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첫 방송 1794회
비비빅 비비빔 비비빅 비비빔
허트비트의 마지막 전주 부분.
나와 하뉘는 하트맨과 함께 신나게 좀비춤을 추고 있었다.
허!비트 패스터! 패패스터!
허!비트 패스터! 패패스터!
노래가 끝난 후.
[쿵쿵! 쿵쿵!]
심장박동 소리가 울리고.
하트맨은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오른손을 앞으로 펼치고,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트맨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단언하건대.
지금까지 모니터링하면서 본 살리도 댄스 중 최고의 좀비춤이었다.
짝짝짝!
일부 스태프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도 들렸다.
“치, 친구들! 헉헉! 고마워!”
다만 부작용이 있다면, 춤에 너무 힘을 쏟아서 대사를 못 한다는 거였다.
이래서 강약 조절이 필요한 건데. 경험이 부족한 탓이다. 차차 좋아지겠지.
하뉘가 하트맨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처음 보는 사람인데?”
헉! 헉!
하트맨은 대사를 해야 하는데, 숨이 턱까지 올라와서 말을 못 한다.
생방송이다. 정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뉘, 이 사람은 하트맨이야.”
하트맨 대신에 내가 훅 치고 들어갔고.
하뉘는 당황하는 눈빛을 보였다가, 금세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보뉘가 어떻게 알아? 아는 친구야?”
자연스럽다. 역시 짬은 무시 못 한다.
“아~ 어제 옆 컨테이너로 이사 왔어. 인사하려 했지만 모습이 좀…… 선뜻 다가가기 어려워서 못 했었거든.”
헉. 헉.
하트맨은 아직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근데 이름은 어떻게 알았대?”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는 거 들었어. 하트맨이라고 부르더라고? 그리고 옷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잖아.”
후. 후.
그는 이제 조금씩 숨이 잦아들고 있었다.
하뉘는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새로운 친구를 살려서 정말 다행이야!”
“맞아! 친구들의 신중한 선택으로 하트맨을 살리게 되었어. 첫 출연이 마지막 출연이 될 뻔했는데. 하하.”
애드리브를 해 본 거였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후~!
하트맨은 숨을 몰아쉬고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하트맨은 진심으로 내게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별말씀을! 친구들에게 인사해.”
하트맨은 카메라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 말했다.
“친구들 안녕~ 지구를 사랑하고, 부모님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리슨 투 마이 하트! 하트맨이야! 반가워, 잘 부탁해!”
리허설을 할 때 대사가 너무 오글거려서 물어봤는데, 작가가 말하길 초등학생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글거려도 견뎌 내야지. 고객 중심.
“으악~! 좀비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 대사를 이어 갔고.
‘살리도 : 아포칼립스’와 함께 보뉘하뉘는 무사히 끝나가고 있었다.
* * *
“친구들 안녕~ 내일 만나~”
“안녕! 안녕! 내일은 더 재밌게 놀자~!”
‘생방송 톡톡 보뉘하뉘.’
1794회. 나의 첫 고정 출연 방송. 드디어 끝났다.
후~
카메라 불이 꺼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덕군, 수고했어.”
하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 누나도.”
하뉘는 싱긋 웃었다.
“잘하던데?”
방송 시작할 때와는 나에 대한 태도가 약간 달라진 것 같다.
“너, 진짜 방송 처음 맞니? 센스가 좋던데?”
“센스라기보다는 그냥 욕먹는 거 싫어해서.”
“뭐?”
말 끊겼을 때 이어 가는 말 하고.
상대방이 당황해할 때, 웃음으로 넘긴다.
회사 생활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정도 센스는 기본이다.
전생에 회사에서 생존하면서 몸에 배었던 잔머리의 감각들이 방송을 하면서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응~ 그냥 그렇다고.”
그보다 난 하뉘에게 많이 놀랐다. 16살밖에 안 먹은 애가 안정감도 있고 노련했다. 아마 나처럼 2회차는 아닐 텐데.
“덕군아~!”
송이수가 MC석으로 다가왔다.
“어~ 형, 수고했어.”
