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커다란 웃음소리(1)
나는 총각 너는 처녀
처녀와 총각이 잘 놀아난다 잘 놀아나요
김덕후의 군밤타령은 몇 분째 이어졌고, 면접관들은 이제 박수 치며 즐기고 있었다.
대머리 면접관만이 두 손을 부여잡고 꾹 참고 있었다. 흔들고 싶은 본능을 참아내기 위해.
얼싸 좋네 아하 좋네
군밤이여 에라 생률 밤이로구나
김덕후도 이제 시험 중이란 걸 잊은 듯했다. 그냥 놀고 있었다.
그는 관중이 있을 때 노는 걸 좋아한다. 지금 3명의 관중 앞에서 춤추고 노는 것이다.
나는 올빼미 너는 뻐꾸기
올빼미와 뻐꾸기가 잘 놀아난다 잘 놀아나요
오늘 하루 받았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버리려는 듯. 쏟아 내고 있었다.
그건 면접관들은 마찬가지였다.
만약 마지막 수험생이 이 장면을 봤다면, 부담스러워서 시험 못 봤을 것이다.
본인 순서 앞에서 무대를 폭파한 격이니.
얼싸 좋네 아하 좋네
군밤이여 에라 생률 밤이로구나
김덕후는 옆으로 서서 오른발을 앞으로 내밈과 동시에, 오른손을 한 바퀴 돌리며 면접관을 향해 내밀었다.
줄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이 동작을 반복하며 노래를 불렀다.
“헤이! 헤이!”
면접관들은 김덕후의 동작을 따라 하며 구령을 붙였다.
더 이상 시험이 아니라 다 함께 노는 거였다.
얼싸 좋네 아하 좋네
군밤이여~~~~~~
김덕후는 마지막 꺾기 신공에 들어갔고.
면접관들은 김덕후의 꺾기에 맞춰 목을 쭉 내밀었다.
생률 밤~~~ 이로구나~~~~!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노래가 끝나고.
김덕후의 손가락이 장구 치듯 바쁘게 움직였다.
타닷! 타닷! 다라다닷!
김덕후의 움직임이 드디어 멈추었고.
면접관들은 멍하니 바라봤다.
아직 뭔가 더 있을 것 같아서.
무반주 민요가 이렇게 다채로울 줄이야.
마치 남훈남의 ‘빅쇼’를 보는 것 같았다.
작은 201호실이 거대한 콘서트장처럼 느껴졌다.
김덕후는 끝난 자세 그대로 면접관들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면접관들은 크게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어머, 우와아~!”
“기가 막히네!”
오른쪽 면접관은 심지어 기립 박수를 쳤다.
이 모습을 대머리 면접관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면접장에서 기립 박수는 좀…….”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지만.
오른쪽 면접관은 무시했다.
짝짝짝!
“우와아~ 너 대박이다!”
흥분해서 면접 중이라는 것도 잊고 말이 짧아졌다.
오른쪽 면접관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이름이 덕후라고 했지?”
“네, 맞아요.”
“너, 어디서 뭐 했니?”
오른쪽 면접관은 이채로운 눈으로 김덕후를 바라봤다.
이곳에 자리한 면접관들은 재원예중에서 10년 이상 교직에 종사한 선생들이다.
한두 명의 학생을 봐 온 게 아니며, 졸업시킨 학생 수만 해도 백여 명이 넘는다.
딱 보면 안다.
물건인지 아닌지.
‘보통 아이가 아니야! 천재가 분명해!’
김덕후는 면접관의 질문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딱히 뭘 한 건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고 악기 다루는 걸 좋아했습니다. 좋아하는 걸 그냥 꾸준히 해 왔습니다.”
트롯으로 한정 지어서 대답하지는 않았다. 면접관이 그걸 물어본 것도 아니었으며, 어쨌든 합격해야 하니까
“아~ 그래? 몇 살 때부터 했니?”
실기고사가 다시 면접 전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었지만, 흥분한 면접관들은 머릿속에서 시간을 지워 버렸다.
“정확하게는 7살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오~ 빨리 했네?”
왼쪽 면접관은 노래가 끝난 뒤부터 김덕후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하단 말이야…….’
결국 물어봤다.
“혹시 방송 경험은 없니?”
“…….”
왼쪽 면접관은 김덕후가 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방송 경험은 없니?”
못 들은 게 아니라, 못 들은 척한 거였다.
