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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46화 (146/250)

146화. 보고 또 보고(1)

재원예중 첫 등교날.

다른 친구들보다 난 하루 늦게 첫 등교를 하게 되었다.

어제 학교에 못 간 생각을 하다가, 훈련소로 들어가던 정동희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이 서른에 군대에 가는 형.

선임들 대부분이 20대 초반일 텐데…….

그저 잘 적응하길 바랄 뿐이다.

머지않아 휴가도 나올 거고, 괜히 센치해질 필요는 없다. 각자가 본인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새로운 학교에 새로운 동네.

나 또한 새로 적응해야 할 것투성이다.

환경뿐만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학교와 방송 일을 온전히 병행해야 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보뉘가 된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등교를 거의 안 하고 방송 일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어머, 보뉘다.

―나 쟤 진짜 좋아하는데.

교문에 가까워지자,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더해 갔다.

―왜~ 그래도 예전 보뉘가 더 잘생겼잖아.

―무슨 소리야. 난 덕군이 훨씬 잘생겼다 생각하는데.

―꺄악! 너무 좋아. 같은 학교 다닌다니.

애써 못 들은 척하고 묵묵히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보뉘가 된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었으며, 이런 반응 약간 익숙해졌다.

이럴 때는 어색해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이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보뉘야, 안녕~”

“어, 안녕.”

막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의 소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렇게 대놓고 말을 걸면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재원예중 교복을 입은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나 2학년인데~”

“나 학교에서는 보뉘 아닌데~”

내 대꾸에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귀여워.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 이름이 뭐야?”

“뭐예요? 보뉘 이름도 몰라요?”

“히히. 미안. 근데 나 진짜 팬이야~ 보뉘로만 보다 보니깐.”

만약 학교가 아니었다면, 난 이쯤에서 좋은 하루 보내라고 하며 사라졌을 것이다.

“덕군이요.”

“아~ 덕군! 알았어. 기억해야지~”

긴 머리 소녀는 나와 걸음 속도를 같이했다.

난 따로 가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빨리해 봤지만, 어찌나 속도를 잘 맞추는지 내 옆에 붙어 있는 것 같다.

주변에 다른 아이들 일부도 멀찍이서 쫓아왔다.

“너 전공이 뭐야?”

“성악이요.”

“아~ 그렇구나. 난 무용인데.”

그 말에 난 슬쩍 긴 머리 소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흠…… 무용 잘하게 생겼네.

날씬하고 쭉 뻗은 게 한 마리의 우아한 학 같다.

어느덧 난 본관 앞에 도착했다.

난 멀뚱히 바라보다가 긴 머리 소녀에게 물었다.

“선배.”

“응?’

“1학년 교실이 몇 층인지 알아요?”

“4층이야. 내가 같이 가 줄까?”

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사양할게요.”

긴 머리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냥 누나라고 불러도 돼~ 선배는 무슨.”

“그럼, 저 먼저 올라갈게요. 수고하세요.”

난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사람을 소중히 하고 가까이 지내는 게 좋지만. 지금의 나는 이성하고 거리를 좀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쁘고 매력적일수록.

그러니까 이성적인 감정이 느껴질 만한 여성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더 이상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구설수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이성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조심하려 한다.

인사하고 가는데, 뒤에서 긴 머리 소녀가 날 향해 소리쳤다.

“덕군아~ 핸드폰 번호 알려 주면 안 돼?”

“저, 폰이 없어요.”

“진짜?”

진짜다. 아직 없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난 다시 긴 머리 소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이미 2층까지 올라왔는데, 아래에서 그녀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황나비라고 해~ 또 보자~”

* * *

1학년 4반.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

늦게 오지 않았는데.

날 보는 시선들이 싸하다. 온몸을 스캔당하는 기분.

괜히 민망해서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웃고는 빈자리 아무 데나 앉았다.

“보뉘!”

한 남자애가 날 불렀다.

“어?”

“거기 네 자리 아니야. 어제 자리 정했거든.”

“아, 그래?”

남자애는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야.”

“응. 쌩유.”

그리고 자리로 가기 전에 남자애에게 내 이름을 예명으로 알려 주었다. 어차피 가족들도 그렇게 부르니까.

“덕군이야. 앞으로 덕군이라고 부르면 돼.”

“어, 알았어.”

뒷자리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반 친구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누가 자리 배치를 해 준 건지, 다행이라 생각했다.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아마 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반에 있는 대부분이 입학식 때 처음 만난 사이다. 교실 안에 어색함이 흐를 수밖에 없다.

창문 밖으로 교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새삼 2회차 인생에 대한 감회가 느껴졌다.

‘벌써 14년을 살았네.’

지금은 분명히 현실이고, 새로운 두 번째 인생에서 벌써 14년 차다.

이번 생은 워낙 바쁘다 보니 2회차라는 생각도 안 하고 정신없이 살았다. 정적 속에 멍하니 뿌연 창문 밖을 바라보는데, 데자부 같다고 느껴졌다.

아주 예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 아마 기분 탓이겠지.

드르륵.

교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정적만 가득하던 교실이라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어~ 다들 왔냐?”

선생님인 것 같은데.

음?

얼굴이 낯익은데?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그의 시선이 날 향하여 말했다.

“오늘은 안 온 사람 없지? 옆에 빈자리 없는 거지?”

빈자리는 없었다.

“첫날부터 결석하는 녀석이 있고 말이야, 으잉~”

그는 날 향해 웃으며 말했고, 나 또한 멋쩍어서 웃었다.

“김덕후! 앞으로 나와.”

“네?”

오랜만에 본명을 들으니, 남의 이름 듣는 것 같다. 진짜 남의 이름이었으면 좋겠는데.

“첫날 결석한 벌칙이다. 짜샤. 나와서 자기소개 해.”

