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첫 대면
리포터는 없었다.
조승헌은 카메라 뒤에 서서 내게 질문을 건네었다.
“덕후 군~”
“네!”
“서프라이즈 맘에 들었나요?”
“하하.”
정신 차려야 한다.
내 앞에 카메라가 있다.
정확히 상황 파악은 안 됐지만, 어쨌든 방송에 내보낼 것이니 카메라가 있는 것이다.
나 곧바로 비즈니스 모드로 돌입했다.
“네~ 깜짝 놀랐어요~ 진짜 서프라즈네요? 하하, 이렇게 직접 나와서 반겨 주시고 축하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난 보뉘답게 말만 하지 않고 수신호도 열심히 보냈다.
“친구들이 많이 축하해 주던가요?”
유명세 치를 것을 알고 하는 질문이다.
난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네, 네, 너~ 무 많이 축하해 줘서요, 오늘 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답니다~ 하하.”
“아하~ 이런. 학교 앞에서 취재를 할 걸 그랬군요? 하하.”
카메라와 조명이 천천히 건물 안쪽을 향해 이동했고, 난 움직이며 인터뷰했다.
“보뉘가 된 기분이 어떤가요?”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짐하듯 물었다.
“저, 진짜 보뉘 된 거 맞죠?”
“하하, 그럼요~”
“사실 아직도 잘 안 믿겨요~ 너무 꿈같고 기분 좋습니다~ 친구들~ 고마워요~”
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인사했다.
“앞으로의 다짐 한번 들어 볼까요?”
“음~”
이번엔 약간 무게감 있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와 함께 보뉘에 지원했던 후보자들을 기억합니다. 두 분 모두 대단히 매력 있고, 유능한 분이었거든요. 그분들을 대신하여 보뉘가 된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그리고 저를 응원해 주시고 바라봐 주시는 팬들이 어떤 분들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팬들의 성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요.”
날 둘러싸고 있는 스태프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난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어떻게 보뉘가 되었는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초심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의 보뉘가 되겠습니다.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후, 난 꾸벅 90도 각도로 인사했고.
짝짝짝!
스태프들과 정동희는 그런 나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 주었다.
조승헌이 카메라 뒤에서 말했다.
“제가 보뉘하뉘에 발령받고 5년 차인데, 3명의 보뉘를 경험했거든요?”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지금까지 들어 본 보뉘의 다짐 중 가장 진지하네요. 이번 보뉘가 역대 최연소인데도 말이죠.”
나 또한 그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조승헌이 말했다.
“자~ 그럼 ‘보뉘~ 환영해!’ 서프라이즈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보뉘~ 친구들에게 인사해 주세요~”
난 양 손바닥을 활짝 펴고, 카메라를 향해 신나게 흔들며 말했다.
“친구들~ 곧 만나요~ 안녕~”
* * *
교육 방송 EBC 미팅룸.
덜컹.
조승헌의 안내에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웨이브 진 긴 머리에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붉은색 색안경을 쓰고 앉아 있었다.
체격도 다부지고, 마치 은퇴한 운동선수 같아 보였다.
“김덕후 군?”
내가 들어서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네. 김덕후라고 합니다.”
난 설명을 구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 처음이지? 난 ‘보뉘하뉘’ 메인 피디 탁강민이라고 해. 반가워.”
아, 이 사람이 보뉘하뉘 프로그램 대장이구나?
난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어~ 그래, 반가워. 거기 앉어.”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무례하거나 강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건강한 미소를 지으며 정동희를 바라봤다.
“그쪽은 뭐예요? 매니저신가?”
“아…….”
정동희는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친척 형입니다. 요즘 쉬고 있어서, 덕후 일을 좀 돕고 있습니다.”
“오~ 그래요? 보아하니 서포트를 잘하시는 거 같던데.”
“네?”
뭐야? 정동희도 관찰하고 있었나?
탁 피디는 정동희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웃더니,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아요, 보호자 역으로 오셨을 텐데 앉아서 얘기하죠.”
정동희가 앉자, 탁 피디는 웃으며 말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어려 보이는데.”
