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붉은 벽돌 앞
“뭐? 버스킹?”
신바람은 정동희의 제안이 황당했다.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이 나이에 무슨 버스킹을…….”
신바람은 손사래를 쳤다.
“동희 씨, 미안한데. 내가 웬만하면 군인 아저씨가 하고 싶다는 거 다 해 주려고 했거든요? 이건 좀 무리예요.”
난 신바람의 팔을 잡아끌었다.
“에이~ 선생님~! 가수가 무대를 가리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야! 길거리가 무대냐?”
“공연하면 무대지 뭐예요~?”
“입금이 되어야 무대지, 요 녀석아~!”
나 또한 정동희의 갑작스러운 제안이 당혹스럽긴 했지만, 내심 반갑기도 했다.
버스킹을 해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때 받았던 자유로운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기대 없는 관객들을 휘어잡았을 때의 희열.
“어쨌든 난 옆에서 구경만 할 테니까. 끌어들이지 마~”
신바람은 완강했다.
“정진 형은?”
“나야 콜이지! 오랜만에 목 좀 풀어 보자! 아, 너 변성기는 괜찮냐?”
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직 진행 중이야.”
“아~ 그래? 낮은 키로 하면 되지 뭐.”
“맞아.”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완전 신나는데? 형이랑 같이 노래 불러 보는 게 얼마 만이야?”
내 태초의 단짝, 영혼의 파트너 정진과 노래를 부른다니. 도대체 얼마 만이냐.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어……? 잠깐만.”
정동희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뭐 착각하는 거 같은데, 노래는 형이 부를 건데?”
“……어?”
“……뭐?”
“……뭐라고요?”
나, 정진, 신바람은 일제히 반문했다.
정동희가 노래를 부른다고?
“야, 나라고 맨날 뒤에서 서포트 하란 법 있냐? 오늘은 나랑 사무엘이 노래 부를 거야. 너희는 세션.”
정동희는 직접 우리 손에 악기를 쥐여 주었다.
“자, 덕군은 기타.”
“…….”
“정진은 마라카스. 이건 리듬에 맞춰 흔들기만 하면 돼.”
정동희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키보드는 나랑 사무엘이 번갈아 가면서 칠 거야.”
다 계획이 있었구나?
정동희는 신바람을 향해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가장 가까이 서서 박수 쳐 주시면 됩니다. 환호를 섞어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신바람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보고 바람잡이를 하라는 말이죠?”
정동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보다는 스태프라고 하죠. 하하.”
* * *
젊은이들이 가득한 토요일 저녁의 마로니에 공원.
마지막으로 왔을 때는 사람들이 더 붐볐던 것 같은데, 그때 비해 썰렁해진 것 같다.
“요즘엔 홍대를 많이 가더라고.”
정동희가 내 표정을 읽고 넌지시 말했다.
마로니에 공원 입구, 붉은 벽돌 앞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쨌든 여전히 버스킹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젊음이, 열기가 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주섬주섬 악기를 펼쳤다.
6년 전과 지금의 우리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만큼 실력도 늘었다.
누가 봐도 연예인처럼 보이는 이쁘장한 소년 둘이 악기 세팅을 하니, 금세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어머…… 잘생겼다.
―잘생겼다기보다는 이쁜데?
―연예인 아니야?
우리는 연습실에 있던 캡모자를 집어 와 눌러쓴 상태였다.
나나 정진이나 이제 길을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본다. 선입견 없이 버스킹을 즐기고 싶어서 일부러 얼굴을 좀 가렸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하나 둘 셋 셋.”
정동희는 마이크 테스트를.
나와 송사무엘은 악기 조율을 했다.
아주 빠르고 능숙하게,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되어 준비는 끝났다.
곧바로 가볍게 연주를 맞춰 봤다.
♪♬♩ ♪♬ ♪♬♪♬♩
정동희와 송사무엘은 각자 1곡씩 부른 후, 둘이 듀엣으로 한 곡 하는 걸로 총 3곡을 하겠다고 했다.
학원 교육과 개인 연습을 통해 몇 년간 갈고닦은 실력이다.
