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31화 (131/250)

131화. 대국민 투표(2)

“이야……. 너 진짜 남의 일 말하듯 잘도 말한다.”

“…….”

“애가 어른스러운 거냐, 아니면 아직 어려서 세상일에 욕심이 없는 거냐?”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고, 난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꾸했다.

“글쎄? 둘 다겠지, 뭐.”

“하하!”

세 사람의 득표수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걸 바라보며 난 말했다.

“어쨌든 될 사람이 되는 거지. 내 할 건 다 끝난 거잖아.”

“…….”

“내 손을 떠난 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전전긍긍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안 그래 형?”

“그렇다, 짜샤.”

그는 내 머리를 헝클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여간 13살짜리가 말하는 거 하고는. 오늘도 많이 배웁니다~ 덕후 형님!”

“하하.”

‘나 진짜 형 맞어…….’

이 말은 마음속으로만 했다.

[다음 지원자 영상 보실까요?]

우리는 다시 TV에 집중했다.

하뉘는 아직도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쉽게 가시지 않는 신건의 향기.

하뉘는 팬인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팬인 것이다.

송이수를 소개할 차례인데, 하뉘는 정신이 살짝 나가 있었다.

“하뉘 씨? 다음 차례는 누군가요?”

보뉘가 다음 지원자 영상을 보자고 운을 띄었으면, 하뉘가 그다음 대사를 해야 한다.

멍하니 있자, 보뉘가 다시 말한 것이다.

결국, 보뉘가 하뉘의 소매를 잡고 흔들자 그제야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네에~ 다음 지원자는요, 송이수 군입니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정신?”

“호호. 티 많이 났나요? 친구들~ 미안해요~ 하뉘 이제부터 집중해서 잘해 볼게요.”

“아무래도 신건 군 무대 때문인 듯한데…….”

보뉘가 파고들려 하자, 하뉘는 큰 소리로 다음 진행을 하며 말을 더 못 하게 했다.

“깜찍보뉘 송이수 지원자의 90초 프로필 영상입니다! 다 함께~ 보시죠!”

픽!

영상이 바뀌고, 좀 전의 신건이 프로필 영상 찍은 것과 동일한 세트장이 나타났다.

회색 배경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 안에 얼굴이 새하얗고, 초승달 눈매로 웃는 소년이 서 있었다.

옷도 얼굴처럼 새하얀 남방을 입고 있는데, 수수하고 보기 좋았다.

송이수는 카메라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물었다.

“시작하면 되나여?”

‘요’와 ‘여’ 사이의 발음.

일부러 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말투 자체에 애교가 배어 있었다.

송이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메라를 응시했다. 뒤에서 사인을 준 것이다.

90. 89. 88…….

화면 오른쪽 아래에 숫자가 나타났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

송이수는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밝게 인사했다.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저는 송이수라고 해요. 최종 지원자로 선정되어 너무 기뻐요. 저는 상큼한 비타민 같은 보뉘가 되어 친구들을 항상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송이수는 주섬주섬 윗도리를 벗기 시작하는데.

그 안에 파란색 쫄쫄이 옷이 보였다.

바지까지 벗는데.

그의 몸 전체는 파란색으로 변했고, 가슴팍에 선명한 ‘번개 마크’가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붉은색 망토를 꺼내어 목에 둘렀다.

“번개~ 파워!”

송이수는 갑자기 번개맨이 되어 버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본인 스스로 꺄르르 웃으면서 번개 파워를 발사하는데.

너무나도 멋있진 않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다 함께 소리쳐 번개 파워!

다 함께 춤을 춰 번개 파워!

보뉘가 되기 위한 프로필 영상에 웬 번개맨이…….

오늘도 정의를 위해 소리쳐 봐~ 얏!

번개처럼 빠르게!

다다다다다다다

40. 39. 38…….

노래가 끝나갈 무렵. 송이수는 화면을 향해 소리쳤다.

“친구들! 다 함께 외쳐 볼까요?”

허공에서 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둥근 모양을 만들었다가, 카메라를 향해 뻗으며 소리쳤다.

