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내가 널 대표한다(1)
‘하아…… 젠장.’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선글라스를 쓰기 전에 눈물이 차오르는 모습.
온 가족 앞에서 보였다. 너무 부끄러웠다.
재미있게 TV 보다가 이게 웬 날벼락인지.
민망하고 부끄럽다.
저게 울 일은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부끄럽다.
전생에는 안 그랬는데. 눈물 많은 것도 내력인가?
바윗돌처럼 앉아 있는 김 부장을 보았다.
아무래도 내력 같아 보이진 않는데.
TV를 시청하며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덕후야.”
어머니가 나직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네.”
“왜 울었어…….”
어머니는 울 듯한 표정이었는데, 목소리는 이미 살짝 잠겨 있다.
“어, 어머니…….”
당혹스러웠다. 어머니는 또 왜 이러시는 거야.
“노래 부르는 게 힘드니?”
“아니에요, 방금 저게…… 슬프고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난 뭐라도 둘러대려 했는데, 어머니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 덕후가 힘든 거 원치 않아.”
“…….”
“그런 모습 보기 싫다. 혹시 네 아빠가 강제로 시키니?”
“네?”
갑자기 김 부장에게 불똥이 튀었다.
김 부장이 아무리 회사에선 직원들을 이리저리 휘어잡는 저승사자 같아도 어머니에게만은 꼼짝 못 한다.
특히나, 이렇게 필 받았을 때.
“뭐, 뭐야. 왜 나한테 그래?”
김 부장은 식겁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내가 당신을 모를까 봐? 전국민노래자랑 우승해야 한다고, 애 닦달한 거 아니에요? 내 핏줄에 준우승은 없다고 하면서? 안 봐도 훤해. 아침마당놀이에서 덕후가 2등 했을 때 표정 안 좋은 거 내가 다 봤거든?”
“여보 5년 전 일을, 표정까지 어떻게 기억해……?”
“난 기억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나갔고, 김 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온 가족은 어머니의 포스에 완전히 눌렸다.
어머니 목소리가 올라갈 때는 할머니도 말리지 못한다.
어머니는 특히 자식 일에 민감하셨는데…… 오해지만 난 가만히 있었다.
상대가 김 부장이니까.
이럴 때 괜히 고소하다.
김 부장은 입을 꾹 다물고 샌드백이 되었고, 어머니는 두들겼다.
익숙한 장면이기에 나머지 가족들은 무시하고 TV에 집중하다가.
“애미야, 곧 있으면 상 타는 장면 나오는데…….”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말했고.
‘상 타는 장면’이라는 말에 어머니는 진정세를 보였다.
어머니는 초점을 TV로 옮기고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왜…… 이 정도면 많이 했지.”
김 부장은 피곤한 얼굴로 대꾸했다.
난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150만 원 상품권이 수여되고요. 연말 결선 참가 자격이 주어집니다.]
[두구. 두구. 두구.]
긴장된 북소리가 울렸고. 이제 최우수상 수장자가 발표된다.
결과를 아는데도, 괜히 떨린다.
“덕후야, 상품권은 어떻게 했니?”
난 수상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그거 아빠가 가져갔어요.”
“뭐어?”
어머니는 김 부장을 쏘아보았고.
김 부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새, 새삼스럽게 왜 그래? 덕후 수익 관리는 내가 하고 있잖아?”
“150만 원은 다르죠! 상의도 없이 그걸 싹 가져갔단 말이야? 진짜, 오늘 얘기 좀 찐하게 해야겠네.”
“……끄응.”
이쯤 되면, 아마 TV 끝나는 대로 김 부장은 일 핑계로 회사에 갈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김덕후 군! 축하드립니다!]
송회 선생님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빵빠레가 울렸고.
온 가족은 다 함께 소리쳤다.
―우와~!
―덕후 만세다!
―하하. 나이스! 다시 봐도 기분 좋네!
나 또한 벌떡 일어나서 기뻐했다.
“우와아~! 하하!”
가족들은 손뼉을 치며 내 이름을 환호했다.
―김덕후! 김덕후!
내 눈물과 상품권 문제로 표정이 굳어 있던 어머니도 이제 활짝 웃으셨다.
“김덕후! 김덕후!”
나 또한 가족들 앞에서 주먹을 뻗으며 내 이름을 연호했다.
