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일요일 12시 30분
난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다.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오면서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어른이 되어서 뭐가 되겠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정했다. 난 7살 때 트롯 가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지금 고민하는 진로는 그 트롯 가수가 되기 위한 과정에 대한 것이다. 특히 10대에 많은 것을 좌우하는 학교.
학교를 관두지 않고, 고등학교까지는 꾸준히 다니는 것은 고정불변이다. 이 조건으로 김 부장이 가수가 되는 걸 허락했었으니.
그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느 학교로 진학할 것이냐인데.
크게 일반 중학교와 예술중학교를 두고 계속 저울질했었다.
예술중학교는 특수한 곳이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솔직히 내 선택의 문제지, 어느 학교를 지원하든 떨어질 자신이 없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충천해 있고, 이미 지난 5년간 학원 교육을 통해 음악 관련해서는 안 배운 게 없다.
판소리, 전통민요, 성악까지.
물론 한 부분만 팠던 아이들에 비해 깊이는 좀 부족하겠지만, 내겐 다양한 장르가 짬뽕된 시너지 효과가 있다.
필기와 면접도 자신 있고.
내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공부 잘하니까.
나도 내가 왜 음악과 공부는 노력하지 않아도 왜 잘하는 것인지. 여러 방식으로 원인을 찾아 보려 했다.
김 부장의 유전자 탓이라고 받아들이기 싫어서 정말 열심히 고민해 봤지만, 13년이 지난 지금도 핏줄의 힘 말고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젠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예술중학교의 원서 접수 마감은 9월 10일까지다.
전국민노래자랑의 본선일은 9월 4일. 예선부터 본선까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접어 두고 전국민노래자랑에만 집중했었다.
전국민노래자랑이 끝나는 대로,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 보려 했는데.
이렇게 곧바로 정리가 될 줄은 모랐다. 깔끔하게.
* * *
“그러니까, 재원예술중학교에 원서 접수를 하겠다고?”
“응.”
전국민노래자랑이 끝난 다음 날. 일요일 저녁.
김 부장에게 말했고, 그는 내게 몇 차례 확인했다.
“네가 예술중학교 입시를 볼 거라고 예상을 했다만은 왜 하필 재원예중이냐? 집 가까운 곳 놔두고.”
1달 전. 김 부장은 서울 4개의 예술중학교 입시요강을 내게 줬었다.
당시에 예술중학교로 진로를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고민 중이니 정보를 준 것이다.
음악을 시작한 이후로 진로에 대한 얘기는 모두 김 부장과 상의한다.
뭐,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렇게 하기로 했었으니까.
또한 난 미성년자이고, 김 부장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재원예중은 우리 집에서 가장 멀었다. 개포동에 있으니까.
“재원예중 학생이 노래를 아주 잘하더라고. 배울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전국민노래자랑을 끝남과 동시에 진로를 결정하게 된 것.
이찬우 덕분이다.
이찬우는 현재 재원예술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성악 전공인 건 아는데, 세부 전공까지는 모른다.
“이찬우?”
“응, 이번에 우수상 받은 형아.”
김 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 그 목청 크던.”
“맞아.”
이찬우와의 승부에서 내가 이기긴 했지만,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승패의 여부를 떠나서 탐났다.
나도 엄청난 성량과 구수한 발성을 갖고 싶다.
“하긴…… 발성이 일반적이진 않더라.”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에 가서 재원예중 입시요강을 가지고 왔다.
“원서 접수가 10일까지네? 이번 주 금요일.”
“응 맞아.”
김 부장은 찬찬히 읽고는.
“그럼 전공은? 성악으로 할거지?”
재원예중은 음악과, 한국음악과, 무용과, 음악 연극과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 있다.
그 아래로 세부 전공이 나뉘는데.
성악 전공은 음악과와 한국음악과에 구분되어 있다.
즉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의 서양식의 성악은 ‘음악과’에 속하고.
판소리, 민요, 가야금 병창, 정가 등의 성악은 ‘한국음악과’에 속한다.
“당연하지. 가수 지망이니 성악으로 가야지.”
역시 김 부장답게 모집 요강만 보고도 성악 전공이 구분된다는 걸 간파했다.
“성악이 두 분류로 나뉘네. 당장 이번 주에 원서 넣어야 하는데, 정했겠지?”
