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중학교 입시(3)
오후 1시 40분.
실기 전형 20분 전에 대기실에 도착했다.
지하 연습실에서 내내 연습했고, 점심은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었다.
떡볶이와 순대를 시켜서 먹었는데.
시선이 따가웠다.
아무래도 혼자 먹어서 그런 듯싶었는데……. 난 전생에 혼밥 경력 5년이 넘는다.
난 너무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 보기엔 이상한가 보다.
정각 2시에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번엔 다른 선생님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오전에 봤던 그 선생님이다.
들어오자마자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전과는 날 보는 눈빛이 좀 달라진 것 같다.
‘뭐야, 할 말 있으신가? 왜 이렇게 뚫어져라 보시지?’
우리는 한참을 마주 보았는데, 선생님은 별말 없이 시선을 거두셨다.
“모두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선생님의 물음에 우리는 대답했다.
“네!”
“오케이~ 그럼 이제부터 실기 시험을 시작할 건데요. 이번엔 순번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먼저 들어가는 거 없습니다.”
헛…….
난 14번이다. 이 안에 수험 번호 15번까지 있으며, 난 뒤에서 두 번째.
거의 끝 번호에 가까운데.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가?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안 돼요, 안 돼. 이번에는 무조건 순번.”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여기 모인 수험생들은 전공이 같아요. 모두 ‘민요’ 전공 지원자들이니까. 이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연습하다가, 호명되면 201호로 가면 됩니다.”
“네~”
선생님은 한 여자아이를 향해 말했다.
“1번 수험생?”
“네!”
“2시 10분에 201호에 들어가세요.”
“휴우~ 네!”
드르륵.
선생님은 대기실을 나갔다.
“힝~ 왜 하필 나부터야? 긴장되는데…….”
1번 수험생은 앓는 소리를 했다.
내가 보기엔 졸라 부럽구만.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8번 들어오세요~ 네!”
하아…… 이제 반 지났다.
난 사람 많은 데서 연습하는 건 좀 꺼리는 편이다.
오전에 연습을 많이 하기도 했고, 난 간단히 목만 풀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장난 아니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좀보소~
여기저기서 지정곡과 선택 곡 연습하느라 난리인데.
모두 한복을 입고 왔다.
복장에 대한 얘기는 없었는데…….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다들 입시 준비를 열심히 했는지 실력이 탄탄했고, 듣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민요 소리 때문에 마음도 푸근해지고.
마치 한가위 같다.
난 연습은 그만하고 책상 위에 엎드려 아이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옆에 앉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이 크고 위로 올라간 게 고양이처럼 생긴 여자아이였다.
이 아이도 지루한 표정으로 그냥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너, 연습 안 해?”
고양이 여자애가 대뜸 말을 걸었다.
시험 대기실에 와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건 처음이라 반가웠다.
난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지만, 시험을 앞두고 다들 예민해 보여 참고 있었다.
“연습은 뭐 시험장 오기 전에 하는 거지. 하하. 이름이 뭐야? 난 김덕후라고 해.”
“알고 있어, 꽃을 문 남자.”
고양이 여자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툭 던졌다.
“봤니?”
“봤으니까 알지.”
말을 참 퉁명스럽게 하네. 사춘기인가? 여자가 남자보다 좀 빠르다고 하던데.
이름을 물어본 것에 대해선 대꾸가 없었다.
“지루해…….”
여자애는 세상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하품만 쩍쩍했다.
이후로 이것저것 난 더 말을 걸어보았지만, 단답형으로 대꾸하거나 혹은 씹었다.
이럴 거면 왜 와서 아는 척을 한 건지…….
말 상대 생겨서 기쁘게 생각했는데, 덕분에 나도 지루해진다.
“수험 번호 10번 들어오세요.”
고양이 여자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이팅~!”
난 그래도 얘기 나눈 정이 있어서, 화이팅을 외쳐 주었지만.
“…….”
씹는다. 이런 싸가지.
고양이 여자애는 잠시 후 대기실로 돌아왔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짧게 걸렸다.
그녀는 가방을 챙기고는 날 불렀다.
“야.”
“왜?”
