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중학교 입시(1)
개포동. 재원예술중학교 정문 앞.
입시를 하루 앞둔 예비소집일.
난 재원예중에 왔다.
10월의 싸늘한 공기가 감도는 아침. 난 옷깃을 여미고, 학교 전경을 살폈다.
‘앞으로 내가 다닐 학교란 말이지?’
아직 합격은커녕, 시험도 보기 전이긴 하지만.
훗. 내가 떨어질 리가 없지.
정문으로 들어가서 안내에 따라 재원예술관으로 향했다.
역시 꽤 사람이 많았는데, 나처럼 혼자 온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학부모 혹은 선생님과 함께였다.
어머니께서 함께 오겠다고 하셨는데, 집에 계시라고 했다. 집에서 멀기도 한데다가 겨우 예비소집을 굳이…… 나중에 입학식 때나 오시면 되지.
재원예술관 강단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데,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엄마, 떨려.
―저 잘할 수 있을까요?
―아우~ 학교 너무 좋아! 꼭 입학하고 싶어.
다들 긴장해 보이는데.
얼마 전 수백 명 관중 앞에서 최우수상 받았던 나로서는 뭐…… 심심하다.
아무래도 내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저 강단 위인 거 같은데.
“킥. 킥.”
난 혼자 또 낄낄대었고.
옆에 앉은 학생이 날 이상한 듯 바라보았다.
또각. 또각.
한 여성이 앞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재원예술중학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좌중은 일순 조용해졌다.
“저는 이 학교 교감 홍정은이라고 합니다.”
짝짝짝.
교감? 교감 선생님이라고?
아니 저렇게 젊은데?
아무리 많아 봐야 사십 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타이트한 정장 치마를 입은 교감 선생님은 이어서 말했다.
“간단히 안내 사항만 말씀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눠 드린 안내문을 참고해 주세요.”
예술관에 들어올 때 받았던 안내문을 펼쳤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희 학교에 입학하려면 내일 면접과 실기시험을 꼭 치러야 합니다. 예외 사항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교감 선생님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자주 하는 실수가 있는데요, 수험표를 꼭 챙기셔야 합니다. 간혹 두고 오는 수험생이 있는데, 그런 경우 응시 불가입니다.”
이쯤 되니 예비소집일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뻔한 얘기를 들으려고 온 게 아니다.
“시험장에 들어온 이후부터 휴대폰을 비롯해 어떤 전자 기기도 사용이 불가하며, 만약 사용이 발각될 시에는 곧바로 시험 자격이 박탈됩니다.”
시간 아깝다. 일어나야겠다.
난 휴대폰도 없으니, 사용할 일은 절대 없다.
그냥 내일 시험장에 시간 맞춰서 수험표 들고 나타나면 된다는 거잖아.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나서, 조용히 출구 쪽으로 빠져나가려는데.
“어머!”
한 학부모가 내 얼굴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너, ’꽃을 문 남자’ 아니야?!”
“예에?”
헉! 당혹스러웠다.
“맞네! 맞아~ 꽃을 문 남자! 어머~~!”
학부모는 앉은 자리에서 손뼉을 치며 난리였고.
예술관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학부모 옆에 앉은 딸이 말했다.
“엄마, 왜 이래~? 사람들이 쳐다봐.”
말은 그러면서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빨개졌다.
급기야 학부모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맞지?! 맞잖아~ 어서 맞다고 해줘~”
맞다고 안 하면 때릴 기세다. 아주머니, 체격도 좋으시네.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머~!”
학부모는 날 꽉 껴안았다.
“케켁.”
“너무 좋아~ 반가워! 아줌마 완전 팬이야! 너, 무대 진짜 멋지더라~”
학부모께서 이성을 잃으셨다.
여기 사람들이 많은데…… 체면 따위는 저 멀리 날려 버리신 것 같다.
“아, 네 감사합니다.”
“여기 입시 보려고?”
“네.”
“어머~ 전공은?”
“한국음악이요.”
“어머~ 멋져!”
