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26화 (126/250)

126화. 차이를 보이다(1)

“여보세요? 안 들려?”

시청자의 대사가 나와야 하는데 말이 없자, 김덕후가 오히려 되물었다.

“친구야~ 어서 말해, 할 말 있어서 전화한 거 아니야?”

[네?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요…….]

시청자 역할을 맡은 배우는 당황했다. 김덕후의 애드리브에 도리어 말린 것이다.

“잠깐, 잠깐. 친구 하자니까~? 너, 98년생 아니야? 내가 너무 어려 보여서 그래? 민증 까?”

멀리서 지켜보던 탁 피디는 고개룰 갸웃했다.

“민증? 내가 방금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조승헌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등학생은 민증이 안 나올 텐데…… 아닌가? 요즘엔 나오나? 탁 피디님, 나와요?”

“뭐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딸 있으시잖아요.”

“우리 딸 초등학생 되려면 한참 멀었어.”

“아…….”

시청자 역할을 맡은 배우는 어른이다. 어른이 아이 목소리를 흉내 내어 연기하는 것이다.

‘민증 까?’라는 말에 현실을 자각하였고,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차분히 연기를 이어 나갔다.

[그래, 보뉘야, 친구 하자.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어, 얘기해.”

[하뉘 누나한테 전해 줘. 좋아한다고.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김덕후는 그 말을 가만히 생각했다.

그리고 하뉘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무서워하는 표정을 연기 중이었다.

김덕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정민아, 평소에 하뉘 누나를 어디서 지켜보고 있니?”

[후후, 글쎄? 하뉘 누나가 잘 아실걸? 아마 내 목소리도 아실 텐데.]

하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사생팬이에요, 스튜디오에 전화까지 걸 줄이야.”

이 말을 듣고도 김덕후는 당황하지 않았다. 여러 돌발 상황을 대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이다.

‘이거구나? 이게 미션이군.’

이 미션에서는 생방송 돌발 상황에서도 매끄러운 진행 능력을 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김덕후는 제작진이 기대하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매끄러운 진행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하뉘 누나, 잠깐만요.”

김덕후는 자신보다 키가 큰 하뉘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라고 손짓했고.

“네? 왜요?”

하뉘가 무릎을 구부려 키를 낮추어 얼굴을 가까이하자.

“잠시만요, 저 전화한 사람이랑 대화 좀 할게요. 누나는 듣지 말아요.”

스윽.

그러면서 김덕후는 손으로 그녀의 귀를 감쌌다.

“어머…….”

하뉘의 얼굴은 새빨개졌고.

“잠시 후, 누나가 듣고 싶어 하는 말 듣게 해 줄게요.”

갑자기 스튜디오에는 핑크빛이 감돌았다.

―뭐야, 갑자기 로맨스?

―어머…… 나 방금 심쿵했어.

―누나가 무서워하는 사람이랑 대화할 테니, 듣지 말라는 건가?

―저 매너 뭐야……?

김덕후의 돌발 행동에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수군거렸다.

“정민아~!”

김덕후는 큰 소리로 말했고.

[……!]

갑자기 자신을 불러서인지 시청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민아~ 거기 있냐?”

[어…… 왜?]

“너, 사생팬이지?”

김덕후가 훅 들어오자 시청자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소리야?! 난 그냥 하뉘 누나를 좋아하는 팬일 뿐이라고!]

“방금 네가 협박했잖아,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목소리도 알 거라며?”

[그게 왜 협박이야? 내,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맘대로 보지도 못해?]

김덕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뉘 누나가 위협을 느끼고 있잖아!”

스튜디오에 김덕후의 고함 소리가 울렸다.

“싫어하는 건 하지 말아야지! 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무서워하는 게 보기 좋니?”

[…….]

“길게 얘기 안 할게. 지금 내가 하뉘 누나 귀에서 손 떼면, 너가 직접 말해,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

“우리, 아름답게 마무리 짓자. 두 번 기회는 없어.”

이 말을 뱉고 나서, 김덕후는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방금 말투는 김 부장 같았잖아? 짜증 나네.’

김덕후는 하뉘의 귀에서 손을 살며시 떼었다.

“보뉘…… 손이 참 따뜻하네요.”

“하뉘 귀가 차가워서 그래요.”

김덕후가 싱긋 웃자, 하뉘는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시청자가 하뉘한테 할 말이 있대요. 들어 주실래요?”

“네…….”

스튜디오에 정적이 흘렀다.

어느 순간부터 한편의 청춘 드라마가 되어 버린 상황.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정적을 깨고…… 시청자의 조심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하뉘 누나……. 앞으로 거리 유지하면서 좋아할게요. 그동안 불편을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짝짝짝!

휘이익~!

시청자의 말을 끝으로 스튜디오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보뉘 김덕후와 하뉘 대역은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한쪽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역시, 청춘 드라마의 피날레는 해피엔딩.

