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대국민 프로필(1)
꿀꺽.
난 침을 삼키고 화면에 집중했다.
[김덕후 군! 축하드립니다!]
“우왓!”
난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화면 속 하뉘가 말했다.
[전국민노래자랑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지원자라고 해요! 이번 2차 오디션에서 색다른 매력을 보여 줘서 심사위원들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의 1차 지원 영상과 오디션 보는 모습이 짧게 자료 화면으로 나왔다.
보뉘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와…… 너무 잘생겼는데요? 친구들! 다음 보뉘가 너무 멋있다고 저 잊으면 삐질 거예요. 흥!]
하뉘가 보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보뉘~ 괜찮아요. 보뉘도 충분히 멋있어요. 우쭈쭈. 우쭈쭈. 다음 최종 후보자 발표해 볼까요?]
[알았쩌요.]
와…… 센스.
하뉘가 애기 달래는 말투로 장난을 치자, 보뉘는 자연스럽게 혀짧은 소리를 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역시 선배님답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두 번째 최종 후보자는요! 두구. 두구. 두구.]
두 사람은 입으로 북소리를 내다가. 하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제이스트림의 신건 군입니다! 꺄악~!]
하뉘는 오두방정을 떨며 좋아했고, 보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런 하뉘를 바라봤다.
[이런~ 이런~ 신건 군이 보뉘가 되면 제대로 방송이 되겠습니까? 떨려서 눈도 못 마주치는 거 아니에요?]
[아잉~ 호호. 친구들! 저 좋아하는 거 너무 티 났나요? 헤헤.]
하뉘는 숨을 몰아쉰 후, 혼자 중얼거리는 입 모양이 보였다.
‘됐으면 좋겠다.’
진짜 팬이구나.
‘신건’의 최종 후보자 발표를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오디션 무대에서 보니까, 준비도 안 되어 있는 거 같고 졸라 못하던데.
이래서 유명세와 팬덤의 힘은 무시 못 하는 건가.
신건의 최종 후보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뉘하뉘 스튜디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게 TV를 통해서도 느껴졌다.
[넌 내게~ 빠져 있어~ 커먼 베이베~]
하뉘는 춤동작과 함께 짧게 노래를 불렀다. 제이스트림 곡인가?
보뉘는 그런 하뉘를 장난스럽게 말리며 말했다.
[하뉘, 제이스트림 팬인 거 알겠으니까~ 자, 진정하고 빨리 마지막 후보자 발표하죠!]
[어머! 미안합니당. 마지막 후보자입니다!]
[두구. 두구.]
보뉘는 입으로 북소리를 내며 큐 시트를 봤다.
[송이수 군! 축하드립니다~]
[아…….]
하뉘는 큐 시트를 흝으며 약간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완벽한 일반인 지원자네요? 방송 출연 경험이 전무한데, 이번에 최종 후보자까지 선발이 되셨네요.]
[오~ 엄청난 재능러인가? 너무 궁금한데요~ 함께 자료 화면 보시죠~]
송이수?
기억이 안 난다.
난 궁금하여 송이수의 자료 화면 나오는 걸 집중해서 봤다.
1차 자기소개 영상과 2차 오디션 장면.
영상 속의 송이수는 티 없이 해맑고, 통통 튀는 귀여운 매력을 가진 아이, 아니, 형이었다.
개그 센스도 있고, 특히 미소가…… 눈이 초승달처럼 변하면서 웃는데,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아지며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뭔가 남달랐다.
[와…… 매력 있네요.]
보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니까요. 처음이시라면서 카메라 앞에서 떨지도 않으시고.]
그러니까 말이다.
송이수.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유명세에 팬덤을 가진 신건과 순수한 매력에 어딘가 모르게 천재의 냄새가 나는 송이수.
보뉘 되기 쉽지 않겠네.
역시 좋은 건 갖기 어려운 법이다.
하뉘가 웃으며 말했다.
[대국민 오디션~! ‘보뉘를 찾아라!’ 최종 후보자는 이렇게 세 명이고요!]
