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48화 (148/250)

148화. 식사하기 불편하다

민요 쌤의 말씀에 난 일어났다.

“민요에 대해서 잘 알지?”

“…….”

솔직히 잘 모른다.

재원예중 면접과 실기는 벼락치기로 한 것이다.

“잘 모릅니다. 배우려고 왔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호호. 그래? 면접 때 노래 부르는 거 보니까 잘 아는 거 같던데? 군밤타령 아주 멋지게 부르던데?”

“감사합니다.”

민요 쌤은 웃으며 날 보다가 말했다.

“덕군이 한 곡 불러 보자. 민요 아는 곡 뭐가 있니?”

“네?”

아…… 이런.

“꼭 저여야만 합니까?”

하필 왜 민요 문외한에게…… 서연우나 안재희가 훨씬 더 잘 알 것 같은데.

“기본은 원래 백지에서 가르치는 게 좋거든.”

내가 백지라는 말인가?

“그리고 민요의 근본이 백지이기도 해.”

서연우와 안재희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날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불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

생각해 봤다.

내가 아는 민요가 뭐가 있지. 몇 가지 떠오르는 곡도 있는데, 너무 대중적이라 민요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냥 가장 안전하게…… 해 봤던 곡으로.

“군밤타령입니다.”

“음~ 그건 말고.”

“네?”

“나중에 설명할 거지만, 그건 통속민요에 포함되거든. 처음엔 토속 민요부터 접근해 보려 해.”

“…….”

통속은 뭐고 토속은 또 뭐야?

왜 하필 선생님 교수법에 내가 교보재로 불린 걸까.

보뉘라서 만만한가?

앉아 있던 서연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토속 민요 많잖아. 아무거나 짧게 하나 해~”

안재희도 중얼거렸다.

“토속 민요가 더 쉬운 건데.”

둘은 개념 차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서연우의 말대로 많고, 아무거나 해도 되는 거라면, 부르기 어려운 곡은 아닌 듯한데.

일단 내가 아는 트롯 곡 중에 민요에서 유래된 곡 제목을 불러 보았다.

“선생님, 강원도 아리랑은요? 그건 괜찮을까요?”

“오~ 좋지. 동부 민요로 선택했구나.”

이건 토속 민요가 맞나보네.

민요 쌤은 어깨를 살짝 털면서, 내게 쭉 손짓을 내밀며 신호를 보냈다.

“얼쑤~!”

* * *

재원예중 입시를 준비할 때는 합격을 위해서만 공부했었다.

따라서 실기도 선택 곡과 지정곡만 연습했었으며, 면접도 국영수 중심이었기에 민요 전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민요에 어떤 곡이 있는지, 어떻게 분류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쿵타닥 쿵닥 쿵타닥 쿵닥

두 아이는 내 노래에 맞춰서 몸을 건들거리며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었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췄다.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 만나 보세

“풉!”

갑자기 연우와 재희가 웃는다.

어이없어서 웃는 듯한 눈치였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신나게 불렀다. 노래는 이미 시작되었고. 관객 반응에 따라서 흔들리는 건 가수가 아니다.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푸하하!”

서연우가 큰 소리로 웃었고.

민요 쌤은 그녀를 향해 웃지 말라며 손짓을 보냈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계속 불렀다. 시작은 민요 쌤 마음대로 했지만, 끝은 내 맘대로 한다.

“유후~”

재희가 일어나서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흥이 차올라서 손가락 박수로 박자를 맞추었다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어머! 쟤 좀 봐~”

연우는 꺄르르 웃었다.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을 짓고

정든 님 오기만 기다린다.

“에이! 다 함께!”

난 신나게 소리쳤다.

전공 연습실에 나를 포함해 있는 사람 4명.

이제 다 함께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오케이! 한번 더! 아싸 좋다!”

그리고 신바람이 했던 것처럼 외쳤다.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후렴 부분만 몇 번을 더 부른 뒤에 노래는 멈추었고.

