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전국민노래자랑(1)
“……어?”
그의 질문이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목 얘기는 왜?
“괜찮은데?”
정동희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낯빛이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왜 그러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으음, 뭔가 걸리는 느낌인데…….”
사실 며칠 전부터 목이 약간 답답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근데 막상 예선전 무대에 서서 부르니 괜찮았었다.
그래도 예선전에 무리를 좀 해서인지. 목이 좀 잠긴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제는 일부러 노래 안 부르고 쉬었다.
그냥 단순히 피곤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잠을 많이 못 자서 좀 잠긴 거 같은데?”
항상 9시면 잠자리에 들었는데, 예선전 날은 새벽 2시에 잤으니.
“그래?”
“그게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겠어? 왜? 소리 많이 거슬렸어?”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봤다.
약간 목이 답답하긴 했지만, 난 크게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어. 아마 일반인들은 못 느낄 거야. 퀄리티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돼.”
“…….”
“형은 음악만 하는 사람이잖아. 미세한 음 차이도 알아차리도록 공부한 사람이니까. 그냥 끝 음에서 약간씩 쇳소리가 들리길래. 목을 쥐어짜서 내는 소리.”
“아…….”
고음에서 복식으로 힘을 뽑아내야 하는데, 목소리가 갈라지려 해서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이 좀 들어갔었다.
‘나는 홀로 남은 빛 잃은 장미야’
특히, 이 고음 부분.
리허설을 끝내고 홀가분했는데, 정동희와의 대화로 심각해졌다.
내 표정을 보고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단순히 컨디션 난조라는 거잖아, 그치?”
“뭐 그렇지. 이틀 전에 새벽 2시에 잤다니까? 아직까지 그 여파가 좀 있나 봐. 형, 알잖아~ 키 커야 한다고 9시만 되면 아빠가 불 꺼 놓는 거.”
“하하. 그래~ 알지. 큰 삼촌이 그런 거 칼이시잖아.”
난 김 부장의 모습이 떠올라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 부장에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약간의 유도리도 없다.
9시 취침은 나와 지아 누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이다.
“형~ 그럼 나 출연자들 모여 있는 곳으로 가 볼게. 혹시 노래에 대해 더 할 말 있어?”
“없어~ 너무 잘해서.”
“하하! 알았어~ 형. 조금 이따가 봐~!”
“그래~!”
김덕후는 천막을 두른 출연자 대기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동희는 생각했다.
‘잠 못 자서 잠긴 목소리가 아니야.’
정동희는 피아노 전공이지만, 음대에 있다 보니 성악 전공자의 노래도 많이 듣게 된다.
음정, 음감에 대해서는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그래, 한 곡 정도는 괜찮겠지. 지금 뭘 어쩌겠어.’
정동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출연자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김덕후를 바라보았다.
* * *
출연자들은 모두 긴장해 있었다.
카우보이와 이찬우를 제외한 다른 출연자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처음일 것이다.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없다.
“꺄악~ 이제 1시간 남았어~ 어뜨케~~ 호호.”
하지만 이건 분명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긴장되고 떨리지만 다들 웃고 있었다.
롤러코스터 타기 직전의 표정이랄까.
‘긴장’이라기보다는 ‘설렘’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출연자 대기실 분위기부터가 이미 축제였다.
반드시 잘해 내서 상을 타고야 말겠다는 마음보다는.
실수하지 않고, 내 친구들과 가족들 앞에서 멋진 모습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다.
출연자들 모두 다 같은 노원구민이며 동네 주민이다.
서로 으샤으샤 하며 기운을 북돋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자, 자, 둘이 서 봐. 아저씨가 사진 찍어 줄게.”
카우보이 아저씨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와 이찬우에게 말했다.
“네? 하하. 형, 같이 찍을래?”
“좋지.”
나와 이찬우는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바라봤다.
“자~ 미래의 트롯 스타들! 경쟁자라고 해서 이렇게 뻣뻣한 거야? 다정하게 포즈 좀 취해 봐!”
“편하게 찍으려 했더니 직업 정신을 발휘해야 하나.”
이찬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고.
“그러게 말이야, 형.”
멀찍이서 카메라를 든 카우보이가 다시 말했다.
