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진심이 닿다(2)
“우와아~!”
나와 일석이. 기덕이와 종권이. 거기네 카우보이까지.
우리 다섯은 동그랗게 어깨동무를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땅꾼! 뱀돌이! 땅꾼! 뱀돌이!”
난 내가 본선 진출에 합격 못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참가자들과 심사 위원, 스태프들의 반응을 봤다.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해도 압도적인 무대였고, 실수도 없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를 해 봐도 차이가 현격했다. 억하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합격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난 일석이의 결과를 조바심을 가지고 기다렸었다.
솔직히 내가 합격한 것보다 더 기뻤다.
“일석아! 정말 축하해!”
“하하, 고마워~ 덕후야. 다 네 덕분이야!”
“덕분은 무슨!”
땅꾼과 뱀돌이 팀은 좀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박자를 놓쳤을 때, 내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서 분위기를 좀 바꿔 주기는 했지만.
분명 1절은 망한 거였다.
게다가 ‘태권하리’ 팀도 그렇고 이번 노원구 편에 유독 단체 참가자들이 많았다.
땅꾼과 뱀돌이가 다른 팀에 비해 눈에 띄는 특색은 있지만,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추가로 땅꾼과 뱀돌이 팀은 박자 연습 좀 부탁드릴게요. 본선 기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칼 박자 준비하겠습니다!”
일석이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큰 소리로 대답했고.
최 피디는 빙그레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진정 좀 해 줄래요? 누가 보면 최우수상 탄 줄 알겠어요. 아직 발표가 좀 남아서요.”
“아, 네……!”
일석이는 얼굴이 빨게져서는 수줍게 웃었고.
체육관 안의 참가자들은 최 피디의 말에 웃었다.
옆에서 카우보이가 말했다.
“이제부터 ‘개인’ 합격자네. 지금 불리는 사람이 가장 성적이 좋은 참가자야.”
“왜요?”
내 물음에 카우보이가 말했다.
“지금까지 부른 합격자들은 ‘실력 +α’라면, ‘개인’은 오로지 실력이거든. 더욱이 이 개인 파트에서 처음에 호명된 사람이 가장 많은 심사 위원이 동의한 사람일 거야.”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최 피디가 파트를 일부러 나눠서 발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척척이다.
카우보이…… 이 사람은 참가자일까, 심사 위원일까, 스태프일까.
그냥 다 꿰고 있네. 대단하다.
“20년 경력이야, 인마!”
카우보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단체 구성 발표할 때부터 그의 표정은 더 편안해졌다.
편안해 보이는 미소에서 어딘가가 좀 씁쓸해 보인다.
체념에 익숙해진 듯한…… 씁쓸함.
* * *
“자~ 다음 합격자는요!”
꿀꺽.
카우보이의 말대로라면 이번에 호명되는 사람이 최고 성적이라는 말이지?
난 이찬우를 힐끔 바라보았다.
예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김덕후]
“김덕후 군! 축하드립니다!”
“우왓!”
난 환호성과 함께 두 손을 번쩍 들었고.
일석이가 날 안고서 번쩍 들어 올렸다.
친구들이 큰 소리로 축하해 줬다.
“덕후야! 축하해!”
“난 의심조차 안 했다고!”
“김 가수 화이팅!”
휘이익~!
짝짝짝.
내 주변의 다른 참가자들도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네었다.
―얘야~ 축하해!
―너 진짜 잘했어~
―진짜, 최우수상 후보자야~ 곧 전국이 난리가 날 듯~
―가기 전에 사인 한 장만 해 주고 가~
난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고.
멀찍이서 이찬우도 날 향해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 또한 불안해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당연히 호명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카우보이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 축하한다. 이찬우를 이긴 거야?”
“하하. 감사합니다. 에이~ 근데 그건 모르죠.”
카우보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맞다니까? 네가 이긴 거야. 축하해.”
최 피디는 다음 합격자를 곧바로 호명했다.
“이찬우 군! 축하드립니다!”