전공실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찼다.

“헉~ 헉~”

어쩌다 보니, 신명 나게 놀아 버린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서연우와 안재희. 민요 쌤도 호흡이 거칠어졌다.

“와…… 대박.”

서연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고.

안재희도 웃으며 말했다.

“역시 괜히 연예인이 아닌가 봐.”

선생님이 말했다.

“덕군! 한 곡만 더 부르면 안 될까? 너무 신나는데?”

흥이 많으시네. 놀고 싶으신 건가?

“선생님 부천에 가면 메리츠 나이트라고 있는데요…….”

“뭐?”

“아, 아닙니다.”

나도 흥 때문인가. 순간 정신을 놨다. 재빨리 말을 바꿨다.

“순서가 있지 않습니까? 다음 가수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난 서연우와 안재희를 보며 말했고.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호호.”

민요 쌤은 웃으며 말했다.

“무대를 뒤집어 놨는데, 부담스러워서 다음 가수가 올라올 수 있겠니?”

* * *

난 자리에 앉았고.

민요 쌤은 웃으며 설명했다.

“덕군이 노래를 아주 잘 불러줬는데, 가요화된 ‘강원도 아리랑’을 부를 줄은 몰랐네?”

“다른 건가요?”

“호호, 다르지. 방금 부른 강원도 아리랑은 군밤타령과 똑같은 ‘통속민요란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군밤타령은 거기서 또 신민요로 갈라지기도 하지만, 그건 뭐 나중에 설명하고. 강원도 아리랑은 ‘정선긴아리랑’에서 갈라져 나온 거야. 사람들이 부르기 좋게 변형된 거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아까 애들이 웃은 거구나. 토속 민요 부른다더니, 통속민요를 불러 젖히니까.

민요 쌤은 날 보며 물었다.

“덕군아, 넌 노래 부르는 사람이잖니?”

엇…….

오랜만이다. 날 이렇게 부르며 알아봐 주는 것.

“맞잖아? 아닌가? 너 주 종목이 가수 아니야?”

“맞습니다, 전 트롯 가수입니다.”

“그러니까. 난 전국민노래자랑에서 널 처음 봤으니까.”

난 현재 대중들에게 ‘흙장난’을 부른 가수가 아니라 보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노래 잘 부르는 보뉘.

“노래의 근본이 뭐니?”

“흥이죠.”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어때야 하니?”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확실한 건 감정을 고조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요 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본을 알고 노래를 불러야 듣는 사람의 가슴을 두들기거든.”

“…….”

“내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듣는 사람을 어떻게 감명시키겠어? 안 그러니?”

무슨 말씀을 하려고 그러시는 걸까.

민요 쌤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민요는 삶 속에서 저절로 나온 노래야. 일하는 삶 속에서 말이야. 즉 조상들이 일하는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 중얼중얼 부르던 노래가 민요야.”

우리는 집중하여 민요 쌤의 얘기를 들었다.

“호흡을 맞추고 능률을 높이기 위한 노래. 함께 일하고 함께 부르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지. 이게 ‘신명’으로 표출되어 힘든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거지. 이게 토속 민요의 근본이야.”

민요 쌤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는데, 내가 배울 과목이라 그런지, 흥미롭게 들렸다.

트롯을 처음 접했을 때 영혼을 울리던 무언가가 지금의 설명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단순한 듯하면서도, 깊고 애달프며 흥겨움이 있는 장르.

“그뿐만이 아니라 내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자기표현을 하는 도구지. 듣고 부르는 놀이이기도 하고. 음~ 아마 이 부분은 모든 음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일 거라고 생각해. 민요만의 특징이라고 하긴 어렵겠어.”

민요 쌤은 웃으며 말했다.

“즉 민요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가 되어 부르고, 하나로 만들어 준다는 것.”

그리고 날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너희들, 덕군이 노래 부를 때 통속민요를 불렀다고 웃었지만 덕군은 결국 토속 민요를 부른 거야.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연우와 재희는 고개를 끄덕였고.

