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집 떠나와(2)
덕군과 정동희는 함께 앉았다.
정동희는 덕군에게 창가 쪽에 앉으라고 했지만, 덕군이 양보해 주었다.
한동안 나오지도 못할 테니 가는 길에 바깥 구경 실컷 하라고.
한참을 버스 안에서 아무 말 없이 갔다.
정동희는 복잡한 심정으로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다.
덕군은 힐끔힐끔 그런 정동희를 보며 생각했다.
‘마음이 아프다.’
덕군은 전생에 복무 기간이 2년 2개월일 때 군 생활을 했었다.
아주 잠깐 전생의 군 생활을 떠올렸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우, 짜증 나. 생각하지 말자.’
군 복무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몇 년 뒤면 또 가야 한다는 생각까지 이어져서 더 짜증 났다.
원래 매는 맞을 때보다 맞기 전이 더 신경 쓰이는 법. 부담스러운 일은 그때 가서 그냥 겪는 게 낫다.
‘2회차 인생이라서 안 좋은 점도 있네. 군대를 또 가야 한다니.’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입대는 내가 하는데?”
덕군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자꾸 흔들자, 옆에서 정동희 보기 이상했는지 물었다.
“응? 흠,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정동희는 웃으며 앓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나이 서른에 군대를 가다니. 진짜 형 어떡하지?”
“군대 두 번 가는 것보단 낫잖아.”
“뭐? 두 번 가는 사람도 있어?”
“글쎄, 있을지도 모르지.”
난 입을 다물었고, 정동희는 날 황당하다는 듯 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싱거운 녀석.”
그리고 진심 어린 말을 했다.
“덕군아, 고맙다.”
“뭘. 형이 입대하는데 당연히 배웅 가 줘야지.”
“그것 말고도.”
“…….”
“여러 가지로 고맙다.”
뭐가 고맙다는 걸까?
덕군은 잠시 그의 말을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형이 나한테 신경 써 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면회도 자주 가고 할게.”
“정말?”
“그래~ 하뉘 누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해 볼까?”
“오~ 그럼 난리 날 텐데. 하하.”
덕군은 씩 웃으며 말했다.
“한번 추진해 볼께~ 하뉘 누나랑 빨리 더 친해져야겠네.”
덕군은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아, 형. 군 복무 할 때 음악 작업을 한다는 게 무슨 소리야? 입학식 날 사무엘 형이 했던 말.”
“아~”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군대 갔다 온 친구들이 그러는데, 은근히 시간 많다고 하더라고. 형이 이제 피아노는 안 칠 거지만, 음악은 꾸준히 할 거거든? 그래도 지금까지 해 왔고,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으니까. 하하, 곡 작업을 한번 해 보려 해.”
덕군은 깜짝 놀랐다.
“뭐라고? 방금 뭐라 그랬어? 피아노를 안 해?!”
“…….”
“형, 잠깐 쉬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쉬나 의아하긴 했었지만, 이번에 입대하는 거 보고 이해가 되었었는데……. 형, 군대 가려고 들어온 거 아니었어? 사무엘 형도?”
덕군의 목소리가 컸는지, 건너 옆자리 있던 송사무엘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사무엘은 계속할 거야. 형이랑 동반입대 하려고 들어온 거야. 근데 형은 달라, 이제 피아노는 관둘 거고 이태리로는 안 돌아가.”
“…….”
“네 덕분에 뭘 하고 싶은지를 찾았어. 한국에 돌아온 뒤 지난 3개월 동안 확인해 본 시간이었는데.”
덕군은 그냥 14살이 아니다.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2회차 14살.
정동희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 본인에게 정성을 들였는지.
약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동희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이젠 확신이 들었어. 형은 제작자의 길을 갈 거야.”
* * *
논산에 도착했다.
그 이후 버스에서는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난 정동희의 목표를 들은 이후 생각이 많아졌고.
정동희도 마찬가지인지 더 말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입영 시간은 13:30분까지라고 했는데, 내가 좀 일찍 도착하자고 했다.
“형 빨리 밥부터 먹자. 좀 더 시간 지나면 자리 없어서 먹기 힘들어.”
