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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19화 (119/250)

119화. 눈을 뗄 수 없는(1)

“이거 참 당혹스럽네.”

당혹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은 먹었으나, 순서가 있다.

오늘 정동희에게 얘기를 한 후, 저녁에 김 부장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미성년일 때는 내 진로 결정에 있어서는 김 부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다.

지금…… 선조치 후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건데?

정동희는 머리를 감싸 쥔 채로 내게 물었다.

“네가 왜 당혹스러워? 어떻게든 방법 만들어 내야 하는 형이 당혹스럽지.”

“나 아직 아빠한테 얘기 안 했거든.”

“아, 헐…….”

정동희는 처음엔 무심결에 듣다가, 곧바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 부장의 얼굴이 떠올랐나 보다.

아무리 큰고모가 빡세도 끝판왕은 김 부장이다.

정동희도 몇 번 경험해 봐서 알고 있다.

“어떡하냐? 영상 지금 찍어서 보내야 하는데?”

“뭘 어떡해? 일단 질러야지, 뭐.”

정동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 전화라도 해서 말씀을 드리는 게…….”

“형, 30분 남았다며? 우리 얘기하는 동안 몇 분 지났어?”

“5분…….”

난 도리질을 하고는 말했다.

“형, 아빠가 뭐라 하든 내가 해결할 일이야. 나중에 내가 자초지종 설명하고 알아서 할 테니, 일단은 지금은 지원 영상 찍는 것에 집중하자.”

“…….”

“우리 지금 구상도 못 했잖아.”

정동희는 어금니를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덕후야. 그럼 우리 지금부터…….”

정동희는 시계를 보고 말했다.

“딱 5분만 구상해 보자. 각자 생각해 보는 거야. 5분 뒤에 얘기해 보는 거로.”

“…….”

“자, 침착하게…….”

막상 마음을 정하니 정동희는 침착해졌다.

역시 믿음이 간다.

“알았어, 형.”

5분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엔 ‘어떤 모습을 보여 줘야 좋아할까’라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 관점에서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건 내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내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을까?

난 자신이 있으니까.

날 보는 사람들이 모두 좋아해 줬었으니까.

그래, 줏대 있게 가는 거야.

진짜 내 모습을 보여 주고!

‘당신들이 원하는 사람이라면 뽑아! 아니면 말고.’

이렇게 관점이 바뀌니, 정리가 빨라졌다.

현재 지금의 내 모습. 잘하는 걸 보여 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덕후야.”

“어, 형.”

“생각해 봤니?”

“응.”

난 정동희에게 물었다.

“보뉘는 좀 밝아야 하지? 통통 튈 정도로.”

“아무래도 그렇지. 방송을 봤나 보구나?”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상의 좀 해 볼까?”

“좋아, 근데 형.”

“응?”

“내가 원하는 대로 해 봐도 돼?”

이 말에 정동희는 잠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 * *

내가 원하는 컨셉을 하고 싶어서 먼저 이렇게 말을 던진 거였다.

다행히 정동희는 눈치가 빨랐고, 바로 수긍해 주었다.

“그럼 해 봐. 형은 옆에서 보완만 해 줄게.”

“오케이!”

난 5분간 구상한 걸 얘기했다.

“형, 내가 잘하는 게 트롯이잖아? 그냥 트롯을 하려고.”

“교육 방송 오디션 영상인데?”

난 웃으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이게 나인 걸 어떡해~?”

“알지~ 형도 알지~ 그래도 너가 그거 말고도 잘하는 게 많잖아? 이럴 때는 다른 재능으로…….”

“형.”

난 그의 말을 잘랐다.

이렇게 나올까 봐, 아까 미리 얘기했던 거였다. 내가 해 보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냐고.

“아~ 그래, 알았어. 일단 볼게. 하지만 형이 보고 나서 수정 요청하는 건 잘 들어 봐야 해.”

“알았어~ 어떤 트롯을 할 거냐면.”

‘사랑의 빠떼루’.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흥얼거리는 트롯이다.

신나는 후크송 리듬의 트롯인데, 얼핏 들으면 동요 같기도 하고…….

물론 가사는 전혀 동요스럽지 않지만.

“뭐어? 사랑의 빠떼루? 그거 너무 야하지 않냐?”