“응. 한국음악과.”
“한국음악과 성악 전공이라…….”
트롯과 가장 가까운 쪽이 ‘민요’라고 생각한다.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것은 학원 교육을 통해 배웠다.
재원예중에서는 한 분야를 심도 있게 배워 보고 싶었다. ‘민요’는 가르치는 곳도 잘 없다.
김 부장은 입시요강을 뒤적이며 말했다.
“많아 봐야 겨우 5명 뽑는데? 티오가 2~5명이라고?”
“응, 맞아.”
이상하게도 한국음악과의 성악 전공은 너무 적게 뽑는다. 재원 예중의 각 전공 중에서 TO가 가장 적었다.
“너무 빡센 거 아니냐?”
“그래도 붙을 사람은 붙겠지.”
“재원예중은 예술중학교 중에서도 꽤 경쟁률이 높은 거 같던데…….”
“괜찮아.”
그때, 김 부장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너, 그 괜찮다는 말, 떨어지면 일반 중학교 가면 되니까, 이런 의미는 아니겠지? 떨어지면 말고?”
김 부장은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다.
선민의식(選民思想). 내 핏줄은 특별하다는 생각.
“지원했으면 합격해라. 자신 없으면 지원조차 하지 마. 1등 못 하는 건 봐줄 수 있지만, 떨어지는 건 용납 못 해.”
난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을.”
그 성향, 나도 좀 있는 듯?
* * *
그 주간에 난 학교장 직인을 받아서 재원예중에 원서를 넣었다.
선생님은 내가 재원예중 입시를 본다고 하니, 좀 의아해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응원해 주셨다.
3주가 지났다.
드디어 전국민노래자랑 노원구 편 방송 날.
일요일 12:30분.
“덕후야~ 어서 와라!”
우리 가족은 월드컵 중계를 기다리는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였다.
점심시간이기에 어머니는 간단하게 비빔면을 준비해 주셨고.
큰삼촌도 아침 일찍 왔다.
김 부장과 삼촌들은 캔맥주를 따고 기다렸다.
“아오~ 광고 졸라 기네!”
막냇삼촌이 캔맥주를 따며 투덜거리는데.
[빰바밤 빠밤~ 빠라바 빠라바 바밤~]
―우와아~!
광고가 끝나고, ‘전국민노래자랑’ 특유의 오프닝 전주가 울리자.
우리 가족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빰바밤 빠밤~ 빠라바 빠라바 바밤~”
심지어 막냇삼촌은 오프닝송을 따라불렀고.
큰삼촌의 딸, 내 친척 동생 다율이는 음악에 맞춰 뒤뚱뒤뚱 춤을 췄다. 4살인 다율이가 방긋방긋 웃으며 춤을 추니 너무 귀엽다.
[전국민~!!]
곧 송회 선생님이 나와서 선창을 했고.
우리는 현장의 있는 관중들처럼 일제히 소리쳤다.
―노래자랑!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더 신났다.
5년 전 아침마당놀이가 TV에 나올 때도 즐거웠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이번엔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나 김덕후가 우승자니까. 그것도 최우수상!
[얼씨구 좋다~ 안녕하십니까, 송회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송회 선생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3주 만에 보는 얼굴.
현장에서 난 그를 할아버지라고 불렀었다.
중요한 순간에 몇 마디 말과 눈빛으로 내게 큰 힘을 주셨던 분.
TV로나마 오랜만에 이분의 얼굴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만수무강하시기를…….
오프닝멘트는 짤리는 부분 없이 거의 다 나왔고.
[정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초대 가수 정진의 무대가 시작됐다.
[바람이 분다~ 길가의 주점~]
정진을 목소리를 쫙 깔고, 노래를 불렀다.
얼굴이 클로즈업되니,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역시…… 능숙하다.
노래도 괜찮게 하지만, 표정 연기는 진짜 완벽하다. 그냥 프로.
“짜식, 귀엽네.”
지아 누나가 옆에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입이 헤벌쭉한데…… 너무 티 나게 좋아한다.
“덕후야.”
“응?”
“정진 왜 우리 집에 안 오냐?”
“언제 놀러 온다고 그랬어?”
“내가 오라고 했잖아. 너희 친한 사이 아니었어?”
