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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16화 (116/250)

116화. 커다란 웃음소리(2)

합격자 발표 날 저녁.

우리 가족들은 김 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오는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었는데, 오늘 같은 날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뭘 좀 사 오겠다고 연락이 왔었다.

“네 아버지는 뭘 사 온다고 이렇게 늦냐? 그냥 집 반찬에 맛있게 먹으면 되지.”

재원예중 합격 소식에 가장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셨던 할머니가 한 소리 하셨다.

막냇삼촌이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할머니는 헛기침을 하고는 맛을 덧붙였다.

“물론, 덕후가 합격해서 좋지. 난 우리 며느리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아서 하는 말이야.”

결국 막냇삼촌이 한마디 했다.

“엄마, 그거 아닌 거 알거든?”

“조용히 해.”

할머니가 한 대 때릴 듯이 말했고, 막냇삼촌은 입을 다물었다.

띡띡. 띠리리리~

그때 번호키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김 부장이 도착했는데.

한 손에 커다란 검은 봉지가 있었다.

도대체 뭘 사 오느라 늦었는지 궁금했다.

“뭐 사 온 거야?”

내 물음에 김 부장은 살짝 미소 짓고는 검은 봉지를 어머니에게 건네며 말했다.

“소고기 등심.”

“헉!”

지글. 지글.

식탁 가운데에 버너를 놓고, 그 위에 철판을 올린 뒤.

막냇삼촌이 능숙한 솜씨로 철판에 버터를 두른 후,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하하. 형이 진짜 기분 좋은가 보네? 이런 귀한 비싼 걸 다 사 오고.”

이번 생에 소고기 등심은 처음이다.

전생에서도 몇 번 못 먹어 봤지만만 너무나 강렬해서 맛은 기억하고 있다.

고기임에도 이상하게도 입 안에서 녹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미 냄새만으로도 환장할 거 같았다.

“덕후야~ 조금만 기다려, 소고기는 살짝만 익혀서 먹으면 되거든.”

“응.”

점점 핏기가 사라지는 소고기를 보면서 침을 삼켰다. 빛깔이 참 예쁘다. 그냥 날로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한우예요?”

어머니의 물음에 김 부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축하하려고 사 온 건데, 좋은 거로 사 와야지.”

“어머…… 진짜 비쌀 텐데.”

양도 꽤 많다. 김 부장이 꽤 알뜰한 사람인데…… 오늘 마음먹고 사 온 듯싶다.

어느 정도 고기가 구워지자.

김 부장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먼저 고기 한 점씩 올려 드린 뒤.

내 밥그릇 위에 고기를 여러 점 올려 주며 말했다.

“덕후야, 축하한다.”

“…….”

오늘 낮에 통화했을 때보다는 목소리는 좀 가라앉았지만.

확실히 평소보다 표정이 밝다.

“……고마워.”

김 부장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기 싫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축하해 준다고 소고기까지 사 왔으니까.

김 부장이 말했다.

“모두 맛있게 드세요.”

가족들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오냐~ 애비도 많이 먹어라.”

“형, 잘 먹을게~”

“당신도 많이 드세요~”

대가족의 풍족한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 * *

이것은 아이스크림인가 고기인가.

맛에 취한다는 게 이런 거겠지?

눈보다 손이 빠를 정도로, 정말 막 집어 먹었다.

우리는 평소 서로를 위해 주는 단란한 가족이며, 식사할 때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속도 조절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딴 거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막냇삼촌, 지아 누나. 그리고 나. 모두가 경쟁적이었다.

김 부장이 왜 이렇게 많이 사 왔나 싶었는데,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사 왔으면 싸움 날 뻔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찼고, 먹는 속도가 느려졌을 때쯤.

김 부장이 입을 열었다.

“작년에 재원예중 출신의 반 이상이 서울대에 합격했대요. 그리고 예술중학교 가운데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최상 등급을 받았다고 하고요.”

존댓말인 걸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하는 말이지만.

분명 이 타이밍에 말하는 것은 여기 모인 가족들 다 들으라는 거였다.

“아빠, 고등학교도 아니고, 중학교인데. 갑자기 서울대가 왜 나와.”

“그게 다 이어지는 거야.”

