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포상
완전히 흥이 올랐다.
어머니와 지아 누나는 코러스로 완벽하게 받쳐 주었고.
김 부장은 곡 중간중간에 즉흥 기타 연주를 넣었다.
덕군과 정동희는 말할 것도 없다. 두 남자는 무대 위를 훨훨 날아다녔다.
아~아~아~ 사는 날까지
같이 가세! 한약 같은 친구야~
몇 번째 반복하는 후렴.
군인들은 옆 전우와 손을 꽉 잡고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함께 고생하는 전우를 생각나게끔 하는 가사.
묘하게 군인과 어울리는 곡이었다.
같이 가세! 한약 같은 친구야~
가수와 관중이 하나가 된 무대. 경연이라기보다는 축하 행사 같았다.
모두가 어우러져 웃고 즐기는 동안.
딱 한 명.
마냥 웃지만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
“진하가…….”
할머니의 아들 김진하. 즉 김 부장이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언제 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가족들은 웃어도 자신은 웃지 못하는 사람.
무거운 책임감을 홀로 견디며, 본인이 원하는 길보다는 가야 하는 길을 묵묵히 갔었다.
모두가 원하는 길. 응당 가야 한다고 믿는 길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 무대 위에서 기타를 잡은 김 부장은…… 해맑은 아이 같았다.
조금의 사심도 들어가 있지 않은 해맑은 미소. 가슴 벅찬 행복에 절로 나오는 웃음.
집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처음엔 신나서 덕후가 요청한 대로 춤추며 호응하다가.
평소와 다른 김 부장의 해맑은 미소를 본 다음부터 굳어 버렸다.
‘내가…… 잘못한 건가? 잘못 생각했던 걸까?’
아들을 위하는 길이라며, 난리를 쳐서 음악을 못 하게 했었는데.
20년 넘게 볼 수 없던 아들의 진짜 미소를 보면서 처음으로 의심이 들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아들을 위한 길.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이 가세 한약 같은 친구야~!
이젠 김 부장도 입을 크게 벌리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주르륵.
그때, 할머니는 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노래는 끝났다.
덕군과 정동희는 무대 중앙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우와아~!
―앵콜! 앵콜!
관중들은 아직 끝낼 마음이 없었다.
* * *
―앵콜! 앵콜!
―어디 가! 한 곡만 더 해!
다음 순서인 참가번호 9번이 올라왔지만, 관중들은 계속 앵콜을 불렀다.
참가번호 9번은 노래 시작도 안 했는데, 앵콜을 불러대는 관중들 때문에 난감했고, 사회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하, 이제 다음 순서도 있으니까요.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한 곡만 더하자고요~
―불 질러놓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고~!
―아, 빨리 다시 올라와!
군인들은 무서운 기세로 앵콜을 외쳤다. 쿠데타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자, 자, 장병 여러분. 우승자는 앵콜 무대 있는 거 알죠? 조금만 기다려 보죠. 진정하고.”
사회자가 조건부 앵콜을 얘기하자, 장내 분위기는 좀 수그러들었다.
―그래, 조금만 참자.
―우승 안 시키기만 해 봐.
―당연히 우승이지.
무대 아래서 숨을 돌리던 가족들. 정동희가 바깥 분위기를 살피고는 말했다.
“덕군아, 잘하면 우승하겠는데?”
“일단 최선을 다하긴 했는데…… 두고 봐야지.”
전문적인 경연이 아니기에 변수가 많다. 그 변수는 인맥이 될 수도 있고, 실력보다는 노력이 될 수도 있다.
참가자 중에는 사단장 인척도 있었다. 그리고 인형 탈부터 서커스까지, 실력보다는 퍼포먼스 위주로 준비한 팀들도 많았다.
덕군의 가족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실력과 전략으로만 승부했다. 변수에 휘둘릴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덕군은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관중들을 애달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곡도 일부러 짧게 했으며, 흥의 최고점에서 끊었다.
“전문가는 전문가야. 준비할 시간도 없었는데, 퀄리티를 이 정도로 올리고.”
정동희는 쌍 엄지를 치켜들었고, 덕군은 눈썹을 찡긋 올리며 웃었다.
“근데 형, 잘하던데? 나랑 듀엣 해도 되겠어~”
“아유~ 무슨 소릴~!”