“아, 뭐 해? 포즈!”
우리는 순식간에 포즈를 잡았다.
이찬우는 눈을 옆으로 흘기며, 손으로 V 모양을 하고 턱을 받쳤다.
난 얼굴을 앞으로 쑥 내밀고 꽃받침을 했다.
나도 그렇지만…… 이찬우도 바로 포즈가 나온다. 역시 오랜 시간 훈련해 온 티가 난다.
이찬우도 순식간에 포즈 잡는 나를 알아본 듯하다.
“짜식, 역시 좀 하는구나?”
“형이야말로.”
카우보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녀석들. 진작 그럴 것이지. 자~ 찍는다~! 하나~ 둘~!”
찰칵.
“출연자분들~ 안내 말씀드립니다.”
스태프가 확성기를 들고 말했다.
“지금부터 개인 시간 가지시고요, 30분 뒤에 이 자리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래도 시간을 좀 주긴 하는구나?
“응원하러 오신 분들과 좋은 추억 만드시기 바라요~ 하지만 절대로 늦지 않게 모여 주셔야 합니다!”
행사 시작 1시간 전.
아마 가족과 친구들이 와 있을 것이다.
“덕후야!”
아라비아 복장을 한 일석이가 날 불렀다.
“어~ 일석아!”
“어서 가자!”
나와 일석이는 체육관 안을 두리번거렸다.
오래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었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거대한 현수막이 보였다.
[김덕후, 이일석, 박기덕, 이종권. 신화의 아들, 오늘 이곳에서 타오르리라.]
―신화초등학교 일동―
가로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현수막이었다.
한 학교에서 무려 4명이 출전을 했으니, 학교 차원에서 신경 써 준 듯하다.
나와 일석이는 현수막을 향해 달려갔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우와아~!
―김덕후! 이일석!
―박기덕! 이종권!
―푸하핫! 일석이 뭐야~? 아저씨 같아~!
―이게 뱀돌이 의상이었던 거야? 하핫!
‘땅꾼과 뱀돌이’를 본 친구들은 엄청 웃었다.
그리고…….
―와…… 덕후는 뭘 해도……
―나도 핑크 정장 입고 싶다.
―그 옷 어디서 샀어?
―덕후야~ 파이팅!
나에게 보인 관심은 ‘땅꾼과 뱀돌이’에게 보인 것과는 좀 달랐다.
특히 여학우들이 찰싹 달라붙어서 말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쯤 되면…… 어느 정도는 좀 여자 같아서 너무 가까이 있으면 좀 불편하다.
난 살며시 거리를 두며 말했다.
“고맙다~ 너희들이 응원해 준 거 생각해서라도 잘할게.”
―덕후 씩씩한 거 봐!
―말도 어쩜…….
함께 출연하지만, 너무나도 다른 대우에 기덕이의 눈이 점점 뱀 눈깔로 변하려 할 때쯤.
멀찍이 가족들이 보였다.
막냇삼촌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고.
“선생님~ 자유시간이 얼마 없어서요~ 가족들한테 인사하러 가 볼게요.”
“그래~ 덕후야.”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뭔가 발라져 있는 걸 보고는 손을 내렸다.
“오늘 멋지게 하렴, 선생님은 친구들이랑 열심히 응원할게!”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 * *
“하하~ 덕후야~!”
“삼촌~!”
온 가족이 다 와 있었다.
이제는 결혼하여 따로 사는 큰삼촌도 와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이젠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만 그 호칭은 아직 어색하다.
“큰삼촌~!”
“어이~ 덕후야, 너 또 한 건 하는구나? 아침마당놀이에서는 준우승하더니, 이번엔 우승하는 거냐?”
“하하! 삼촌, 여긴 우승이 아니고, 최우수상이야!”
그리고 옆에 있는 작은엄마에게 인사했다.
“작은엄마, 안녕하세요~!”
“그래~ 덕후야, 더 멋있어졌네~?”
옆에 작은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큰삼촌의 딸도 보였다.
김다율. 2007년생. 올해 4살이다. 양 갈래 머리를 하고 아주 귀엽게 생겼다.
“다율아~ 안뇽?”
“오빠, 안녕하세여~”
다율이는 갑자기 배꼽 인사를 했다.
