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05화 (105/250)

105화. 꽃을 문 남자(1)

“김덕후 군!”

송회 선생님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날 불렀다.

“네~ 선생님!”

“노원구 어디에 사시나요?”

“월계수동에 살고 있습니다~”

“아~ 월계수동 좋죠, 우리 막내의 고을 자랑 한번 들어 봅시다~”

내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 송회 선생님은 일부러 분위기를 띄워 주려는 것 같다.

난 여전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전방의 관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월계수동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집 앞에 초안산이 있는데, 조선시대 내시 분묘가 많은 곳이죠. 앞에는 우이천이 흐르는데, 수질이 좋지 않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북한산 계곡의 물고기가 떠내려오기도 합니다.”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이야…… 진짜 똑 부러지네

―초안산이 내시 분묘가 있는 곳이었어?

―쟤 뭐야……? 13살이라며?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앞선 설명에서 느끼셨겠지만, 월계수동은 참 서울 같지 않은 서울입니다. 지방 가면 공기 좋다고 하던데, 전 우리 동네 공기가 더 좋던데요.”

관중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와하하!

―찬양하는 거야, 까는 거야?

―녀석, 말 재밌게 하네.

그리고 난 말을 끝마쳤다.

“결론은…… 전 우리 동네를 참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휴우~ 겨우 끝냈다. 긴장해서 뭔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송회 선생님은 날 보며 싱긋 웃었다. 관객들이 박수 치는 동안 그는 마이크를 내리고 날 향해 물었다.

“잘했다. 이제 노래할 수 있겠니?”

관객들 앞에서 한참 떠들어 대었더니, 긴장감과 울적함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

“월계수동이 참 멋진 곳인가 봅니다. 동네 이름만 해도 범상치가 않긴 하죠~”

큐시트를 한번 본 후 말했다.

“자~ 그럼 마지막 참가자 노래 한번 들어 볼까요?”

송회 선생님은 씩 한번 웃었다.

“오늘 김덕후 참가자가 입은 의상과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네요. 로맨틱하지만 상남자가 부를 수 있는 곡.”

송회 선생님은 손을 무대 위로 확 뻗으며 외쳤다.

“꽃을 문 남자!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 * *

최 피디는 불안한 눈빛으로 송회 선생님과 김덕후의 인터뷰를 보고 있었다.

“괜찮을까? 왜 갑자기 무대 직전에 노래를 바꾼다고…… 정진이 얘기했다고?”

조연출 또한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네, 저도 갑자기 정진이 와서 얘기하길래 좀 놀랐는데…… 물어보니까 둘이 예전에 한 팀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최 피디는 눈이 동그래졌다.

“뭐어? 한 팀?”

“네. 5년 전에 ‘방울형제’라는 팀으로 잠깐 활동했었다고.”

“방울형제…….”

“자작곡도 있어요. 아마 팀 이름은 생소하셔도 곡 이름 들으면 바로 아실걸요?”

“뭔데?”

“흙장난이라고…….”

탁!

최 피디는 갑자기 무릎을 쳤다.

“아~ 그래서! 어쩐지 이름이 낯익다 했네!”

“네?”

“쟤네 아침마당놀이 나왔을 때, 너무 신기할 정도로 잘하길래 내가 전국민노래자랑 출연자로 섭외하려고 했었거든.”

“아…….”

“근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락이 닿지를 않더라고.”

조연출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했다.

“정진은 계속 방송 활동을 했는데요?”

“내가 섭외하려던 건 정진이 아니야.”

최 피디는 인터뷰를 끝낸 뒤 숨을 고르고 전주를 기다리는 김덕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네가 오고 싶을 때 오려고 그랬나 보구나.’

전국민노래자랑은 지역 주민만이 출연 자격을 갖는 게 기본 룰이지만, 간혹 특출한 재능을 가진 참가자에게 출연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오~ 오~ 시작한다.”

빠바바밤 빠밤~ 빠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꽃을 문 남자 특유의 흥겨운 전주가 울렸고.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한 소년이 몸을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무대 아래서 김덕후를 지켜보고 있던 정동희.

그는 한 여성 관객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네?”

말총머리의 건장한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자, 여성은 긴장했다.

정동희의 시선은 여성의 가슴 쪽에 꽂혀 있었는데.

여성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근데, 정동희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저…… 꽃 한 송이만 빌릴 수 있을까요??

