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홀리데이(2)
“음…….”
신바람은 약간 고심하는 표정을 짓다가 정동희를 바라봤다.
“솔직하게 얘기해도 됩니까?”
“네.”
신바람은 트롯 작곡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정동희는 자세를 고쳐 잡고 들을 준비를 했다.
“습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
“목적성을 상실한 곡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냥 장난치는 거죠.”
신바람답게 솔직함을 넘어서서 노골적인 평을 했다.
만약 이 곡을 만든 게 나나 정진이었다면 더 심한 말을 했을 것이다.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좋다고 들려주는 거 보면, 아직 들을 귀도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거죠. 아니면 어지간히 자존감이 높거나.”
“에이~ 선생님.”
급기야 난 중간에 끼어들어 정동희에게 말했다.
“형, 선생님 말투가 원래 이래. 특히 음악 얘기에 관련해서는.”
“어, 들어서 대충은 알았지만 좀 충격이긴 하다.”
정동희의 기분…… 뭔지 안다. 나와 정진이 신바람을 처음 만나서 배우기 시작할 때 많이 겪어 봤으니까. 특히 정진이 욕을 참 많이도 먹었었다.
정진은 그때가 기억났는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에이~ 선생님, 그 정도로 혹평할 곡은 아닌데. 그리고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단어 선택 좀 곱게 하세요~ 따위가 뭡니까? 따위가.”
“뭐, 인마? 네가 감히 내 앞에서 나이 얘기를 해?”
신바람은 50이 넘어서부터 나이 얘기에 민감하다.
하지만 많이 맞은 놈이 맷집이 좋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정진은 신바람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난 신바람이 편한 듯하면서도, 아직까지도 좀 어려운데.
이게 나와 정진의 차이였다.
“듣기 불편하면 안 들으면 되잖아? 동희 씨, 그만할까요? 칭찬을 듣길 원하신다면 여기 두 아이한테 물어보시면 됩니다.”
정동희는 꽤 충격먹은 표정이었는데.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
“아닙니다. 다 얘기해 주십시오. 신바람 선생님 같은 분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정도야, 뭐.”
“흠…….”
신바람은 정동희의 굳은 의지를 보았다.
잠시 고민하고는…….
“지금 만든 곡에 대한 평은 더 할 거 없고요. 그럴 가치도 없고.”
“…….”
“몇 가지 팁을 알려 드릴게요. 다른 사람의 말이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되시면 그냥 흘려들으면 됩니다. 개인적인 노하우입니다.”
나와 정진은 서로 놀라서 마주 봤다.
‘신바람이 무상으로 가르쳐 준다고?’
그는 진정한 프로다. 합당한 보상을 받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뭔가를 가르쳐 주거나 조언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제자인 우리에게도 훈련만 시킬 뿐 뭔가를 알려 준 적은 잘 없는데…….
정동희는 한껏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겨듣겠습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 * *
현역 트롯계의 최고 작곡가 중 한 명. 그렇다고 하여 히트곡 제조기는 아니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여 저작권료만 봤을 때는 히트곡 메이커와 비등하다는 후문이 있는 곡 뽑기 전문가, 신바람.
“우선 어깨에 힘을 좀 빼세요.”
“아…… 힘을 말입니까.”
“네, 내가 이번에 곡 진짜 기똥차게 한번 만든다! 길이 남는 걸작을 남기겠다! 우리, 덕군 기쁘게 해 줘야지!”
“…….”
“그런 생각으로 만들면 오히려 곡의 완성도가 떨어져요.”
그리고 신바람은 손가락을 펼치며 말했다.
‘첫 번째,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아……. 알 것 같으면서도. 좀 아리송하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곡을 쓸 때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이렇게 너무 분석적으로 고민을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
“즉흥성의 힘을 믿으세요. 그게 바로 영감입니다. 영감이란 깊은 고심 속에서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정동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아무 생각을 하지 말란 말입니까? 곡을 써야 하는데?”
신바람은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만 있으면 안 되죠. 구해야죠.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구하세요. 몸과 마음을 열고, 육감에 집중하면서.”
