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아카시아 산장(1)
나는~ 나아는~~
꽃을! 무~~~~~
앵콜 곡의 마지막 소절을 길게 꺾었다.
정진이 내 옆에 있었고.
관중들은 황홀한 눈빛으로 나와 정진을 우러러봤다.
우우운~~~~~~
일부러 길게 뽑았다.
끝맺음이 아쉽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기고 싶어서.
―어머, 쟤 숨넘어가는 거 아니야?
―승철 오빠보다 폐활량이 더 좋은 거 같아!
―연습했나?
아니, 연습 같은 거 안 했다.
숨은 원래부터 길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핏줄의 힘?
남즈아~~~~~~ 아!
마지막에 정진이 화음을 같이 넣었고.
우리는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길게 뽑다가, 정확하게 동시에 딱! 끊었다.
빰~ 밤~!
반주가 끝남과 동시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
―앵콜! 앵콜!
난 정진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와아~!
그리고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나의 사람들을 보았다.
어머니, 김 부장, 가족들, 김 부장의 회사 동료들…….
신바람과 정동희.
정말 불태웠고, 처음으로 우승을 맛봤다. 전생을 통틀어서 경연 대회라는 걸 나가서 1등을 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활약을 했던 아침마당놀이에서도 우승은 못 했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김덕후! 김덕후!
―여기 좀 봐 줘~!
―덕후야!
아주머니들은 난리를 쳤고, 몇몇은 진행 요원들을 뚫고 무대 위로 올라올 기세였다.
그때 멀찍이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내가 방송 활동을 쉬고, 간혹 연습 삼아 지방 무대를 다녀도 어떻게든 나를 찾아와 주었던 팬.
5년 전, 아침마당놀이에서 내게 찾아와 첫눈에 반해 팬이 되었다고 고백하셨던 분.
지연 엄마.
오늘도 오셨구나.
5년 전의 약속대로 난 간혹 무대에 서는 날이면 메시지를 그녀에게 보내 준다.
처음엔 매번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했었다. 작년에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거의 다 찾아오고 있다.
난 지연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녀는 내 손짓을 눈치채고, 높이 손을 들어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뒤돌아 갔다.
* * *
앵콜 무대까지 모두 끝났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전국민노래자랑’에 연락처 등록. 상품권 수령 등…… 우승자라 그런지 은근히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얼추 다 끝내고, 출연자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일석이와 친구들은 가족들과 먼저 갔고, 카우보이 하재춘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차피 다 같은 노원구민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하재춘은 또 이사를 가거나 이직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조만간 다 함께 뭉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다음 스태프들 모두를 돌며 인사했다.
예선 때부터 고생 많았던 스태프들에게 격려 인사를 했는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친절했던 여성 작가님.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뒤돌아서려 했다.
“덕후야~ 연락처 좀 알려 달라니깐.”
“제가 핸드폰이 없어서요.”
“집 전화는?”
“아…… 기억이 안 나네요.”
“아, 그래? 참가지원서 보면 되지 뭐.”
그거 개인정보법 위반일 텐데? 이때는 아직 그런 법이 없었나?
“담에 봐~ 누나가 맛있는 거 사 줄게~ 몸조리 잘하고~ 연락할게~ 오늘 정말 멋졌어~!”
여성 작가님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우리 엄마랑 동갑내기로 보이는데 누나라니…… 허.
마지막으로 최 피디에게 인사했다.
“덕후야! 이제 가니?”
“네, 방송국에서 하라는 건 다 했어요.”
“그래~ 오늘 수고 많았고. 참 고맙다. 네 덕분에 역대급 녹화가 된 거 같아.”
“에이~ 제가 고맙죠. 좋은 추억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선곡을 바꿨는데도 협조해 주신 거 감사하고요.”
“협조? 하하, 초등학생이 쓰는 단어가 참…… 요즘 6학년은 그러니?”
“네? 하하, 그럼요~ 6학년이면 이제 알 거 다 알죠~!”
속으로 뜨끔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최대한 조심하는데도 비즈니스 얘기가 나오면 간혹 실수하게 된다.
최 피디는 내게 악수를 건네었다.
