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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18화 (118/250)

118화. 정동희의 계획(2)

“그, 그러게요, 하하.”

할머니의 ‘이게 교육 방송’이냐는 물음에 난 확신을 담아 대답할 수 없었다.

오글거리는 춤사위를 보이는 두 명의 꽃미남 꽃미녀.

나이는 많아 봐야 고등학생? 좀 어리게 보면 중2~중3 정도로 보인다.

질풍노도, 혹은 사춘기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그들이…….

참으로 깜찍했다.

아니, 깜찍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생방송, 톡톡 보뉘하뉘]

프로그램 상단 구석에 박혀 있는 글씨를 보았다.

게다가 생방송이야?

노래는 립싱크로 하고 있는데, 왜 생방송이지?

어쨌든, 나와 할머니는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넋을 놓고 봤다.

함께 보기 민망해서,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자리를 지키셨다.

[친구들~ 안녕!]

보뉘와 하뉘는 손바닥을 쫙 펼쳐서 입에 대고 말했다.

[오늘 왜 이렇게 으스스한 기분이 들죠?]

[으~~ 지난주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인가……?]

[살아야 해! 오늘의 코너, ‘살리도, 아포칼립스!’ 여러분, 준비됐나요?]

[지구 멸망에서 살아남은 친구들! 오늘도 생존을 위해 달려 볼까요?]

두 MC, 보뉘와 하뉘가 열심히 멘트를 날리는데.

말 한마디도 그냥 하는 법이 없다.

말을 입이 아닌 얼굴로 하는 것 같다.

난 이게 왜 이렇게 오버스럽게 느껴지는지.

요즘 애들은 저런 걸 좋아하는 건가?

아니, 나도 애인데? 초등학생인데?

저런 액션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보뉘가 말했다.

[자, 그전에 오늘 출석한 친구들 이름부터 부르고 시작할까요?]

특히 보뉘의 말투가 거슬렸는데.

남자애가…… 왜 이렇게 여자처럼 말을 할까?

목소리를 일부러 가늘게 내고, 콧소리를 섞어서 말한다.

듣기가 하도 거슬려서, 잘하는 이비인후과를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덕후야. 쟤는 여자니? 남자 같기도 하고…….”

할머니도 한 말씀 하셨다.

“그러게요, 남자인 것 같긴 한데, 너무 여성스럽네요.”

[보뉘하뉘, 내 이름을 불러 줘~]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요?]

보뉘와 하뉘는 검지를 펼쳐 하늘을 쑤시며, 귀엽게 외쳤다.

[렛츠 고우~ 고고~!]

그리고 준비된 옆 세트로 걸어가는데, 뚜벅뚜벅이 아니라 깡총깡총 뛰어간다.

보뉘는 엉덩이를 한쪽으로 쑥 빼고 턱을 빼며 귀엽게 말했다.

[이름을 불러 주길 원하는 친구들!]

하뉘는 허공을 검지로 쑤시며 말했다.

[지금 바로 문자 주세요!]

보뉘는 양팔을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열~ 심히 문자 주는 친구들에게!]

하뉘는 윙크를 수십 방 날리며 말했다.

[이름을 불러 드리고 상품도!]

이번엔 둘이 함께 외쳤다.

[뽕뽕뽕~!]

“…….”

꾹 참고 보려 했는데, 도저히 항마력 딸려서 안 되겠다.

보뉘는 한쪽 눈을 감고, 허공에 손가락권총을 쏘며 잔망스럽게 외쳤다.

[빵야~ 빵야~ 선물 빵야~!]

하아…….

픽!

난 결국 채널을 생생정보통으로 돌렸다.

“응?”

할머니가 날 보고는 물었다.

“왜 돌렸니?”

할머니는 뭔가에 홀려 있는 눈빛이었다.

“할머니 보고 싶은 거 보시라고요.”

“왜?”

난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제가 잘못 알았나 봐요. 교육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러니?”

할머니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는.

“할머니는 살리도에서 사람을 어떻게 살릴지 궁금하구나.”

“네?”

“다시 돌려 봐.”

“……방금 봤던 거요?”

난 할머니의 요청이 믿기지 않아서 되물었다.

“그래, 교육 방송.”

“…….”

할머니의 눈빛을 봤다.

번뜩!

이건……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눈빛!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뉘하뉘를 갈망하고 계셨다!

왜?! 그게 궁금하신 거지?

아무런 감응이 없는 내가 이상한 건가?