소고기에 소주도 곁들인 김 부장은 신나서 얘기했다.

“재원예중은 예술중학교 가운데서 경쟁률이 가장 높고, 어릴 적 영재라 불리는 아이들이 진학하는 곳으로 유명해요.”

“…….”

“입시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합격하기 힘든 곳이죠. 근데 덕후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당당히 합격했고요.”

김 부장은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인데, 오늘따라 유독 말이 많네.

문득, ‘전국민노래자랑’끝난 후 회식 자리에서 김 부장의 회사 동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 아버지, 완전 팔불출이야. 팔불출.’

실제로 눈으로 목격하니, 기대 이상이었다.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물어보지도 않은 것까지 끝없는 자랑이 이어졌다.

막냇삼촌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같은 가족임에도 항마력이 딸리고 있는 것이다.

하여간 김 부장에게는 ‘적당히’라는 게 없다.

가만히 듣던 할머니가 물었다.

“애비야, 덕후가 대단한 곳에 합격했다는 건 알겠는데, 네 말대로라면 거기 학비가 비쌀 거 같은데?”

“…….”

학비 얘기에 김 부장의 말이 뚝 끊겼다.

“혹시 국가에서 대 주니? 중학교니까?”

아니다, 재원예중은 사립이다.

합격자 발표와 함께 ‘신입생 등록금’ 안내에 관한 가정통신문이 있었다.

입학금 : 900,000원

수업료 : 1,600,000(1기분)

학교운영지원비 : 200,000(1기분)

교복비(동복) : 200,000

총 290만 원.

※실기수업료 : 3월 중 별도 안내.

나도 학비를 보고 너무 놀라서…… 이에 대해 김 부장과 상의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1기분’이라는 게 학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분기를 말하는 거였다.

즉 180만 원을 네 차례 납부해야 한다는 거고, 수업료만 따져도 1년에 640만 원이나 들어간다는 얘기다. 게다가 실기 수업료라는 게 별도니 천만 원 정도 들 수도 있다.

“사립이라서 국가에서 대 주는 건 딱히 없어요. 학비가 좀 비싸긴 한데, 이건 염려 마세요. 회사에서도 좀 지원을 해 줄 거고…….”

“으응, 그러니……?”

할머니는 김 부장의 표정이 굳은 걸 보고는 더 묻지 않았다.

김 부장은 대기업 부장이지만, 어쨌든 샐러리맨이며 그의 어깨 위에 6명의 가족이 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간다고 해서 없던 월급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수입이 똑같다면, 누군가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난 김 부장에게 물었다.

“아빠, 학비 어떻게 할 거야? 그거 가능해?”

“…….”

“나랑 상의 좀 하자. 정 안 되면 흙장난으로 들어온 저작권료로 해결해도 되고.”

김 부장은 내 말을 못 들은 듯했고, 난 그의 팔을 잡았다.

순간 그가 번뜩이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야.”

“어?”

“선 넘지 마라.”

“…….”

“학비는 네가 신경 쓸 부분 아니야. 이건 내가 할 일이야, 넌 열심히만 해.”

김 부장은 거칠게 내 손을 뿌리치고, 한마디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 * *

일주일 뒤, 금요일.

재원예중을 찾아가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합격자 등록을 했다.

이 또한 초등학생이 혼자 온 경우는 나밖에 없어서 시선을 좀 많이 받긴 했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등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일주일 전 일을 떠올렸다.

“상의하자는데 선 넘지 말라는 말은 뭐야? 하여간 맘에 안 든다니까.”

생각지도 못하게 김 부장에게 한 방 먹은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찝찝하다.

내 딴에는 생각해서 말한 건데.

아, 물론 김 부장을 생각한 게 아니라, 우리 가족 중에 나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받을까 염려돼서 그랬다는 것이다.

등록금 납부기간은 내년 1월.

아직 좀 시간이 있다.

다음 날. 대학로.

정동희가 이태리 가기 전, 매주 토요일에 기타를 배웠던 연습실에 도착했다.

그 이후로 5년 만인데, 변함이 없다.

그 자리에 아직도 있는 것도 신기했다.

“덕후야~!”

“형~!”

정동희가 나타났다.

