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2차 오디션(1)
나와 정동희는 쭈뼛쭈뼛 그를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른 참가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쟨 누구지?
―안쪽 자리로 이동하는 거 보니까 유력 후보인가 본데?
―새로 데뷔하는 아이돌인가? 근데 아이돌치고는 옷이…….
중요한 날에는 입는 내 전투복.
핑크 정장을 입고 왔다.
“거봐, 인마. 혹시나 해서 형이 미리 말했더니. 말했는데도 그걸 입고 왔냐.”
“형, 난 옷이 없어.”
꼭 이 옷을 원해서 입고 온 것만은 아니다. 이것 말고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발목이 드러난 청바지를 입고 올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집이 옷 한 벌 사는 데도 벌벌 떨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지만, 나한테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조그만 거라도 아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 끝나고 형이랑 옷 사러 가자. 형이 사 줄게.”
“형, 나한테 김밥 얻어먹는 상황 아니었어?”
“……오늘 말고 오디션 합격하면 사 줄게.”
정동희는 평소에 사 준다는 말을 습관처럼 자주 한다. 현재 본인의 거지 같은 상황을 깜빡한 것이다.
조승헌은 앞자리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뒤쪽의 다른 의자들과는 모양과 재질이 달랐다.
딱 봐도 VIP석 같은 느낌.
“여기 앉아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약 10분 뒤에 시작할 겁니다.”
“아, 네. 배려에 감사합니다. 이거 어째 부담스러운데.”
정동희가 말하며 앉았고, 나도 뒤따라 앉았다.
조승헌은 우리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자격 있으셔서 이쪽으로 모신 거니까.”
“네?”
“성적순이에요~ 우리는 교육 방송이잖아요? 교육은 성적순~!”
“헐…….”
내가 황당해하자, 조승헌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그럼 편히 계세요~”
조승헌이 뒷모습을 보며 정동희가 중얼거렸다.
“내가 선입견이 있었나 봐. 난 교육 방송 피디들은 농담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형, 게다가 농담이 찐해.”
잠시 후.
웅성웅성.
뒤에서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웅성거림 속에서 한 무리가 우리 쪽을 걸어오는데.
무리 가운데의 한 소년에게서 빛이 났다.
조각 같은 외모에 가녀린 턱선.
마른 체격이지만 벌어진 어깨.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하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차가운 시선.
향긋한 향수 냄새.
그들 또한 조승헌의 안내를 받고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가까워질수록 느낌이 왔다.
‘아이돌이구나!’
뽕짝에 블루스 부르며 지방 무대를 전전하다가, 어르신 가수나 짬이 가득 찬 아마추어들만 보다가.
완벽하게 관리된 조각 같은 소년을 보니 신기해서 난 절로 눈이 돌아갔다.
아이돌은 내 앞에 섰고.
옆자리에 앉기 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날 위아래로 훑고는 앉으면서 말했다.
“와썹~?”
내가 영어를 못하진 않는데.
나에게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순간 잘못 알아들었고.
초면에 반말한 줄 알고, 기 죽기 싫어서 난 이렇게 대답했다.
“응~ 너도 왔어?”
……망했다.
* * *
정동희는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너, 뭐 하냐?”
“인사했잖아.”
‘왔어~’라고 뱉어 낸 직후, 뒤늦게 ‘와썹(what’s up)’으로 인지를 했다.
민망함에 일부러 잘 못 알아들은 척했다.
“너, 왜 초면에 반말이냐? 쟤가 너보다 형이야.”
“저 형이 먼저 ‘왔어~’이러면서 반말로 인사했잖아?”
“……너, 긴장 많이 했구나?”
정동희는 고개를 갸웃했고, 나와 아이돌 사이에는 의자가 하나 더 놓여 있다.
아이돌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정동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희 형. 저 형 아이돌 맞지?”
“뭐어? 모르냐?”
사람들 반응을 보니, 유명 아이돌이라는 건 알겠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허어, 진짜 모르나 보네?”
정동희는 내 귀에 대고 정말 작게 말했다.
“제이스트림의 막내 신건이잖아.”