가요 한두 곡쯤 연주하는 건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서울대 피아노과인 두 사람에게 키보드 연습은 필요 없었고.
정동희는 곧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안녕하세요~”
“우와아~ 휘이익~!”
신바람이 바로 앞에서 열렬히 환호해 주었다. 노란 정장인 탓에 눈에 확 튄다.
“하하, 열렬한 환호 감사합니다!”
정동희는 본인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곡을 선곡했다.
“영화 ‘원스’의 주제곡이죠? ‘Falling slowly’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앞에 선 사람들은 열 명 남짓. 모두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아직 박수 소리는 없었다.
당신을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원해요
그래서 더욱더 난 할 말을 잃고
항상 바보가 되어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정동희의 노래는 처음 들어 봤다.
음정, 박자는 정확하다.
화려한 노래 솜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차분하고 담담했다.
모범생이 부르는 발라드 같은 느낌이랄까?
노래 자체의 음울한 분위기와 정동희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졌다.
이 가라앉는 배를 붙잡아 고향으로 이끌어 줘요~
아직은 시간이 있어요~
근데, 문제가 있었다. 고음 불가.
‘아직은 시간이 있어요~’가 이 곡의 클라이맥스인데, 여기서 정동희는 자체적으로 한 옥타브 낮춰서 불렀다.
챙~ 채케채챙~ 챙~ 챙~
그다음 기타 독주.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 뒷부분에 기타 독주 구간이 있다.
내가 아무리 트롯을 하지만, ‘falling slowly’ 같은 명곡은 좋아한다. 전생에서도 좋아했던 곡이다.
난 노래에 흠뻑 젖어서 격렬한 스트로크를 했고.
촹촹~ 챙채케~ 챙챙!
―휘이익~!
―이야~ 좋다~!
―어린 녀석이 잘하네!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기타 독주의 클라이맥스에 정진의 마라카스가 합쳐졌다.
칙 치키 칙칙 칙 치키 칙칙
이 노래의 감정이 기타와 마라카스에 터져서, 울부짖고 있었다.
눈 감고 연주에 집중하다가, 살짝 눈을 떴는데.
처음 시작할 때 비해 관객 수가 두 배 정도로 늘었고, 모두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드디어 기타 독주 구간이 끝나고…….
정동희는 억울한 표정으로 마지막 가사를 불렀다.
당신의 노랠 부르며
나도 따라 부를 게요
기타의 핑거 주법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악보대로.
띵동 띵동 띠리링~
이렇게 노래는 끝이 났다.
* * *
―우와아~
―저 미소년 뭐야? 기타를 왜 이렇게 잘 쳐?!
―어머, 어떡해? 나 길 가다가 감동받았어.
―기타와 대화하는 줄 알았잖아!
사람들의 환호성에 덕군은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다.
‘뒤에서 기타 치는 것도 재밌네.’
―마라카스 소년도 너무 잘생겼다~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
정진은 웃으며 모자를 더 꾹 눌러썼다.
연주가 끝난 뒤, 모두 덕군 주변으로 모였다.
정동희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이씨, 이게 뭐야? 노래는 내가 불렀는데!”
“와~ 형! 뒤에서 연주하는 것도 재밌네~?”
“나 노래 부른 거 맞냐? 왜 들러리 선 기분이지?”
정동희는 계속 억울한 표정이었고. 사람들은 다음 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되는지 덕군은 고개를 돌려 머릿수를 세어 보다가, 한 여성과 눈이 마주치자.
―꺄아악~!
‘어이쿠, 깜짝이야.’
덕군은 살짝 눈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 너무 좋아~! 미성년자만 아니었어도!
―슈퍼 동안일 수도 있어. 난 그렇게 믿을래.
―주책 떨래?
화장도 좀 어색하고, 갓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세 명의 여성이었는데, 다들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귀여웠다.
“야, 야, 집중해. 다음 내 차례잖아.”
송사무엘이 핀잔을 주었다.
그 또한 곱상한 편이지만, 덕군과 정진이 함께 있으니 그를 보는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정동희는 송사무엘을 말렸다.
“사무엘아, 진짜 하려고?”
“왜?”