그 질문에 고민이 되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하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한참을 고민하고는.
‘안 물어봤으면 모르겠는데, 물어본 거니 숨기지 말자.’
김덕후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대답했다.
“두 번 있습니다.”
“어머, 그래? 어쩐지 낯이 익더라. 어떤 방송?”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 ‘아침마당놀이’ 나간 적 있고요, 3주 전에는 ‘전국민노래자랑’에 나갔었습니다.”
“어머! 어머!”
‘전국민노래자랑’을 듣자마자, 왼쪽 면접관은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쩐지~ 어쩐지!”
놀란 나머지 두 면접관은 놀라서 왼쪽 면접관을 바라봤다.
근데 왼쪽 면접관은 더 놀란 눈으로 나머지 두 면접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두 분 모르세요? 꽃을 문 남자?”
“네? 뭘 물어요?”
다른 두 면접관은 전국민노래자랑 노원구 편을 못 본 것이다.
“아이구, 문화생활도 좀 하세요. 대화가 안 통하네.”
왼쪽 면접관은 하트로 변한 눈빛으로 두 손을 깍지 끼고, 김덕후를 바라봤다.
“어머, 실제로 보니 영광이다. 어쩜 좋아……!”
“…….”
김덕후는 말을 잃었다.
알아봐 줘서 고맙다고 대답하기도 뭐하고.
분위기가 애매해졌다.
대머리 면접관은 진작 끝내고 싶었는데, 지금이 타이밍이다 싶었다.
왼쪽 면접관은 계속 ‘어머, 어머’만 연발하고 있었다.
“자, 자, 면접 마치겠습니다. 14번 수험생 돌아가 주세요.”
김덕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 시험장에서 나갔다.
“감사합니다!”
* * *
김덕후가 나간 뒤.
마지막 15번 수험생이 들어왔는데.
너무 강렬한 걸 봐서인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으며,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다.
15번 수험생은 들어온 지 5분도 안 되어 시험장에서 나갔다.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뭘 잘못했나……?”
드르륵.
문이 닫힌 뒤, 시험장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어떻게 보면 15번 수험생 덕분에 면접관들은 흥분이 가라앉았다.
세 명의 면접관은 오늘 시험 본 아이들을 떠올리며, 제대로 채점을 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정리했다.
잠시 후 입시 감독관이 들어왔다.
“각자 채점표 완료하셨죠?”
“네.”
입시 감독관은 면접관별 채점표를 거둬서 나갔다.
다음 날.
입시 감독관은 면접관들을 호출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면접관들은 차례대로 도착했다.
입시 감독관의 표정은 심각했다.
“무슨 일이시죠?”
오른쪽 면접관의 물음에 입시 감독관은 말했다.
“세 분, 어제 채점 제대로 하신 거 맞습니까?”
“네?”
“보시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어쩌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릴 수가 있는 거죠?”
“…….”
면접관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돌아보았다.
“특히 한 학생에 대해서요.”
입시 감독관이 한 학생의 채점표를 꺼내었는데.
[김덕후.]
그 이름을 확인하고는, 대머리 면접관은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면접관의 채점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데?’
입시 감독관의 설명은 이어졌다.
“면접관들을 존중해서 저희는 받은 점수만 기록합니다만. 이번에 민요전공 TO는 2명인데, 3명의 동점자가 나와서 점수 채점이 잘못된 건 아닐지 자세하게 검수를 했거든요.”
꿀꺽.
대머리 면접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내가 점수를 그렇게 줬는데도 동점이 나왔다고? 도대체 점수를 얼마나 잘 줬기에……!’
그는 옆의 두 면접관을 살짝 째려보았다.
“홍성만 선생님?”
입시 감독관은 대머리 면접관, 홍성만을 불렀다.
“……네.”
홍성만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덕후 학생에게 실기 0점을 주셨던데.”
“네에?!”
입시 감독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른쪽 면접관과 왼쪽 면접관은 기겁해서 반문했다.
“0점?! 말이 돼? 그걸 봐 놓고선?”
입시 감독관은 오른쪽 면접관, 장명규에게 물었다.
“장명규 선생님. 왜 그렇게 놀라시죠?”
“아니, 말이 안 되는데? 홍 선생님! 혹시 실수하신 거 아니에요?”
“…….”
옆에서 듣던 왼쪽 면접관, 이유정 도 장명규의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박자에 맞춰서 발장구도 치셨잖아요.”