“네? 빌려요?”

정동희의 시선은 여성이 안고 있는 꽃다발을 향했던 것이다.

“좀 급합니다. 무대 끝나고 바로 돌려드릴게요.”

“네? 아…… 네.”

휙―!

여성이 대답을 듣자마자, 그녀가 안고 있는 꽃다발에서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뽑아서 무대 바로 앞으로 달려갔다.

빠바바밤 빠밤~ 빠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1차 예선 때 김덕후는 ‘꽃을 문 남자’를 반주 없이 불렀었다.

이 신나는 곡에 반주까지 받쳐 주니, 날아다녔다.

전주에 맞춰서 엉덩이를 돌리고, 발을 이리 찍고 저리 찍고 그냥 막 사정없이 찍어 댔다.

나는~ 나아는~~

김덕후의 미성이 체육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끝 음을 늘리면서 털었는데.

그때 마침 약속이라도 한 듯.

“덕후야, 받어!”

무대 아래서 정동희 장미꽃을 던졌고, 김덕후는 그 꽃을 받았다.

꽃을! 문 남자아~~~

한 소절을 끝낸 후 받은 장미꽃을 입에 앙~ 물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내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관중들을 싹~ 흘겼다.

―꺅~!

―어머! 어머! 어머어~!

―꺅~ 졸라 이쁘게 생겼잖아? 선글라스 왜 썼던 거야?!

빠바바밤 빠바바바밤

간주 동안 벗은 선글라스를 안주머니에 넣고, 장미꽃은 앞가슴 주머니에 꽂았다.

정동희는 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신바람 선생님, 덕후가 선글라스 벗었는데요? 벌써 극복을 한 건가?”

신바람이 말했다.

“극복이라기보다는 무대라서 자신을 잊어버린 거죠.”

살랑이는 핑크빛을 보며 신바람은 웃었다.

“저 녀석은 태생부터 딴따라입니다.”

활짝 핀 당신의~~ 꽃잎을 물어요!

사랑이 새길 수 있게~

김덕후의 눈이 돌아가 있었다.

예선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텐션과 몸짓으로 관중들을 휘어잡았다.

‘사랑이 새길 수 있게’ 부분에서는 두 손을 모아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었는데, 여성 관객 몇 명은 이마를 짚으며 쓰러졌다. 이제 시작인데…….

꽃 같은 당신 향기가 마음을 휘저어 놓으며

온통! 나를! 유혹하네요.

손을 확~ 휘저었다가 잡았다.

김덕후의 손이 허공을 움켜쥐는데.

왜 관객들이 가슴 아파하는 건지.

능청스러운 표정과 몸짓.

관객들에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덕후가 절대 13살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남자.

활짝 핀 꽃잎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장수말벌 같은 남자였다!

나는야 그대 몸 위로 영원히 날고 싶어라

김덕후가 노래를 부르니, 왜 이렇게 가사가 상상이 되는지.

은유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해석하기에 달린 것이다.

‘날고 싶다’는 의미를 관중들은 대부분 야릇하게 받아들였다.

그만큼 김덕후는 곡 해석을 기가 막히게 하며 부르고 있었다.

2회차인 김덕후이기에 가능한 무대. 평범한 초등학생이라면 도저히 이렇게 못 부른다.

아마 원작자도 이 무대를 보고 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이 곡이 이렇게 섹시한 곡이었다니 하면서…….

체취에 취해 눈빛에 취해 보다 못 해 물어 버린

앙~

노래 소절이 끝난 다음 김덕후는 이빨을 앙 다물었다.

몇몇 아주머니들은 나 좀 물어 달라며 가슴을 두들겼다.

―와~ 미치겠다.

―저걸 어째야 쓸까!

―납치할까?

납치 못 한다.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연체동물 같았는데.

아마 손에 잡혀도 곧 미끄러져 버릴 것이다.

‘큐티 더티 섹시’.

관중들은 그저 녹아났다.

무대도 눅진눅진하게 녹아내릴 것 같았다.

―어쩌면 남자가 저리 선이 고울까?

―발레를 배웠나?

―아직 어려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에이~ 어리다고 다 그렇진 않더라. 우리 아들도 13살인데.

1절은 끝낸 김덕후는 2절부터는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자~ 다 함께요~!”

김덕후는 마이크를 관중석으로 돌렸고.

