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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62화 (162/250)

162화. 조심하자

오늘 녹화를 무사히 끝내고,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대본이 있기는 하지만 생방송이다 보니 출연자들의 컨디션에 따라서 퀄리티가 좌우되는 경향이 큰데.

오늘 녹화는 잘된 것 같다. 하뉘와 합도 잘 맞았고, 이수봇 등장도 획기적이었다.

이수봇. 처음 대본 보고는 너무 황당했었는데, 막상 연기를 해 보니 캐릭터가 괜찮다.

재밌기도 했지만, 용의자를 로봇으로 함으로써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인간성 존중의 메시지. 잘못한 사람들은 심장이 없는 로봇과 비슷하다는 통렬한 비판.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캐릭터 설정에 난 정말 보뉘하뉘 피디와 작가에게 감탄했다.

물론 그런 깊은 뜻 없이 그냥 재미를 위한 병맛 설정이었고, 지금 내 생각은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생각한다.

덜컹.

정동희가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왔다.

“덕군~”

그를 보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었지.’

오늘 내 연기가 더 자연스러웠던 건 정동희의 영향이었을지도.

평소에 혼자 다녔고 연기 봐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옆에 내 편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든든했다.

“형~ 잘 봤어?”

정동희는 쌍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주 잘 봤지. 대단하더라. 너, 정말 형이 필요하긴 하니? 혼자 다니면서 오히려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에이~ 오늘 형이 있어서 더 잘된 거야. 이래서 형이 필요해.”

정동희는 활짝 웃었다.

“탁 피디님이랑 같이 봤는데, 무슨 얘기까지 했는 줄 아니? 덕군 연기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거 같다고 그러시더라. 나만 그렇게 본 게 아니야.”

난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형, 밑밥 깔지 마. 벌써부터 외연 확장하려고? 난 트롯 가수라고, 트롯 가수.”

“하핫! 짜샤~ 이것저것 많이 할 줄 알면 좋지 뭘 그러냐~”

“몰라, 지금은 가수 말고 다른 생각은 없어. 보뉘는 비즈니스로 하는 거야. 알고 있지?”

“알어~ 알어~ 짜식, 정색은.”

그냥 한 말이 아닌 걸 알고 있다. 정동희는 호탕한 쾌남처럼 보여도 은근 챙길 거 다 챙기는 여우다. 타인의 평이라고 전하면서 분명 내 반응이 어떤지 본 것이다.

제작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정동희는 아마 여러 가지를 고민할 것이다.

꿈과 비즈니스의 사이.

그 사이에서 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형님, 안녕하세요~”

송이수가 다가와 활짝 웃으며 정동희에게 인사했다.

“어~ 이수야, 오랜만이야.”

“하하, 네, 군대 가셨다고 들었어요.”

“어~ 어쩌다 그렇게 됐어.”

송이수는 로봇 복장은 벗었지만, 아직 얼굴과 목에 은색 칠은 그대로 있었다.

분장을 지우다 만 상태라 좀 기괴한 모습이었는데, 송이수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라 난 익숙했다.

“에구…… 고생이 많구나.”

오랜만에 본 정동희로서는 딱해 보였나 보다.

“네? 고생이요? 뭐가요?”

송이수는 은색 칠이 된 입술을 한껏 올리며 말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힘든 거 없어요, 헤헤.”

배시시 웃는 모습. 송이수는 미소가 참 이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미소 짓게 만든다.

함께 웃던 정동희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이수는 꿈이 뭐니?”

“아, 저요?”

생각지 못한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는 듯, 송이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했다.

“아…… 글쎄요. 딱히 생각 안 해 봤는데. 음…… 모르겠어요~ 그냥 재밌게 살면 돼요. 지금처럼요~ 헤헤.”

정동희는 나와 송이수를 번갈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우리 덕군과는 완전 상반되는 캐릭터네. 덕군은 야망남인데, 목표도 뚜렷하고.”

“형, 지금 그거 나 흉보는 말 아니지?”

“성격도 까칠하고.”

“에잇!”

난 정동희에게 달려들어서 암바를 걸었고.

“하하! 우와~ 이거 힘 세진 거 봐? 야야, 그만해. 형 군인이야! 국력 손실~!”

나와 정동희는 장난치면서 웃었고, 송이수는 부러움 섞인 눈으로 우릴 바라봤다.