“또 보자.”
“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꼭 보는 거야, 알겠지?”
연말 결선 참가는 어려울 것 같지만…… 일단 대답했다.
“네~ 알았어요.”
그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렴.”
관중이 다 빠진 텅 빈 체육관.
출연자 일부와 뒷정리하는 스태프들만 남았다.
신바람, 정동희, 정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 다 했냐?”
신바람의 물음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네~ 빼먹지 않고 다 하려 했는데…… 다 한 거 같긴 해요.”
“그래. 인마. 인사 잘하고 다녀야 돼.”
“알고 있습니다~ ‘인사는 저축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말씀. 하하!”
내가 웃으며 말하자, 신바람도 빙그레 따라 웃었다.
정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그래도 좀 과하다. 누가 보면 선거 유세하는 줄 알겠어. 도대체 인사를 어디까지 하는 거야?”
이 말에 신바람이 눈을 부라리며 대꾸했고.
“이 자식이 확~ 이게 머리가 굵었어? 니가 스타야?”
정진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으이구, 말을 말아야지. 독한 말 쏟아 내시는 건 여전하셔.”
“어쭈? 지금 일부러 다 들리게 중얼거린 거지? 확~!”
신바람이 팔을 걷어붙이려는 찰나.
“아들!”
김 부장이 체육관 정문에 서서 날 큰소리로 불렀다. 그 옆에 가족들과 회사 동료들이 있었다.
“엇!”
김 부장을 발견한 신바람은 딱딱하게 얼어 버렸고, 막 걷어붙였던 소매를 다시 내렸다.
우리 네 사람은 김 부장을 향해 걸어갔다.
“김진하 씨, 안녕하세요.”
신바람은 김 부장을 향해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김 부장은 그답지 않게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는데.
회사 동료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 네, 신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 좀 가볍게 하시라니깐…….”
“아, 네, 죄송합니다.”
신바람은 그러면서 더더욱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김 부장은 한숨을 쉬고 더 말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은 신바람과 정진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5년 전, 할아버지 칠순 잔치 이후로 처음이니까.
―와~ 어쩌면 신바람 선생님은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똑같아요~
―그때 덕분에 진짜 재밌게 놀았었는데~
―정진! 만나고 싶었어~
―끼리끼리 논다고, 덕후 못지않게 이쁘게 생겼네~
갑자기 지아 누나가 정진에게 다가갔다.
“정진, 나 덕후 누나 김지아야. 기억나냐? 너, 많이 컸다?”
“응, 아, 네.”
지아 누나는 중3. 정진은 중2다.
“더 괜찮네.”
“네?”
“예전보다 말이야. 말 놔, 왜 존대하고 그래?”
“아…… 응.”
정진답지 않게 당황했다.
“언제 한번 보자?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든가. 덕후 보러 안 오냐? 한 번쯤은 올 줄 알았는데.”
가족들과 김 부장 회사 동료들 다 있는 앞에서.
지아 누나는 거침없이 직진했다.
어머니는 당황해하셨다. 지아 누나가 더 진도 빼기 전에 나서셨다.
“지아야, 인사 그 정도 했으면 됐어.”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딱히 말릴 말한 말이 없었다.
이때, 김 부장이 나서서 화제를 전환했다.
“지금 식사하러 갈 건데 함께 가시죠.”
말이 끝나게 무섭게 신바람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요, 감사합니다만 전 됐습니다. 밀린 곡 작업이 있어서…… 지금 바로 가서 일해야 해요.”
정진은 지아 누나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저녁에 스케줄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이상하다? 좀 전에 출연자 대기실에 있을 때만 해도 더 일정 없으니 끝나고 뭐 먹을지 얘기했었는데?
신바람은 김 부장, 정진은 지아 누나를 피하려는 거 같다.
김 부장이 말했다.
“왜요? 일 있으시면 식사하시다가 중간에 일어나시면 되죠. 돼지갈비 먹으러 갈 건데. 저희 동네 ‘아카시아 산장’ 맛있거든요.”
돼지갈비! 아카시아 산장!
헐, 거길 가다니!
김 부장이 오늘 기분이 좋은가?