우와아~
휘이익~
이찬우의 합격 소식에 체육관 안은 다시 또 소란스러워졌고.
난 손을 높이 들어 이찬우를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카우보이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 본선은 정말 볼만하겠네. 김덕후와 이찬우.”
“하하.”
“근데 넌 좀 아쉽겠다. 평소 같으면 최우수상은 따 놓은 실력인데. 어쩌다가 이찬우 같은 애를 만났어? 하긴 뭐, 이건 이찬우도 마찬가지겠지만.”
난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근데…… 어째 아저씨는 제 이름 먼저 불렸을 때 놀라는 눈치였는데요?”
“엇! 눈치 장난 아닌데?”
카우보이는 보온병 등 소지품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난 솔직히 이찬우가 조~금 더 좋았거든. 이건 취향 차이라…… 이해해라?”
“쳇!”
“하하! 어이쿠, 벌써 1시 넘었네. 집에 어떻게 가냐…….”
마지막 합격자 1명이 아직 호명되기 전이지만.
우리는 카우보이를 따라서 짐 정리를 했다.
“마지막 합격자입니다! 저희 제작진은 이분을 뽑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는데요.”
카우보이는 가방을 메고서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 집에 어떻게 갈 거니? 버스 끊겼을 텐데.”
“택시 타야죠.”
“생각이 너무 복잡해져서, 그냥 무대만 봤습니다. 오로지 오늘 무대만 보고 결정했습니다!”
“아저씨는 다음에도 참가할 거예요?”
“당연하지! 이 낙에 사는걸?”
우리는 합격했고, 카우보이는 떨어졌다.
당연히 다시 참가할 거라는 말이 왠지 슬프게 들렸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우리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얘들아, 과정도 즐거운 게 진짜 즐거운 거야. 결과는 내 맘대로 안 되지만, 과정은 내 맘대로 되는 거잖아?”
“…….”
“남들은 이상하게 볼지 몰라도, 난 내 인생에 ‘전국민노래자랑’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항상 저희와 함께해 주는…… 함께 뛰는 참가자입니다. 그분을 다시 한번 본선으로 모시려 합니다.”
“그게 왜 행복하냐면……?”
최 피디의 멘트가 심상치 않다.
우리는 짐 정리를 하고는 있지만, 귀는 기울이고 있다.
카우보이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엇…….”
나와 일석이는 가방을 짐 정리를 멈췄다.
“하재춘 씨, 축하합니다! 마지막 합격자는 하! 재! 춘! 씨입니다!”
주르륵.
하재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고.
“우와아악!”
“우아아악!”
나와 일석이. 기덕이와 종권이는 목이 나가도록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하재춘은 충격에 휩싸여.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만 흘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카우보이는 그토록 본선 진출을 바랐으면서도, 결과를 듣고는 계속 ‘말도 안 돼’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저씨! 진짜 축하해요!”
가슴이 터질 듯 기뻤다.
“7년 만에…… 7년 만에…… 흑.”
마지막 본선이 7년 전이었나 보다. 그 후로도 7년간 이사와 이직을 전전하며 전국민노래자랑에 도전해 왔던 것이다.
‘전국민노래자랑’ 본선 말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는 게 더 쉬울 것 같은 집념의 남자.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하재춘이 결국엔 해냈다.
“하재춘! 하재춘!”
우리는 미친 듯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그는 계속 울었다.
* * *
“본선 진출 15팀 제외하고, 모두 돌아가 주시면 됩니다.”
웅성. 웅성.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내 사람들은 쫙 빠졌고.
체육관에는 15팀만이 남았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최 피디는 한 여성분에게 마이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전국민노래자랑 작가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가 그리는 무대를 말씀드릴 건데요, 이 부분 참고하셔서 잘 연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작가는 각 팀마다, 원하는 무대와 팁을 얘기해 주었다.
“김덕후 군?”
“네.”
“덕후 군이 마지막 순서거든요? 본선에서 부를 곡은…….”
“오매불망 장미입니다.”
“아……. 그래요.”
작가는 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꽃을 문 남자’를 부르길 바랐었나 보다.
