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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49화 (149/250)

149화. 재회(1)

점심 식사를 한 후 연우, 재희와 함께 교정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민요 파트 1학년이 세 명뿐이니, 번잡하지 않아 편하고 좋다.

친구들이 많으면 나와 맞는 아이를 찾아야 하고, 친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데.

겨우 세 명뿐이니, 그런 시간은 필요 없었다.

“아유, 이제 좀 편하네.”

연우가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학생들이 없는 공간을 겨우 찾아서 온 것이다.

“우리, 항상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야?”

“왜? 난 관심받고 좋은데?”

연우의 말에 재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야, 이게 네가 관심받는 거냐? 덕군이 관심받는 거지. 괜히 들러리처럼 보이잖아.”

“뭐 어때? 생각하기 나름이지.”

흠…… 연우는 까칠한 부잣집 딸내미 같고, 재희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들내미 같다.

둘 사이에 공통점은 분명히 있으나 많이 달라 보였다.

“연우야, 불편하면 따로 다녀도 돼. 괜찮으니까.”

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고.

연우는 이 말에 눈을 멀뚱거렸다.

“어머, 나 왕따시키는 거야?”

“무슨 소리야? 배려해 주는 거잖아.”

“싫어~ 혼자 다니기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럼 어쩌자는 거야.

아, 얘네 아직 애들이지?

상황에 적당히 이입해야지.

같은 위치에서 투닥거릴 필요 없다. 난 어른이니까.

“TV에 나오던 애가 학교에 나타났으니까, 학생들이 신기해서 그래. 조금만 시간 지나면 익숙해져서 신경 안 쓸 거야.”

“…….”

그리고 난 연우를 지그시 보고 말했다.

“그리고 너도 내 옆에 있는 게 익숙해지지 않겠냐?”

“어머, 내 옆에?”

연우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 내 옆에 있지. 위에 있냐?”

“치.”

띵동댕동~ 딩동댕동~

수업 예비 종이 울렸다.

“이번 시간도 전공 실기지?”

내 물음에 연우가 말했다.

“맞아. 민요 쌤이 이번 시간엔 진짜 실기 연습한댔어. 아마, 선배들 만나지 않을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찬우 형…… 잘 지냈으려나.’

전국민노래자랑에서 만난, 특유의 마이페이스가 떠올랐다.

난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서 가자~ 후배가 늦으면 안 되지.”

“오케이~”

재희가 앞장서서 엉뚱한 곳으로 가려 하기에 난 목덜미를 잡아끌고 말했다.

“재희야, 내가 앞장설게. 처음 가는 거니까.”

“응? 어어.”

재희는 웃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 * *

성악 전공실 8

오전에 수업받았던 성악 전공실 2는 4층에 있었는데, 성악 전공실 8은 3층에 있다.

5교시 15분 전.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전에 수업을 받았던 전공실보다 크다. 구조는 비슷한데, 한쪽 벽면에 커다란 LCD 패널 모니터가 있는 것만 달랐다.

안에는 4명의 학생이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둘.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걸 보니 선배가 맞는 것 같다.

중학생이라 한 학년 차이만 나도 골격과 체격이 확 달라진다.

내가 앞장서서 들어갔고, 뒤에 연우와 재희가 따라왔다.

저벅. 저벅.

네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우릴 지켜보았고. 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름표를 보니 초록색 둘, 파란색 둘. 그러니까 2학년 둘에 3학년 둘이다.

난 살짝 고개를 숙이며 먼저 인사했다.

“반가워요~ 민요 선배들 맞죠?”

“…….”

선배들은 내 인사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색해서 그런가? 난 생글거리며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파란색 명찰은 단 키 큰 선배가 말했다.

“유명한 애라서 그런가? 상당히 건방지네?”

그러면서 내게 다가오는데, 키가 얼마나 큰지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180은 훌쩍 넘겠는데.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90도 각도로 인사를 해야지. 그리고 선배? 반말하냐? ‘님’ 자는 왜 빼는데?”

“…….”

다른 선배들도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 그보다 요즘 중학생들은 이렇게 하나하나 따질 정도로 예의가 발랐었나?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겨우 한두 살 차이 가지고.

“다시 안 할래?”

“안녕하십니까아~ 선배님~”

씩 웃으며 원하는 대로 해 줬다.