아니 무슨 전학생도 아니고, 자기소개를…….

뻘쭘해서 미적거리자,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어쭈, 뺀다 이거지? 그럼 선생님부터 소개하랴? 난 네 담임이고, 판소리 과목 가르치는 장명규라고 한다. 면접 때 보니까 아주 숫기가 넘치던데, 방송 나가면서 성격이 바뀌었냐?”

‘면접’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기억난다.

면접관이 세 명이었는데, 오른쪽에 앉아 있던 면접관인 것 같다.

가운데에 있던 대머리 면접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면접관은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는 내게 어서 나오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뭐 해~ 어서 나와.”

드르륵.

의자를 뒤로 끌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 뚜벅.

앞의 교탁을 향해 걸어가는데,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흠!”

난 교실 앞에서 반 아이들을 마주하고 섰다.

대략 30명 정도 되어 보이는데, 한 반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예중이라고 해서 반 학생 수가 적을 줄 알았는데.

“반가워. 난 덕군이라고 해.”

“덕군?”

담임 쌤이 의아해하는 태도에 난 웃으며 말했다.

“예명인데, 가족들 포함해서 모두 날 덕군이라 부르거든? 학교에서도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어.”

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원예중에 입학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앞으로 기대돼. 잘 지내 보자~”

난 이렇게 짧게 마무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근데 담임 쌤은 날 잡아 세웠다.

“덕군이 뭐냐? 학교에서는 본명으로 불려야지.”

엇, 여기서 태클을 걸 줄이야. 이제 웬만해선 덕후로 불리고 싶진 않은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담임 쌤은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서도 예명으로 불리고 싶으면, 연예인답게 팬 서비스 한번 해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팬 서비스요?!”

담임 쌤은 친구들을 향해 물었다.

“덕군이 보뉘인 거 모르는 사람 손?”

“…….”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보뉘하뉘 오프닝 송 라이브로 듣고 싶은 사람 손!”

번쩍!

반 전체가 손들었다! 헉스!

“네에?!”

내가 기겁하여 담임 쌤을 바라보자,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봤지?”

“여기서 오프닝 송은 좀…….”

―덕군! 덕군!

―보뉘! 보뉘!

그 어색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한목소리로 날 연호하기 시작했다.

난 황당해서 바라보았다.

―보여 줘! 보여 줘!

예술 하는 애들이라 기분이 오락가락하나?

황당하네.

내가 당황해하자.

담임 쌤이 말했다.

“야, 나 같으면 빨리하고 들어가겠다. 오프닝 송 30초도 안 되는 거 같더만.”

“하아…….”

난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난 천천히 두 손을 모아서 총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등을 교탁에 기대어, 오프닝 송 시작 포즈를 취했다.

―우와아~!

포즈만으로 교실은 이미 뒤집어졌다.

꿀꺽.

학교에서 보뉘하뉘 오프닝 송을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첫날부터.

3개월간 숱하게 했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할 때마다 오글거린다.

스튜디오에서 할 때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고 어금니 꽉 깨물고 했었는데.

친구들 앞에서는 좀…….

아, 힘들다.

“덕군아, 전교생 다 모인 다음에 할 참이냐?”

‘전교생’이라는 말에 난 눈을 질끈 감고 반 아이들에게 007빵을 하며 시작했다.

보뉘 보뉘 보~

하뉘 하뉘 하~

하루종일 이 시간을 기다려 와써~!

턱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총을 앞으로 쐈다가, 옆으로 쐈다가.

요염하고 거만한 포즈를 취하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우와~ 대박!

―좋다!

호응은 최고였다.

모여라 친구들! 어서 와 친구들!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오프닝 송의 마지막 부분.

‘보고 또 보고’ 굿거리장단.

예술중학교 학생들답게 책상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난 이제 쌍권총을 날리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갔다.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보뉘 하뉘 보뉘하뉘 얍!

피융~!

권총 연기를 날리듯, 손끝에 입김을 불며 마무리 지었고.

―우와아~!

―덕군! 덕군!

―보뉘! 보뉘!

휴우~ 겨우 끝냈다.

아, 다르다. 스튜디오에서 했을 때와는 완전 다르다.

민망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담임 쌤에게 말하고, 난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 * *

교무실.

담임 쌤의 호출로 1교시가 끝나자마자 왔다.

“어, 왔냐?”

본 지 얼마 안 됐지만, 담임 쌤 얼굴 보면 무섭다.

첫인상이 너무 강렬했다. 교실에서 보뉘하뉘 오프닝을 시킬 줄이야.

“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어제 학생별 개인 면담을 했거든. 우리 학교에 특수성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사정을 잘 알아야 해.”

“…….”

“넌 어제 못 했으니까. 그리고 방과 후에는 시간이 안 될 거 아니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 쌤은 내게 물었다.

“방송국에는 몇 시까지 가야 하니?”

2시까지는 가야 여유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수업을 더 듣고 싶어서 방송국에 양해를 구했다.

“2시 반까지 가면 돼요.”

“흠…… 그래. 그럼 학교에서 늦어도 2시에는 나가야겠구나? 교육방송이 도곡동 맞지?”

“네.”

“가까워서 다행이네.”

담임 쌤은 기록부에 적으며 말했다.

“흠~ 그럼, 5교시까지는 수업이 가능하겠네? 뭐 특별한 스케줄 있을 때는 따로 말하렴.”

“네, 감사합니다.”

학교에 나 같은 애들이 많아서일까? 방송 활동에 대해 딱히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어디 보자…… 덕군이는 ‘민요’ 전공이구나.”

“네.”

담임 쌤은 피식 미소 짓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기억나네.”

그는 날 바라보았다.

“네 덕분에 민요 TO가 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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