“이제 11시인데?”
“지금도 좀 늦은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어서.”
“뭐 먹을까? 우선 훈련소 근처로 갈까?”
“답답한 소리 하네, 다들 몰렸을 텐데 서서 밥 먹으려고?”
훈련소 근처는 혼잡해서 먹기 힘들다. 품질은 낮은데 맛도 없고 가격도 비싸고.
정동희가 날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너, 꼭 군대 갔다 온 사람처럼 얘기한다? 아님 뭐 사전 답사라도 한 거야?”
이 말에는 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난 거짓말하고 싶진 않다.
길 건너에 돼지갈비집이 보였다.
“형, 저기 가자.”
“야, 무슨 대낮에 갈비야?”
“오늘 밤부터 단 거 엄청 땡길 거야.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놔.”
“허허, 이거 참.”
정동희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기에 난 휘갑을 쳐 버렸다.
“여러 소리 말고,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조금만 있으면 내 말 듣기 잘했다는 생각 들 테니까.”
난 앞장서서 돼지갈비집으로 들어갔다.
이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훈련소로 향했다.
♪♬♩ ♪♬ ♪♬♪♬♩
훈련소에 가까워질수록 군악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음악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두 형의 표정은 굳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긴장 풀어. 괜찮아. 다 갔다 오는 거야.”
난 택시 안에서 두 사람을 달래 주었다.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이라니깐.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가니까. 꾹 참고 버티면…….”
“야, 짜증 나니까. 자꾸 애늙은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그 얘기 이미 아빠한테 많이 들었거든?!”
결국, 송사무엘이 얼굴을 붉히며 짜증을 냈다.
쩝.
“난 형들 생각해서 하는 소리지.”
“군대도 안 갔다 온 애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더 짜증 나!”
‘2번 소총수였다고 말할 수도 없고…….’
나름 메이커 사단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갔다 왔지만 갔다 왔다고 말할 수 없는 억울함.
어쩔 수 없다. 그냥 꾹 참았다.
덜컹.
택시에서 내렸다.
지금 시간 12시 50분. 한마음 음악회가 진행 중이었다.
두피가 훤히 보일 정도로 짧은 스포츠머리의 수많은 청년들.
봄의 시작, 아직 쌀쌀한 날씨에 볼이 빨개져 있고, 그들의 입김이 마치 봄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초봄의 아지랑이.
긴장한 청춘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씨, 다들 왜 이렇게 어려?”
송사무엘은 동기가 될 청년들을 보며 중얼거렸고.
정동희도 한마디 했다.
“그러게, 우리가 최고령 찍겠는데?”
난 두 사람을 위해서 한마디 했다.
“형, 군대 가면 중대장이라고 있거든?”
송사무엘이 물었다.
“중대장? 높은 사람이야?”
“계급은 대위인데, 형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상관 중에서는 제일 높을 거야. 대대장은 볼 일이 잘 없을 테니까.”
“오호…… 짜식, 잘 아네.”
“형 위에 분대장이 있고, 그 위에 소대장. 그 위에 중대장이 있어. 보통 군 편제가 중대 단위로 움직이기에 형들에 대한 인사권은 중대장부터 있다고 보면 돼.”
송사무엘은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인사권은 무슨, 군에 말뚝 박을 것도 아닌데.”
난 고개를 젓고 말했다.
“이 말은 형들에게 휴가를 줄 수 있는 결정권자란 뜻이야.”
“오,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네?”
송사무엘의 눈이 동그래졌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정동희가 말했다.
“근데 중대장 얘기는 왜 하는 거야.”
“보통 중대장이 형들이랑 동갑내기거든. 친구. 그러니까 잘 지내라고.”
“아오~”
송사무엘은 꿀밤을 먹이려는 듯 손을 올렸다.
“이거 놀리는 거지? 동희야, 덕군이 꿀밤 좀 줘도 되냐?”
“내가 줄게, 내가.”
정동희는 다가와 헤드락을 걸었고. 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지역, 학연 같은 거 따져 봐. 중대장도 사람인데 나이 꽉 차서 온 병사들 챙겨 주겠지~”
두 형들과 장난치며 웃다가.
