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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44화 (144/250)

144화. 집 떠나와(1)

“아니, 형 머리가 도대체 왜……?”

까까머리의 정동희.

그도 그렇지만 송사무엘이 더 충격적이다.

난 지금까지 그가 단발머리 이외의 다른 헤어스타일을 한 걸 본 적이 없다.

갑자기 너무 달라지니 어색하다.

“…….”

아무리 봐도 패션으로 머리를 이렇게 한 것 같지는 않고…….

“설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정동희와는 요즘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어서…….

놀란 마음에 난 동공이 흔들렸고.

그런 나를 정동희는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덕후야, 입학 축하한다.”

“고마워, 형.”

진짜 궁금하고,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닌데.

섣불리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우리를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아빠가 말했다.

“자, 자, 이제 식사하러 가자.”

우리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중국집.

우리 다섯 사람은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자장면 2개에 짬뽕 3개.

사이드디쉬는 없었다.

개포동으로 이사한 이후, 우리 집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외식 자체가 이사 온 후 처음이었다.

“동희야, 사무엘아, 삼촌이 비싼 거 못 사 줘서 미안하다.”

정동희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삼촌. 저희 자장면 좋아해요~”

“그래, 오늘 와 줘서 고맙고.”

우리는 묵묵히 자장면을 먹었다.

나와 정동희 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송사무엘도 그렇고.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심정이 전해진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곳.

난 전생에 한차례 경험이 있기에 그 심정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식사를 하는 중,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동희야.”

“네.”

“큰 고모는 이제 괜찮아지신 거니?”

“아~”

정동희는 씩 웃으며 날 바라봤다.

“네, 덕군 덕분에요. 하하.”

“응? 덕군?”

“네~ 덕군이 보뉘하뉘 첫 방송 날 엄마한테 영상 편지 보내줬거든요.”

보낸 건 맞지만, 그 여파에 대해서는 나도 지금 처음 듣는다.

“그거 큰 고모가 보신 거야?”

난 깜짝 놀라서 물었다. 보라고 영상 편지 보낸 건 맞지만, 왠지 부끄럽다.

“그래~ 보셨어. 나도 생각도 못 했는데, 어떻게 보셨더라고.”

“원래 보뉘하뉘 보셔?”

“하하. 아니~ 엄마가 보뉘하뉘를 왜 봐?”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엄마 다니는 샵 아줌마가 보뉘하뉘를 보고 말씀하셨나 봐. 너가 그때 지역, 이름까지 얘기했잖니? 그래서 샵 아줌마가 알아본 듯해.”

“아~”

“샵 아줌마 얘기 듣고 영상을 찾아서 보신 모양이야. 뭐, 엄마가 TV 재방송 잘 찾아보지 않는데, 본인 얘기 나왔다니까 궁금했던 모양이지. 하하.”

난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진짜 내 말이 먹힌 거야? 이제 완전히 마음 풀기로 하신 거야?”

너무나 반가운 소리다. 정동희를 만날 때마다 사주경계를 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형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안쓰러웠다.

“음…… 이걸 먹혔다고 해야 하나?”

정동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상 편지 보고 가택 연금 풀렸으면 먹힌 거 아닌가?

“부끄럽게 집안일로 방송 나오게 하고 뭐 하는 짓이냐고. 그리고 본명 싫어하는 거 모르냐면서 풀어 주셨거든.”

“아…….”

인터뷰할 때 ‘청담동 사는 김옥녀 여사님’이라는 말을 했었다.

이런 그림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먹히긴 먹힌 거네.

“풉.”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웃었다.

“역시 큰누님답다. 하하.”

어머니도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마음 빨리 푸셨네요.”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걱정하지 마라.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완전히 풀린 거니까. 원래 누님은 낯간지러운 말 안 하셔. 상여자 스타일이라고 할까.”

상여자? 그런 말도 있나?

그리고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덕군이 한몫했네.”

정동희는 날 향해 빙그레 웃었다.

큰 고모 얘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그리고 이제……

어차피 꺼내야 할 얘기니까.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넌지시 물었다.

“훈련소 언제 가는 거야?”

* * *

이 물음에 정동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옆에 있던 송사무엘이 대신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야.”

“월요일?!”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월요일이면…… 겨우 3일 뒤인데?!