[최우수상 수상자인 김덕후 군의 앵콜 무대로 오늘 전국민노래자랑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송회 선생님의 인사와 함께.
[빠바바밤 빠밤~ 빠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꽃을 문 남자의 전주가 시작되었고.
난 콜라 빈 병을 입 앞에 대고 거실 중앙에 섰다.
―꺄울~!
―우와! 김 가수! 노래 부르려고?!
TV에 나오는 전주에 맞춰서 엉덩이를 씰룩이다가.
힘차게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나아는~~
술도 안 마셨는데…… 콜라 마시고 취한 기분.
노래 시작과 함께 삼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꽃을! 문 남자아~~
어머니는 노래에 맞춰서 군대 박수를 치셨고.
김 부장 또한 활짝 웃고 있었다.
* * *
아침마당놀이 방송이 막 나갔을 때처럼.
전국민노래자랑이 방송에 뜨고 나니, 일제히 우리 가족들 전화기가 불이 난 듯 울려 대었다.
경험이 있어서일까?
이번엔 가족들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아마 다들 예상을 했던 것 같다.
모두들 의연하고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전화 받느라 정신이 없다가, 방송 끝난 지 한참 지나서 잠잠해졌을 때쯤.
띠리리링!
집 전화기가 울렸다.
가족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사용해서, 집 전화벨 소리 들을 일이 거의 없다.
그나마 핸드폰이 없는 내가 집 전화를 좀 쓰는 편이다.
“여보세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는 날 불렀다.
“덕후야~ 전화 받아라. 동희다.”
동희 형?
난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형.”
[덕후야~ 너 괜찮냐?]
“나야, 괜찮지. 형이야말로 괜찮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정동희는 이태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게 아니라, 중도 귀국한 것이었다.
그것도 귀국하자마자 내가 ‘전국민노래자랑’에 참가한다는 소식 듣고 집에 들르지도 않고 우리 집에 온 거였다.
우리 집에서 이틀 밤을 자고 돌아간 이후에야 큰고모는 정동희의 귀국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김 부장이 큰고모한테 좀 시달렸다.
김 부장은 억울할 뿐이었다. 정동희가 얘기를 안 해 주니, 당연히 그 또한 몰랐으니까.
‘이 썅놈의 시끼, 여보! 소금 뿌려! 다음부턴 집에 오지 말라 그래!’
큰고모한테 얼마나 시달렸는지, 김 부장은 그날 화가 많이 났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 연락도 안 되고, 정동희는 거의 반죽음이 되어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이 들었는데…….
[하하. 괜찮겠냐? 용돈도 안 주고~ 밥도 안 줘~ 요즘 매일 삼각김밥 먹고 있다.]
“헐…….”
[괜찮아~ 엄마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참 대책 없다.
어쩌려고 저럴까? 나이가 적지도 않고, 좀 있으면 서른인데.
한편으로는 그런 정동희가 약간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십 대.
내 전생을 돌이켜 봤을 때, 그때가 찬란하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시기. 삼십 대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인생의 방향이 확고해져 버릴 것 같아서, 괜히 겁도 나고 고민도 많았었다.
아마 정동희도 많은 고민을 하다가, 뭔가 결단을 내렸던 게 아닐까 싶다.
“형…… 어쩌려고 그래?”
이해는 되어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야, 야, 너까지 왜 그러냐~? 형 걱정은 형이 할 게~ 다~ 계획이 있어!]
내가 알던 범생이 동희 형이 맞나 싶다. 이 와중에도 참 속 편해 보이네.
[방금 방송 잘 봤다~]
“아~ 형, 봤어? 그거 땜에 전화한 거야?”
[그래~ 역시 덕후가 화면 빨을 잘 받어~ 완전 최고였어! 아마 난리가 날 듯한데?]
“하하! 고마워, 형~”
[아, 이미 난리가 나긴 했지?]
“응? 이미 난리가 나? 뭐 있어?”
[…….]
수화기 너머로 말이 없었다.
왜 그러는 걸까?
“형? 전화 끊겼어?”
[……덕후야.]
“어, 얘기해.”
[우리, 만나서 얘기할까?]
뭔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지?
“그래, 나야 형 만나는 거 좋지.”
[형이 지금 멀리 나갈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네가 좀 가까이 올 수 있겠니?]
“어? 왜?”