정동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사무엘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얘 너무 잘 아는 거 같지 않냐?”
“그러니까. 14살이 군 편제를 다 알어?”
‘군에서 2년 있어 봐. 모르는 게 이상하지.’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덕군! 너 왜 이렇게 잘 아는 거야? 진짜 궁금해서 그래.”
정동희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대충 말했다.
“그냥~ 밀리터리 덕후라서.”
“뭐? 하하, 얘 봐라? 예전엔 제 이름 이렇게 쓰이는 거 기겁하며 싫어하더니 이젠 본인이 쓰네?”
아차 싶었다. 아, 젠장, 덕후.
송사무엘은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신나게 놀렸다.
“맨날 덕군이라 불리니까, 개명이라도 한 줄 아나 봐~ 김덕후 씨? 푸하하!”
두 형들이 계속 자꾸 놀리기에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그냥 빨리 들어가. 지금 들어가도 돼.”
“…….”
* * *
오후 1시 20분.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군악대의 음악 소리는 창공을 울리고.
여기저기 배웅 나온 사람들의 울음소리 또한 커지고 있었다.
“저……. 혹시 보뉘 아니에요?”
훈련소 앞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덕군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머~ 보뉘닷!
―웬일이야? 논산훈련소에!
“쉿! 쉿!”
덕군은 다른 사람들도 알아볼까 봐, 두 여자를 조용히 시키고 말했다.
“죄송한데, 제게 너무 중요한 분이 입대하는 날이라 배웅 왔거든요. 모른 척해 주세요.”
송사무엘은 잠깐 화장실에 가 있었고, 정동희는 옆에 있었다.
여자분이 말했다.
“음~ 사진 한번 찍어 주면요.”
“네, 네. 대신 조용히.”
찰칵.
두 여자는 사진을 찍은 후 약속대로 조용히 갔다.
정동희는 두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짜식, 많이 컸네? 이제 정말 연예인 다 됐구만?”
“에이~ 무슨. 이제 시작이지.”
덕군은 웃으며 대답했는데.
정동희는 웃지 않았다.
“형,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
정동희는 입만 달싹일 뿐 말하지 못했다.
“뭐야, 내가 얘기해야 하는 거야? 미안해서 못 하겠다 이거지?”
“…….”
덕군은 정동희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형, 기다릴게.”
“…….”
“난 형이 필요하거든. 형이랑 계속 함께하고 싶어.”
정동희는 감격 어린 눈빛으로 덕군을 보았다.
“어차피 난 보뉘하뉘 말고는 당분간 연예계 활동할 생각이 없어. 형도 잘 알잖아. 형이랑 함께 세운 계획이니까.”
“…….”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하하.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을게. 군 복무 하면서 열심히 비즈니스 연구하고, 좋은 곡도 써 와.”
정동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가를 빠르게 훔치며 웃었다.
“짜식아, 운동화 거꾸로 신으면 안 돼. 난 네 성공에 모든 걸 걸었다고.”
“당연하지. 난 의리 빼면 시체야.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하잖아?”
꽉.
정동희는 덕군이 내민 손을 꽉 잡았고, 덕군은 그를 끌어당겨서 꼭 안아 주었다.
“형, 몸 건강히 잘 갔다 와.”
“이제 모두 입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5분 전!”
확성기 음성이 들렸다.
“어이쿠, 화장실을 몇 번을 다녀오는지.”
그때 송사무엘이 왔고.
덕군은 그 또한 꼭 안아 주며 말했다.
“사무엘 형, 형도 건강히 잘 다녀와.”
토닥. 토닥.
송사무엘은 덕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고맙다. 덕군아, 너도 건강하렴.”
척.
정동희는 몸을 돌렸다.
“가자, 사무엘.”
“그래.”
육군훈련소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나이 서른의 두 남자.
어깨를 살짝 떨고 있는 정동희의 뒷모습을 보고, 덕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동희 형! 어깨 펴!”
정동희와 송사무엘은 고개를 돌렸고, 힘차게 손을 흔들며 소리치는 덕군을 보았다.
“몸 조심히 잘 다녀와!”
두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