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02화 (102/250)

102화. 20년의 마무리

“덕후야~!”

“일석아~!”

무대를 내려온 일석이와 얼싸안았다.

난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하아~ 땡인 줄 알고…….”

일석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하하, 그러게. 나도 놀랐어, 송회 선생님 덕분에…….”

너무 능청스러워서 연출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땅꾼과 뱀돌이가 많이 개판이기는 했다.

심사 위원의 ‘땡’은 진심이었을 것 같다.

송회 선생님이 내 친구들을 살린 것이다.

“그럼 우리 인기상 탈 수 있을까?”

“…….”

구사일생한 팀이 바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여긴 축제의 자리니까.

“그럼~ 관객들 반응 못 봤어? 송회 선생님도 그렇지만, 관객들이 너희를 살린 거야. 불합격은 말도 안 된다고 했잖아?”

“맞아!”

옆에 있던 기덕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불합격됐으면 난리 났었을 거야. 송회 선생님이 프로그램 살렸지.”

이 녀석들은 도대체가…….

번데기를 처먹었나?

아무리 축제라지만 너무 뻔뻔한데?

기덕이는 할 술 더 떴다.

“일석아, 걱정하지 마. 우리 인기상 탈 거야.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고,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은 배신하지 않…….”

뭐 귀 막을 거 없나?

도저히 더 이상은 못 들어 주겠다.

“얘들아~ 그럼 좀 쉬어~”

난 결국 자리를 피했다.

정진과 나란히 앉아서 출연자들의 무대를 지켜봤다.

땅꾼과 뱀돌이 무대 이후에 심사 위원 소개 있었고.

“덕후야.”

“응?”

“저기 앉아 있는 심사 위원 중에 한 분, 낯익지 않아?”

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아침마당놀이 심사 위원으로 나왔던 분인가?”

“하핫, 기억하네? 5년 전 일인데.”

“내게 처음이자 유일한 방송 출연이었는데, 당연히 기억하지.”

정진은 웃으며 말했다.

“음악평론가잖아. 그때 우리 곡 ‘흙장난’보고 일회성이니, 애들 무대치고는 괜찮다느니 그런 말 했었는데.”

그래서 더 잘 기억한다.

아주 시니컬하고 기분 나쁘게 평했던 심사 위원. 그것도 애들이라 심한 말은 못 하겠고, 꾹꾹 눌러서 한 말이라고 했었다.

“나중에 ‘흙장난’ 잘되니까, 태도 싹 바뀌더라. 지금은 방송국에서 마주치면, 너희들 흙장난 때부터 잘될 줄 알았다고 말한다니까? 하하!”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이가 없네~”

“그치? 근데 음악평론가가 평가를 잘못했다는 건 치명적이니까. 아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나도 그냥 웃고 말어. 우리도 뭐 흙장난이 이렇게 잘될 줄 알았냐~”

“…….”

난 정진을 바라보았다. 말하는 게…… 꽤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의 정진은 흥이 많지만, 날이 서 있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공격할 때는 적극적으로 방어하던 사람이었다.

상황을 이해하고, 물러날 줄도 아는 태도를 익힌 게…… 참 신기해 보였다.

나름 사회생활 하면서, 모난 곳이 다듬어진 건가?

심사 위원의 소개 이후, 참가자들의 무대가 이어졌고.

7번 참가자 무대가 끝난 후, 송회 선생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아이고, 아이고. 이번 무대는 그냥 바로 들을 수 없지~ 오랜만에 아우가 왔는데!”

무대 위에서 송회 선생님은 마이크에 대고 능청스럽게 혼잣말을 하며 무대 뒤를 가리켜 소리 질렀다.

“아, 뭐 해~? 참가번호 8번! 어서 나오지 않고~ 형이 기다리잖어?”

“하하!”

카우보이 아저씨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 * *

“하하~ 형님~ 잘 지내셨어요?”

카우보이 하재춘은 송회 선생님의 멘트를 능청스럽게 잘 받았다.

너무 감쪽같이 하니, 관객석은 진짜 형제인지 의아해하는 눈빛이었다.

“동생~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카우보이는 스태프를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저두 형님이 너무 보고 싶은데, 그렇게 가겠다고 해도 저 사람들이 안 불러 주더라고요~ 그 실력 가지고는 안 된다고.”