“형, 가사를 보지 말고 노래를 봐, 요즘 애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트롯이야. 방송에도 많이 나오잖아? 연예인들도 따라 부르고.”

“그래도 교육 방송인데 사랑의 빠떼루라…….”

정동희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매치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한 오백 년 부르는 것보다는 낫잖아.”

“야, 비교를 해도…….”

정동희는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래, 어차피 전곡을 다 따라 부를 건 아니니까. 대신 부르는 파트는 최대한 덜 야한 부분으로.”

“오케이! 형, 그리고 노래 부르면서 춤을 좀 출까 하는데.”

“춤? 좋지! 잘 생각했다, 야.”

정동희는 빙그레 웃었고.

내가 다닌 수많은 학원 중 방송 댄스 학원도 있었다.

전생의 부단히 춘 클럽 댄스를 기억하며, 한국적이면서도 흥겨운 춤들을 연습했다.

“형, 내가 춤 몇 가지 보여 줄 테니까, 잘 봐 봐.”

정동희는 내 춤들을 보면서 놀라워하면서도 재밌어했다.

“푸하하! 병맛스러운데 요상하게 신나네?”

총 3개의 댄스를 보여 줬는데, 그 중에 정동희는 첫 번째 댄스에 대해 물었다.

“사랑의 빠떼루에는 첫 번째 춤이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아~ 라이스케이크 댄스?”

“춤 이름이 라이스케이크야?”

한국적인 이름이 좋기는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어서 이 춤만은 영어로 부르기로 했다.

“잠깐, 라이스케이크면…….”

“응, 맞아.”

난 말하지 말라고, 검지를 입에 대고 ‘쉿’ 했다.

“야이~ 쪼그만 게!”

콩!

정동희는 내 머리를 쥐어박았고.

“아오, 아파! 형, 그럼 어떡해? 춤 이름이 그런 걸.”

“됐고, 그거 말고 다른 거로 해.”

“다른 거 뭐?”

정동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세 번째 댄스도 괜찮던데…….”

그리고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요상한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표정이었는데.

“그건 247댄스야.”

“무슨 뜻이야.”

“몰라, 나도. 그냥 춤 이름이야.”

“네가 지은 춤 아니야?”

“아니라니깐? 아주 오래전부터 어딘가에서부터 계승되어 오는 춤이야.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 춤도 그래.”

물론 추측이다.

그리고 내 말에 정동희는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너, 오늘 비유가 찰지다?”

“헤헷.”

“그럼 춤과 노래는 됐고, 인터뷰 영상은 어떤 식으로 구상할 건데?”

“보뉘하뉘가 생방송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반전 매력을 보여 주는 게 좋을 거 같아.”

“반전 매력?”

난 탄식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 아쉽다. 핑크 정장 있었으면 딱인데. 지금 시간은 없고.”

“…….”

“형, 몇 분 남았어?”

“10분. 이제 시작해야 돼. 영상 다 찍고서 PC방 찾아가서 발송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영상은 어떻게 찍어?”

정동희는 연습실을 막 뒤지기 시작했다.

“휴…… 다행히 있네.”

조그만 디카를 꺼내 들었다.

* * *

정동희와 헤어지고 집으로 왔다.

아…… 아까 정말 정신없었다.

10분 전부터 후다닥 영상 찍고, PC방 찾으러 뛰어다니고.

겨우 찾았더니, 자리가 없어서 옆의 PC방으로 또 옮기고.

간신히 자리 잡고서 마감 시간 1분 남겨 두고 겨우 발송했다.

단 10분이었지만, 진이 빠진다.

이번 생은 왜 이렇게 스펙터클한지…… 뭐 하나 간단하게 넘어가는 게 없다.

원하는 일을 하려면 원래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난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김 부장이 거실에서 혼자 신문을 보는 타이밍이 생겼고.

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가까이 다가가 흘리듯 말했다.

“나, 예능 출연하려고.”

“…….”

“보뉘하뉘라는 EBC 프로그램인데, 거기 MC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했어.”

촤악.

김 부장은 신문을 거칠게 내리고는 말했다.

“지금 통보하는 거냐, 상의하는 거냐?”

뜨끔!

하여간 김 부장,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냥 ‘그러냐?’이러면 될 걸.

“선조치 후보고 하는 거야.”