관중들은 다 함께 불렀다.

나는야 그대 몸 위로 영원히 날고 싶어라

체취에 취해 눈빛에 취해 보다 못 해 물어 버린

밤! 밤! 밤!

김덕후는 손을 올렸고.

밴드는 연주를 멈췄다.

밴드는 김덕후의 호흡에 완전히 맞춰져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후…….

곡의 멈춤과 함께.

좀 전까지 들썩이던 체육관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 정적을 암살자의 칼처럼 김덕후는 기습적으로 베어 냈다.

나는 나아아~~ 느은!

꿀꺽.

정동희는 침을 꿀꺽 삼키고 탄식했다.

“아…….”

마지막에 살짝 잠긴 소리가 났다.

일반적인 사람은 못 느낄 정도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차이였다.

꽃을! 문~~ 남즈아아~~~!

우와아~!

마지막 소절을 부른 후, 김덕후는 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빠바바밤 빠밤~ 빠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그리고 마지막 전주에 맞춰서 신나게 몸을 흔들었고.

밤! 밤!

드디어 전주까지 모든 노래가 끝났다.

“헉. 헉.”

김덕후는 양손을 쫙 펼친 마지막 포즈를 취하고, 숨을 헐떡였고.

―우와아악~!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관중들은 난리였다.

―김덕후! 김덕후!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

모두가 일어나서 김덕후의 이름을 연호했다.

김덕후가 쓴 선글라스 아래로.

땀방울인지 눈물이 뭔가가 흘렀다.

꽉 깨문 입술 위로 계속 흘러갔다.

그래도…….

김덕후는 장미꽃을 다시 꺼내어 물었다.

* * *

후우― 후우―

큰 실수 없이 무대를 끝낸 것 같긴 한데.

아쉽다. 많이 아쉽다.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니, 원래 더 잘했는데.

관중석에서 정승처럼 서서 날 바라보는 김 부장이 보인다.

그의 뒤로 보이는 현수막.

김 부장은 웃지도 실망하지도 않고.

내 노래가 끝나자 묵묵히 손을 들어 박수만 쳐 주었다.

이 많은 관중들 속에서도 왜 김 부장만 보일까?

그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왜? 이제는 내 상사도 아닌데?

무대 위에서 김 부장과 그가 준비해 온 3개의 현수막을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 정말 하기 싫지만.

입 밖으로는 절대 낼 일은 없겠지만.

약간은 미안하고 고마운…….

출연자 대기실로 왔다.

어쨌든 이제 다 끝났다.

선글라스는 벗어 버렸고, 재킷의 단추도 풀었다.

―우와아~!

아오, 깜짝이야!

날 보자마자 출연자들이 난리였다.

―김덕후! 김덕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덕후야아~!!”

와락!

일석이가 가장 먼저 달려와 날 안아 주었다.

“정말 잘했어! 자랑스럽다! 진짜~ 너 내 친구 맞지?!”

“하하. 그럼 맞지~ 고맙다.”

다른 출연자들도 모두 아낌없이 축하해 주었다. 근데 왜 이렇게 몸을 더듬으면서 축하해 주는지 모르겠다.

다들 내 어깨나 머리를 한번씩 만져 보려 했다.

그리고…….

“덕후야, 축하한다.”

이찬우가 다가와서 웃었다.

“마지막에 곡 바꾼 거 전략 좋았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니?”

“응? 아아…….”

일부러 곡을 바꿨다고 생각하나 보다. 근데 굳이 속사정을 얘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신나는 곡이 땡기더라고.”

“그래~ 잘했다. 너, 무대 체질인 거 같아. 예선 때보다 훨씬 더 잘하더라.”

그는 내게 악수를 내밀었다.

“완전 인정.”

“하하! 고마워, 형.”

그때, 출연자 대기실 입구 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덕후야!”

정진이 날 부르는 소리였고.

그 옆에 신바람과 정동희가 있었다.

울컥.

그들을 보니, 갑자기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8살 적에는 이럴 때 난 바로 신바람에게 달려갔었지.

난 울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고 쭈뼛쭈뼛 그들에게 다가갔다.

신바람이 날 내려다보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덕후야, 잘했다.”

“…….”

그리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선생님, 저 이제 안 울 거예요.”

고여 있는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고 난 애를 썼다.

신바람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내 눈가를 훔쳐 주었다.

“그래,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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