“하핫, 뭐야~? 귀여워~!”
작은엄마는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인사를 가르쳤더니 무조건 배꼽 인사야~ 이해하렴. 오빠 어려워서 그러는 거 아니니까.”
“하하, 알죠~ 4살짜리가 뭐 어려운 걸 알겠어요?”
큰삼촌이 옆에서 힐끔 말했다.
“넌 알았잖아. 3살 때부터 글 썼잖아.”
“에이~ 삼촌! 나는 다르지~ 그리고 정상적인 게 좋은 거야. 내가 이상했던 거지.”
큰삼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6학년이 날 가르치네. 허어~ 참.”
‘사실은 내가 삼촌보다 더 살았어…….’
이 말은 마음속으로만 했다.
다른 가족들은 오늘 아침에 인사를 하고 나와서 딱히 나눌 말은 없었다.
그냥 특별한 장소에서 만나니 좀 더 반가운 그런 느낌…….
“근데 아빠는? 안 왔어?”
“아~ 동료들 데리러 간다고 했는데.”
“동료?”
그때…….
멀리서 건장한 남성들 여럿이 커다란 현수막을 펼친 채 걸어오는 게 보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김덕후 화이팅!]
―산성물산 일동―
현수막 앞으로, 김 부장이 앞장서서 걸어왔다.
근데 그 뒤로 현수막이 계속 보였다. ……현수막이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김덕후! 그대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산성물산 영업본부 일동―
[김진하 부장님 아들, 김덕후는 트롯천재!]
―산성물산 해외영업1팀 일동―
“와…… 이게 뭐야?”
옆에 있던 큰삼촌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근조기도 아니고.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막냇삼촌의 말에 할아버지가 눈치를 주셨다.
“야, 야, 무슨 말을 해도…….”
“…….”
처음엔 황당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가. 점점 자각이 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체육관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현수막을 보고 수군거렸다.
―저 집에 뭐 대단한 사람 있나 봐!
―산성물산에서 응원할 정도면…….
―아빠가 임원이라도 되나?
―김덕후……? 이름은 좀 그렇다.
어느덧 이 거대한 현수막 행렬은 우리 앞에 도착했고.
김 부장의 표정은 위풍당당했다.
난 그저 황당해서 김 부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근데 그때.
몇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김 부장의 미소를 보았다.
“내 아들, 오늘 멋지네.”
“…….”
대단할 거 없는 한마디인데.
이 행렬과 어우러져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살짝 울컥해서 뭐라고 대꾸를 하지 못했다.
뒤에서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김 부장님 아들 진짜 가수같네?
―가수 같은 게 아니라 가수라니까.
―설마설마했는데…… 너무 다르다. 분위기도 그렇고.
―너무 잘생겼다~
난 김 부장의 동료들을 찬찬히 살폈다.
대부분은 김 부장의 후배들 같아 보였는데, 낯익은 얼굴도 일부 보였다.
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그래~ 화이팅이다!
―꼭 김 부장님이 협박해서 온 건 아니야~ 하하!
―덕후 화이팅~!
진심으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해서, 난 허리를 꽤 오래 숙이고 있었다.
부디 자발적 참석이기를 바라면서…… 분명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토요일 오전에 회사 후배들 동원하여 응원할 생각을 하다니.
김 부장은 역시 김 부장이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
나중에 한소리 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시간이 다 됐다.
난 큰 소리로 인사하고, 출연자 대기실로 향해 뛰었다.
“저 가 볼게요~ 잘할게요~!”
“그래, 재밌게 하고 와~ 응원할게!”
30분 뒤.
빰 바바밤 밤 빠밤~ 빠라바 빠라바 바밤 바밤~
전국민노래자랑의 오프닝 전주가 울려 퍼지고.
―우와아~!
꽉 찬 체육관은 들끓어 올랐다.
짝짝짝!
오프닝 전주에 맞춰 모두 박수를 쳤다.
딩동 댕동~
실로폰 소리를 끝으로 전주가 끝나고…….
“전국민~!!”
송회 선생님이 무대로 나오며 크게 소리쳤고.
관객들이 큰 소리로 화답했다.
―노래자랑~!!
‘전국민노래자랑 노원구 편’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