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25화 (125/250)

125화. 2차 오디션(3)

조승헌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토끼한테 어제 한잔했냐고?’

초통령 보뉘로 선발되기 위해 온 자리. 더군다나 신건은 17세.

어제 수능 치고 1월 1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애매한 나이도 아니고, 아직 한참 미성년자다.

다만, 탁 피디는 표정 변화 없이 침착했다.

“그게 설명 끝입니까?”

탁 피디의 물음에 신건은 움찔했다.

당황하여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이 나간 것이다.

엊그제 술 마신 다음 날 눈이 새빨갛던 친구가 떠올랐었다.

실수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긴 했지만, 적당히 수습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죄송합니다…….”

“…….”

탁 피디는 심사지에 체크한 후 말했다.

“넘어가.”

“네.”

조승헌은 마이크를 잡았다.

“답변 잘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보뉘하뉘 고정 코너, ‘대신 전해 드릴게요’ 진행해 주세요.”

스태프 한명이 다가와서 대본을 신건에게 건네었다.

“들고 읽어도 됩니다. 옆에 하뉘와 함께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행해 주세요.”

스튜디오에는 하뉘 대역을 맡은 여성이 있었다.

찰칵!

슬레이트 소리가 울리고.

하뉘의 빵빵 터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따르릉~! 안녕~ 안녕~ 하뉘예요!”

“…….”

신건은 하뉘의 텐센에 기가 눌려서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뉘! 뭐 해요? 제가 너무 예쁜가요? 히힛!”

신건은 또 당황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아, 하하. 이쁘긴 합니다만 제 스타일은 아닌데.”

신건은 다시 또 머리가 하얘졌다.

‘아, 젠장! 나 왜 이러지? 여기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후부터 정신이 나갈 것 같아.’

“히잉~ 싫어~ 싫어~ 하지만! 난 괜찮아요! 왜냐면~ 우리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 으! 니! 깐!”

‘있으니깐’에서는 하뉘는 검지를 펼쳐서 카메라를 향해 콕콕 찍는 시늉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조승헌이 웃었다.

“오, 하뉘 대역 잘하는데요?”

“그러게, 저 친구 이름이랑 연락처 기록해 둬.”

보뉘를 선발하기 위한 자리인데, 두 사람은 신건보다 하뉘 대역에 더 눈길이 가고 있었다.

그만큼 신건은 대활약 중이었다.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

하뉘는 웃으며 말했다.

“보뉘~ 뭐 해요~? 어서 친구들한테 전화 주세요. 빨리 친구들 만나고 싶어요오~”

“아, 네…….”

신건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본을 읽었다.

“여보세요? 친구~ 반가워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정동초등학교 6학년 1반 임정민입니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수화기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네~ 누구한테 어떤 말을 전해 드릴까요?”

신건은 이제야 조금씩 정신을 차려갔다.

[하뉘 누나한테 전해 주세요. 좋아한다고.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네에?”

‘항상 지켜본다’는 말이 어딘가 음침하게 들렸다.

“TV를 통해 지켜본다는 말이죠?”

[후후, 글쎄요? 하뉘 누나는 제 목소리 아실 텐데?]

하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사생팬이에요. 스튜디오에 전화까지 걸 줄이야…….”

신건의 얼굴은 다시 또 하얗게 질려갔다.

‘사, 사생팬? 얘 일반인 아니었어? 그런데 왜 스토커가 있어? 어, 어떻게 말해야 하지?’

신건은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여기서 어떤 말을 던져야 할까.

‘일단은…… 전달해야겠지? 전달해 달라고 했으니까.’

“하뉘.”

“…….”

“임정민 군이 많이 좋아한대요. 그리고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전해 달래요.”

스토커에 가까운 사생팬의 메시지.

신건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전해 주었다.

소름이 돋은 하뉘는 결국…….

꺅―!

스튜디오에 비명 소리가 울렸다.

* * *

“하아…….”

탁강민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장 유력한 참가자라고 생각했었다.

10대 아이들에게 높은 인기의 아이돌 ‘제이스트림’의 막내다.

팬덤이 두터우며, 그가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 ‘보뉘하뉘’가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테스트하는 거로 봐서는…… 심각했다.