난 당황하여 소리쳤다.

“뭐야?! 갑자기? 동희 형! 왜 말 안 해 줬어?!”

정동희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하게 덕군한테는 입이 잘 안 떨어지더라. 몇 번 얘기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 중요한 일이 많았잖아? 전국민노래자랑에 보뉘하뉘 오디션도 보고, 그리고 지금은 방송에 적응하느라 정신없고.”

“…….”

“미리 얘기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지장 생길까 봐 미룬다는 게 어쩌다 보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3일 전에…….

황망했다. 황망하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거겠지.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정동희는 친척 형, 아니, 그 이상이었다. 전국민노래자랑 이후부터 분신처럼 같이 다녔고, 모든 일을 상의하며 함께 일을 해 나가고 있었다.

“형, 난 어떡하라고?”

“…….”

정동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중국집에 정적이 흘렀다.

나와 정동희의 관계를 알기에 부모님과 송사무엘도 아무 말 않고 잠자코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 정동희는 어렵게 입을 열어 내 물음에 답했다.

“잘 지내야지. 지금처럼 잘 지내야지.”

“와~ 말 되게 쉽게 하네? 3일 전에 통보하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고.

옆에서 두고 보던 송사무엘이 말했다.

“덕군아~ 동희도 나름 고충이 많았어. 2011년 2월 말부터 입영기간이 21개월로 단축된다고 해서 3월 입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나마 최대한 짧게 가려고. 그리고 군에 있는 동안 음악 작업 하려고, 나랑 동반입대 하는 것도 있어.”

“…….”

“동희는 입대부터 복무 기간조차도 너와의 계획을 그리면서…….”

“그만해.”

그런 얘기는 나중에 들어도 된다. 지금 급한 건…….

난 부모님께 말했다.

“저 동희 형이랑 사무엘 형 입소하는 거 보고 오고 싶어요.”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정동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학교는? 그리고 방송은 어떡하려고? 보뉘하뉘 생방송이잖아, 평일에 입소하는데.”

학교는 결석하면 되고, 방송은 피디와 상의를 해 봐야 한다.

방송이 좀 걸리긴 하는데……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몰라, 어쨌든, 형. 입소하는 날 난 같이 갈 거야. 혼자 가면 죽음이야.”

난 정동희에게 주먹을 보이며 말했다.

* * *

학교에는 중국집에서 바로 조치를 취했다.

학교에 연락해서 월요일 결석을 얘기했는데, 내가 보뉘인 걸 알고 있어서일까.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넘어가 주었다.

중학교 첫 수업 일에 빠지게 되었지만, 어찌 됐든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이제 방송국에 얘기할 차례인데.

금요일 오후. 녹화 전 대기시간.

조승헌 FD를 찾아갔다.

똑똑.

덜컹. 편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조승헌은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 덕군. 어서 와, 웬일이야?”

마침 옆에 탁 피디도 함께 있었다.

“피디님, 안녕하세요~”

“여어~ 보뉘 보뉘 보~ 어서 와~”

조승헌은 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어. 왜? 뭐 할 말 있어?”

“아…… 네.”

난 조승헌과 탁 피디에게 월요일 방송을 빠질 수 있는지 문의했다.

“으잉?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안 돼~ 그건 곤란해. 생방송인데 빠진다는 게 말이 되나?”

조승헌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고.

난 미안하긴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될 일이 아니야. 너,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니?!”

조승헌의 얼굴이 벌게졌고, 탁 피디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

탁 피디가 흥분한 조승헌을 뒤로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개인 사정이겠지만, 혹시 대안이 있을지도 모르니 물어보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

이걸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려운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니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와 항상 함께 다니는 동희 형 있죠?”

“어, 그래.”

탁 피디는 정동희를 잘 알고 있다. 오디션이 끝난 뒤에 일 잘하는 것 같다며 따로 인사한 적도 있다.

“이번 월요일에 입대합니다.”

“아…….”

이 말에 탁 피디와 조승헌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딴 거면 모르겠는데.”

“군대라면…….”

‘입대’라는 말에 두 사람의 표정과 말투가 급격히 약해졌다.

탁 피디가 물었다.

“승헌이 너, 현역이야?”

“당연하죠. 피디님은요?”