“…….”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낌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절 전적으로 믿으세요.”
정동희는 갸우뚱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좀 사짜 느낌 나는데? 그래도 일단 끝까지 들어 보자.’
“알겠습니다.”
신바람은 말을 이어갔다.
“거기서 이어지는 건데요, 갑자기 찾아오는 걸 캐치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음…… 기록할 준비?”
찰싹.
신바람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역시 서울대생이라 똑똑하시네.”
“감사합니다.”
‘두 번째, 항상 기록할 준비를 하라.’
갑작스런 칭찬에 당혹스러웠지만 일단 고맙다고 했다.
“저는 항상 녹음기를 옆에 두고 잡니다. 꿈속에서도 멜로디가 떠오르면 기록하려고요.”
“아~ 녹음기!”
“군인이라서 녹음기 들고 다니기가 어렵다면 오선지, 아니지, 수첩이라도 놓으세요. 악보 쓸 줄 알잖아요?”
“압니다.”
“수첩과 펜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걸 그때그때 바로 기록하세요. 그러니까 언제 갑자기 영감이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기록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아,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신바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특히나 트롯은 즉흥성이 중요합니다. 단조롭고 따라 하기 쉬운 멜로디, 이게 진짜 중요해요. 각 잡고 곡 쓰려면 잘 안 나옵니다. 뭐, 다른 작곡가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그래요.”
이때 덕군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근데, 선생님은 왜 항상 작업실에서만 곡 작업을 하는 거예요? 방금 말씀대로면 좀 돌아다니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신바람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덕군을 바라봤다.
“누가 작업실에서 곡 작업만 한다고 하냐?”
“네?”
“거의 놀아. 이름만 작업실이지, 내 놀이방이야.”
“아…….”
“놀다가 떠오르면 바로 기록하려고 작업실에서 노는 거야.”
덕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좀 요상하긴 하지만 이상하게 설득력 있어.’
* * *
“이게 다입니까?”
정동희는 신바람을 향해 물었다.
팁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았다.
10분도 안 지난 듯.
하지만 신바람은 뭔가를 고민하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흠…… 이건 영업 기밀인데.”
‘영업 기밀?’
덕군과 정진도 귀를 쫑긋했다.
신바람은 지금까지 이렇게 뜸 들이는 적이 없었다.
“음…… 그래, 저의 제자를 프로듀싱 할 계획인 걸로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동희 씨 맘에 들어서 특별히 알려 주는 건데.”
“감사합니다.”
정동희는 신바람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애들은 트롯을 좋아합니다.”
이게 한참 뜸 들이다가 뱉은 말이었다.
“…….”
모두 그다음 말을 기다렸는데, 그게 끝이었다.
정동희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근데요? 애들이 트롯을 좋아하는데요?”
“그겁니다.”
“네?”
“그게 포인트입니다.”
정동희는 엿 먹은 표정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군인 갖고 장난치나? 너무한 거 아니야?’
그 순한 정동희도 표정이 안 좋아지려는데.
신바람이 말이 이어졌다.
“아가들이 좋아하는 멜로디는 무조건 뜹니다.”
“아이도 아니고, 아가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덕군.
‘아, 그래! 그런 말이었구나!’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내가 돌 때 그랬었지, 유독 트롯 멜로디에만 몸이 반응했던 기억이나. 한 세 살 때까지 그랬었나?’
난 환생했기 때문에 갓난아기 때 기억이 있다. 그래서 신바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정진과 정동희는 그저 엿 먹은 표정이었다.
“저…… 선생님, 장난도 좀 적당히.”
정동희의 볼멘소리를 내려는데, 덕군이 나섰다.
“선생님, 그러니까. 멜로디 테스트를 아가들한테 해 보라는 거죠?”
“그렇지!”
‘세 번째, 아가에게 검증받아라.’
신바람은 놀란 눈으로 덕군을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냐? 내가 거기까지는 안 알려 주려 했는데?”
“뭐, 선생님 말씀 듣고 대충 이해했죠.”
“역시~ 신동은 신동인가?”