정동희는 양손을 흔들며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내 스타일 아니야. 오늘은 포상 휴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섰지만, 진짜 안 맞아.”
“하하. 왜? 잘하던데.”
“아니야…… 네가 잘 리드해 줘서 그랬지. 형, 진짜 기절할 뻔했어. 어우~ 많은 사람들 마주보고 노래 부르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 연주회 할 때는 피아노만 보면 됐는데…… 아~ 후달려.”
정동희는 좀 전 상황을 생각하고는 얼굴이 다시 파래졌다.
그에 반해 김 부장과 어머니, 지아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빠, 앵콜곡 할 수 있지?”
“당연하지. 근데, 너무 자신하지 마라. 아직 모르는 거야.”
덕군은 빙그레 미소 짓고는 다음 참가자들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쓰담. 쓰담.
‘음?’
김 부장은 따뜻한 감촉에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감히 누가 그의 등을 어루만질 리가 없는데…….
“어, 어머니?”
김 부장은 무대에 심취해서 할머니가 계셨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흠!”
김 부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무대를 보셨겠구나. 당연히 보셨겠지.’
왠지 모를 무안함에 김 부장은 헛기침을 했는데.
“잘하더라.”
“…….”
김 부장의 등을 쓸며 그의 어머니는 환히 웃으셨다.
“우리 아들, 너무 잘하더라.”
“네?”
할머니는 연신 미소 지으며 김 부장의 등을 쓸었고.
김 부장은 잠시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보다가 중얼거릴 듯 말했다.
“고맙…… 습니다.”
* * *
“정동희 일병!”
“일병! 정동희!”
정훈장교가 무대 뒤로 찾아왔다.
“곧 시상식 할 건데, 가족들과 올라갈 준비 해라.”
“엇, 우승입니까?”
정훈장교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직 말 못 하지 인마. 하하. 어쨌든 상은 타니까, 대기하고 있어. 가족들 다른 데 못 가게 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잘하더라. 미리 축하해.”
“감사합니다! 진군!”
잠시 후.
[지금부터 시상이 있겠습니다. 장려상부터입니다.]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가 들렸고, 정동희는 긴장했다.
“형, 걱정하지 마. 반드시 휴가 나가게 될 거야.”
“휴우~ 그래.”
포상 휴가는 준우승자부터 수여된다. 우승자는 4박 5일. 준우승자 3박 4일.
그 외의 장려상은 초코파이 5박스와 외출이다.
[이걸로 장려상 수상은 마치겠습니다!]
정동희와 덕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상을 받을 거라고 했는데, 장려상 수상자로는 불리지 않았다.
“나이스!”
정동희는 주먹을 불끈쥐었다.
‘우수상 아니면 최우상이야. 됐어!’
기간 차이만 있을 뿐, 포상 휴가는 따낸 것이다.
[다음으로 우수상 수상이 있겠습니다. 우수상을 받은 장병에게는 3박 4일간의 포상 휴가가 주어집니다.]
두구. 두구.
[한약 같은 친구를 부른 팀이죠?]
‘응?’
덕군은 살짝 당황했다.
[정동희 일병! 우수상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막 수상 내역을 들었을 때 가족들 또한 당황했지만,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므로 서로 축하했다.
덕군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 최우수상 기대했는데, 좀 의외네.”
“덕군아~ 괜찮아. 3박 4일이 어디냐. 하하.”
“오빠~ 축하해~”
“동희야~ 축하한다~”
정동희는 가족들을 향해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우수상을 받으러 정동희와 가족들이 무대에 올라오자.
관중들은 난리였다.
―우~~
―뭐야! 말도 안 돼!
―아니, 어떻게 이 팀이 우수상이야? 무조건 최우수상도 부족하지.
사회자는 웃으며 말했다.
“정동희 일병과 가족들. 정말 축하드립니다.”
―우~~
―경연 완전 엉터리로 하네.
―심사 위원 귀먹었냐?
―귀 말고 다른 걸 먹었을지도…….
―뭐? 초코파이?
―큭큭큭큭
장병들의 야유는 생각보다 심했고, 결국 사회자가 나서야 했다.
“자자, 장병 여러분 집중해 주시고요.”