“……뭐어?”

“접수 마감이 코앞이어서 갑작스럽게 결정되었거든.”

“누가 결정을 해?”

김 부장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고.

“내가.”

난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와의 약속으로 진로에 대한 결정권은 김 부장에게 있다. 이래서 계약서 작성할 땐 독소조항이 있는지 잘 확인하고 써야 하는 것이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건데,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네 삶이란…….

“잘 생각하고 결정한 거냐?”

삶을 통찰하는 내 깊은 눈빛을 보아서일까?

김 부장의 눈빛이 좀 수그러들었다.

“물론이지. 일주일 고민했어. 모니터링도 해 보고.”

“…….”

“동희 형과도 상의해서 결정한 거야. 지원 영상 찍는 것도 도와줬고.”

김 부장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동희’를 중얼거렸다.

“걔는 도대체 뭐 하고 다니는 거냐? 누님이 걱정 많으시던데.”

“…….”

“그리고 지금 집에서 근신 중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만난 거냐?”

아차.

말실수했다.

“방금 건 못 들은 거로 해 줘. 동희 형 요즘 힘들어.”

“얼씨구? 두 놈이 쌍으로 아주…….”

“형도 생각이 있겠지, 성인이잖아?”

김 부장은 잠시 생각하고,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웃었다.

“그래, 전국민노래자랑부터 네 방송 출연은 허락을 한 거였고. 내 아들이 방침을 어길 정도로 멍청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잘 생각해서 결정한 거겠지, 감당할 자신도 있을 거고.”

“그렇다니깐?”

촤악

그는 다시 신문을 올리고 말했다.

“지원했으면 당당하게 합격해라.”

* * *

다음 날. EBC 예능국.

예능국 가운데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국민 오디션. 보뉘를 찾아라.]

아무리 보뉘하뉘가 EBC의 간판 프로그램이라지만, 과연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지 고민이 많았었다.

반응이 없을까 봐 고민했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지원자들이 많았고, 심지어 아이돌 멤버들, 특히 막내급의 10대 중후반의 아이돌들도 꽤 많이 지원하여.

오디션 공고 일주일 만에 지원자 수가 1,000명을 돌파했다.

담당 피디 입장에서는 당연히 흥행을 바란 것이긴 하지만.

연일 포털 사이트에도 오르내릴 정도로 화제가 되니 부담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와아…… 하하, 이거 미치겠네.”

보뉘하뉘 담당 피디 탁강민.

그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고 있다.

교육 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똘끼 충만한 연출로 유명한 그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애초에 보뉘를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겠다는 구상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는 우려는…… 결국 그와는 상관없는 얘기로 판명되었다.

총지원자 수 1,205명!

처음에 반대하던 조연출들은 이제 입을 다물고, 탁 피디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잘 추리고 있는 거지?”

“네!”

어젯밤부터 지원자들 영상을 체크하고 추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먼저 조연출들이 3배수인 120명까지 추리기로 했고.

그 후 탁 피디와 함께 확인하여 최종 40명까지만 2차 테스트 기회를 주기로 했다.

탁 피디는 편집실 중앙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이리저리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저, 피디님.”

“응?”

어느 조연출이 탁 피디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영상 추리다가 좀 애매한 게 있어서…….”

“뭔데?”

“눈에는 띄는데, 저희 방송국과 컨셉이 맞는지 판단이 잘 안 서서요.”

“그럼 그냥 잘러! 지원자도 많은데, 뭐.”

탁 피디의 심드렁한 대꾸에도 조연출은 물러가지 않았다.

“그냥 자르기에는…… 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에이~ 할 거 많은데, 귀찮게 진짜!”

탁 피디는 일어나 조연출이 있던 자리에 앉았다.

“뭔데? 틀어 봐.”

픽!

나를 사랑으로 감싸 줘요.

사랑의 빠떼루가 되어 보아요.

러닝셔츠 차림의 한 소년이 머리에 물을 흠뻑 적시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두 팔을 양옆으로 휘적거리는데.

병맛 같아 보이지만,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는 요상한 춤을 추면서.

사랑의 빠떼루를 부르고 있었다.

영상을 본 탁 피디는 처음엔 눈이 번쩍 떠졌다가, 점점 실소를 흘리고 있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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