“이야~ 진짜 고맙다. 아까 너 아니었으면 숨넘어갈 뻔했어. 와~ 진짜. 생방송이고~ 숨 돌릴 시간은 없고~ 대사는 해야 하는데 숨이 차서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는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하, 그런 거 같더라.”
“덕분에 살았어. 진짜 타이밍 좋았어. 수민 누나도 고마워~”
정수민은 그의 말에 살짝 눈을 찡긋했다.
난 얘기를 해 줄까 말까 하다가, 좀 주제넘더라도 말하는 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입을 열었다.
“형, 아마 느꼈겠지만.”
“어.”
“보뉘하뉘에서는 춤을 많이 추거든? 오늘만 해도 굉장히 많았잖아.”
송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춤을 열심히 추는 건 좋아. 숨 찬다고 해서 대충 출 수는 없는 거고.”
“그렇지.”
“팔다리 각도를 조금씩만 좁혀 봐. 몸의 무브를 엉덩이와 어깨로 보여 주란 말이야. 그러면 훨씬 덜 힘들어. 생동감은 그대로 있어 보이고.”
“아…… 오케이, 이렇게?”
송이수는 곧바로 받아들였고. 내 말에 따라서 몇 가지 동작을 보여 줬다.
“그렇지! 좀 더 몸을 튕겨, 팔다리 너무 휘젓지 말고.”
방송이 끝난 세트장에서 어쩌다 보니 짧게 댄스 레슨을 하게 되었다.
잠깐 연습해 보더니, 송이수는 활짝 웃으며 움직임을 멈췄다.
“맞네~! 훨씬 낫네. 덕군아~ 너, 춤에도 일가견이 있구나? 아까 허니허니 할 때도 춤 노래 둘 다 장난 아니더만. 다재다능하네~”
하뉘도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너, 소속사도 없고 경험도 없다며? 근데 춤은 뭐야?”
“방송 댄스 학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안 되는 건 거의 없다.
“그런 곳이 있어?”
난 웃으며 하뉘를 바라봤다.
“왜? 소개해 줘?”
* * *
편집실.
“흠…….”
탁 피디는 심각한 표정으로 프로그램 퀄리티, 시청자 반응, 시청률 등 송출된 이번 회차의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승헌아.”
조승헌 FD도 옆에서 탁 피디와 함께 모니터링 중이었다.
“오디션, 성공한 거 같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첫 방송임에도, 프로그램은 물 흐르듯 흘러갔고.
약간 낯설기는 했지만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생동감이 있었다.
시청률도 지난 회보다 소폭 상승했다.
특히 오늘 회차에서 시청률 최고 순간은 보뉘의 신고식이었다.
‘허니허니’
보뉘가 노래를 할 때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인 것이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 부분은 좀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조승헌은 그 부분을 짚었고.
탁 피디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앞으로 좀 테스트를 해 보고, 검증되면 보뉘 노래 실력을 활용할 수 있는 코너를 만들든지…… 아~ 좋다!”
탁 피디는 벌떡 일어서더니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활짝 웃었다.
“깜짝이야!”
조승헌은 놀란 눈으로 탁 피디를 바라봤고.
그러거나 말거나 탁 피디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활용할 데가 많아서 좋아~ 하하. 아~ 잘 뽑았어! 하하.”
조승헌은 탁 피디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덕군 부를까요? 첫 방이니까. 피드백 하실 거죠?”
탁 피디는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할 것도 없고, 걔는 그냥 알아서 하도록 두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그리고 지금 기다리는 사람도 있잖아?”
“아, 네.”
“우리 보뉘 힘들지 않게, 빨리 끝내도록 잘 말해 두라고.”
“알겠습니다.”
* * *
출연자 대기실.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뉘는 녹화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사라졌고.
하트맨은 분장 지우느라 시간이 좀 걸리고 있었다.
덜컥.
“여어~ 덕군!”
조승헌이 들어왔다.
“하하, 조 피디님~!”
덕군은 웃으며 그를 반겼고, 옆에 있던 정동희도 그를 향해 눈인사를 했다.
“덕군아~ 수고 많았어. 정말 잘했다. 이수도 수고 많았고~”
건너편에서 화장을 지우고 있던 하트맨 송이수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덕군은 앉은 자세에서 조승헌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또 뭐 있어요? 아니면 이제 집에 가면 되는 거예요?”