뭐가 멋지다는 거지?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어머, 나 쟤 누군지 알겠어!
―누군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전국민노래자랑 노원구 편에서 무대 뒤집어 놓았잖아.
―아~ 그 핑크 정장?
―그래, 꽃을 문 남자 부른 애, 걔잖아!
―꽃을 문 남자라고 하니까 바로 알아보겠네
난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
시험 앞두고 이러고 싶지 않다.
―실물은 더 잘생겼네?
대부분의 웅성거림은 학부모들이었고.
학부모들은 날 알아봤지만, 아이들은 날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신기해하거나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자자, 모두 정숙해 주세요. 거기 학생?”
결국 교감 선생님이 나섰다.
“자리에서 왜 일어난 거죠? 어서 앉으세요.”
더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서 일어난 건데.
이 분위기에 눌려서 다시 앉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 뵙겠습니다!”
난 큰 소리로 인사하고 출구로 향했다.
사람들이 출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김덕후를 바라보는 가운데.
교감은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건방지네?”
* * *
재원예중 전형일.
오전 10시에 면접을 보고, 오후 2시에 실기를 본다.
난 평소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목 풀고, 발성 연습, 복식호흡을 했고.
가볍게 동네를 산책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역시 시험은 시험인 건가.
막상 시험 당일이 되니 좀 긴장이 되었다.
김 부장이 서류 가방을 챙겨서 현관 앞으로 나섰다.
난 그를 안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출근 인사는 한다.
나를 위해서 하는 거다. 버릇없는 아이로 비치면 행동에 제약이 생기니까.
“안녕히 다녀오세요.”
김 부장은 구두를 신으며 물었다.
“오늘 시험이지?”
“응.”
“입학일이 언제냐?”
합격 여부는 건너뛴 질문.
불합격은 김 부장의 머릿속에 없는 것이다.
“몰라, 내년 3월이겠지 뭐.”
김 부장은 더 말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향해 인사하고는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쾅.
김 부장이 나가고 문이 닫힌 뒤, 난 혼자 중얼거렸다.
“쳇, 시험 잘 보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해도 괜찮잖아?”
김 부장 출근 후 한 시간 뒤.
이젠 내가 나갈 채비를 하고, 현관에서 신을 신었다.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덕후야~ 가서 잘하고 오너라~ 우리 잘난 손자야 뭐, 실수만 안 하면 되지.”
음악 하는 걸 탐탁지 않아 하시는 할머니는 시험 잘 보라는 말씀은 안 하셨다.
그래도 아침마당놀이에 출연한 이후 음악에 조금 너그러워지셨다.
“덕후야, 조심히 갔다 와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문밖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따라 나오셨다.
“아이, 어머니~ 집에 계시라니까요. 먼 길 가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이래야 엄마 마음이 편해서 그래.”
“…….”
어머니와 함께 마을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 혼자 가도 되겠니?”
“걱정 마세요, 어제도 혼자 갔다 왔잖아요.”
“씩씩한 우리 아들.”
어머니와 나란히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 덕후, 많이 컸네~ 중학교 들어간다고 시험을 보러 가고.”
“하하, 많이 컸죠~ 조금만 더 있으면 제가 어머니 키도 따라잡을 것 같은데요?”
나를 보고 웃으시는 어머니의 눈빛이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우리 아들, 참 어른스러워. 근데 그 모습 보면 왜 이렇게 엄마가 미안한 마음이 들까?”
“에이~ 어머니, 왜 그러세요.”
부우웅~
그때 멀리서 마을버스가 보였다.
“그래, 엄마가 주책이네. 아들이 시험 보러 가는데.”
끼이익.
버스가 멈추고, 난 곧바로 올라타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일찍 올게요~!”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셨다.
“그래~ 우리 아들 화이팅!”
부우웅~!
버스가 출발하고,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정류장에서 한참을 서 계셨다.
* * *
재원예중에 도착했다.