꿀꺽.
간판을 상상한 것만으로도 군침 돈다.
신바람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신바람은 선수를 쳐서 먼저 빠져나갔고, 정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저, 저, 선생님! 같이 가야지, 치사하게!”
그러더니 뒤를 향해 소리쳤다.
“매니저 형~ 매니저 형~!”
아무 대답도 없는데, 정진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매니저 형’을 부르며 달려갔다.
신바람과 정진.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김 부장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큰삼촌~!”
정동희가 손들고 말했다.
“저한테는 왜 안 물어봐요?”
“얀마, 넌 당연히 가는 거지. 가족이잖아.”
김 부장은 씩 하고 남자다운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 * *
아카시아 산장.
월계수동에서 가장 큰 돼지갈빗집.
야산 초입에 있는 갈빗집인데, 실내외 식사가 가능한 곳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갈빗집.
어렸을 적부터 기념일에만 간혹 오던 곳인데, 오늘은 좀 한가해 보였다.
우리는 실외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저녁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지만, 김 부장은 주말에 시간을 내서 찾아와 준 회사 동료들에게 밥이라도 한 끼 사 먹여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흠…….
잠시 내 1회차 과거를 생각해 봤다.
그 시절의 김 부장은 직원과의 사적인 자리를 극도로 꺼렸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젊을 때라 그런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가족들까지 대동해서 회사 동료들과 식사 자리 갖는 것 자체가…….
어쨌든 무대에 온 힘을 쏟아서 허기가 지기도 했고, 돼지갈비니까.
초반에 난 먹는 데 집중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찬 이후.
김 부장과 회사 동료들의 관계가 궁금해졌고, 난 음식을 천천히 먹으며 관찰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소맥으로 시작한 어른들은 술 마시는 속도가 빨랐고.
김 부장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마시는 분위기였다.
거기에 삼촌들은 엄청난 술고래인데, 그분들까지 끼니 점입가경이었다.
저녁쯤 되어 해가 어수룩해질 무렵.
김 부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취하도록 마시는 스타일이 아닌데, 오늘은 좀 달랐다.
“오늘 전국민노래자랑 우승자가 누구야?”
김 부장은 계속 이 말을 반복했다.
벌써 다섯 번째.
동료들은 웃으면서 그의 말을 받아 주었다. 그의 기분을 고려한 탓도 있겠지만, 안 받아 주면 어쩌겠는가. 이 자리에서 최고 상사인데.
―김덕후입니다~
―핑크빛 멋쟁이 신사 덕후죠~
김 부장은 살짝 혀 꼬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김더쿠! 김더쿠는 누구 아들이야?”
아…… 민망하다.
어머니는 피식 웃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말없이 웃으셨다.
동료들은 웃으며 받아 주었다.
―아! 김 부장님 아들이죠~!
―멋진 아드님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아들 없는 집은 서러워서 살겠어요? 하하!
동료들의 말을 들으며 김 부장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 내 아들이지. 내 아들 김덕후!”
다행히 날 보며 이런 말을 하진 않았다.
“어이쿠, 소변.”
김 부장은 살짝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거. 잡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헛, 나 지금 김 부장 걱정한 건가?
난 고개를 젓고는 못 본 척했다.
“나는 나아는~ 꽃을 문 남자아~!”
김 부장은 ‘꽃을 문 남자’를 흥얼거리며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자리를 비우자, 동료들은 중얼거리며 잔을 비웠다.
―아~ 맞춰 주기 힘들다.
―하하, 아들이 우승했으니 기분 좋으시겠지.
―어휴~ 평소보다 더하시네.
평소보다 더하다고?
그때, 동료 중 한 명이 날 불렀다.
“덕후야!”
“네.”
“네 아버지 완전 팔불출이야,. 팔불출. 너, 팔불출이 뭔지 아니?”
“…….”
알고 있지만 안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알 만한 단어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얼마나 네 자랑을 하는지, 귀에 못이 박힌다. 아주. 하하!”
‘……김 부장이?’
‘나는 나아는 꽃을 문 남자아~’
김 부장이 벽을 짚은 채 휘청휘청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