“방금 봤잖아. 처음부터 뒤에 서는 게 낫지, 앞에 나왔는데 뒤에 선 기분은…… 진짜 별로야.”
“음…….”
송사무엘은 좀 전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보더니.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그래도 할래! 이때 아니면 언제 덕군이랑 정진을 내 뒤에 세워 보겠어?”
덕군과 정진은 그저 마주 보고 웃었다.
송사무엘은 노래 부를 준비를 했고, 정동희처럼 하지 않았다.
방금 전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서…….
“이번 곡은 피아노 반주만 갈게. 덕군이랑 정진은 신바람 선생님과 같이 관객 호응 유도해 줘.”
“오~ 형, 똑똑하다~”
정진은 웃으며 말했고, 송사무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정동희는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야이씨, 치사하게! 그런 게 어딨어! 기타랑 마라카스 반주도 가~!”
송사무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싫어. 내 버스킹이야.”
송사무엘이 선곡한 곡은 케리 클락슨의 ‘because of you’.
다행히 반주만으로도 어울리는 곡이었다.
“뭐 해? 위치로!”
송사무엘 이병은 군대 말투로 덕군과 정진에게 지시했고.
둘은 어깨를 으쓱하며 송 이병의 말을 따라 줬다.
♪♬♩ ♪♬ ♪♬♪♬♩
정동희의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었고.
―어머~ 저 아저씨, 피아노 잘 친다.
―노래보다 훨씬 낫네.
칭찬인지 욕인지.
“끄응…….”
정동희는 어금니를 깨물고, 연주를 계속했다.
당신 때문에
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다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었죠
송사무엘 또한 음악 하는 사람답게 음정, 박자가 정확했다. 그리고 정동희처럼 고음 불가는 아니었다.
다만, 모기 목소리.
목소리가 가늘고 너무 작았다.
당신 때문에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주변 모든 사람들까지 믿을 수 없어요
노래가 이어질수록 송사무엘의 목소리는 떨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왜 코인노래방에서 부르는 것 같지?’
사람들은 호응을 유도하는 덕군과 정진을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어머,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어!
―몸 다부진 거 봐 봐. 어머, 어머!
―얘, 너 이름이 뭐야?
―전화번호 좀…….
코인노래방에서 피아노 치고, 노래하는 상황.
자충수였다
송사무엘은 고민했다.
‘그냥 여기서 노래 끊을까?’
뜨거운 여름을 식히는 저녁 달빛 아래.
휴가 버킷리스트였던 만큼 어찌어찌 깜짝 버스킹은 계속 진행되었고.
인파 속에서 박수 치며 환호하는 덕군과 정진.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알게 될까?
달은 하늘에 있지만.
별은 지금 그들 옆에 있었다는 걸.
* * *
월요일 5교시가 끝난 후.
난 곧바로 가방을 챙겼다.
보뉘하뉘 녹화 가야 한다.
“덕군~!”
황나비가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 치자마자 나왔는데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뭐야?
“누나, 5교시 수업 안 들었어?”
“아니~ 화장실 급하다고 하고 5분 먼저 빨리 나왔지.”
그러면서 혀를 삐죽 내밀며 웃었다.
“참나.”
난 정문을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누나, 나 방송국 가야 돼.”
“알어~”
난 황나비를 흘겨보며 말했다.
“혹시 또 아줌마가 차 대기시켜 놓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부담스러우니까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아냐~ 오늘 엄마 일이 있대.”
“아~ 다행이네. 근데 왜 따라오는 거야? 나 방송국 가야 한다니까?”
“안다고~”
황나비는 날 향해 방긋,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정문 앞까지 바래다주고 싶어서.”
“와…….”
말이 안 나온다. 황나비처럼 사춘기의 소녀가 이렇게 적극적이기 쉽지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
하여간 특이하다.
나도 이젠 익숙해져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두게 된다.
“덕군아~!”
정문 앞에서 정동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형~!”
휴가 복귀 하루 전.
정동희는 보뉘하뉘 제작진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며 내게 함께 가자고 했다.
“어머, 이 군인 아저씨는 누구셔?”
황나비는 밝은 얼굴로 정동희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