“번개~ 충전!”

송이수는 웃으며 소리쳤다.

“활력~ 충전!”

“기쁨~ 충전!”

“매력~ 충전!”

워낙 해맑아서 그런지 유치하기보다는 재롱 잔치를 보는 것처럼 흐뭇해졌다.

“친구들~ 이번엔 꼭 다 함께 외쳐야 해요!”

10. 9. 8…….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무렵.

송이수는 단전에서부터 목소리를 끌어올려, 큰 소리로 외쳤다.

“보뉘는~ 이수!”

스튜디오를 꽉 차는 울림이었다.

진심이 느껴졌다.

5. 4. 3…….

“이상! 깜찍 보뉘 송이수였습니다~ 친구들~ 안뇽!”

양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펼쳐 V를 만들어 화면 앞에서 신나게 흔들었다.

픽.

그렇게 영상은 끝났다.

보뉘와 하뉘는 아직도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었다.

“뭐야, 벌써 끝났어?”

보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고. 하뉘도 고개를 저으며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와…… 송이수 군 묘한 매력이 있네요. 빠져들어서 봤어요.”

하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했다.

‘이상하다. 특별한 건 없었던 거 같은데…… 눈을 뗄 수가 없고 이상하게 기분 좋아지네?’

보뉘는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송이수 군이 보뉘가 되길 원한다면 ‘2번’이나 ‘송이수’. 혹은 ‘2번 송이수’로 문자 보내 주시면 됩니다.”

그러고는 하뉘에게 다가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하뉘! 송이수 군의 프로필 영상은 어떻게 보셨나요?”

* * *

EBC 편집실.

탁 피디와 조승헌은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탁 피디님, 저희가 방식을 잘못했나 봐요.”

“글쎄…… 아무래도 대국민 오디션은 처음이다 보니까…… 이건 정말 예상 못 했네.”

<득표 현황>

1번 섹시보뉘 신건 4,532표

2번 깜찍보뉘 송이수 3,421표

3번 진짜 보뉘 김덕후 2,221표

송이수 프로필까지 끝낸 35분여가 경과된 지금.

신건이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원래는 김덕후가 2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송이수의 프로필 방영 이후 2위와 3위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프로필 영상의 여파가 이렇게 클 줄은…….”

“그러니까요. 가장 먼저 프로필 보여 준 신건이 너무 유리한데요?”

프로필 영상 송출 이후 투표율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는데, 1번 지원자가 투표 받을 시간이 가장 길었다.

그 말은 마지막 3번 지원자 김덕후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말이다.

투표 차이도 그렇고, 지금 상황으로서는 결과는 불 보듯 뻔해 보였다.

조승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덕후가 제일 잘했는데.”

“휴우…….”

2차 오디션 이후 최종 후보자를 고를 때, 김덕후가 첫 번째로 선정되었었다.

탁 피디, 조승헌, 작가 모두 이견이 없었다. 아마 대국민 오디션이 아니었다면, 2차 오디션에서 바로 김덕후가 최종 보뉘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룰을 바꿀 수는 없기에 대국민 투표를 거치기는 하지만.

김덕후의 프로필 영상이 너무 좋았고, 그의 매력을 알기에, 최종에서 무난히 선발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순서도 맨 뒤로 배치를 한 건데…….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신건의 팬덤은 예상보다 훨씬 대단했고, 프로필 영상 순서의 영향력이 너무 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불공정한 경쟁이 되어 버렸다.

탁 피디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덕후가 잘됐으면 좋겠네.”

“저두요. 기적이 일어났으면…….”

두 남자는 이제 대놓고 덕후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청담역 김밥헤븐.

“…….”

정동희와 김덕후는 말이 없었다.

김밥은 먹다가 말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교육 방송에만 집중했다.

아주머니는 옆 테이블을 닦으며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공부하려면 집에 가서 할 것이지. 왜 영업하는 데서 교육 방송을 틀어놓고…….”

민망해 할 만도 하지만, 충격에 휩싸인 두 사람에게 그런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동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제 20분도 채 안 남았는데 어쩌냐.”