“제이스트림? 아~”
그룹 이름은 알겠다. 반에서 친구들이 흐느적거리길래 궁금해서 물어보니 제이스트림이라고 했던 것 같다.
연달아 1위를 하는 그런 유명 아이돌은 아니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인기를 쌓아 가고 있는 신인 그룹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멤버들 이름까진 모른다.
리더 이름 정도는 들어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신건? 생소하다.
“음……. 의외네, 아이돌들이 지원했다고는 들었지만 제이스트림급이 나왔을 줄은. 그것도 신건이…….”
정동희는 입맛을 다셨다.
“꽤 유명한가 봐?”
내 물음에 그는 신음 소리 비슷하게 말했다.
“팬덤이 어마어마하지. 게다가 신건이 막내지만, 재능이 뛰어나서 멤버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거든. 저 친구가 비보이 댄스 전문일걸?”
“형, 되게 잘 안다.”
이태리 4년 유학한 형이 한국에서만 거주한 나보다 잘 아는 게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약간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유학 가서 대체 뭘 한 거야?
“얀마,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최근에 공부했다니깐?”
정동희는 내 속마음을 읽은 듯했다.
“아아, 다들 모이셨죠?”
조승헌이 앞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보뉘를 찾아라에 지원해 주신 지원자분들 환영합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보뉘하뉘 조연출을 맡고 있는 FD 조승헌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지원자들은 일제히 큰 박수로 화답했다.
―휘이익~
―에프디님 잘생겼다아~
―열심히 하겠습니다아~
조승헌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역시 보뉘의 지원자답게 다들 텐션이 좋으시네요!”
―와아아~!
조승헌의 이 말에도 지원자들은 양손을 신장개업한 고깃집 앞의 풍선처럼 흔들며 화답했다.
왠지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따라 했는데…….
힐끔.
옆을 보니 신건인지 신검인지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먼저 ‘자기소개’ 영상을 찍을 건데요, 시간은 60초입니다. 카메라 마주 보고 소개하는 거예요. 카메라가 좀 낯선 분도 계실 텐데, 어색해 마시고 가볍게 해 주시면 됩니다.”
조승헌은 말을 이어갔다.
“그다음 ‘코너 진행’을 합니다. 스튜디오로 들어오셔서 보뉘 역할을 해 주실 건데, 중간에 어떠한 상황이 생겨도 끊는 거 없습니다. 보뉘하뉘가 생방송인 거 아시죠? 어떻게 되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시면 됩니다!”
송사무엘이 말했던 게 이거구나? 조승헌이 설명은 안 했지만, 코너 진행 미션에서 분명 돌발 상황을 만들 거고, 그에 대한 대처 능력을 보겠지.
“여기까지 한 후, 사진 촬영만 하면 모두 끝납니다. 이해하셨죠?”
―네~!
“질문?”
―…….
그 밝던 보뉘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이제 막상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긴장되나 보다.
“자! 그럼 ‘보뉘를 찾아라!’ 2차 오디션. 지금 시작합니다!”
* * *
“하나, 둘, 셋! 짠~! 보뉘 꽃이 피었습니다! 하핫,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꽃이 되어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나, 보뉘 되고 시퍼~ 너무 되고 시퍼~”
멀찍이서 앞선 지원자들 자기소개 영상 찍고 있는 걸 보고 있는데.
“…….”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이 더하기 이는…….”
지원자들은 귀엽고 깜찍하게 보이기 위해 발악을 했고.
이 또한 비즈니스라는 걸 알지만…….
귀여움과 깜찍함 성분을 너무 과도하게 투약하다 보니 끔찍할 지경이다.
혹시 내 멘탈을 흔들려는 경쟁자들의 전략인가?
내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은 보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형, 내 차례 되면 불러 줄래?”
정동희는 내 피곤한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그래, 텐션 유지가 중요하니까. 이거 보는 것만으로도 은근 기 빨리네. 쉬고 있어.”
“응, 형.”
한 명당 60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 순서는 빠르게 지나갔다.
내 이름은 아직 불리지 않고 있는데.
“신건 군! 나와 주세요!”
신건?!
신건이라는 말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디션 현장 최고의 화제의 인물이니까, 봐 줘야지.