사실…… 정진에게 몇 번 놀러 오라고 했었는데, 지아 누나가 부담스러워서 못 오겠다고 했었다.
너무 대놓고 들이대니까.
“일주일 내로 오라 그래.”
“…….”
난 대꾸하지 않고, TV에 집중했다.
직접 나갔던 프로그램이고, 내용을 다 알고 보는 건데도 재밌었다.
특히 난 출연자들을 다 알고 있고, 바로 옆에서 얘기 나누며 준비했던 사이라 더 보는 재미가 있었다.
30분쯤 지나니 ‘땅꾼과 뱀돌이 팀’이 나왔고.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무대가 시작됐다. 특히 마지막, ‘땡’이 극적으로 ‘딩동댕동댕’로 바뀐 부분.
재밌으면서도 극적이었다.
“이야…… 쟤네가 인기상 받았잖아. 덕후 친구라고 했지?”
막냇삼촌의 말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송회 선생님이 살린 거네. 선생님께 많이 고마워해야겠다.”
난 말 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카우보이 아저씨의 ‘보삐보삐’.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가깝게 지냈던 출연자 중에 유일하게 연락이 안 되고 있다.
3주가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전국민노래자랑 따라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TV를 통해 ‘보삐보삐’를 보다가.
2차 예선에서 합격한 후, 펑펑 울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살짝 울컥해졌다.
“참 대단하다~ 여러 의미로.”
50대 아저씨의 ‘보삐보삐’ 춤사위를 보며 큰삼촌이 말했다.
[신! 토불이여어~~!]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굴까~]
곧이어 준우승자, 이찬우가 나왔다.
―와~ TV로 봐도 성량 죽이네.
―화통을 삶아 먹었어.
구수한 몸짓과 얼굴로 무대를 휘저으며 노래 부르는 이찬우.
방송으로 봐도 참 기가 막히게 잘했다. 배울 점이 많다.
노래 실력만 보면 정진보다도 위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나와는 스타일이 달라서 비교가 어렵고.
어느덧 50분이 훌쩍 갔다.
마지막 순서만 남겨 놓고 있었다.
* * *
김덕후는 집중해서 화면을 바라봤다. 좀 전까지 웃으며 TV를 지켜보던 얼굴이 싹 사라졌다.
[어이쿠~ 마지막 참가자가 꼬마 신사군요.]
핑크빛이 일렁이는 한 소년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정말 상큼했다. 라즈베리 하나가 통통 튀며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우와아~!
―김덕후! 김덕후!
―드디어 나왔다!
그가 나오자 가족들은 난리였다.
김덕후는 가족들의 반응을 보고 살짝 미소 짓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봤다.
[빠바바밤 빠밤~ 빠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전주와 함께 막 노래가 시작되려 할 때쯤.
말총머리 청년이 김덕후에게 장미꽃을 건네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막냇삼촌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뭐야! 저거 동희 아니야? 장미꽃 동희가 준 거였어? 으학학학!”
가족들은 왁자지껄 웃었다.
[나는~~~ 나아는~~~~]
[꽃을! 문 남자아~~~]
막상 노래가 시작되니, 가족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핑크빛의 향연. TV를 뚫고 나와 고막을 때려 박는 청아한 목소리.
모두 넋 놓고 무대를 지켜볼 뿐이었다.
핑크빛 나비는 하늘하늘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관중들을 모두 물어뜯었다.
“와, 내 손자지만 진짜…….”
할아버지가 웅얼거렸다.
[나는 나아는~~~~윽]
노래의 끝.
클라이맥스에서 목소리가 살짝 잠기는 부분이 나왔다.
김덕후는 입술을 깨물었고.
김 부장의 미간도 살짝 꿈틀거렸다.
다른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TV에 집중하고 있었다.
김덕후의 눈. 카메라 클로즈업.
눈가에 물이 차오르고 있는 게 그대로 카메라에 찍혔다.
어머니는 놀라서 입을 가렸다.
[꽃을! 문~~ 남즈아아~~~!]
눈물이 차오르던 그 순간.
TV 속의 김덕후는 바로 선글라스를 썼다.
하지만…… 김덕후의 눈물을 본 가족들은 놀랐다.
노래가 끝났지만.
집은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