“……네.”

다시 돌렸다.

보뉘와 하뉘는 여전히 잔망질을 하고 있었고.

웬 붕대를 감고 나온 두 사람이 나와서 서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꽁트를 하는데.

도대체 뭐 하는 건지…….

이게 오프닝 할 때 소개한 ‘살리도 : 아포칼립스’ 코너라는 건가?

[엇! 큰일이야! 가스가 새기 시작했어!]

갑자기 사람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니다가.

그중 한 사람이 쓰러지며 외쳤다.

[사, 살려 줘. 수, 숨 막혀, 신선한 공기~!]

살려 달라는 사람을 본 보뉘가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엇, 여기 부채가 있군! 그럼 부채를 이용하여 가스를 밖으로 빼내면 되겠군!]

하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와중에도 쓰러진 사람은 괴로운 듯 꿈틀거렸다.

[아니야! 손보다는 전기의 힘으로! 지금 바로 에어컨을 켜서 실내를 환기시키는 거야!]

뭐? 실내에 가스가 차고 있는데, 전기를 사용한다고? 뒤질라고?

“덕후야, 방금 뭐라고 그랬니?”

“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마음속으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었나 보다.

붕대 감은 사람이 가스 먹고 죽어 가는데 보뉘하뉘는 계속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부채?’ ‘에어컨?’ 이러고 있다.

[여러분~ 답은 뭘까요? 지금 문자로 보내 주세요~]

잠시 후.

[와~ 친구들은 부채를 선택해 주셨네요. 그럼 부채로! 바람의 힘으로!]

휘이잉―!

효과음이 들리고, 다 죽어가던 붕대 감은 사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뉘가 외쳤다.

[어?! 어! 살아났다! 기적이야!]

둥!

그때 조명이 어두워지며.

캔 유 필 마이 허트비트?

엇, 설마 이것은……!

허트 비! 비! 비! 트. 허트 비! 비! 비! 트

헐…… 이게 뭐야.

오후 2시 노래 맞네.

와…… 이게 정말 교육 방송이라고? 피디님은 도대체 무슨 약을 하셨기에 이런 생각을 하셨지? 살아날 때 이 노래가 나온다고?!

리슨 투 마이 헐 비트! 웨이팅 포유!

붕대 감은 남자는 벌떡 일어나서 노래에 맞춰 좀비 춤을 췄고.

보뉘하뉘도 신나게 춤을 췄다.

난 어처구니가 없어서 TV를 보는데.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어깨춤까지 추신다.

내가 이상한 건가?

어쨌든 난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도망갔다.

* * *

학교 가는 길.

난 어제 본 충격적인 영상을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이해는 안 되지만, 할머니는 재밌게 보신 것 같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냥 홀린 것 같은.

보실 마음은 없으셨는데, 어쩌다 보니 눈이 사로잡힌 느낌이었다.

근데 왜 난…….

지루하고 유치하게 느껴졌을까?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너무 오글거려서 보기가 어려웠을 뿐.

아무래도 나보다는 좀 더 어린 연령층에게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 같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든지, 유치원생이라든지.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내 또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교실 도착. 아직 일석이는 보이지 않는다.

약 10분 뒤.

일석이가 교실 뒷문으로 들어왔다.

“일석아~”

“여어~ 덕후”

일석이는 날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난 그를 재빨리 불렀다.

“빨리 이리 좀 와 봐.”

“어? 왜?”

일석이를 내 옆에 앉힌 뒤, 난 대뜸 물었다.

“너, 보뉘하뉘 아니?”

“보뉘하뉘?”

“응.”

“장난해?”

“뭐?”

“모를 리가 없잖아?”

이 물음 자체가 황당하다는 듯한 대꾸였다.

역시…… 내가 이상한 건가?

“왜~ 모를 수도 있지.”

“야, 야, 어떻게 하뉘 누나를 몰라. 6대 하뉘 누나이며, 2002년생, 혈액형은 A형, 별자리는 처녀자리…….”

맙소사, 구구단도 뒤늦게 외운 일석이가……!

하뉘의 프로필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와, 너…….”

일석아, 너 꽤 똑똑한 아이였구나?

공부가 관심사가 아니었을 뿐이지.

“좌우명은 카르페디엠! 더 궁금한 거 있어?”

“너 카르페디엠은 무슨 뜻인지 아니?”

“몰라, 알 게 뭐야.”

그냥 하뉘를 좋아하는 거구나?