―앵콜은 어떻게 할 거냐고요!
―우리가 원하는 앵콜은 ‘한약 같은 친구’인데.
사회자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네. 장병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앵콜은 우수상 곡을 들을 겁니다.”
―뭐야? 미친 거야?
―왜 이따구야?
정동희와 가족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덕군은 어이가 없어서 사회자를 바라봤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우승자 놔두고, 준우승자가 앵콜을 하다니.
사회자 또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표정과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이마 위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사회자는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는데, 마이크를 내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 일병. 좀 도와줘. 나도 힘들어.”
“…….”
“내가 심사 본 거 아니잖아.”
“…… 알겠습니다.”
정동희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하자는 대로 해 주죠. 어차피 포상 휴가는 탔잖아요?”
“흠…….”
김 부장은 무서운 눈빛으로 변해 있었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았다.
사회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내려가 주시면 됩니다. 앵콜곡 준비해 주시고요. 그다음 최우수상 발표하겠습니다.”
“…….”
무대를 내려간 뒤.
덕군은 호구 잡히는 것 같다며 앵콜은 거부하자고 했는데.
심사 위원의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 때문에 관중들에게 피해 입히지 말자며 정동희가 만류했다.
어차피 포상 휴가는 받았으니 됐지 않았냐며.
결국 앵콜 공연은 진행되었고, 그 영향으로 심사 위원들은 더 큰 야유를 받았다.
가을날의 군부대 면회.
어찌 됐든 덕군과 가족들은 재밌는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성과로 면회 갈 때는 5명이었지만, 올 때는 6명이 되었다.
차에 자리가 모자라서 한 명은 무릎 위에 앉아야 했는데, 가족들 중에서 가장 가벼운 덕군이 불편하게 와야 했다.
그는 누구 무릎 위에 앉을지 고민하다가, 정동희를 택했다.
연장자인 할머니 위에 앉을 순 없고, 어머니나 누나 위에 앉기도 그러니 정동희밖에 없었다.
* * *
정동희가 포상 휴가를 나오자마자 우리는 함께 방송국을 찾았다.
마침 보뉘 계약한 지 1년이 되었고, 방송국으로부터 재계약을 요청받았다.
아직 변성기 중이기도 했고, 중학교 마칠 때까지는 방송 활동을 이어 갈 생각이기에 우리는 재계약 요청에 응했다.
다른 조건은 똑같고, 출연료만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랐다. 관계자 말로는 역대 보뉘 출연료 중에 가장 높다고 했다.
하뉘 또한 재계약에 성공했다.
내년의 보뉘하뉘는 덕군, 정수민 체제를 유지되게 되었다.
가을이 지나고, 이사 온 후 처음 맞는 겨울.
우리 집은 우풍이 심하지만, 보일러가 빵빵하다.
그래서 문이 더 잘 울었다.
겨울이 깊어 갈수록 현관문의 곰팡이 꽃은 더욱 찬란해졌다.
예술중학교는 겨울방학에도 바빴다.
연말 교내 및 교외 행사가 많아서 공연 준비로 학교 가는 날이 많았다.
‘전통음악교실’을 시작으로 난 학교 행사에 자연스럽게 관여하는 일이 많아졌다.
방송 일에 학교 활동까지. 너무 바빠서 조금 힘들 때도 있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아니, 도리어 재미를 느낄 때가 더 많았다.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2월이 되어 이찬우는 졸업을 했고. 그 뒤를 이어 황나비가 예술단장을 맡았다.
전통적으로 여름마다 2학년 중 예술단장 후보를 선출하고, 3학년 예술단장이 졸업함과 동시에 예술단장 직책을 맡는데.
예술단장은 3학년 예술단장이 추천하고, 선생님들의 재가로 선출된다.
황나비는 2학년 중 유일하게 학교를 대표하는 공연에 출연자로 섰었고, 재원예중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통 한국무용의 유망주였다.
그녀가 이찬우의 뒤를 이어 예술단장이 되는 데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2학년 여름의 어느 날.
난 황나비의 부름에 연습실로 향했다.
덜컹.
“아~ 진짜. 밀폐된 공간으로 자꾸 불러내지 말라니깐…… 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황나비를 포함한 3학년 선배들이 도열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