송회 선생님은 스태프를 향해 손사래를 한번 치고는 말했다.

“예끼, 이 사람들! 우정에 실력이 중요한가? 이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잘 왔어~ 아우. 형님이 스태프를 혼내 줄 테니, 기분 풀어~ 알겠지?”

“어이쿠야, 그러면 자주 찾아봐야겠네요.”

송회 선생님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관객석은 왁자지껄 웃었다.

“아차차. 관객 여러분~ 우리 아우 모르세요?”

―…….

“아~ 기억이 잘 안 나시나 보네. 전국민노래자랑 최다 출연자인데~ 이번이 네 번째 출연 맞나?”

“네~ 맞아요.”

이 말에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우와~ 전국민노래자랑을 네 번째 출연했다고?

―이사만 가면 전국민노래자랑이 열린 거야? 하늘이 도왔나?

―실력이 얼마나 좋길래?

―아~ 그러고 보니 저 아저씨, TV에서 본 거 같아!

송회 선생님은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려, 그려, 이번에는 무슨 노래 준비했어?”

“보삐보삐 준비했어요~ 요즘 노래로 분위기를 바꿔봤습니다.”

“에잉~ 난 자네가 부르는 트롯이 듣기 좋던데. 꼭 1등 해서 앵콜 곡은 트롯으로 부르게. 알겠지?”

카우보이는 환히 웃으며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송회 선생님은 손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참가번호 8번! 하재춘 씨가 부릅니다. 보삐보삐!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카우보이는 무대 중앙에서 숨을 골랐고.

송회 선생님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잘하게, 잊지 않고 나와 줘서 고맙네.”

“아,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송회 선생님은 카우보이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는 무대 뒤로 퇴장했다.

바바바바밤~ 바바바바밤~

삐봉~ 삐봉~ 삐봉~ 삐봉~

보삐보삐의 전주. 깜찍한 기계음이 시작되었다.

하재춘은 허리춤에서 물총을 꺼내었는데.

예심 때보다 업그레이드 됐다!

총열이 더 길어졌고, 물총 위에 조그만 깃발이 꽂혀 있는데.

‘죽어.’

깃발 안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왕 하는 거 영어로 하지.

‘Kill you’가 어울릴 것 같은데.

“안녕하십니까~ 전국민노래자랑 20년 지킴이~!”

2차 예선 때처럼 멘트를 쳤다.

“전국민노래자랑의 보안관~!!”

굳이 저렇게 말끝을 늘려서 해야 할까.

삐봉~ 삐봉~ 삐봉~ 삐봉~

전주도 업그레이드되었다. 더 길어졌다.

정말…… 이 아저씨는 전국민노래자랑에 진심이다. 모든 걸 쏟아붓는구나. 예선 끝나고 겨우 하루 만에 물총 바꾸고, 전주 바꾸고…….

“커먼 바디! 에브리바디! 풋쳐 핸섬. 스탠덥!”

“푸핫!”

결국 옆에 앉아 있는 정진이 빵 터졌다.

“저 아저씨 뭐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기합이 잔뜩 들어가셨네.”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

카우보이는 할 짓 못 할 짓 다 하려 했다.

“하아~ 재에~ 추운~ 쏴리 질러~!!”

―…….

너무 과한 액션에 관객들은 얼어붙었지만, 출연자 대기실은 난리였다.

―우와아~ 하재춘! 하재춘!

―보여 줘요~ 장인정신~!!

나 또한 일어나 큰 소리로 환호하다가 소리쳤다.

“아저씨! 달려!”

바바밤~ 삐봉~ 삐봉~

바바밤!

출연자들은 모두 달릴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전주가 끝났고.

화내지 말고 웃어 줘. 하! 하!

그만 화 안 풀면 쏴 버릴 거야. 싸! 싸!

카우보이는 어깨를 튕기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 순간. 그는 K―pop 스타로 변신했다.

―우와~ 저 아저씨 잘한다!

―괜찮은데?

마뜩잖은 눈빛으로 보던 젊은이들은 노래가 시작됨과 동시에 태도가 달라졌다.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킬링 파트에 들어서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했다.

그리고 2절부터는 다 함께 소리치며 불렀다.

마치……. 원곡자가 나와서 공연하는 것처럼 떼창이 시작된 것이다.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카우보이는 온몸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얼굴 가득 희열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와…… 덕후야, 오늘 전국민노래자랑 출연자들 장난 아니다.”

