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정든 곳을 떠나(1)
3주 전.
“다녀왔습니다~”
밤 9시가 다 되어 갈 무렵.
덕군은 여느 때처럼 보뉘하뉘 녹화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보뉘하뉘 오디션 때문에 정신없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보뉘가 된 지 두 달이 넘었다.
보뉘라는 명칭이 생소했던 것도 거의 사라지고, 가족들 또한 덕군이 보뉘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두 달 사이의 변화는 익숙함뿐만이 아니었다.
탁.
김 부장은 덕군이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후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들 요즘 괜찮은 거야? 얼굴이 많이 상했는데?”
김 부장은 덕군과 마주칠 일이 잘 없었다.
아침엔 출근하느라 바쁘고, 그나마 얼굴 보는 시간이 저녁이었는데.
보뉘가 된 이후, 밤 9시에 늦게 도착해서 곧바로 씻고 자느라 얼굴 한번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워낙 내색을 안 하는 아이라……. 힘들어 보이긴 하는데.”
“흠……. 밥은 잘 먹어?”
“지쳐서 그런지 밥도 잘 안 먹어요. 한창 많이 먹고 커야 할 나인데.”
“보약이라도 해 줄까?”
김 부장은 덕군이 걱정스러웠다.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인데 더 살이 빠졌고.
얼굴빛도 좋지 않았다.
핏기가 없어 보일 정도로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에휴, 보약 한다고 되겠어요? 여기서 그 먼 거리를 매일 다니는데.”
“…….”
“여기서 도곡동이 장난이에요? 어른도 쉽지 않은 거리라고요. 당연히 힘들겠죠. 근데 뭐 방법이 없으니…….”
김 부장은 어머니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게 문제란 말이지?”
“최근 달라진 게 그거 말고 없잖아요. 집 가까우면 저녁도 집에 와서 먹어도 될 텐데. 지금은 밖에서 사 먹거나, 굶거나. 둘 중 하나잖아요.”
김 부장의 물음에 답하다 보니 어머니도 걱정스러워졌는지, 김 부장 가까이 다가와 앉아 물었다.
“언제까지 보뉘 하는 거래요? 계속 이런 식으로 해서 몸이 남아나겠어요?”
“글쎄…… 못 해도 1년 이상은 할 것 같은데.”
김 부장 또한 집인 월계수동에서 회사가 있는 강남까지 제법 먼 거리를 출퇴근한다.
당연히 피곤하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하지만 덕군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체감하는 피로감은 당연히 어른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매일 택시를 태워서 보낼까?”
“…….”
어머니는 이 말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덕군이 걱정되지만,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기에.
없는 살림에 매일 도곡동까지 왕복 택시비를 부담할 여유는 없었다.
“…….”
두 사람은 생각에 잠겨서 얼굴이 심각해졌고.
김 부장은 이리저리 궁리하며 계산하고 따져 보았다.
“아들 중학교도 그 근처잖아.”
“그렇죠. 개포동에 있다고 했으니까.”
“지아도 이번에 고등학교는 일반고 가기로 한 거지?”
“네,”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지아는 고등학교 거기서 다니면 되니까. 학군도 더 좋잖아?’
김 부장의 장녀 지아는 원래 외고를 준비했었고, 합격도 한 상태였다. 자율 학습을 하는 게 더 좋다며, 갑자기 일반고 진학으로 마음을 바꿨는데.
그 타이밍이 덕군이 보뉘가 되었을 때였다. 정말 딸이 본인 자신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 김 부장으로서는 마음이 못내 불편했지만.
어쨌든 딸의 결정을 받아들였었다.
김 부장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여보, 내일부터 재원예중 근처에 집 좀 알아봐.”
어머니는 놀라서 김 부장을 바라봤다.
“이사 가려고요?”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일 것 같아.”
어머니는 당황스러웠다.
조금만 더 지내면 월계수동에 산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결혼 후 단칸방 세간살이 하다가, 어렵게 내 집 마련하여 온 곳.
지아와 덕군이 자라난 곳이며, 덕군은 월계수동에서 태어나기까지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은 이웃이라기보다는 사촌에 가깝다.
가족의 터전이자, 고향과 같은 월계수동.
이곳을 벗어나 산다는 건 상상도 안 해 본 것이다.