[최종 선정 방식은 추후에 알려 드릴 건데요,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최종 선발은 친구들이 직접 할 거라는 거에요!]
[새로운 보뉘를 찾기 위한 과정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려요!]
보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하뉘에게 말했다.
[하뉘, 나 그냥 가지 말까? 그냥 있을까?]
[넌 내게~ 빠져 있어~ 커먼 베이베~]
하뉘는 제이스트림의 노래를 부르며 딴청을 부렸고.
[흥!]
보뉘는 토라진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자, 그럼~ 다음 순서 진행해 볼까요?]
* * *
어제 방송을 본 후 바로 정동희와 통화하여,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청담역 김밥헤븐에 가는 길.
정동희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내가 그의 집 근처로 간다.
수유역에서 청담역까지, 난 전철 여행을 해야 했고.
전철을 타고 가는 내내 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보뉘를 찾아라’ 최종 후보자로 선정되어, EBC에 내 얼굴이 나가고 난 뒤.
오늘 학교에서 난리도 아니어서 혹시나 했는데…….
―쟤, 보뉘 지원자 아니야?
―이름이 특이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덕후였나?
―호호. 이름이 너무 아쉽다.
사람들이 알아본다.
보뉘하뉘가 초통령인 줄만 알았지, 교복 입은 학생들까지 이렇게 알아볼 줄은.
슬금슬금
학생들이 수군거리면서 점점 내 주변으로 다가왔고.
그들의 심상치 않은 반응 때문에 전철 안 다른 승객들도 날 바라본다.
난 아직 대중의 관심이 익숙지 않다. 불편했다.
―말 한번 걸어 볼까?
―아니면 어떡해~?
전국민노래자랑에서 우승했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간혹 엄마 따라 시장 가면 나물가게 아줌마가 알아보는 정도?
‘확실히 다르네.’
아직 보뉘로 선발된 것도 아니고, 오디션 진행 중인데도 말이다.
전철 안에 가만히 서 있어도 알아볼 정도니.
새삼 교육 방송의 힘을 느낀다.
“저기…….”
깻잎 머리의 여학생이 말을 걸었다.
“네?”
“혹시…… 보뉘를 찾아라…… 아니에요?”
전철 안의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
마음 같아선 옆 칸으로 도망가고 싶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날 알아보는 게 아직은 너무 어색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겠지.
보뉘하뉘는 시청자 참여도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아마 ‘보뉘를 찾아라’ 최종 오디션에서도 시청자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친구들이 직접 선발할 거라고, 어제 하뉘가 언급도 했었고.
‘그래! 영업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네, 맞습니다. 보뉘를 찾아라 지원자 김덕후입니다.”
“꺄악―!”
내게 말을 걸었던 깻잎 머리는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그 옆에 있는 친구들도 방방 뛰며 좋아했다.
이제 전철 안의 사람들은 완전히 내게 집중했다.
출퇴근 시간에 가까워서 사람도 꽤 많다.
―어머, 멋있어.
―초등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와…… 달라, 달라, 확실히 연예인은 달라.
아직 연예인 아닌데.
난 머쓱해졌다.
사람 불러 놓고, 주위 사람들 다 집중시켜 놓고, 깻잎 머리는 말이 없다.
“저, 왜 부르셨어요?”
“꺄악―!”
“…….”
등골에 땀이 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청담역이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는 거.
그래, 차라리 내가 적극적으로 가자.
선거 유세한다는 생각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난 어색함을 이겨내고,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
“여러분의 보뉘가 되어 보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깻잎 머리와 친구들은 얼어 버렸고.
전철 안의 사람들은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데.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래도 설명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육 방송 EBC에서 평일 저녁 6시에 방송 중인 ‘생방송 톡톡 보뉘하뉘’! 대국민 오디션 ‘보뉘를 찾아라’에 최종 후보자로 선발된 김덕후라고 합니다.”
난 사방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순간 보뉘에 몰입했다.