“쟤는 가망이 없네요. 아이돌인 애가 왜 저럴까요? 방송 경험도 많을 텐데.”

“흠…… 제이스트림은 멤버 수가 많아서 예능에 혼자서 출연하는 경우는 잘 없었을 거고, 쟤는 미성년자니까 출연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아닐까?”

“아…….”

“예능에 자주 출연해 본 친구가 저렇게 대응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어리바리 그 자체였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보기 위해 무리한 대사를 넣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토커의 말을 그대로 전하다니.

아직 코너 진행 미션이 더 남았지만 더 볼 필요는 없었다.

최종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는 지원자는 단 세 명.

신건은 거기에 합류시키기도 뭐 하고, 안 시키기에도 부담스러웠다.

워낙 인지도가 높아서 보뉘가 된다면 시청률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니까.

“탁 피디님, 어떻게 하죠?”

“흠…….”

탁강민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힘든 연습생 생활 견뎌 내서 아이돌까지 되었으니 어쨌든 노력할 줄 안다는 거잖아?”

“…….”

“아이돌은 만들어지는 거니까 이 친구의 커리어를 믿어 보자구. 마스크, 목소리, 표정 등 가지고 있는 스펙은 괜찮으니까 연습시키면 달라질지도 모르잖아?”

지금 심사 내용만으로는 고민할 필요 없이 떨어뜨려야 하는 게 맞지만, 탁 피디는 신건의 인지도를 포기하기가 아쉬웠다.

어느덧 지원자가 바뀌었지만.

탁 피디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는 요주의 지원자만 자세히 봤고, 현재 지원자는 그 대상자가 아니었다.

―하하하!

―와~ 잘한다~!

스튜디오 울리는 커다란 웃음소리에 약간 신경이 쓰일 때쯤.

“탁 피디님. 쟤 좀 보십시오.”

조승헌이 다가와서 딴짓하고 있던 탁 피디를 불렀다.

“응? 왜?”

“돌발 질문에 대답도 기가 막혔고, 방금 ‘대신 전해 드릴게요’ 코너도 정말 잘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래?”

탁 피디는 딴짓하느라 못 봤는데, 그 사실을 들키긴 싫어서 괜히 본 듯이 말했다.

“남자애가 너무 귀엽네요. 전혀 기대 안 했던 지원자였는데…… 와~ 이런 게 공개 오디션의 묘미인가? 하하!”

“이름이 뭔데?”

탁 피디는 그제야 관심을 가졌다.

“이름은 송이수고요, 나이는 15세. 방송 출연 경력은 없습니다.”

‘송이수, 송이수?’

“얘가 왜 2차 오디션에 뽑혔지?”

아무리 생각해도 1차 오디션 영상이 기억나지 않았다.

“자기소개 영상이 굉장히 귀여웠고, 특히 순백의 미소가 인상적이어서 뽑았었어요.”

“아…….”

탁 피디는 그제야 기억이 났다.

조연출과 작가들이 선발한 지원자들이 꽤 많았는데, 최종 영상 점검할 때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현재까지 지원자 중에는 단연 가장 좋았습니다. 애드리브도 좋고.”

“그래?”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뭐.”

탁 피디는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에이, 진작 말해 주지! 다 끝나고서…….’

[김덕후 군, 스튜디오로 나와주세요.]

‘김덕후’라는 말에 탁 피디와 조승헌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 드디어 나왔군요?”

“흠…….”

탁 피디는 의자에 정자세로 앉았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봐야지.’

* * *

“안녕하세요, 보뉘 지원자 김덕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핑크 정장의 김덕후가 스튜디오 중앙에 나와 섰다.

뒤에 있는 하늬 대역과 주변의 다른 출연자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 김덕후의 핑크 정장이 더욱 튀어 보였다.

이건 뭐 교생 선생님도 아니고…….

조승헌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김덕후 군!”

“네!”

“만약 오늘 합격해서 3차 오디션을 보게 된다면, 다른 옷을 입고서 할 수 있을까요?”

“네?”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방송에서는 그 옷을 입고 촬영할 수는 없거든요. 다른 옷 입었을 때 느낌을 보려 합니다.”

김덕후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사연은 없는데……. 사제 옷 하나 사야겠구만. 하긴, 그 정도는 투자는 해야지.’