홍성만은 뜨끔했다.
‘헛, 그걸 언제 봤대?’
입시 감독관은 두 선생님의 말을 듣고 홍성만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더 짙어졌다.
“설명을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주관적인 평가를 하셨으니, 설명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
홍성만은 고개를 숙이고, 눈알을 쉴 새 없이 돌렸다.
한참 뒤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장르 파괴자를 싫어합니다.”
“응?!”
“이게 뭔 개소…… 흡!”
이유정은 욕 나오려는 걸, 황급히 막았다.
‘어이가 없네, 초등학생의 실기에 장르 파괴가 어째?’
입시 감독관이 물었다.
“그래서 0점을 주셨다고요?”
“…….”
홍성만은 이제 마음을 먹었는지, 뻔뻔하게 나갔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소신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입시 감독관에게 물었다.
“김덕후 군과 동점인 학생은 누구입니까?”
“수험 번호 4번 안재희, 수험 번호 10번 서연우.”
“휴~”
긴장한 표정으로 듣던 홍성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완전 밀리진 않았구나!’
입시 감독관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방금 뭐죠? 안도의 한숨?!”
“에이! 생사람 잡지 마세요!”
홍성만은 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의 행동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 두 명의 학생. 안재희와 서연우에 대해서 무조건 안 좋게 보기는 어려웠다.
두 학생 모두 면접과 실기 모두 지원자들 중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기도 했고, 다른 두 면접관도 좋은 평가를 남겼다.
면접관 한 명에게 ‘0점’을 받았음에도 이 학생들과 동점을 기록한 김덕후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입시 감독관은 장명규와 이유정에게 물었다.
“안재희, 서연우 학생에 대해서는 이의 없으십니까?”
“네, 두 학생 다 잘했어요. 기억에 남아 있으니 저희들도 점수를 잘 주었을 겁니다.”
입시 감독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TO가 두 명인데. 이 자리에서 상의를 하실래요?”
입시 감독관은 잠시 자리를 피해 주었고.
세 선생님은 대화를 시작했다.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장르 파괴자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럼 4번과 10번 학생이 못했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정상적으로 평가했다면 적어도 김덕후 학생은 바로 합격이죠.
―맞아요, 수석 입학이 당연한 실력이었어요.
―만약 얘기는 지금 하지 말자고요. 어쨌든 4번과 10번은 절대 합격 해야 합니다.
―두 학생의 학부모세요? 왜 그래야 하죠?
―어허! 입조심 하세요!
―말이 이상하잖아요. 절대 합격이 어딨어요!
그들의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 * *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누가 내 얘길 하나?
시험을 본 지 이틀이 지났고, 오늘은 합격자 발표 날이다.
시험도 잘 본 것 같고 해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발표일이 되니, 좀 떨린다.
구술 면접은 분명 만점일 거고.
실기 점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면접관들이 즐겨 주셨으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
집 도착.
방과 후에 핫트랙에 들렀다가, 합격자 발표 시간 16시에 맞춰서 왔다.
난 오자마자 곧바로 컴퓨터가 있는 막냇삼촌 방으로 향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시계를 보았다.
[16:01]
1분 지났네. 지금쯤 발표가 났을 거 같은데.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아웅~]
어머니의 요란한 핸드폰 벨소리가 들린다.
전국민노래자랑 이후, 카우보이의 퍼포먼스에 꽂혔는지 벨소리를 바꾸셨다.
“여보세요? 이 시간에 웬일…… 급한 일?! 잠깐만요!”
어머니는 핸드폰을 들고 급하게 내게 오셨다.
“아들!”
“네?”
“아빠한테 전화 왔다. 뭐 급한 일이라는데?”
“급한 일이요?”
뭔 일이지? 김 부장이 이 시간에?
난 바로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아들! 아들~!]
“어, 나야, 얘기해.”
김 부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큰 소리로 웃기만 했다.
“뭐야, 얘기하라니까? 뭔데?”
[아들! 합격 축하한다~! 하하하]
엇, 김 부장이 어떻게?
“어? 아빠가 어떻게 알어?”
[어떻게 알긴~ 학교 홈페이지 가서 봤지~ 하하!]
“아빠, 회사 아니야?”
[회사지~]
진짜 회사라고?
그 빡센 김 부장이 회사에서 딴짓을?
[하하하!]
회사가 떠나갈 정도로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