“끝나고 나랑 놀러 가자.”
얘는 뭐지?
난 황당해서 고양이 여자애를 바라봤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다음에. 합격하고 나서.”
* * *
실기 시험장.
오전 구술 면접 때와 동일한 면접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13번 수험생까지 끝낸 후, 한숨을 돌렸다.
“휴우~ 요즘 아이들은 잘하네요.”
왼쪽 면접관의 말에 오른쪽 면접관이 대꾸했다.
“그러게요, 어째 실력이 더 좋아졌어요. 근데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해서 이걸 어떻게 뽑나……. 구술 평가가 당락을 좌우하겠는데요? 그건 좀 차이가 있던데.”
13번 수험생까지 실기 실력은 엇비슷했다. 간혹 눈에 띄는 수험생이 있어도 정말 약간의 차이였다.
하지만 난이도가 있었던 구술 면접에서는 좀 차이가 있었는데.
특히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는 수험생이 한 명 있었다.
[수험 번호 14번 김덕후 : 만점.]
문항지도 안 풀고 들어와서는 순식간에 끝내 버리고 나간 지원자.
오른쪽 면접관이 수험표를 보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김덕후 군 차례네요?”
“아~ 그 건방진 아이?”
대머리 면접관이 짜증 나는 얼굴로 말했고.
오른쪽 면접관은 중얼거렸다.
“그게 건방진 건가요? 그냥 좀 당돌한 거 아닌가? 예의는 잘 지키던데.”
“…….”
대머리 면접관은 심기가 불편했다.
‘일단 4번과 10번에 실기 점수를 가장 높게 주기는 했는데…… 구술 면접은 어쩔 수가 없으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머리 면접관은 4번과 10번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정답이 뚜렷한 구술 면접은 어쩔 수 없었다.
‘민요’ 전공의 올해 TO는 단 2명.
구술 면접 성적이 압도적인 김덕후가 실기 평가를 무난히만 넘긴다면 대머리 면접관의 계획이 틀어진다.
그래서 14번 김덕후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똑. 똑.
“수험 번호 14번. 김덕후입니다~”
오른쪽 면접관은 씩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오는군.”
“호호, 기대되는데요?”
대머리 면접관과는 달리, 다른 두 면접관은 김덕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르륵.
김덕후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베이지색 면바지에 체크무늬 남방. 오전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다른 수험생들이 한복 차림에 시험을 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김덕후는 멋쩍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수험 안내에 복장에 대한 얘기는 없어서…… 시험장에 와서 알았습니다.”
“민요 시험 보러 오면서 그 정도는 기본…….”
대머리 면접관은 김덕후의 멘탈을 흔들 기회라고 생각하고 한마디 하려는데.
오른쪽 면접관이 바로 말을 끊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사전에 알리지도 않았고, 필수 사항도 아닌 걸 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김덕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입시 학원은 안 다녔나 봐요?”
의미심장한 물음이었다. 예술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입시 학원을 통해 준비했다. 혹은 유능한 선생님을 초빙하여 개인 교습을 받거나.
“네, 어릴 적부터 음악은 계속해 왔고요, 입시 준비는 독학으로 했습니다.”
오른쪽 면접관이 더 물으려는데.
왼쪽 면접관이 말렸다.
“일단 노래부터 들어 보죠. 실기 보는 자리잖아요? 호호.”
“하하, 그래요.”
오른쪽 면접관은 김덕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궁금해진단 말이야, 애가 참…… 단단해 보여.’
김덕후는 주변을 살피고는 말했다.
“무반주인가 보죠?”
“맞아요, 바로 시작하시면 돼요. 지정곡부터.”
“네.”
김덕후는 목을 옆으로 돌리고 크게 소리 질렀다.
“아! 아~~ 아! 아!”
“어머, 깜짝이야!”
왼쪽 면접관은 목 푸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맑고 청아하지만, 심이 있는 목소리였다.
김덕후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지금 변성기 중이거든요.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런 학생 많아요. 감안하고 들을 테니까, 염려 말고 편하게 불러요.”
오른쪽 면접관의 말에 김덕후는 싱긋 웃었다.
흡~ 휴우~
지정곡, 풍구타령.