“82년생, 올해 29입니다.”
“아, 그래? 그럼 말 편하게 할게. 내가 한참 형이거든.”
“……네?”
탁 피디는 먼저 말을 놓고 허락을 구했다. 그래도 사람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가볍게 보이진 않았다.
“앞으로 자주 볼 텐데 편하게 하자고. 덕후 일은 언제부터 도운 거야?”
그는 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정동희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덕후 방송 첫 출연이 ‘아침마당놀이’였거든요. 덕후 8살 때고, 그때 처음 도왔으니까 5년 되었네요. 근데 쭉 도운 건 아니고요, 그때 한번 돕고 제가 유학을…….”
정동희의 설명을 탁 피디는 손을 들어 막았다.
“아, 나머지는 됐어. 그러니까 덕후와 연관이 깊은 친척 형이네? 친척 형제간에 이렇게 지내기 쉽지 않은데.”
“…….”
“지금 쉬고 있다고 했지? 원래는 무슨 일 했는데?”
“음악 했습니다.”
“오호~ 무슨 음악?”
“피아노요.”
오늘 주인공은 나 아닌가?
탁 피디는 계속 정동희에게만 질문했다.
근데 질문 내용은 가볍지만, 분위기는 가볍지 않았다.
탐색하는 느낌이랄까.
“오호…… 피아노라, 덕후 프로필 컨셉이랑 2차 오디션 준비 자기가 한 거지?”
정동희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제가 주도적으로 하긴 했지만 제 친구가 도와줬고요, 덕후도 함께 구상했습니다. 뭐…… 다 같이한 거죠.”
탁 피디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재능도 있고, 정직하네.”
“…….”
도대체 뭐 하자는 거지?
탁 피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학교는 졸업했겠지?”
“네.”
“어디 나왔어?”
학교까지 물어봐?
어딜 가도 자랑할 만한 학력이지만 정동희는 학교 이름 대는 걸 부끄러워한다. 으스대는 것 같다며.
정동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서울대학교 졸업했습니다.”
“엇? 뭐야, 후배네?”
탁 피디는 살며시 웃었다.
“지금 하는 일 없으면, 여기서 일해 볼 생각 없어?”
엇?! 갑자기 채용 제안을?!
멀뚱멀뚱.
정동희도 황당한 얼굴로 탁 피디를 바라보았고.
“물론 채용 절차를 거쳐서 합격해야 해. 특채에서는 추천으로 지원자를 받거든.”
정동희는 탁 피디를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안은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회사 생활은 생각도 안 해 봤고요, 아직 자격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격이 왜 안 돼?”
“미필이거든요.”
“아…… 아직 안 갔다 왔구나?”
* * *
정동희, 미필.
그 생각은 아예 못 하고 있었다.
난 놀라서 정동희를 바라봤다.
‘맞아, 형 군대 아직 안 갔다 왔지?’
“신검은 이상 없는데, 안 간 거야?”
“네, 1급이에요. 어쩌다 보니 아직 못 갔습니다. 일부러 안 간 건 아니고요.”
“그래, 갈 생각은 있고?”
정동희는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생각이 필요합니까? 당연히 가야 하는 거잖아요? 의무니까요.”
탁 피디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정동희를 보다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 빨리 갔다 와야겠네. 쩝.”
똑. 똑.
조승헌이 커피를 내왔고.
내 앞에는 탄산음료가 놓였다.
후르릅.
탁 피디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덕후가 재능이 출중하지만, 난 두 사람이 팀을 이뤘기에 더 잘 해냈다고 보거든? 우리가 미션이 많았잖아.”
많았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털 빠지는 줄 알았다.
지금도 난 탈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샴푸 후 자연풍으로 말리는데.
“지켜보니까 동희가 프로듀싱 능력이 있더라. 난 이 일만 10년 넘게 한 사람이라 딱 보면 알거든? 매력적인 사람이 잘 드러나도록 세워 주는 것도 능력이야. 그거, 아무나 못 해.”
탁 피디는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의 승리야. 진심으로 축하해.”
그는 내 어깨를 툭 밀치며 말했다.