집에서 여기까지 1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진이 좀 빠지긴 하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
긴 출퇴근 시간은 전생에 회사 다니면서 익숙했던 일인데, 13년간 월계수동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했더니…….
[한국음악과 면접 대기실 : 본관 2층. 202호.]
오늘 면접과 실기, 두 개 전형을 보는데.
실기보다 면접이 앞서 있다.
덜컹.
대기실 안에 들어서자, 도착해 있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마치 동물원에서 동물을 구경하는 것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을 좇았다.
‘아무래도 어제 예비소집일 때문에…….’
어제 한 학부모께서 난리 친 덕분에, ‘꽃을 문 남자, 김덕후’를 모르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예술중학교 준비하는 아이들 중에 ‘전국민노래자랑’ 애청자는 아마 잘 없을 것이고.
어제 그 난리 때문에 일부 아이들은 ‘전국민노래자랑’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시선으로 좇을 뿐, 수군거림은 없었다.
중요한 시험 날이기도 하고, 진학 면접은 다들 처음이라 긴장한 것도 있겠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일 테니.
‘정각 10시.’
교실 앞에 시계가 정확히 10시를 가리키자.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여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상큼한 외모에 귀티가 흐르는…… 어쩐지 플루트와 참 어울릴 것 같은 선생님이셨다.
“어디 보자…… 빈자리가 하나 있네요?”
아직 안 온 학생이 있었다.
“오케이, 14번 탈락!”
생글생글 웃으면서 참 해맑게 말했다.
“여러분 준비 다 됐죠?”
학생들은 고개를 파묻고 열심히 문제집이나 노트 등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묘한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뭐지? 대답하라는 뜻인가.
“네~”
난 밝게 대답했는데. 202호 대기실은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기까지 해 내 대답이 울렸다.
선생님은 깨끗한 내 책상 위를 보더니.
“넌 공부 안 하니?”
“오늘 시험 보러 온 거지, 공부하러 온 거 아닌데요?”
“…….”
묘한 시선으로 날 보다가.
“아주 자신만만해 보이네?”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 있었지만, 겸손해야 하니깐. 난 이렇게 대답했다.
겸손해 보여야 할 텐데.
선생님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 그럼 알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면접 방식 설명을 해 줘야겠죠?”
그녀의 설명을 요약하면.
면접 문항지를 나눠 주면, 지금 대기실에 20분간 푼다.
그리고 자신이 푼 문항지를 들고 면접실에 들어가면, 면접관의 질문에 따라서 답변하면 된다.
“과목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이며, 범위는 5학년 1, 2학기. 6학년 1학기예요.”
의아했다. 왜 면접 전형에서 면접이 아니라 시험을 푸는 걸까?
난 안내지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았다.
‘예절, 인성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필기시험으로 확인하면 될 만한 내용을 굳이 면접을 보고, 면접으로 확인할 만한 내용은 묻지 않는다니?
초등학생이라 인성, 예절은 안 보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필기구 포함, 모든 소지품은 가방에 넣도록 하세요.”
일제히 가방에 소지품을 넣자, 선생님은 볼펜 한 자루와 면접 문항지를 나눠 주었다.
“본인 시험지만 보세요.”
어차피 인원은 15명 남짓. 책상 사이가 멀어서 보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는다.
“흠…….”
난 찬찬히 문항지를 읽어 보았다.
‘①과 ②에 알맞은 말을 <보기>에서 골라보세요.’
―시는 ( ① )적으로 표현되어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희곡은 연극을 위한 것으로, 해설, ( ② ), 지시문으로 이루어집니다.
<보기 : 사건, 대사, 함축, 배경>
졸라 쉽다.
보기 없어도 풀 것 같다.
면접관이 질문하면 그 자리에서 풀어도 될 듯싶다.
음악 외에 시간 허비하는 게 제일 아깝다.
“선생님! 저 문항지 다 봤는데요.”
받은 지 3분도 채 안 되었다.
“네에?”
선생님은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
‘시험을 포기한 건가? 난이도가 좀 있는데?’
“지금 면접 봐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