“14살이면 신동 소리 듣기는 좀 징그럽죠.”
덕군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었고.
정진과 정동희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덕군은 신바람을 보았는데, 그는 더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 제가 이해한 대로 설명해볼 테니, 틀린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봐서.”
덕군이 말했다.
“형,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빨리 알아들은 거뿐이거든? 그러니까 아가들이 듣기 좋은 멜로디에 반응을 잘한다는 거야. 특히 트롯은 흥에 기반을 두잖아. 형이 만든 멜로디가 괜찮은지를 아가들 통해서 검증을 해 보면 좋겠다는 말씀이신 거 같아.”
“아가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데?”
“춤출걸?”
“돌 된 아기가?”
덕군은 이 말에 난감했다.
‘분명 돌 된 아기도 춤을 추고 흥을 느낀다. 다만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뿐.’
“음…… 아기가 좋아하냐, 안 좋아하냐를 보면 될 거 같아. 그 정도는 보면 알 수 있잖아? 형은 몰라도 부모들은 알 거야.”
정동희는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옆의 송사무엘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기가 좋은 멜로디를 검증한다는 것.
서울대 출신인 그들이 보기에 사짜도 보통 사짜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동희는 송사무엘과 한참 대화한 후, 신바람을 향해 물었다.
“선생님, 덕군이 한 말이 사실인가요?”
신바람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며 투덜댔다.
“에이 씨, 영업 기밀 싸그리 날아갔네.”
* * *
베스킨 로빈슨에서 나온 우리는 정동희가 갈 곳이 있다고 하여 따라가고 있었다.
걷던 중에 난 문득 궁금한 부분이 생겨, 신바람 옆에 찰싹 붙어서 물었다.
“선생님, 그럼 지금까지 히트곡은 다 아가들 컨택 받고 만든 거예요?”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참으며 물었다.
신바람은 진지했다.
“모든 곡은 그렇게 못 하고, 입금 많이 된 곡들만.”
“아~ 그러니까 꼭 떠야 하는 곡들 말하는 거죠?”
“그렇지.”
난 계속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특히 결정을 잘해 주시는 아가님이 계세요?”
“그렇지는 않더라~ 아가들 다 고만고만해.”
“보통 몇 살이 용해요?”
“평균적으로 3~4살?”
신바람은 대답한 후, 날 정색하여 바라봤다.
“야! 자꾸 물어보지 마! 어디까지 파내려고? 이러면 난 뭐 먹고살아!”
“아~ 아깝다. 거의 다 낚았는데.”
“요 녀석이?”
“하하!”
나중에 정동희에게 자세히 얘기해 줘야지.
대학로의 저녁.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7~8살 때, 매 주말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는데.’
소싯적 생각이 떠올라 감회에 젖었다.
정동희를 따라 다다른 곳은 익숙한 장소였다.
“어?”
연습실.
오랜만에 온다.
기타, 키보드, 드럼 등 예전 모습 그대로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신바람과 정진도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 내 인생 첫 방송인 ‘아침마당놀이’ 연습을 여기서 했었다.
“오랜만이죠?”
정동희와 송사무엘은 웃으며 먼저 들어갔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들어갔다.
갑자기 여길 왜 온 거지?
“그러게요~ 진짜 오랜만이네. 여긴 그대로네요.”
정진은 웃으며 말했다. 정진은 진짜 6년 만에 온 것이다.
“와~ 벌써 몇 년 전이냐? 그때 참 재밌었는데. 그치? 덕군아.”
“맞아. 하하, 그때 막장 사연 시연하던 할머니들 잘살고 계실지 모르겠네.”
“하하, 성악 아저씨들은 어떻고? 사랑을 이루셨을까?”
난 정동희를 향해 물었다.
“형~ 근데 여기는 왜 온 거야?”
내 물음에 정동희는 송사무엘과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저희가…… 휴가 나가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정동희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엇, 설마?!
“자유가 그리웠어요!”
그리고 우리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열외 없습니다! 휴가자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준다고 했죠?”
난 어이가 없어서 피식 실소가 나왔다.
정동희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악기 하나씩 들고 따라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