뭐,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아…… 맘에 안 들어.”

키 큰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고.

연우와 재희도 나처럼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연우는 표정이 참 좋지 않았다.

“뭐, 불만 있니?”

초록색 명찰의 여선배가 팔짱을 끼고 다가왔다. 단발머리에 볼살이 있는 귀여운 외모였다.

연우는 불만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야, 귀 먹었어?”

“귀는 안 먹었는데요.”

연우가 쌍심지를 켜면서 한마디 하려 하기에, 내가 나섰다.

“에이~ 선배니임~”

난 단발머리 선배를 콧소리를 섞어서 불렀고.

“어머. 왜, 왜?!”

선배는 당황했다.

“군대도 안 갔으면서 군기 적당히 잡으세요~ 처음 봤는데, 너무 그러신다~ 꼭 이래야만 해요?”

단발머리 선배는 내 시선을 피했다. 좀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보뉘의 영향이겠지.

“우린 그랬어~”

“그래서 깍듯이 인사했잖아요?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쟤 표정 봐 봐, 표정 자체가 하극상이야.”

“에이~ 표정 가지고 그러는 건 너무했다~”

난 넉살 좋게 말했고.

“치.”

단발머리 선배는 입을 다물었다.

연우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고, 재희는 하얗게 질려 있다.

중딩들이 이럴 줄이야. 군대도 안 갔다 온 것들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솔직히 나도 당혹스러웠지만 어른이니까 정신 차리고 있었다.

“근데 너, 보뉘.”

키 큰 3학년 선배가 날 가리켰다.

“네! 대장님!”

“장난해? 확 그냥.”

“헤헷.”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옛말이 있다.

“너, 학교에 어떻게 들어왔냐?”

“시험 쳐서 들어왔죠~”

“유명세로 들어온 거 아니야? 네가 민요를 아냐?”

“잘 몰라요~ 이제 알아 가야죠.”

“얼마나 했는데?”

그러니까 입시 전형이 작년 10월 초였고, 그때부터 민요를 했으니까.

5개월 정도 됐다.

근데, 이렇게 대답하면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은데.

“얼마 안 했어요~”

“그래? 한 3년 했어? 서도민요까지는 진도 나갔냐?”

“뭐, 그냥 대충 뭐…….”

얼버무리고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키 큰 선배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 대답 똑바로 안 할래? 얼마나 했냐고.”

“5개월이요.”

“뭐어?!”

옆에서 듣던 다른 선배들, 그리고 연우와 재희도 중얼거렸다.

―대박.

―낙하산 정도가 아닌데?

―돈을 쳐 발라도 5개월 만에 재원예중 입학은 힘들다.

―역시 유명세가 짱이군.

키 큰 선배는 순식간에 표정이 험악해졌다.

“하여간, 학교가 미쳐 돌아가네. 연예인이면 아무나 막 받아도 되는 거야?”

꿈틀.

자존감을 건드리는 말. 신경에 거슬린다. 그래도 참았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뭐 하러 예중에 온 거야? 개그맨이 민요는 배워서 뭐 하려고?”

“개그맨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엇쭈~? 눈깔 봐라? 너 개그맨 아니야? 보뉘하뉘 보니까 졸라 웃기더만.”

솔직히 웃기긴 하다. 내가 봐도 웃기니까. 하지만 개그맨은 아니다.

“꼭 개그맨만 웃겨요?”

“웃기니까 개그맨이지.”

약간 고민했다.

그냥 넘어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근데……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난 가수지, 개그맨이 아니니까. 절대로 싸우려는 게 아니다.

“훗. 개그맨보다 노래 못 부르면 졸라 쪽팔리겠다. 그죠, 선배?”

“뭐가 어째?!”

저벅. 저벅.

키 큰 선배가 위협적으로 내게 다가왔고.

―어머. 어머.

―어떡해. 한승혁 열 받았어.

난 그를 빤히 보았다.

지금은 피하지 말아야 할 상황이다.

“이 자식이 자꾸 ‘님’ 자를 빼네?”

“…….”

다시 고쳐서 부르지도 않았고,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똑바로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눈과 눈 사이에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고. 난 만약을 대비해서 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여차하면 도망가야 하니까.

체급 차이가 너무 크다. 맞설 상대가 아니다.