크게 심호흡을 하고 첫 소절을 뱉어 냈다.
불어라 불어라 어기엿차 불어라
불불불 불어도 만대장만 나온다
김덕후는 살랑살랑 박자를 탔고.
“어머…….”
왼쪽 면접관은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감탄사는 내지 않았지만 놀라기는 대머리 면접관이나 오른쪽 면접관도 마찬가지였다.
세 면접관 모두 한국음악 전문가들이다.
첫 소절만 들어도 안다.
‘김덕후는…… 다르다!’
신계 곡산에 풍구는 무쇳덩이도 녹이는데
우리집 낭군은 풍구 불러만 간다네
김덕후가 생글생글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데, 기가 막혔다.
어린이가 어설프게 부르는 수준이 아니었다. 가능성이 기대되는 꿈나무가 아니다.
그냥 완성된 가수였다.
목소리 톤, 태도, 눈빛. 모든 게 너무 능숙했다.
당장 무대에 세워도 될 정도.
물론, 트롯을 배운 김덕후의 노래 스타일은 민요의 가창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트롯은 민요와 꽤 가까운 사이이기에 많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강원도 아리랑, 한오백년 등 민요가 트롯으로 편곡되어 불러지는 경우도 많다.
즉 감성이 통한다는 것이다.
불어라 불어라 어기엿차 불어라
불불불 불어도 만대장만 나온다
김덕후의 트롯 스타일 민요는 어색함보다는 신선함에 가까웠다.
“자, 자, 그만 들을게요.”
오른쪽 면접관은 노래를 끊었다.
지정곡은 이만하면 됐고, 선택 곡을 빨리 들어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실기를 본 학생들의 판에 박은 듯한 스타일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본인에게 맞는 노래를 선택하여 불렀을 때 어떤 느낌일지.
“이번엔 선택 곡 해 볼래요? 뭐 부를 건가요?”
김덕후는 물 만난 고기 마냥,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풍구타령은 자기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군밤타령입니다!”
“오~!”
특유의 리듬을 타야 하는 노래.
대중적인 민요라서 쉬워 보여도, 6/8박자 리듬에 박자 타기가 꽤 까다로운 곡이다.
게다가 곡조가 단조로워서 실력을 뽐내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곡.
오늘 지원자 중에는 한 사람도 군밤타령을 선택하지 않았다.
김덕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면접관들에게 말했다.
“무반주이긴 하지만, 몸으로 소리 내는 건 상관없죠?”
“네? 그거야 뭐, 좋을 대로.”
김덕후는 손가락을 풀었다.
군밤타령은 박자감이 있어야 사는 곡이다.
‘장소가 뭐가 중요하냐? 음악 할 때는 노는 거지.’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김덕후의 손가락이 바로 움직였다.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김덕후가 어깨를 들썩이며 오른손가락으로 왼손바닥으로 쉴 새 없이 때리는데.
면접관들은 이게 뭐지 싶었다.
‘어머! 나 어릴 적에 우리 아빠가 하던 건데……. 이걸 여기서 보다니.’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김덕후는 크게 소리쳤다.
“얼쑤 좋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 바다에 어허얼싸 돈 바람 분다
김덕후는 이번에는 아예 춤을 추면서 불렀다.
여전히 손가락 박수를 치면서.
어깨춤을 추고, 다리를 휘적거렸다.
얼싸 좋네 아하 좋네
군밤이여 에라 생률 밤이로구나
면접관들은 절로 어깨가 들썩였고.
오른쪽과 왼쪽 면접관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얘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걸까?’
개가 짖네 개가 짖네
눈치 없이도 어허얼싸 함부로 짖네
이 대목에서 김덕후는 대머리 면접관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불렀고.
그는 괜히 뜨끔했다.
‘이상하네? 왜 욕 들은 기분이지?’
얼싸 좋네 아하 좋네
군밤이여 에라 생률 밤이로구나
욕 들은 것 같아서 기분은 분명 별로인데.
대머리 면접관의 손발과 어깨는 따로 놀고 있었다.
김덕후의 리듬에 맞춰 그의 발이 책상 아래서 발장구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