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30화 (130/250)

130화. 대국민 투표(1)

“신건 군?”

“네, 네?!”

조승헌의 부름에 신건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무리 아이돌이라도 긴장되나 보다.

“첫 순서는 신건 군입니다.”

“왜 제가 첫 번째입니까? 순서를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난 황당해서 신건을 바라봤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요청을……? 그것도 지원자들 다 있는 앞에서?

정 조르고 싶으면 우리 없는 데서 하든가.

조승헌은 대답 대신 신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신건 군, 내내 오디션 보면서 궁금한 게 있는데.”

“…….”

“진심으로 한 거예요?”

“네?”

신건은 분명히 조승헌의 질문 의도를 알아들었지만, 이해 못 하는 척 되물었다.

그 말에 조승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 오디션 진심이냐구. 정말 보뉘가 되고 싶은 거야?”

신건은 얼굴이 빨개졌다.

“무슨 소리세요?! 당연하죠! 제이스트림 바빠요, 스케줄 많아요.”

“모든 구성원이 다 바쁜 건 아니잖아? 요즘 유닛 활동에 집중하는 거 같던데.”

“…….”

신건은 뜨끔한 표정이었고, 곧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승헌은 그런 신건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신건 군이 어떤 의도로 보뉘를 지원했든, 내겐 중요치 않아. 다만 보뉘는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의 MC가 아니야.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보뉘 형처럼 되고 싶어 해. 즉 보뉘의 영향력은 아이들의 성장에도 미칠 수 있다고.”

“…….”

조승헌은 나와 송이수도 돌아보았다.

“두 친구도 마찬가지야. 이제 세 사람 중에 한 명은 보뉘가 될 텐데. 진중한 태도로 임해 주었으면 좋겠어. 당연히 재미가 가장 중요하지만…… 약간의 사명감도 가질 필요가 있어, 보뉘라면.”

신건이 순서 바꿔 달라는 말 한마디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아주 딱딱해졌다.

하지만 조승헌은 이내 씽긋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어 줬다.

“교육 방송이잖아. 아주 약간의 사명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나와 송이수는 큰 소리로 대답했고, 신건은 입이 나와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조승헌은 이어서 말했다.

“신건 군이 첫 번째고, 송이수 군이 두 번째, 김덕후 군이 마지막이야.”

난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잠을 못 자서 정신이 좀 몽롱한데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돕는 건가?

“이건 단순히 프로필 촬영 순서고, TV에 방송될 때는 순서가 바뀔 수 있어. 그러니까 불만 가질 필요 없어.”

이 말을 할 때는 신건을 보고 말했고, 신건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 방영 순서 기준은 뭔데요?”

신건의 볼멘소리에 조승헌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시청률을 고려한 제작진의 판단이지.”

시청률을 고려한 제작진의 판단?

흠…… 뭔가 의미심장한데?

조승헌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자. 한 명당 90초씩이니까, 빨리하고 끝내자. 프로필 영상은 다음 주 수요일 방영되고, 그때 대국민 투표가 진행될 거야.”

꿀꺽.

대국민 투표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긴장감이 확 올라왔다.

“신건 군! 가자!”

조승헌의 말에 신건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4일 뒤. 수요일. 저녁 6시.

‘보뉘를 찾아라!’ 대국민 투표일.

김덕후는 정동희를 만나러 왔다.

청담역 김밥헤븐.

정동희는 아주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리모컨을 들었다.

“잠깐 교육 방송 좀 볼게요~”

“뭘 본다고요?”

“제 동생이 초등학생이라서요. 교육이 중요한 시기잖아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동희는 아주머니뿐만이 아니라 다른 손님들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초등학생인 김덕후는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에이 씨, 왜 나를 팔어?”

EBC로 채널을 돌렸는데, 아직 광고 중이다.

“덕후야, 숙모한테 말씀드리고 온 거 맞지?”

“응, 최종 투표 방송이고, 함께 준비한 동희 형이랑 보고 싶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

[보뉘~ 하뉘~!]

상큼하고 애간장 타는 목소리.

김밥헤븐에 활력 비타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뉘 보뉘 보~]

[하뉘 하뉘 하~]

오프닝 송이 들리자, 정동희와 김덕후의 표정이 경직됐다.

