우는 2학년에서 덕군 다음가는 에이스였다.

“관심은 있지만, 안 해.”

“왜?”

“이 상황에서 예술단장 했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

그리고 덕군을 향해 살짝 눈을 흘겼다. 경쟁자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압도적인 차이. 같은 학년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덕군’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브랜드이며 넘사벽이었다.

“그럼, 만약 내가 예술단장을 하면…… 도와줄 수 있어?”

“어떻게?”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돼. 그게 도와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만, 아무리 마이페이스인 서연우라도 감히 덕군이 건넨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 * *

그날 연습실.

덕군은 선배들 앞에 섰다.

이번엔 덕군이 선배들을 소집한 거였다.

선배들뿐만 아니라, 민요 쌤과 담임 쌤도 있었다.

“예술단장님.”

덕군이 황나비를 불렀다.

“으응. 네?”

분위기에 압도되어 황나비도 얼떨결에 존댓말로 대꾸했다.

“그리고 선생님.”

덕군은 민요 쌤과 담임 쌤을 바라봤다.

“2013년도 예술단장 되는 거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우왓!

선배들과 선생님들은 곧바로 반색했다.

하지만 아직 덕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

“조건을 받아들이셔야 수락합니다. 타협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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