* * *

“우와…….”

탁 피디는 탄성을 질렀고.

조승헌은 턱 빠지려던 걸 붙잡으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대신 전해 드릴게요’를 핑크빛으로…….”

“푸하하!”

이제 정신이 돌아온 탁 피디는 박장대소를 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데. 요상하게 재밌네~?”

“…….”

“쟤 김덕후라고 했지? 뭐냐? 자기소개 영상부터 어떻게 된 게 평범한 게 없어?”

“그러니까요. 이게 잘하는 건지, 이상한 건지 헷갈린다니까요? 그래서 자기소개 영상도 피디님께 보여 드린 거였잖아요.”

탁 피디는 다른 스태프들의 반응을 보았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고 있는 하뉘 대역의 얼굴도 보았다.

“글쎄…… 일단 지금으로서는 스태프들이 시청자라고 봐야 하잖아?”

“그렇죠.”

“그들의 반응이 좋으면 괜찮은 게 아닐까?”

조승헌은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렇긴 한데…… 프로그램 취지와는 좀 괴리감이 있는데요? 저희는 밝고 발랄한 분위기를 추구하는데 방금은 좀 너무 핑크빛이라 초등학생들이 보기엔 우려가 좀…….”

탁 피디가 말했다.

“얀마, 지금 덕후는 기사도를 발휘한 거잖아? 여자를 밝히거나 까진 게 아니라. 방금은 위협 상황에서 여자를 보호한 거라고.”

“…….”

“이 핑크빛 분위기는 김덕후 탓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지.”

조승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탁 피디는 현장을 주시했다.

“어쨌든, 마지막까지 보고 판단하자고. 바로 진행시켜.”

“네.”

* * *

[자~ 스탠바이해 주세요~]

난 하뉘 대역에게 말했다.

“누나, 방금 잘 대응해 줘서 고마워요. 이번에도 잘 부탁해요.”

“고맙긴, 내가 한 게 뭐 있니? 근데 너, 참 잘하더라.”

“하하, 뭘요. 난 누나가 진짜 하뉘인 줄 알았다니깐요? 너무 이쁘셔서.”

“어머…….”

하뉘 대역은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너, 입조심해야겠다.”

“네?”

“너무 치명적이란 말이야.”

내가 뭐 실수했나?

말은 그랬지만, 하뉘 대역이 웃고 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곧 시작할 거야. 음악 나오면 당황하지 말고, 일단 춤부터 춰.”

“네?”

[‘그럴 만한 보하스쿨’~ 시작합니다~!]

찰칵!

슬레이트가 치고.

쿵쾅쿵쾅!

강렬한 클럽 음악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이드에서 두 명의 학생이 뛰쳐나왔고.

두 학생과 하뉘 대역. 세 명은 클럽 음악에 맞춰서 미친 듯 몸을 흔들었다.

아, 이래서 시작하면 춤부터 추라고…….

내가 하뉘 대역을 바라보자, 그녀는 날 향해 눈을 찡긋했다.

팁을 준 거였군.

난 바로 247댄스로 들어갔다.

휘적휘적!

양팔을 옆으로 번갈아 휘저으며 고개를 흔들흔들.

멀리서 지켜보던 조승헌.

김덕후가 춤을 추기 시작하자.

“엇, 저 춤은!”

자기소개 영상에서 췄던 그 요상한 춤이었다.

“이야~ 실제로 보니까 더 신기하네?”

탁 피디도 웃으며 말했고.

“그러니까요. 엄청 간단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시선을 끌어요. 클럽 댄스의 강점이죠.”

두 사람은 다시 묵묵히 무대를 주시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세 사람에게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춤을 췄다.

우리 넷은 마치 댄스 배틀이라도 하는 듯 경쟁적으로 춤을 췄다.

음악이 끝나고.

남자 A를 맡은 사람이 말했다.

“얘들아~ 나 오늘 용돈 탔거든? 내가 떡볶이 사 줄게. 분식집 가자~”

난 대본대로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

“좋아~ 좋아~ 고우~ 고우~ 고오~!”

아우 씨, 대본 누가 쓴 거야? 요즘 누가 이런 말을 쓴다고.

분식집 도착.

남자 A가 떡볶이를 주문했고.

가만히 있던 남자 B가 말했다.

“야아~ 떡볶이 가지고 성이 차니? 그건 분식의 완성이 아니야!”

대본상에는 남자 B가 여기서 순대를 추가로 시키고, 두 사람은 법정에 간다.

‘순대를 추가한 게 잘못이다, 아니다’를 두고 보뉘와 하뉘가 각 한 사람을 변호하고.

나 보뉘는 순대를 추가한 측 변호를 맡는다.

근데 역시나.

남자 B는 대본과 다르게 움직였다.

“이모! 여기 순대랑 튀김 추가해 주세요! 유후~!”