“시작했네.”

휴우~

김덕후는 심호흡을 했다.

[하루 종일 이 시간을 기다려 와써~!]

정동희는 김덕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자,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자.”

“응.”

‘생방송 톡톡 보뉘하뉘’.

두 사람은 교육 방송에 집중했다.

하뉘가 웃으며 인사했다.

“친구들~ 안녕~ 하뉘예요~”

“안녕~ 보뉘 인사드려요!”

보뉘와 하뉘는 손을 팔랑거리며 인사했다.

“하뉘!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아요?”

“음~ 글쎄요? 아! 새로운 보뉘가 탄생하는 날?!”

보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라고요~ 제가 하뉘와 친구들과 헤어지는 날이라고요, 힝~”

보뉘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우는 시늉을 하자, 하뉘는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바로 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마지막까지 좋은 추억 만들어 보아요!”

그러면서 하뉘가 활짝 웃자, 보뉘는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새로운 보뉘가 생긴다니까 표정이 너무 밝은 거 아니에요? 나쁜~ 사람~”

“어머, 뭐라고요?”

“헤헤, 질투심에 나도 모르게 그만.”

현대판 장다리와 거꾸리.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두 사람은 합이 척척 맞았다.

말을 하는 건지 랩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대화에 틈이 없다.

그리고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손동작은 얼마나 현란한지…….

하뉘는 엘레베이터 안내 요원이 환생한 것 같았고.

보뉘는 백화점 앞의 주차 안내 알바 10년 차는 되어 보였다.

“자! 하뉘, ‘보뉘를 찾아라’ 대국민 투표를 친구들께 설명해 주실래요?”

하뉘는 싱긋 웃으며 화면을 가리켰다.

픽!

바로 후보자들 얼굴이 떴다.

슈퍼스타KO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속도의 진행!

뜸을 들이거나 광고 타임은 전혀 없었다.

“우선 최종 후보자입니다~”

1번 섹시보뉘 신건

2번 깜찍보뉘 송이수

3번 진짜보뉘 김덕후

촬영 순서는 방영 순서와 상관없다더니…….

신건은 지금쯤 조승헌한테 낚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다.

“와우~”

보뉘는 화면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닉네임 멋진데요? 섹쉬~ 깜찍~ 진쫘~”

일부러 보뉘는 느끼한 어투로 말했다.

“근데 이 중에 본명 쓰시는 분은 송이수 군밖에 없네요? 신건은 예명으로 알고 있고, 김덕후 군도…… 근데 예명치곤 좀 희한하네?”

“자, 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하뉘는 곁다리로 새려는 걸 틀어막고 투표 설명을 이어갔다.

“친구들~ 지난 시간에 보뉘 최종 후보자들의 1, 2차 오디션 영상 잘 보셨죠? 지금부터 새로운 보뉘가 되길 원하는 지원자에게 문자투표를 해 주세요! 각 후보자들의 최종 프로필 영상을 보여 드릴 겁니다.”

“아하~ 문자투표!”

“#234 누른 후, 지원자 번호 혹은 지원자 이름. 또는 번호와 지원자 이름을 함께 적은 문자만 인정! 그 외에는 모두 무효표로 처리됩니다!”

보뉘는 하뉘의 말에 덧붙여 설명을 해 주었다.

“친구들~ 제가 예시로 보여 줄게요~”

자료 그림이 나오며 설명이 끝나자, 하뉘가 말했다.

“자~ 친구들! 모두 준비됐죠? 다중투표는 가능! 중복 투표는 불가!투표는 지금부터 방송 끝날 때까지 진행됩니다!”

하뉘와 보뉘는 눈을 맞춘 후,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오! 사! 삼! 이! 일! 시작~! 친구들~ 투표해 주세요~”

보뉘는 한 손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럼 1번 참가자 프로필 영상부터 보겠습니다~ 섹시보뉘~ 신건!”

영상이 바뀌었다.

드라이한 회색 뒷배경.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속에 신건은 우둑하니 서 있었다.

90. 89. 88…….

화면 아래에 초시계가 나타나더니 숫자가 바뀌어 갔고.

신건은 고개를 확 들고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 입 주변을 슥 닦았다

너의 시크릿한 입술.

그건 나만의 트레져.

팟! 팟! 팟!