[지금 집에 유배 중이야. 오래 외출하면 돌이킬 수 없을걸?]
큰고모가 진짜 화가 많이 났나 보네.
“형 만났다가 나까지 유배당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비밀 작전 펼쳐야지.]
“알았어, 그럼 내가 청담동으로 갈게.”
[오케이.]
* * *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로 집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해선 부모님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늦게 들어오지만 않으면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유의 맛을 조금씩 맛보고 있는데, 아주 꿀맛이다.
수유역에서 출발하여, 전철을 갈아타고, 또 갈아타서.
청담역에 도착했다.
“덕후야~!”
역 출구 바로 앞에서 정동희가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형…….”
몰골이…….
전국민노래자랑이 3주 전이었다.
정동희와도 약 3주 만에 만나는 건데.
눈은 퀭하고, 볼살도 쏙 들어갔다.
헤어스타일은 여전히 말총머리이긴 한데, 3주 전에 봤던 미끈한 이태리 청년 느낌은 아니었다. 옷도 후줄근했다면 노숙인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같은 말총머리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하하, 많이 초췌하냐?”
“큰고모 진짜 화 많이 나셨나 봐.”
“안 맞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한 다섯 살만 적었어도 맞았을 거야.”
“…….”
하아, 이것도 집안 내력인가?
김 부장만 빡센 게 아니네. 아무리 정동희가 막 나갔어도 29살 먹은 청년을 얼마나 쥐 잡듯이 잡았으면……. 큰고모도 장난 아니네.
“형, 김밥 먹을래?”
가까운데 김밥헤븐이 보였다.
보아하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 같은데.
비싼 거 사 줄 돈은 없고…… 라면에 김밥 정도는 가능하다.
“그, 그럴까? 근데, 형이 돈이 얼마 없어서…….”
“내가 살 거야.”
“미안.”
정동희는 비굴한 미소와 함께,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형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 거지새끼가 따로 없다.
김밥헤븐.
초등학교 6학년 동생한테 밥 얻어먹고 있는 정동희.
말없이 고개를 처박고 먹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니, 3주간 삼각김밥만 먹었다는 게 사실인가 보다.
“생명의 양식이다, 진짜. 생명의 양식.”
정동희는 국물 한 방울까지도 감사해하며 싹싹 긁어 먹었다.
“캬아~ 잘 먹었다.”
난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따라서 가져다주었다.
“형, 마셔.”
“어, 고맙다. 덕후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형, 혹시 말이야.”
“응.”
“밥 얻어먹으려고 나 여기까지 부른 건 아니지?”
“뭐? 하하!”
정동희는 껄껄대며 웃었다.
“야아~ 내가 빌어먹을지언정 양아치는 아니야~”
“응, 그럴 거라 믿어. 그리고 만약 그런 의도였다고 해도 괜찮아.”
난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형이 나한테 베풀어 준 게 얼만데? 그 좋은 기타도 형이 사 줬잖아. 지금도 잘 쓰고 있는걸.”
“더, 덕후야…….”
정동희는 감동받은 듯했다.
심지어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아, 미안.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드니까 감수성이…….”
“괜찮아, 형. 근데 내 이름 부를 때 더듬지만 말아 줘.”
“어?”
“더듬을 거 같으면, 차라리 그냥 ‘야’라고 불러 줘.”
안 그래도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더덕’ 소리까지 듣고 싶지는 않다.
정동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응, 알았어. 조심할게.”
그는 물을 한 잔 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덕후야, 형 오늘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응? 무슨 연락?”
정동희는 핸드폰을 켜서 보더니.
“JBS, MBS, SBC, 대한일보, 고려일보…….”
그는 방송사와 신문사 이름을 쭉 읊었는데, 10개도 넘었다.
“그리고 각종 기획사에서도 연락이 왔거든? 필승엔터테인먼트, 스타피쉬, 메가히트엔터테인먼트, JJP…….”
연예기획사 이름은 더 많았다. 들어보지도 못한 별 희한한 이름들까지도…….
정동희는 날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형 핸드폰, 오늘 완전 불났었어.”
“아니…… 근데, 왜 형한테 다 연락이 가는 거야?”
“그야…….”
정동희는 곧바로 대답하려다가.
잠시 멈추고 생각하더니,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내가 널 대표했었잖아, 가수 김덕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