평소 초긍정주의자들인 두 사람. 그들도 이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김덕후는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절망적이다.”

여전히 더블스코어이며, 득표수 차이는 시간이 지나니 훨씬 더 커졌다.

휴우―

김덕후는 깊이 한숨을 내뱉었다.

패배감.

이번 생에는 처음 느껴 보는 감정. 그 패배감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침마당놀이에서도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패배감이 들지는 않았었다. 왜냐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고, 우승자보다도 더 주목을 받았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우승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뉘는 한 명이다.

김덕후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녹화라서 다행이다. 만약 프로필이 생방이었다면…… 못 했을 거 같아.”

토닥. 토닥.

정동희는 김덕후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일단 끝까지 보자.”

‘아직 끝이 아니야!’, ‘왜? 뒤집을 수도 있잖아!’, ‘할 수 있어!’

이런 말은 지금 상황에서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자는 말밖에는.

* * *

“와우~ 우리 친구들! 열심히 참여해 주고 있네요~”

하뉘의 말에 보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힘내 주세요! 아자!”

보뉘는 그러면서 잔망스럽게 메시지 버튼 누르는 시늉을 했다.

“보뉘~ 마지막 지원자는 누구죠?”

흠! 흠! 보뉘는 헛기침을 한 후, 손으로 마이크를 쥔 시늉을 하고 가볍게 노래를 불렀다.

“나는 나~ 는 꽃을 문 남자아~”

그리고 카메라에 눈썹을 찡긋하는데, 하뉘는 기겁을 했다.

“뭐야~ 느끼해~”

“하핫, 이 지원자가 하면 느끼하지 않습니다. 상큼합니다. 지원자가 얼마 전 전국민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 받을 때 부른 곡이거든요.”

“어머~ 아~ 나 누군지 알아요, 화제의 지원자!”

하뉘는 맞장구를 치며 말했고.

보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화제의 지원자죠!”

보뉘는 김덕후를 소개했다.

“트롯 가수를 꿈꾸는 꿈나무이지만, 못 하는 게 없는 다재다능한 뮤지션! 유일한 약점은 이름이라는…… 하하, 김덕후 군의 프로필 영상입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픽!

화면이 바뀌고.

네이비색 정장 바지에 연핑크 남방을 입고, 가운데 가르마를 한 예쁜 소년이 서 있다.

키는 아직 작지만 어깨는 다부지고.

외모와 헤어스타일 덕분에 가녀린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남성적인 기상이 있었다.

김덕후는 카메라 정중앙에 단정하게 서서 심호흡을 했고.

앞에서 사인을 보내자, 밝게 웃으며 카메라 앞으로 가까이 걸어가 한마디 던졌다.

“어딜 보뉘?”

김덕후는 카메라 앞에서 한국적인 랩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박삭!”

99. 98. 97…….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이 랩핑을 하는데,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속사포랩이었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랩을 쏟아 내어 시선을 집중시킨 뒤.

“어딜 보뉘?”

모두 짜인 대로였다.

김덕후는 90초 프로필 영상 리허설을 100번을 넘게 했다.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

그냥 쿡 찌르면 나오는 수준으로 연습했다.

어젯밤 소파에서 설 잠잘 때도.

‘워리워리 세브리깡.’

몽유병 환자처럼 중얼거렸었다.

“여기 보뉘?”

김덕후는 눈을 흘기며 카메라를 보았고.

카메라 감독은 본인도 모르게 카메라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제 보뉘, 나를 보뉘, 두고 보뉘, 멋져 보뉘, 정말 보뉘, 계속 보뉘…….”

87, 86, 85…….

“보뉘 보뉘, 자꾸 보뉘, 진짜 보뉘, 진짜 보뉘! 진짜 보뉘!”

이렇게 카메라를 향해 소리치며 정신없이 휘몰아친 후.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진짜 보뉘, 김덕후 인사드립니다~ 반가워요~ 친구들~”

83, 82, 81…….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웃는 김덕후.

득표수가 폭발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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