“새로운 보뉘,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 형한테 맛있는 거 쏘는 거 잊지 말고.”
“하하, 물론이죠.”
정동희를 인정하고 알아봐 주는 탁 피디. 그래서 그의 첫인상이 참 좋았다.
“방송 스케줄 등 세부 사항은 나중에 승헌이랑 확인하고, 지금은 나랑 계약서만 쓸 거야.”
정동희가 물었다.
“출연 계약서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지.”
“내규가 있습니까?”
탁 피디는 정동희를 향해 웃었다.
“잘 아네? 우리는 공영방송이라 출연료 내규가 있어. 경력, 나이, 인지도에 따라서.”
“…….”
탁 피디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말했다.
“회당 출연료는 20만 원이야. 미리 얘기할게, 협의는 어려워.”
나와 정동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제 우리 둘은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한다.
‘형! 괜찮은데?!’
‘덕후야, 축하한다!’
주 5회 출연. 한 달에 20회 출연한다고 가정하면…… 월 400만 원이다.
이 정도면 김 부장 월급이랑 큰 차이 안 날 듯?
정동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알다시피 주 5회 출연이야. 프로그램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시간 투자할 생각을 해야 해. 생방송이기에 준비를 좀 꼼꼼히 해야 하거든.”
“네.”
“계약 기간은 1년이고.”
“알겠습니다.”
난 씩씩하게 대답했고.
탁 피디는 날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덕후는 잘할 거야. 2차 오디션 때 보니까 당장 투입해도 될 거 같더만 뭐.”
그외 보험, 내규 등 기본적인 계약사항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사인했다.
탁 피디가 물었다.
“EBC 출입증은 두 개만 준비하면 되지?”
“네? 출입증이요?”
탁 피디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럼 올 때마다 우리가 문 열어 줘야 해? 당연히 출입증 있어야지.”
와, 방송국 출입증이라니!
새삼 실감이 났다.
정동희나 나와 비슷한 생각인 듯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네, 두 개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 승헌이한테 사진 보내 줘. 아, 아니다. 귀찮게. 그냥 승헌이가 찍어 줘. 그래도 되지?”
조승헌은 탁 피디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제가 찍겠습니다.”
“오케이!”
탁 피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7대 보뉘가 된 걸 축하한다. 잘 부탁해.”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탁 피디는 나와 악수한 후, 정동희에게도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하고, 동희는 조만간 따로 한번 보자.”
“네, 알겠습니다.”
탁 피디는 손을 흔들고는 쿨하게 먼저 미팅 룸을 나갔다.
* * *
탁 피디가 나간 뒤, 조승헌이 말했다.
“우선 사진부터 찍죠.”
우리는 벽을 뒷배경으로 해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조승헌은 카메라 액정 디스플레이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야~ 연예인이 다르긴 달라. 덕후는 대충 찍어도 엄청 멋지게 나온다.”
“하핫, 고마워요.”
교육 방송에 들어온 직후부터 모든 사람들이 띄워 준다.
안 좋은 얘기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기 살리려고 이러는 거겠지?
“아, 그러고 보니.”
조승헌은 중요한 게 떠오른 듯 표정이 심각해졌다.
“덕후 군이 보뉘가 된 이후 시청자들 호평 일색인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
나와 정동희는 궁금하여 조승헌을 바라봤다.
“믿기지가 않는다면서 자꾸 문의가 오거든? 심지어 이거 때문에 실망해서 멀어지는 시청자들도 있는데.”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지?
“이름 좀…… 어떻게 안 될까?”
아…….
조승헌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방송 나오는 사람 이름이 덕후가 뭐야? 덕후가.”
“…….”
“예명이라도 지어서 나오든가.”
우리는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표정이 샐쭉해졌다.
그때 정동희가 갑자기 훅 치고 들어갔는데.
“조 피디님.”
“왜?”
출연자들이 현장에서는 조연출에게도 ‘피디’라고 호칭하기에, 우리 또한 조승헌을 ‘피디’라 불렀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저희도 고민 중이었거든요.”
나와 조승헌은 정동희를 바라보았다.
“첫 방은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