“보기 좋다, 진짜.”

송이수는 날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덕군이 이렇게 웃는 건 참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

나와 정동희는 장난을 멈추었고.

정동희는 날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지 마~”

그리고 난 송이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이수 형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

학교 앞에서 황나비에게 다가가던 정동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짜식, 하여간 눈치 하나는.”

정동희는 피식 웃고는 송이수에게 물었다.

“이수야, 너 혹시 소속사 있니?”

“소속사? 아니요, 그게 뭐예요?”

송이수가 소속사가 없다고? 심지어 그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보뉘하뉘 최종 후보자한테 스카웃 제의가 없었을 리가 없는데.

난 궁금하여 송이수에게 물었다.

“형, 관리해 주겠다면서 찾아와서는 명함 건네는 사람 없었어?”

“아, 있었지. 그게 소속사야?”

“명함 안 봤어?”

“응, 난 받자마자 버렸지. 난 그런 거 원래 안 받아 놔.”

희한하네. 뭐……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정동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습관이야. 앞으로도 그렇게 해.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거야.”

난 황당해서 정동희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네, 형님.”

“그래, 앞으로 딱 1년 반 정도만 더 그렇게 하자.”

1년 반. 정동희 전역까지 남은 기간이다.

“알겠어요~ 헤헤.”

* * *

교육 방송 옥상. 흡연 장소.

정동희는 송이수에게 계속 영업하다가, 덕군에게 쫓겨나듯 나왔다.

집에 가기 전에 담배 한 대 피우고, 덕군과는 교육 방송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찰칵.

흡~ 휴우~

담배 연기를 깊숙이 삼킨 뒤, 뿜었다.

‘휴~ 살겠네. 왠지 교육 방송국에 서 담배 피우면 일탈하는 기분이란 말이야, 후후.’

지금껏 범생이로만 살았던 정동희.

교육 방송에만 오면 꼭 담배를 피운다. 성인이며 흡연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니 당연히 잘못된 건 없지만.

묘하게 일탈하는 느낌이 드는 게 좋았다.

‘아, 담배 맛 좋다.’

금세 담배 한 대를 다 태웠고, 정동희는 한 대 더 꺼냈다.

덜컹.

옥상 문이 열리며, 두 남자가 인상을 팍 쓰며 나왔다.

“하아~ 씨바, 엿 같아서 못 해 먹겠네.”

그 중 뽀글머리 남자는 옥상에 나오자마자, 담배부터 꼬나물었고.

뚱뚱한 남자가 뒤따라오며 말했다.

“야, 어떻게 하냐. 돈벌이인데, 해야지.”

“유치해 죽겠어, 진짜. 아~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냐.”

정동희는 그 둘을 힐끔 보았는데, 한 명은 아는 얼굴이었다.

‘좀 전에 경찰서장 역할 했던 사람이네?’

뚱뚱한 남자도 담뱃불을 붙인 후 말했다.

“할 줄 아는 게 이거뿐인데 어떡하냐? 그래도 우리는 매일 출연할 곳이 있으니 안정적인 거지, 불안하게 연극 무대 전전하는 거보다는 낫지 않냐?”

뽀글머리는 뚱뚱한 남자를 향해 혀를 찼다.

“으이그…… 인마, 네가 그러니까 10년간 뽕뽕이 탈을 벗어나질 못하지.”

“야, 나 좋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너 좋아하는 거냐? 뽕뽕이 좋아하는 거지?”

“…….”

“어디 가서 저 뽕뽕이예요~ 하면 알아줄까?”

“팩폭하지 마라. 그래도 난 자부심이 있어.”

흡~ 휴우~

뽀글머리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더덕인지 덕군인지, 그 녀석은 태어나길 이쁘게 태어나서 그 나이에 벌써부터 돈을 쓸어 담고…….”

“돈을 쓸어 담어? 네가 봤어?”

“야, 보나 마나 뻔한 거 아니냐? 초통령인데?”

“그런가…….”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졌는지, 뚱뚱한 남자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야, 그런 애랑은 친하게 지내. 어리다고 얕보지 말고.”

흡~ 휴우~

뽀글머리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싫다~”

“왜?”

“그냥 싫어. 싫은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냐? 난 걔 싫어.”

“으이구, 자격지심은.”

“죽을래?”

“…….”