“눈 안 깔어?!”

키 큰 선배 한승혁의 한 발짝 더 다가오는데.

그때, 문 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어~ 덕군~”

이찬우가 나타났다.

* * *

이찬우의 등장에 한승혁이 기세가 꺾였다.

“덕군?!”

한승혁은 이름이 생소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그러거나 말거나 덕군은 한달음에 이찬우에게 다가갔다.

“형~!”

“하하, 이야~ 이게 누구야?!”

두 사람은 서로 손을 툭툭 부딪치며 반가워했다.

“소문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 벌써 소문이 났어?”

“당연하지. 보뉘가 재원예중에 온다는 거 우리 학교 학생 중에 모르는 사람 있을까?”

이찬우는 다른 선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알았잖아. 그치?”

선배들은 무응답으로 대답했다.

이찬우는 다시 덕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왔다~ 우리 학교 좋아~ 같이 다닐 시간은 짧지만, 잘 지내보자!”

덕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찬우. 전국민노래자랑 노원구편 준우승자. 본선에서 ‘신토불이’를 멋지게 불렀었다.

덕군이 재원예중 성악 전공 민요 파트에 지원하는 데 이찬우의 존재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찬우의 엄청난 발성과 구수한 감성. 특유의 한국적인 리듬감. 그걸 배우고 싶었다.

또한 이찬우는 2019년 헬로우 트롯맨에서 3위 수상자다.

덕군은 그의 성장 과정에 분명 특별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년 시절에 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야.’

“당연하지~ 내가 이 학교를 왜 왔는데? 형 때문에 왔잖아.”

“하하. 그래~ 빈말이라도 고맙다.”

“아, 맞다. 근데 형 집이 중계동이라고 하지 않았어? 여기까지 다니는 거야?”

중계동이면 반포동에 있는 재원예중까지 엄청나게 멀다.

“맞아~ 2년간 왔다 갔다 하느라 죽을 맛이었어. 올해는 기숙사 들어갔지.”

“아, 진짜? 그게 가능해?”

학교에 기숙사가 있지만, 지방 거주지의 학생만 입소가 가능하다.

“응~ 3학년은 가능해. 학업 성적만 어느 정도 뒷받침되면.”

“아…… 3학년은 되는구나?”

두 사람은 계속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선배들과 연우와 재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다 인사는 한 거지? 승혁이랑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거 같던데.”

이찬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승혁을 바라봤고.

“흠! 인사는 했지.”

한승혁은 뻘쭘해하며 대답했고.

그 옆에 있던 파란색 명찰을 달고 있는 3학년 여선배가 이찬우에게 물었다.

“근데, 둘이 많이 친한가 봐? 어떻게 아는 사이야?”

“아~ 내가 얘기한 적 있을 텐데? 전국민노래자랑에서 엄청난 녀석 만났다고.”

이 말에 한승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그 우승했다는 애?”

이찬우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준우승했었지. 하하.”

“…….”

덕군을 보는 한승혁의 눈빛이 대번에 바뀌었다.

‘그럼 성악 전공 최고 에이스인 찬우보다 잘한다는 거잖아? 아니…… 보뉘가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고?!’

덕군은 그런 한승혁을 향해 눈을 찡긋하고 말했다.

“선배~ 개그맨도 전국민노래자랑 우승할 수 있는데. 선배도 당연히 가능하겠죠? 하하.”

“…….”

한승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표정이 쌜쭉해졌다.

이찬우는 살짝 미소 짓고는 덕군에게 말했다.

“아, 덕군아. 너 형 좀 도와줄래?”

“뭘?”

“5월에 무대에 서야 할 일이 있거든.”

“학교에서 하는 거야?”

“재원예중이 주관이지.”

한승혁이 말했다.

“야, 그건 3학년이 하는 거잖아.”

이찬우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관행이 그랬을 뿐이지. 1, 2학년이 무대에 못 설 이유는 없어. 어때 덕군아?”

덕군은 잠시 생각했다.

‘내가 왜 오는 무대를 마다하겠어?’

그리고 웃으며 이찬우에게 말했다.

“형, 나 방과 후에는 연습은 못 해. 알지?”

“하하.”

이찬우는 큰 소리로 웃고는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 초통령이라 바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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