“알겠습니다!”

조승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코너 진행 미션 시작하기 앞서 공통 질문 하나 드릴게요.”

생각지 못한 전개에 김덕후의 눈이 동그래졌다.

“토끼 눈이 빨간 이유를 재밌게 설명해 볼래요?”

꿀꺽.

김덕후는 약간 당황했다.

스튜디오 정중앙에 서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마주하고 있고.

주변엔 수많은 스태프들이 김덕후만을 바라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긴장되는 상황.

아무리 전, 현생 합쳐서 48년 묵은 능구렁이라도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흡!”

김덕후는 재빨리 입을 닫았다.

‘휴, 실수할 뻔했네! 어제 술 먹어서 그렇다는 농담을 13살짜리가 해서는 안 되지!’

김덕후는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그건 하뉘 누나를 봐서 그런 게 아닐까요?”

“네? 하뉘를 봐서 눈이 빨갛다고?”

“네, 너무 이뻐서 눈을 깜빡일 수조차 없었던 거죠.”

“아…….”

조승헌은 살며시 미소 지었고.

김덕후의 마지막 말에 스태프들은 다 함께 웃었다.

“방송국에서 일하시니 아시죠? 눈 깜빡이는 시간도 아쉬운 아름다운 사람이요. 하하.”

하하하.

스탭들의 웃음이 터졌고, 하뉘 대역은 얼굴이 빨개졌다.

탁 피디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디어 괜찮네, 눈을 안 감아서 눈이 빨갛다는 거잖아?”

“하하, 네.”

“아주 재밌다고 하긴 어렵지만 녀석…… 개성이 있네.”

조승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1차 영상 때부터 느낀 거지만, 제일 어린 나이지만 굉장히 어른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탁 피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자, 다음 진행해.”

다음 ‘대신 전해 드릴게요’ 코너.

김덕후는 스튜디오 뒤에 대역 하뉘와 나란히 섰다.

살짝 웃으며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김덕후의 인사에 대역 하뉘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잘 부탁드려요.”

“응, 너두 잘해.”

찰칵!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하뉘는 멘트를 시작했다.

“따르릉~! 안녕~ 안녕~ 하뉘예요.”

빵빵 터지는 목소리.

김덕후는 살짝 놀랐다.

하늘을 찌를 듯한 하이텐션!

좀 전에 수줍어하던 하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대본대로 이어 갔다.

“하뉘! 우리 친구들 빨리 만나 볼까요?”

“좋아요! 오늘은 친구들이 어떤 부탁을 할지, 심장이 두근! 두근!”

김덕후는 웃으며 애드리브를 했다.

“세근! 네근!”

“…….”

하뉘가 당황했다.

“내 심장은 두 근 반~ 한 근은 600g이죠? 하하. 여보세요?”

하늬는 김덕후를 보면서 생각했다.

‘……뭐지, 이 드립은?’

받아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받아칠 수 없는 드립이었다.

하뉘가 살짝 당황했을 때.

[정동초등학교 6학년 1반 임정민입니다.]

시청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다음 인사는 하뉘의 차례였지만, 김덕후의 드립에 당황한 나머지 타이밍을 살짝 놓쳤다.

보뉘하뉘는 숨 쉴 틈 없이 멘트를 치고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약간의 타이밍이라도 공백이 생기면 크게 느껴진다.

하뉘가 정신 차리고 말을 하려는데.

“네~ 친구 반가워요, 6학년이군요? 나랑 동갑이네요~ 하하.”

하뉘 순서지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김덕후가 훅 들어갔다.

그리고 이건 대본에 없는 내용이었다.

“우리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하자~ 왜 전화했어? 무슨 말 전해 줄까?”

[…….]

풉.

시청자 역할을 맡은 사람도 당황하여 말을 잃자, 조승헌은 뿜었고.

탁 피디도 껄껄대며 웃었다.

“하하. 저 녀석, 재밌네.”

“그러니까요. 아직 돌발 상황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상황을 가지고 노는데요? 돌발 상황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김덕후를 테스트하기 위한 출연자들이 당황한 모양새.

이 모습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덕후가 상황을 어색하게 끌고 가는 건 아니었다.

탁 피디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가 누구를 심사 보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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