뽀글머리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에이~ 수민이 얼굴이나 보러 가야지.”

“수민? 하뉘 말하는 거야?”

“그래~ 그래도 내가 걔 보는 낙에 이 짓 하고 있지. 이쁘잖아? 흐흐.”

“야, 야. 걔 미성년자야. 조심해라.”

“간다~”

뽀글머리는 손을 흔들며 옥상을 나가버렸다.

“야~ 담배 냄새는 빼고 가야지! 껌 씹고 가!”

덜컹.

뚱뚱한 남자는 뒤따라 나갔고.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정동희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 * *

차 안.

정동희의 표정이 안 좋다.

차 출발한 지도 꽤 되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도 없고…… 좀 이상하다.

혹시 송이수에게 영업 중일 때 내가 방해해서 그런가?

충분하다 못해 과하다 싶어서 말린 거였는데.

“동희 형.”

“…….”

“이수 형 아마 다른 곳이랑 계약 안 할 거야. 만약 계약할 거 같으면 내가 바로 형한테 연락을…….”

“덕군아.”

신호대기 중, 정동희가 날 향해 고래를 홱 돌렸다.

“응? 어?”

어이 씨, 진짜 삐졌나?

“오늘 보뉘하뉘 코너 ‘갈팡지팡 경찰서’ 말이야.”

“어.”

“거기 나오는 경찰서장…….”

“노재섭 아저씨?”

“아~ 그분 성함이 노재섭이야?”

“응. 근데 재섭 아저씨는 왜?”

정동희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응~ 그분 어때?”

“어떠냐고?”

갑자기 노재섭을 왜 묻지?

“그냥 연기자지, 뭐. 경찰서장 말고도 보뉘 하뉘에서 여러 역할을 맡고 있어. 연기 잘하셔.”

“너와 사이는 좋고?”

“나랑?”

노재섭이 나와 사이가 좋았던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데.

“좋을 것도 없고~ 안 좋을 것도 없어. 그냥 비즈니스적인 관계인데?”

“아, 그래? 안 좋은 건 아니라는 말이지?”

“맞아. 근데 형, 뭐 할 말 있지? 자꾸 말을 돌리는 느낌인데?”

“…….”

정동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표정이 하도 심각해서 채근하지도 못하겠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덕군아.”

“어, 형.”

“너, 겸손하게 활동하고 있는 거지?”

“응?”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트롯을 처음 배울 때부터 신바람 선생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겸손해야 한다. 무조건 겸손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겸손해야 한다.’

“당연하지.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겸손이야말로 이기적인 거라고 배웠다. 적을 만들지 않고, 나 자신을 좋아 보이게 하는.

겸손만큼은 항상 유념하면서 조심하고 있다.

“다행이네. 근데 왜 그럴까? 흠…….”

정동희는 다시 또 고민하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얘기 해. 형 좀 이상해.”

“노재섭 씨 말이야.”

“응.”

“잘 지내. 특히 더 잘해 주고, 뭐 있을 때는 양보해 주고. 항상 그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고.”

“왜 그 아저씨 앞에서 그래야 하는데?”

“이유는 묻지 말고. 형이 봤을 때 좋은 사람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좋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왜 낮춰야 하지…….”

“얀마, 토 달지 말고. 너 잘못되라고 형이 이런 소리 하겠냐?”

난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뭐, 일단 알았어.”

“그리고 덕후야.”

“어.”

“조심해.”

“뭘?”

“항상. 보뉘하뉘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해.”

“알았어~ 알았어~ 항상 그러고 있어.”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정동희는 다짐을 받듯 다시 한번 얘기했다.

“그냥 하는 말 아니야. 조심해.”

“알았다고요~”

내일 부대 복귀라 그런가? 형이 별걱정이 많은 것 같다.

덜컹. 난 문을 열고 내렸다.

위이잉~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고, 운전석에 앉은 정동희가 날 보며 말했다.

“우리 덕군~ 이제 한참 뒤에 보겠네?”

“어, 형. 건강하고, 연락 좀 자주해~ 콜렉트콜도 괜찮으니까.”

“하하. 알았어. 인마.”

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서 가~ 형 가는 거 보고 집에 들어가게.”

“그래~”

위이잉~ 끽.

정동희는 창문을 올리다가, 다시 내렸다.

“아, 맞다. 덕군아~”

“응?”

“너, 면회 언제 올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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