“아~ 그게.”
조승헌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래 안 한다고 하니까. 잠깐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
정동희가 나섰다.
“뭐예요? 얘기 없으셨잖아요?”
“미안, 미안. 갑자기 요청이 왔어. ‘보뉘를 찾아라’가 워낙 화제가 돼서, 첫 방 소감을 인터뷰하고 싶은가 봐.”
덕군은 가만히 있었지만, 정동희는 약간 흥분한 투로 대꾸했다.
“그럼 방송에도 나간다는 거잖아요? 이런 법이 어딨어요, 갑자기!”
정동희가 이렇게 강하게 반발할 줄은 예상 못 했었는지, 조승헌은 당황했다.
“이미 기다리고 있어. 이번 한 번만 부탁할게. 리포터가 또 보뉘 출신이기도 하고…… 모른 척하기가 좀 그랬어.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할 테니까.”
정동희는 그래도 계속 따졌고, 조승헌은 진땀을 흘렸다.
처음이기도 하고. 정동희는 물렁하게 보일까 봐 도리어 더 세게 나간 것이다.
덕군은 정동희에게 말했다.
“형~ 그만해, 다음부턴 안 그러신다잖아? 조 피디님 체면도 있고, 인터뷰하러 이미 와 계신다니깐.”
가볍게 생각했다가 된통 당한 조 피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동희는 덕군에게만 보이게 윙크를 하고는 조승헌에게 말했다.
“딱 10분이에요! 아직 초등학생이라 일찍 자야 한단 말이에요.”
덕군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 마지막에 그 말은 굳이…….’
“아, 알았어~ 고마워~”
잠시 후.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정장 차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에 카메라와 환한 조명이 따라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예계 중계’ 김태준입니다.”
덕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조승헌과 정동희는 카메라 밖으로 빠졌다.
김태준은 보뉘하뉘 오프닝 송을 장난스럽게 불렀고.
“보뉘 보뉘 하~ 오랫동안 이 시간을 기다려 와써~ 하하.”
“하하하!”
그 모습에 덕군은 큰소리로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7대 보뉘가 되셨다고요?”
“하하, 네.”
김태준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제가 초대 보뉘였던 거 아시나요?”
“그럼요~ 알죠. 사무엘 형이 말해 줬어요.”
“사무엘? 아~!”
김태준은 잠시 카메라를 끄라는 사인을 보낸 후 날 바라봤다.
“혹시 네가 말한 사무엘이 아이돌 준비했던 사무엘이니?”
“네, 맞아요~ 이번에 오디션 준비하는 데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아~ 너였구나? 이름이 다르길래 떨어진 줄 알았어~ 사무엘이 분명 덕후라고 했었는데?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거든.”
“얼마 전에 덕군으로 예명 지었어요.”
“그랬구나? 잘했네. 축하한다~ 내가 도움이 됐다니까 더 기분 좋네.”
“하하.”
“자, 그럼 다시 해 볼까?”
“네!”
김태준은 카메라에 사인을 보낸 후,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 렇군요! 알고 계셨군요! 하하. 아~ 저 때는 이런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너무 부러워요. JBS 연예계 중계에서 교육 방송에 인터뷰를 하러 올 줄이야.”
“하하하.”
덕군은 물개 박수를 쳤다.
“오디션 준비할 때 뭐가 제일 힘들었나요?”
“음…… 밝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요? 제가 사실 굉장히 남자다운 스타일이거든요.”
“아하~ 그래요? 외모만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쁘게 생겼는데~?”
“하하하!”
덕군은 물개 박수를 쳤다.
김태준은 그런 덕군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왜 웃을 때 손을 얼굴 앞에 모으고, 물개처럼 박수를 치는지.
별로 웃기지도 않는 얘기에도 그런 태도를 보였는데,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준은 카메라에 잠깐 멈춰 달라는 사인을 준 뒤, 덕군에게 가까이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버릇이니? 왜 자꾸 그렇게 박수를 치면서 웃는 거야?”
덕군은 김태준을 멀뚱히 바라보며 물었다.
“네? 방송 보니까 다들 이렇게 하던데요? 방송에선 원래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