“아…… 그래도.”
어머니는 김 부장이 왜 그런 뜻을 밝혔는지 알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덕군을 생각한다면, 이사 가는 게 맞긴 하지만.
“근데…… 그 동네 좀 비싸지 않아요?”
“비싸겠지.”
김 부장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이 집을 팔고, 전세나 월세로 들어가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
어머니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래도 돈이 부족하면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까.”
일곱 식구가 살아야 할 집.
최소한 방 세 개에 평수도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비슷한 크기의 집을 개포동에서 구한다는 건…… 전세나 월세로 가도 쉽지 않을 것이다.
김 부장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수고스럽겠지만 당신이 발품 좀 팔아 봐. 미안해, 돈 많이 벌어 놨으면 이런 수고 안 해도 되는데.”
“그런 소리 말아요, 당신이 고생한 건 누구보다 잘 아니까.”
어머니는 김 부장의 어깨에 기대어,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일부터 알아볼 테니까. 당신은 아무 염려 말고 일하세요.”
“고마워.”
김 부장은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잘난 아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은 잡지 말아야지.”
* * *
가족회의.
우리 가족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모여서 회의를 한다.
사실 회의라기보다는 김 부장이 가족들 모아 놓고 통보하는 식에 가깝다.
아무래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셔서 이런 걸 하는 것 같다.
김 부장이 우리 집 가장이기에 일일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허락받을 이유는 없지만.
보고 및 통보 겸하여 회의식으로 하는 것이다.
“이사를 갔으면 합니다.”
가족회의를 하자마자, 김 부장답게 본론부터 던졌고.
충격에 휩싸인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해가 바뀌어서 올해 나이 39세.
여태까지 장가도 안 가고 붙어살고 있는 막냇삼촌이 말했다.
“혀, 형, 좀 당혹스러운데? 그러니까…… 이사 가는 건 결정되었다는 거지?”
“그래.”
“왜? 갑자기?”
“…….”
나 또한 궁금했지만, 김 부장은 이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따로 설명해 줄게.”
“따로? 지금 설명해 주면 안 되는 거야?”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 막냇삼촌을 제지시켰다.
“됐다. 요 녀석아, 눈치 좀 챙겨라. 딱 보면 모르겠냐?”
할아버지는 그러곤 날 한번 힐끔 보았고, 김 부장은 애써 내 쪽을 보지 않았다.
혹시…….
나 때문에?!
“아~ 뭔지 알겠다. 그래서 그렇구나? 그럼 뭐……”
막냇삼촌은 할아버지의 말에서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 이사 어디로 가는데? 아마 강남이겠네?”
김 부장이 대답했다.
“그래, 개포동으로 가기로 했어. 정확하게는 개포4동.”
“아~ 집도 구한 거야?”
“그래. 그러니까 가족들 모은 거지.”
“개포동이라…….”
‘개포동’
동네 이름 자체도 생소하다.
할아버지는 이북에 사시다가 전란 때 내려와 양주시에 정착하셨다.
전 가족이 거기서 계속 살다가, 김 부장이 취직하고 결혼한 이후에 서울 북부로 이사 왔다.
한강 아래 개포동.
강북과 친숙한 우리 가족으로서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뭐, 누나네 집이랑도 가깝고 좋네. 그치, 아빠?”
이사 갈 지역이 ‘강남’이라는 말에 막냇삼촌의 표정이 밝아졌다.
회사도 강남에 있고, 친구 만나러 강남 간다는 말을 종종 들었었다.
“흠…… 좋다는 말은 못 하겠구나. 하지만 가야지. 필요한 일 아니냐? 애비가 결정한 일이니 따라야지.”
할머니는 아무런 말 없이 한숨만 쉬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에게도 월계수동은 워낙 오래 살았기에 고향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빠, 집 계약까지 다 한 거야?”
난 김 부장에게 물었다.
“그래.”
“월세야, 전세야?”
당연히 매매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까지는 네가 알 필요 없다.”
“…….”
“이사는 언제?”
“2주 후에.”
난 놀라서 물었다.
“그렇게 빨리?!”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놀랐다.
20년을 살아온 동네인데, 2주 만에 작별 인사를 하기가…….