뚜벅뚜벅.
신건이 카메라 앞으로 가자,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왔군, 보뉘 1순위.
―신건이 지원했으면 끝난 거지 뭐.
―이미 내정되어 있는 거 아니야?
신건이 카메라 앞에 섰다.
이번엔 나도 모니터가 아니라 가까이 가서 직접 봤다.
주변은 사람들로 빈틈없이 빼곡히 채워졌다.
“신건 군! 준비됐죠?”
“네!”
찰칵!
슬레이트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신건의 눈이 돌았다.
우수에 찬 눈빛.
고개를 살짝 꺾고,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비스듬하게 들이대고는…….
“훗!”
그리고 눈썹을 살짝 올렸다가 내리면서 피식 웃는데.
―꺅~!
어디선가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 안녕하세요. 제이스트림 막내 신건입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후.
“따이쉬! 따이쉬!”
입으로 박자를 넣으며, 갑자기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작은 면접 앵글 안에서 신건은 팝핀 동작 비슷한 걸 하는데.
반복되는 동작이었다.
―꺄아악~!
―멋있다!
―신건! 신건!
아무래도 킬링파트 안무인가 보다.
난 그룹 이름만 들어 봤지, 그들 무대는 본 기억이 없어서…….
“따이쉬! 따이쉬!”
그렇게 한 30초를 춤으로 때우는데…….
저게 멋있는 건가?
난 잘 모르겠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데, 나만 별 감흥이 없으니 내가 이상한 거겠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지만, 난 꾹 참고 끝까지 봤다.
“허억! 허억!”
춤을 끝낸 신건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격한 안무가 아니었는데 저렇게 숨이 찬다고?
강아지가 헐떡이는 소리와 비슷한데.
혹시 일부러 저러는 건가?
“친구들! 앞으로 자주 보고 싶죠?”
볼에 땀이 흐르고 있는데.
신건은 굳이 닦지 않았다.
보는 내가 신경 쓰여서 달려가 손수건이라도 건네주고 싶다.
“자주 보게 될 거야. 내가 너희들 앞에 나타날 거니까. 훗!”
―꺄아악~!
“카트!”
비명 소리와 함께 신건의 자기소개는 끝났고.
난 결국 항마력이 한도 초과되어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러 편의점으로 가야 했다.
* * *
“형 크로스 오버는 힘들 거 같아.”
“왜? 음악은 편식하면 안 된다니까?”
좀 전의 신건의 자기소개 영상을 떠올리고는 난 몸서리를 쳤다.
“트롯만 해야 할까 봐.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트롯뿐이지만 정통 트롯만 추구하는 가수가 될 생각은 없다.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킬 생각도 있다.
그래서 방송댄스도 배우고, 밴드 음악도 배우며 학원 셔틀을 했던 건데.
아이돌에 대해서도 약간은 상상을 해 봤었다.
그냥, 내 또래에 음악 한다는 애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가니까.
아…… 근데.
‘따이쉬’는 뭐고 ‘헉’은 뭐야.
자꾸 좀 전에 봤던 게 머릿속에 맴돈다.
난 머리를 저으며 초콜릿을 깨물었다.
“얀마, 방금 본 건 빙산의 일각이야. 쟤네들 그룹으로 공연하면 얼마나 멋진데?”
“…….”
“형도 이번에 공부하면서 알게 됐거든? 진짜 멋지더만. 나중에 한번 봐 봐. 제이스트림이 상당히 실력파 아이돌이니까.”
뭐……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형이 생각해서 한 말이니까, 부정적으로 대꾸하지는 않았다.
“김덕후 군! 카메라 앞으로 나오세요!”
내 이름이 불렸다.
―뭐야? 본명이야?
―설마, 예명이겠지. 그런데 너무 쌈마이 느낌인데.
―아까 핑크 정장 입고 온 아이 아닐까?
―맞네.
내 이름 김덕후.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집중된다.
사람들은 날 모르면서도, 일제히 내 쪽을 바라봤다.
“형, 갔다 올게.”
“그래, 덕후야. 알지? 너무 오바하지 말고.”
정동희는 걱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