민요 쌤은 날 향해 말했다.

“그렇지, 덕군아?”

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게 되어 버렸네요. 하하.”

선생님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웃었다.

“자~ 그럼 토속 민요에는 뭐가 있는지 알아볼까? 크게 경기 민요, 서도 민요, 동부 민요, 남도 민요가 있는데~”

그렇게 중학교 전공 첫 수업은 계속되었다.

* * *

점심시간.

학교 식당에 연우, 재희와 자리를 잡았다.

―쟤, 보뉘 아니야?

―재원예중에 입학했다더니 진짜구나?

―사인해 달라고 말해 볼까?

―아니야, 밥 먹는데.

난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하는 말은 다 들린다.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아오, 불편해서 밥을 못 먹겠네.”

연우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 넌 밥이 넘어가냐?”

연우의 말에 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뭔 소리야? 자꾸 아까부터 애늙은이 같은 소리는.”

난 이런 시선이 익숙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먹는다.

사인 요청도 받으면 기꺼이 해 주는 편인데, 밥 먹을 때만큼은 좀…….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처럼 식사 시간에는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식사 시간에는 집중해서 먹게 되었다.

연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야, 아침 굶었냐?”

“학교 밥이 맛있네.”

첫 수업부터 함께 춤추고 놀아서일까?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금세 친해졌다.

“재희야.”

“응?”

“아까 왜 선생님이랑 같이 온 거야?”

교실을 못 찾아서 30분을 넘게 돌아다녔다는 말이 난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예술관동’. 총 4개 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 전공실, 개인 연습실, 합주실, 악기고, 시청각실, 의상실 등 전공 교과와 관련된 모든 것이 모여 있다.”

재희는 로보트처럼 말을 했다.

“근데 전공실이 이렇게 여러 개 있을 줄은 몰랐지.”

“방금 한 말은 뭐야?”

“학교 소개 팸플릿에서 봤어.”

“교실 위에 있는 팻말 확인할 생각은 못 했었어?”

“그 생각을 못 했었네. 오늘부터 생각하려고.”

이상하네. 팸플릿을 외울 정도로 암기력 좋은 거 보면 멍청한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야아~ 자꾸 밀지 마.

―너, 보뉘 팬이라며? 어서 가 봐.

―그래도 같은 학교 학생끼리 사인해 달라는 건 좀…….

아까부터 날 지켜보던 여학우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곧 용기를 낼 것 같은데.

밥은 이제 거의 다 먹었다.

“연우야, 다 먹은 거야?”

재희는 다 먹었고, 연우는 반 정도를 남겼다.

“입맛 떨어졌어. 동물원 우리 안에서 밥 먹는 기분이야.”

“그럼, 가자.”

* * *

덕군은 여학우가 사인해 달라고 다가오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명이 다가오면, 주변에서 다 몰려든다.

하지만…….

덕군은 여학우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고 말했다.

“누나 맞죠?”

명찰 색깔이 초록색이면 2학년이다.

1학년은 노란색. 3학년은 파란색.

“응? 어, 어머…….”

덕군에게 다가오려던 여학우는 덕군이 말을 걸자, 얼어 버렸다.

“옆에서 밥 먹으면서 들었거든요. 같은 학교 학생끼리 사인은 급을 나누는 거 같아서 좀 그렇죠? 그러니 앞으로 뵈면 인사드릴게요.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덕군은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여학우는 얼어붙어서 가만히 있었다.

“엇, 저랑 친하게 지내기 싫어요?”

덕군이 눈을 마주치고 씩 웃자.

여학우는 얼굴이 불타는 듯 빨개져 버렸다.

“아, 아니, 잘 부탁해.”

여학우는 수줍게 말하며 덕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학생식당에 모든 이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시간은 민요전공 실기 시간.

민요 파트 전 학년이 모인다.

이찬우는 씩 웃으며 생각했다.

‘다음 시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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