“너 개학하기 전에 이사해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김 부장은 지아 누나를 바라봤다.
“지아야, 너는 내일 아빠랑 같이 학교에 가자. 고등학교 전학 수속 밟게.”
“아니야, 뭘. 내가 그냥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되는데.”
“이사 갈 집 가까운 곳에 어남고등학교라고 있더라. 결원 있는 거 확인했으니까, 그쪽으로 다니면 될 거 같아.”
“알았어~ 아빠 회사 일 바쁘잖아. 나 혼자 해도 돼.”
김 부장은 애틋한 눈빛으로 지아 누나를 바라봤다.
“아빠가 미안해서 그래. 이미 연차 냈어. 아빠가 해 줄게.”
“뭐가 미안하다고.”
나도 지아 누나한테 미안했다. 어쩐지 나 때문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거 같아서.
하지만 지아 누나는 씩씩하게 말했다.
“거기 8학군이잖아~ 잘됐지, 뭐. 일부로라도 전학 가는 곳인데. 난 괜찮으니까 아빠도 신경 쓰지 마.”
난 미안한 얼굴로 지아 누나를 바라보았다. 차마 미안하단 말은 못 하겠다.
누나는 내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지, 차갑게 말했다.
“뭘 봐, 인마. 시선 돌려.”
일요일 오후.
가족회의는 간략하게 끝났다.
김 부장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카시아 산장 가서 갈비 뜯겠습니다. 앞으로는 가기 어려울 테니까요.”
반가운 말이지만 가족들은 씁쓸히 웃었다.
이사를 가고 나면 아카시아 산장에 올 일도 없다.
장소는 추억을 공유한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좋은 일 있을 때면 아카시아 산장이 떠오르겠지.
* * *
이사 날. 개포동.
김 부장과, 어머니, 막냇삼촌은 먼저 가서 이삿짐 들어가는 걸 보았고.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와 함께 오후에 대중교통으로 도착했다.
“와…….”
이사할 집을 처음 본 순간 우리 네 사람은 절로 탄성이 나왔다.
기쁨의 함성이 아니라.
놀라움, 당혹, 실망에 가까운 탄성이었는데.
빽빽한 빌라촌.
앞집과 옆집 사이에 공간이 거의 없는, 아주 촘촘한 빌라 사이에 우리 집이 위치해 있었고.
우리의 새로운 집은 빌라도 아닌 지하, 1층, 2층, 옥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다가구 주택이었다.
놀라움은 잠시 뒤로하고, 난 김 부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우리 집 몇 층이야? 설마 지하는 아니겠지.”
“1층.”
휴우,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집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꽉 막혀서 절로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건물도 아주 오래되어 보였는데, 등기부 등본 떼어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적어도 80년대 중반에 지어진 집이 아닐까 싶었다.
월계수동 집도 오래된 빌라였으나, 적어도 건물 현관도 있고, 앞이 트여 있는 집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내부 구조나 평수는 월계수동 집과 비슷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지만
가족 중 누구도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애비야~ 집이 아주 넓고 좋구나~”
그나마 할아버지가 좋은 말씀을 해 주시긴 했지만, 말만 그럴 뿐 얼굴 표정은 좋지 않았다.
“네, 아버지. 여기 큰길 건너가면 구룡산이라고 있거든요. 앞으로 거기서 산책하시면 돼요.”
“허허. 그래. 오면서 봤다. 길이 진짜 크더구나.”
많이 크지. 양재대로 8차선 도로니까.
어찌 됐든, 살다 보면 적응되겠지.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
이 이사가 누굴 위해서인지.
정든 곳을 떠난 아쉬움에 집 환경 또한 썩 좋지가 않으니.
나 하나 때문에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더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중간 방에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는 건 어차피 꽉 막힌 옆 건물의 외관이다.
“덕군아.”
“응?”
뒤에서 김 부장이 불렀다.
“이거 널 위해서가 아니다. 날 위해서다.”
난 김 부장을 바라봤다.
“부담 갖지 말라고. 내가 원해서 이사한 거니까.”
“…….”
내가 부담 갖는 것조차도 신경 쓰이는 걸까?
고맙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사실, 아주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제는 그의 진심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도 그를 김 부장이 아닌 ‘아빠’라고 부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