손과 다리를 휘적이며 제이스트림의 히트곡을 불렀다.

스마트한 너의 머리는.

나의 스피디한 아이즈 아래 놓여.

유아 마이 엔젤 베이베~

현란한 댄스.

팟! 팟! 팟!

58. 57. 56…….

시간은 점점 줄어 가고.

프로필 영상 속 신건의 춤은 깊어져 갔다.

내게 다가오지 마 돈 커밍.

아윌 고 투 유. 베이베.

허! 베이베!

손으로 배를 위아래로 문지르며, 야릇한 춤을 추고.

양손을 번갈아 가며, 입술을 여러 번 닦는다.

상당히 야릇하고, 섹시하고, 볼만했다.

……교육 방송에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유아 마이 엔젤~ 베이베~!

노래를 끝낸 신건은 숨을 몰아쉬었다.

30. 29. 28…….

30초도 안 남은 시점에서 드디어 노래 말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 잘 봤니?”

신건은 볼에 흐르는 땀을 굳이 닦지 않았다. 물 뿌리지 않아도 섹시해 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연출.

“아,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불만 있는 사람 풋쳐핸썹~ 예아~”

분명 오글거릴 만한 멘트와 행동이지만 이상하게도 봐 줄 만했다.

이것이 아이돌의 위엄인가?

“내가 보뉘가 되면, 여동생들에게는 사랑을 줄 거고, 남동생들은 진짜 남자로 만들어 줄 거야.”

5. 4. 3…….

공기 반 소리 반으로 너무 천천히 말을 하니, 시간은 거의 다 되었다.

3초를 남겨 두고, 킬링 멘트와 눈빛을 발사하며 마무리 지었다.

“꼬맹이들~ 또 보자~ 자주 보자~ 안녕~”

픽!

신호음과 함께 신건의 90초 프로필이 끝난 후, 1차 자기소개와 2차 오디션 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나왔다.

모든 영상이 끝난 뒤, 보뉘와 하뉘의 얼굴로 화면이 바뀌었다.

“와우~ 역시!”

하뉘는 아주 만족해했다.

누가 봐도 사심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하뉘? 좋아요?”

“네? 하하, 티 많이 났어요?”

“네, 얼굴에 써 있어요. ‘완전 좋아!’”

“꺄하하.”

보뉘는 하뉘를 향해 눈 흘기더니, 장난스럽게 웃고는 말했다.

“현재까지 득표율 확인할게요!”

1번 섹시보뉘 신건 2,344표

2번 깜찍보뉘 송이수 1021표

3번 진짜보뉘 김덕후 1152표

“와~ 역시 신건 군! 인기가 좋네요!”

하뉘의 말에 보뉘는 웃으며 말했다.

“방금 신건 군의 매력을 본 영향 때문이겠죠? 송이수 군과 김덕후 군을 응원하는 친구들! 힘내셔야 할 것 같은데요!”

하뉘는 열심히 허공에 터치하는 손 모양을 보이며 말했다.

“네! 친구들! 힘내세요!”

김밥헤븐.

신건의 프로필 영상을 지켜본 정동희와 김덕후는 잠시 넋을 놓았다.

정동희가 먼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니?”

“아니, 서로의 프로필 영상은 못 봤어. 나도 처음 본 거야.”

“예상은 했지만…….”

“그러게 말이야.”

생각했던 것보다는 신건은 꽤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런 전개로 프로필 영상을 찍을 거라고는 예상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더블스코어 이상이냐?”

정동희는 입맛을 다시 말했다.

이제 투표 시작한 지 15분 좀 안 되었고, 초반이기는 하지만.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났다.

김덕후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하려 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반칙 아니야?”

“…….”

정동희는 좀 화가 났다.

보뉘로 선발되기 위한 영상인지, 팬들의 지지를 활용하기 위한 인기 투표 영상인지.

대놓고 히트곡을 부르고, 춤까지 췄다.

보뉘 신건 프로필이 아니라, 제이스트림 신건 프로필 같았다.

“형, 속상해도 어쩔 수 없어. 지금은 전투 중이니까.”

“뭐?”

“한 자리를 놓고 싸우는데, 반칙이 어딨어?”

김덕후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본인한테 가장 유리한 걸 하는 게 당연한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