“보뉘 형은?”

“관심 없어.”

역시 일석이. 확실한 친구네.

호불호가 뚜렷하다.

“근데, 보뉘하뉘는 왜? 너도 어제 편 봤냐?”

“응? 어어, 약간.”

“하하! 진짜 재밌지 않았어? 난 하뉘 누나가 허트비트 춤출 때 너무 이쁘더라~”

이래서 고객 조사가 필요하다는 거구나?

내 생각과 현장은 완전 달랐다.

정말 이해는 안 가지만, 일석이는 보뉘하뉘에 빠져 있었고.

매일 저녁에 그거 보는 낙으로 산다고 말했다.

하뉘 누나의 손가락 007빵을 안 맞으면 잠이 안 온다고.

마침 종권이와 기덕이가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얘들아!”

내가 손짓하자, 두 아이는 우리 반으로 들어왔다.

일석이만 나와 같은 반이다.

“덕후~ 오랜만.”

“조금 늦었지만 축하한다, 재원예중 합격했다며?”

난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 고맙다.”

난 재빨리 종권이와 기덕이를 앞자리에 앉힌 후 물었다.

“얘들아, 너희 보뉘하뉘 아니?”

그 이후에 여자아이들에게도 물어보고, 다른 남자애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보뉘하뉘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보뉘하뉘는 아이돌 지망생 혹은 현역 아이돌이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초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린다.

또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간혹 유명 연예인이 게스트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새로운 세계였다.

어찌 보면 내 나이 때에는 이게 맞는 세계인데.

지금껏 어른의 세계에서만 살아서인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호에 있어서 누가 맞다, 틀리다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내 취향은 초등학생 대중의 기호에서는 좀 떨어져 있는 게 맞았다.

보뉘하뉘의 재발견도 신선했지만.

내가 무늬만 초등학생이지, 실제로는 40대의 아저씨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자각한 순간이었다.

35세에 죽은 후 13년을 더 살았으니까.

대중이 사랑하는 트롯 가수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이제 취향도 공부해야 한다.

난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다짐했다.

* * *

토요일.

정동희를 만나러 가는 길.

학교에서 고객 조사를 해 본 뒤 마음을 먹었지만, 곧바로 정동희에게 전화하진 않았다.

생각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한 후,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다.

혹시 큰고모 때문에 못 나오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다행히 정동희는 나와 주었다.

“덕후야~!”

정동희는 얼굴이 갈수록 하얘진다. 얼마나 햇빛을 못 보고 살면…….

인천공항에서 전국민노래자랑으로 바로 왔을 때만 해도, 구릿빛 피부에 참 건강해 보였는데.

“형, 어디 아픈 거 아니지?”

너무 창백하니까 어딘가 아파 보인다.

“응~ 형 괜찮아.”

“큰고모는?”

“아직도셔.”

“와…… 세다.”

“하하, 그러게. 이번엔 좀 오래가시네.”

큰고모의 마음이 전혀 짐작이 안 되는 건 아니다.

4년을 넘게 한 이태리 유학을 마무리도 안 짓고 불시에 귀국했으니…….

“그럼 연습해 볼까?”

“아, 형. 그전에 잠깐만.”

“응?”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정동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얘기 먼저 하자.”

“무슨 얘기?”

“보뉘하뉘 말이야. 나, 출연해 보고 싶어.”

“뭐어?”

정동희는 동공이 커져서는 대답했다.

훗, 그렇게 놀랍나?

“형 말이 맞았어, 여러 가지 고려해 봤을 때 보뉘하뉘가 내 상황에 맞는 거 같고. 커리어에도 도움이…….”

“야아~!”

정동희는 안절부절못했다.

“왜 그래? 형?”

“그걸 이제 얘기하면 어떡하냐~?”

“왜? 난 그냥 형 만나서 얘기하려고 했지.”

“아오, 지금 몇 시야?!”

오후 1시 30분.

“야, 야. 30분 남았다. 아이고~ 어떡해, 어떡해!”

“뭐가 30분 남어?”

“오디션 접수 마감!”

……어?

“형이 얘기했잖아! 오디션 본다고!”

분명 오디션 본다는 말은 들었지만.

난 그냥 지원하고 나서 오디션 보는 거라 생각했는데…… 기한이 있는 거였어?

정동희는 문자메시지가 든 핸드폰을 내게 건넨 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씨, 어떡하지?”

문자메시지의 첫 줄.

‘공개 오디션. 보뉘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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