튀김까지?!

순대 하나도 멋대로 추가한 거 변호하기 힘든데 튀김까지는 좀…….

이건 100% 지는 싸움인데.

대본상에도 보뉘 측이 지는 거로 나와 있기는 하지만, 너무 쉽게 지면 재미가 없어진다.

적어도 변호할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너무 뻔하잖아!

“야이, 튀김까지 시키면 어떡해!”

“뭐, 뭐어?”

순간 속상한 마음에 애드리브가 나갔고. 남자 B는 당황해했지만…… 역시 보뉘하뉘의 출연자답게 곧바로 능숙하게 대응했다.

“야아~ 분식은 떡튀순이지. 공식 아니야, 공식?”

“아오…… 확 그냥.”

다 나보다 못 해도 4살 이상 형들이다. 어쨌든 대본상에는 친구로 되어 있어 난 편하게 했다.

남자 A가 말했다.

“맞아! 누구 맘대로 순대랑 튀김 시키래? 난 떡볶이만 산다고 했잖아!”

“야~ 째째하게. 쏘기로 했으면 제대로 먹을 수 있게 쏴야 하는 거 아니야?”

남자 A와 남자 B 티격대었고.

그때 갑자기 음악이 나왔다.

외로운 친구 억울한 친구

풋쳐핸섭! 풋쳐핸섭!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격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티격대던 두 남자도 이때는 웃으며 춤을 췄다.

나도 분위기에 따라서 또 247댄스를 추었고.

고민 노노 걱정 노노

행복 추구 항상 밝게

노래가 끝난 뒤, 난 대본대로 하뉘와 합을 맞춰서 소리쳤다.

“봉보로 봉봉 봉봉봉! 열려라~ 보하법정~!”

쾅~!

징 소리와 함께 세트장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다른 출연자들은 세트장이 익숙하겠지만, 난 정신없고 눈이 핑핑 돈다.

단발머리 파마를 한 판사가 나와서 자리한 후에 말했다.

“시청자 배심원 여러분, 잘 보셨죠? 심리를 듣기 전에 1차 투표 진행하겠습니다.”

<순대와 튀김을 추가한 게 잘못일까?>

1) 잘못이다 : 95%

2) 아니다 : 5%

“네~ 1차 투표 결과가 압도적이군요.”

하아…… 이걸 왜 변호하라고 하는 걸까? 이건 상식 아닌가?

대본에 나온 배심원 투표 결과도 일방적이다.

그보다 2번을 투표한 5%에 놀랐다.

‘사람이 다섯 모이면 그중에 한 명은…….’

판사가 말했다.

“그럼 두 변호인의 심리를 들은 후 최종 배심원 투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원고 측?”

“네!”

하뉘 대역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피고.”

“네?”

“평소에 눈치 없단 말 많이 들으시죠?”

“엇…… 어떻게 아셨죠?”

난 황당해서 피고를 바라봤다.

아니, 묵비권 몰라? 수긍을 졸라 빨리하네?

“떡볶이를 사 준다고 했으면 떡볶이만 먹어야지, 왜 눈치 없이 순대와 튀김을 시킵니까? 피고 돈이에요? 네?”

“아, 아니, 그냥 튀김, 순대는 세트니까…….”

“원고가 떡볶이 세트 사 준다고 했습니까? 분명 ‘세트’라는 말은 없었다고요!”

난 눈살을 찌푸리고 피고를 바라봤다. 시작부터 개 말렸다.

“그리고. 과연 피고의 돈이었어도 그렇게 쉽게 시킬 수 있었을까요?”

“…….”

“혼자 주문해서 먹는 게 아니잖아요! 입이 몇 갠데! 그렇게 쉽게! 남의 돈을! 왜 떡볶이를 주문했는데! 튀김과 순대를 자기 멋대로! 눈치 챙겨!”

하뉘 대역은 몰입하여 피고를 몰아붙였고.

고개 숙인 피고. 곧 죄를 자백할 것 같았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원고 측은 피고를 겁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심신 안정이 우려됩니다.”

“네?”

내가 이의 신청을 하자, 판사와 하뉘 대역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본에 없는 거였다.

어? 보하법정에서는 이의 신청이라는 게 없나?

“이의 신청? 흠! 어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신청? 그래! 접수!”

판사는 깊은 고뇌 끝에 이의 신청을 받아들였고.

“원고 측, 뭐 하십니까? 자리로 들어가시죠. 이의 신청 인정받았잖아요.”

“아, 들어가면 되는 거야?”

법정에 서 본 경험이 없는지 하뉘 대역은 어리바리 들어갔다.

판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피, 피고도 심리 진행하세요.”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 뚜벅.

남자 A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고.

“원고…….”

그는 살짝 겁먹은 얼굴로 날 바라봤다.

“왜…… 쏜다고 하신 겁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