“훗.”

“저 아저씨 노래, 뭔가 남달라. 힘이 있네. 그리고 댄스곡이 왜 이렇게 슬프게 들리냐?”

“…….”

정진은 카우보이의 사정은 모르지만, 노래에서 느낀 것이다.

라스트 댄스(Last dance)

50대 중반의 나이.

네 번째 출연.

하재춘은 마지막 무대라 생각하고, 모든 걸 쏟아붓는 것이다.

누군가는 어이없고, 왜 저러고 사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재춘에게는 이게 인생이니까.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우와아~!!

엄청난 환호 속에 노래를 마쳤고.

하재춘은 무대 위에서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그의 표정엔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이.

환한 미소만이 가득했다.

이렇게…… 20년을 끝낸 것이다.

* * *

―하재춘! 하재춘!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온 카우보이를 향해 모두 함께 연호했다.

―하재춘! 하재춘!

평소 장난기가 넘치는 카우보이지만, 이때만큼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후회는 없다! 모두 고마워요~!”

출연자 모두는 그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카우보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았고, 난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진짜 멋졌어요. 모두 행복해하는 거 보셨죠?”

“정신없어서 못 보긴 했다만은…… 그랬다면 다행이네.”

난 카우보이 옆에 앉아서 숨이 고르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이제 전국민노래자랑은 이걸로 끝이에요?”

“아니, 무슨 소리야? 계속해야지.”

이제 본선 진출은 어렵다는 걸 알 텐데.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다만……. 마음을 많이 비우고 하겠지~ 이젠 정말 100% 즐기는 마음으로 할 것 같다.”

“…….”

“그리고 다른 참가자를 보며 기대하는 것도 꽤 재밌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거든.”

그리고 날 바라봤다.

“덕후야, 멋진 무대 부탁할게. 내 기대는 너한테 걸었다.”

난 가자미눈을 뜨고 말했다.

“뭐예요? 언제는 나보단 이찬우가 아저씨 스타일이라면서요?”

“이런 걸 분산투자라고 한단다. 기대를 둘로 나눈 거지. 한 사람에게만 기대했다가 잘 안 되면…….”

도대체 초등학생한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이때부터는 다른 출연자들 무대에 집중하면서 카우보이의 말은 건성으로 들었다.

“아! 아! 아~~ 아~~~!!”

출연자 대기실 뒤편에서 화통 삶는 소리가 들렸다.

이찬우가 목을 풀고 있었는데.

“신토불이야~~!!”

목소리가 너무 커서 관객석까지 닿았나 보다. 일부 관중이 이쪽을 쳐다봤다.

“아! 아~”

곧 있으면 이찬우 차례구나.

정진은 목 풀고 있는 그를 유심히 보았다.

“발성 좋네.”

“그치?”

“저건 타고난 건데. 부럽네.”

맞아, 부럽긴 해.

이제 전국민노래자랑 중반을 넘어 섰다.

[참가번호 10번! 이찬우 군! 스탠바이하세요!]

“네!”

지금 구청장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이 인사말이 끝나고 나면, 참가번호 10번. 이찬우의 차례.

“형! 파이팅!”

난 이찬우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고.

정진 또한 살짝 눈인사를 했다.

저벅. 저벅.

이찬우가 출연자 대기실을 나가는데, 확실히 다른 참가자들과는 아우라가 달랐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이찬우를 바라봤다.

후우―

이찬우는 입구에 서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출연자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무대 위에 올랐다.

무대 옆에 서서 대기 중인 그를 보았다.

깔끔한 검은 정장.

강아지 얼굴의 이찬우는 2차 예선 때와는 좀 달랐다. 확실히 긴장한 듯 보였다.

‘잘해라. 잘했으면 좋겠다.’

경쟁자이지만, 난 진심으로 바랐다.

멋진 경쟁을 하고, 멋지게 이기고 싶다.

그래야 가치가 있다.

송회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구청장님~ 감사합니다. 인사가 참 기시네요. 예의 바른 분인 거 같습니다. 허허.”

이 말에 관객석은 왁자지껄 웃었다.

“자~ 벌써 여기까지 왔군요. 참가번호 130번! 이찬우 군이 부릅니다.!”

이찬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송회 선생님은 무대 뒤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신토불이!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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