며칠 전에 청담역에서 만났을 때보다는 얼굴이 좋아 보였다.

“형~ 가택 연금 풀린 거야?”

“아니~ 몰래 나왔어, 히히!”

“형…… 어쩌려고.”

큰고모 많이 빡세던데.

“엄마 외출 나가셨거든. 그리고 집에 일부러 핸드폰을 두고 왔어. 혹시 예상 도착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시면 잠깐 편의점 갔다 왔다고 하려고.”

“아…….”

정동희는 시계를 보고 말했다.

“어디 보자, 형 1시간밖에 여유가 없거든? 어서 연습하자.”

아……. 졸라 부담된다.

“난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잖아. 그런 거면 그냥 집에 있지, 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왔어?”

“얀마, 형이 원해서 온 거야. 너랑 할 말도 있고.”

정동희는 피아노 앞에 앉으며 말했다.

“뭐 하냐? 시간 없다니까?”

♪♬♩ ♪♬ ♪♬♪♬♩

♬♪♩ ♬♬♬ ♬♪♩ ♬♬♬ ♬

쇼팽 발라드 4번.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정동희, 송사무엘과 처음 서울대 연습실에서 테스트받았던 그 곡을 연주했다.

그때는 송사무엘이 연주를 하고, 난 옆에서 손가락으로 박자만 맞췄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연주할 줄 안다.

“와~ 덕후야!”

연주를 끝내자, 정동희는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너, 언제 이렇게 배웠니?”

“형, 얘기했잖아. 내가 학원 교육의 산실이라니까? 지난 5년간 노래, 춤, 악기 등 음악 관련해서는 안 다닌 학원이 없어.”

“야, 그래도 그렇지. 그럼 학원 다니는 애들은 다 너처럼 연주하게?”

난 이 말에는 딱히 대답 못 하고, 싱긋 웃기만 했다.

피아노 학원도 사실 두 번을 옮겼었다. 선생님이 내 실력을 소화할 수가 없어서.

“형이 몇 가지 포인트만 잡아 주면 되겠다. 지금 박자를 너무 세게 타거든? 곡 분위기에 따라서 건반에 느낌을 실을 줄 알아야 해. 그리고 페달을 그렇게 많이 사용할 필요 없어.”

정동희는 곡 해석과 느낌에 대한 설명을 주로 해 주었다. 피아노 연주법이라기보다는 피아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확실히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코칭을 받으며 몇 번 연습을 했더니, 소리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렸다.

연습을 마칠 때쯤.

“덕후야, 우리 다음부터는 실전 위주로 연습하자. 솔직히 네가 쇼팽 곡 연주할 일은 없을 거 아니냐?”

“하하, 그렇지.”

난 트롯 가수가 될 거니까.

“그래~ 가요 위주로 좀 다양하게 해 보자고.”

정동희는 그러고 나서 시계를 보았다.

“어우, 이제 10분밖에 안 남았네.”

그가 레슨 받는 내내 계속 시간을 체크하니까 나 또한 괜히 불안했다.

“형, 어서 가. 큰고모 오시겠다.”

“그래, 그래도 할 얘기는 하고 가야지.”

“아, 맞다. 뭔데 그래?”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건지, 내심 궁금했다.

정동희는 빙그레 미소 짓고는 말했다.

“우리, 고민해 보기로 했잖아. 어떤 방송에 출연해 볼 건지.”

가요 프로그램은 변성기 때문에 출연하기 힘들지만 방송 활동은 해 보는 거로 정동희와 얘기했었다.

다만 어느 프로그램이 적당할지는 고민해 보기로.

“덕후야, 넌 평소에 관심 있던 프로그램 있니? 여기 한번 출연해 보고 싶다 하는.”

“글쎄…….”

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대답했다.

“난 가요 프로그램 말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TV를 잘 안 보기도 하고.”

정동희가 슬쩍 웃는데.

회심의 미소 같아 보였다.

뭔가 답을 찾은 건가?

“왜, 형? 뭐 괜찮은 거 있어?”

“덕후야.”

정동희는 입을 천천히 열렸다.

“너, 혹시 ‘보뉘하뉘’라고 아니?”

“보뉘하뉘?”

“응, 교육 방송에서 하는 예능인데…….”

교육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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