“나도 현역이야. 일빵빵.”

“엇, 저둔데.”

두 사람은 갑자기 군대 얘기를 하려 했고. 그 흐름으로 가면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다.

시작조차 하지 못하도록 난 말을 끊었다.

“저에게는 친형보다 더 소중한 형입니다. 어떻게든 안 될까요?”

이 물음에 두 사람은 다시 심각해졌다. 하지만, 좀 전과는 다른 종류의 심각함이었다.

조승헌이 말했다.

“수민이가 혼자서 진행하느냐, 아니면 녹화 방송을 하느냐. 둘 중 하나인데…….”

“흠…….”

탁 피디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덕군이 보뉘로 활동한 지 몇 개월 안 됐잖아? 이제 대중들에게 익숙해져 가고 있는데 빠진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여.”

“그럼 녹화 방송으로요?”

탁 피디는 스케줄 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게 물었다.

“덕군! 넌 월요일 아니면 시간 맞출 수 있지? 아니, 당연히 맞춰야지?”

“네! 물론입니다!”

탁 피디는 조승헌과 한참을 쏙닥이다가 결정했다.

“그래, 출연자들 다시 모으는 것보다는…….”

“네, 이게 나을 것 같습니다.”

탁 피디가 내게 말했다.

“오늘 생방 이후에, 바로 녹화 하나 더 뜰 거니까. 좀 늦게 가도 되지?”

“네! 감사합니다!”

난 큰 소리로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탁 피디는 됐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웬만하면 무시하려 했는데…… 입대 배웅 가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약간 묵직한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너 하나로 인해 다른 출연진들과 스태프들은 스케줄 꼬이는 거거든?”

“……네.”

그는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렇다고 고개 숙이진 말고. 넌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잖아. 오늘 일 기억하고, 나중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이 생겼을 때 갚으면 돼.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해 주고.”

난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적어도 21개월 동안 절대로 이런 일 없습니다! 약속할게요!”

정동희가 군에 있는 동안은 이런 일 없을 것이다.

“요즘 군 복무 기간이 21개월이니?”

“하핫, 네.”

난 신나서 대답했고, 탁 피디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동희한테는 군대 잘 갔다 오라고 말해 줘. 짜식이, 오늘 같은 날에는 와서 인사를 돌아야지.”

방송이 매일 있는 데다가 내가 보뉘하뉘에 꽤 익숙해져서 요즘 정동희는 항상 오진 않는다.

입대 날짜도 얼마 안 남았기에 아마 할 일도 많을 거고.

근데 귀가 간지러웠던 걸까?

정동희는 녹화 끝날 때쯤 방송국에 와서 촬영장을 돌며 인사했다.

나이 서른에 군대 가는 까까머리.

남자 스태프들은 그런 정동희를 측은하게 보며 격려해 주었다.

* * *

월요일 아침, 고속버스터미널.

정동희와 송사무엘을 만났다.

큰 고모부는 해외 출장 중이시고, 큰 고모는 당연히 논산까지 함께 가실 줄 알았는데.

집에서 인사하는 거로 대신했단다.

“우리 엄마 원래 그래. 약한 모습 보이는 거 싫어하셔서. 아마 지금 집에서 혼자 울고 계실 거야.”

“아…….”

하긴 늦은 나이에 군대 가는 아들 보기가 쉽지 않으셨겠지.

정동희는 25살에 이태리에 유학 갔다가 4년이 지나 29살에 한국에 불시 귀국했다.

큰 고모는 정동희를 유학 보낼 때, 입대시키지 않으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애매한 나이에 제 발로 입국한 아들을 보기가 더 속상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큰 고모는 재력과 인맥을 동원하여 면제나 보충역으로 돌려보려 했는데, 정동희가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겉보기엔 한없이 부드러운 형인데, 이런 거 보면 은근히 고집 있다.

정동희가 날 다정하게 불렀다.

“덕군아.”

“응?”

“갈 때는 함께지만 올 때는 혼자 와야 하는데 괜찮겠어?”

해외 유학을 오래 해서일까. 아니면 늦은 나이에 군에 가서일까.

두 사람을 배웅 나온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괜찮아, 형. 내 걱정은 하지 마.”

난 정동희를 따라서,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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