얼마 전 스튜디오에서 긴 오디션을 해서 일까. 몰입이 정말 빨리 됐다.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하나! 둘! 셋! 뿅! 여러분의 보뉘가 되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요. 많은 성원 부탁해요~”
난 양손을 펼치고 파닥파닥 흔들었고.
깻잎 머리와 친구들은 얼떨결에 따라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번 역은 청담역. 청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드르륵.
내리면서 인사했다.
“안녕! 안녕! 안녕히 계세요~ 잘 부탁드려요!”
아, 쪽팔려.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 현타가 왔다.
난 전속력으로 뛰쳐나갔다.
* * *
청담역 김밥헤븐.
“덕후야~ 축하한다~”
“형도 축하해~”
우리는 만나자마자 껴안으며 축하 인사부터 나누었다.
정동희는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근데 너,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냐?”
“아오. 형 말도 마.”
좀 전의 전철에서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아…… 생각만 해도 기 빨린다.
별거 안 했고, 몇 마디 안 했는데도 오디션 1시간 이상 본 것보다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정동희는 입에 김밥을 털어 넣으며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난 오는 길에 전철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고.
정동희는 배꼽 잡고 웃었다.
“하하하! 대단하다, 진짜”
“웃겨? 난 힘들었다고.”
“하하.”
정동희는 단무지를 깨물며 말했다.
“하여간 김덕후 진짜 물건이야. 어떻게 선거 유세한다는 생각을 했냐?”
“아니 뭐…… 모르는 거잖아. 보뉘하뉘는 툭 하면 시청자 전화 연결하고, 시청자 투표 받고 그러니까. 혹시 뭐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그렇게 한 거지 뭐.”
씨익.
정동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래?”
“너,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건 아니지?”
“뭐어?”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이 말에는 난 살짝 뜨끔했다.
미래를 보는 시각은 없지만, 난 미래에서 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무,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꿀꺽. 꿀꺽.
정동희는 오뎅 국물을 원샷하고 말했다.
“선거 유세, 아주 잘했어.”
“어?”
“앞으로 더 해야 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해.”
“뭐야…….”
정동희는 빙그레 웃었다.
“‘보뉘를 찾아라’ 최종 선발은 대국민 투표로 한댄다.”
“대국민 투표?!”
난 잠시 말을 잃었다.
대국민 투표?
보뉘가 그렇게까지 대단한가?
“지금 ‘보뉘를 찾아라’가 많이 화제가 되고 있나 봐. 타 방송사에서도 취재가 들어오고 있대.”
“…….”
“그래서 판이 좀 커진 거 같아. 형도 좀 전에 담당 피디님한테 연락받고 놀랐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침착하자. 침착하게…….
“방식은?”
2차 오디션이 디테일했었다. 아마도 최종 오디션이면 이보다 더 복잡하지 않을까?
정동희의 말을 기다리며, 긴장했다.
“1, 2차 오디션 영상을 다음 정규시간에 보여 줄 거고, 투표 당일에는 90초 프로필 영상을 보여 준대.”
“응?”
90초 프로필 영상? 프로필이면 자기소개 말하는 건데.
“1차 때 했던 거 또 찍는다는 거야?”
“맞아. 다만 다른 게 있다면 EBC의 지정된 세트장에서 하는 거고, 90초 제한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한대. 형식은 자유.”
“아…….”
90초, 단 90초로…….
“형, 이거 완전 인기투표 아니야? 90초로 시청자분들이 뭘 판단하겠어?”
“맞아. 인기투표가 될 가능성이 높지.”
정동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하지만 시청자의 눈이 생각보다 꽤 차갑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봐 봐, 인기가 높으면 유리하기야 하겠지만, 단순히 인기만으로는 득표수를 높이긴 어려워. 결국엔 실력 있고 노력한 자가 우승하잖아.”
“…….”
“우린 그렇게 믿고 준비해야지.”
‘신건’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룰.
“신건은 웃고 있겠네.”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지금은 웃고 있겠지.”
정동희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고.
“하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나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웃고 있는 사람은 우리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