“2차 예선처럼만 해 주시면 될 거 같고요, 덕후 군은 노래 시작 전에 송회 선생님과 인터뷰 있으니까 참고하시고요.”
“알겠습니다.”
15팀 중 송회 선생님과 인터뷰가 예정된 곳은 총 5팀이다.
안타깝게도 땅꾼과 뱀돌이는 인터뷰 최우수상 팀은 아니었다.
“이야, 송회 선생님이라니! 덕후야~ 부럽다.”
카우보이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편하게 하면 돼~ 송회 선생님이 알아서 인터뷰 리드해 주시니까, 그냥 맡기면 돼.”
“네.”
카우보이는 본선 진출에다가, 송회 선생님 인터뷰 최우수상자까지 되어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럼 모레 아침 9시에 뵙겠습니다~ 리허설 있으니까, 모두 늦지 않게 와 주셔야 해요! 수고 많으셨어요!”
짝짝짝.
새벽 1시 반.
이 시간까지 잠을 안 자 본 건 처음이다.
아무리 늦어도 취침 시간은 웬만해선 10시를 넘기지 않는다.
물론 전생에서는 이 시간까지 안 자본 적이 꽤 많았다. 술 한잔하고 노래방 갔다 오면 자정 넘기는 건 금방이니까.
이번 생은 신바람 선생님의 교육으로 이런 생활이 몸에 배어 버렸다.
“넌 뭐 그렇게 입맛을 다시냐? 배고프냐?”
“아, 아니에요.”
카우보이의 말에 난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았다. 매콤한 막창에 소주 한잔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만…….
내가 몸은 어리지만, 그 맛은 분명 기억한다.
“택시비는 있냐?”
“네, 있어요.”
여기서 월계수동까지는 5,000원이면 갈 것이다. 야간 할증 붙어서 더 나오려나? 그래도 만 원 안에는 끊겠지.
“그래, 너희들 먼저 가는 거 보고 가야겠다. 아저씨가 택시 잡아 줄게.”
“네.”
“먹을 거라도 사 주고 싶은데, 너무 시간이 늦어서…… 부모님 걱정하실 거 아니야.”
“괜찮은데…….”
먹을 거라는 말에 군침이 돌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기에 참았다.
더군다나 내일 학교도 가야 한다.
“……어?”
광훈대학교 정문을 나서다가, 난 걸음을 멈추었다.
“아빠?”
김 부장이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깊은 밤과 어울리는 자태.
으스스한 게,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
카우보이와 친구들도 김 부장의 모습에 멈칫했다.
김 부장이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왔냐?”
“기다린 거야?”
“그럼. 너무 늦었잖냐?”
분명 내가 ‘아빠’라고 불렀음에도 카우보이는 몸으로 날 보호하고 있었다.
“아빠 맞아?”
“네, 진짜 아빠 맞아요.”
“아…… 그래? 안녕하세요, 덕후 군과 심사를 같이 본 참가자입니다.”
김 부장은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있는 그를 위아래로 훑고서는 무심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카우보이는 김 부장의 포스에 눌렸는지 잘못한 것이 있는 사람처럼 주춤했다.
“그럼 아빠 오셨으니까, 아저씨 먼저 갈게. 몸 관리 잘하렴. 이틀 뒤에 보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카우보이는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김 부장이 물었다.
“옆에는 친구들이냐?”
“응, 같은 학교 친구들이야.”
아라비안 복장과 뱀 비닐을 싸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김 부장이 중얼거렸다.
“다들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일석이와 기석, 종권이는 얼어붙은 것처럼 90도로 인사했다.
김 부장은 차 문을 열고 말했다.
“다들 타라,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일석이는 얼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알아서…….”
“타라고 했다.”
“네!”
김 부장은 운전석에 먼저 탔고.
일석이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와…… 아저씨 분위기 장난 아니다. 너, 숨 막혀서 어떻게 사니?”
“익숙해, 그리고 내가 이겨.”
“뭐어?”
난 씩 웃고는 조수석에 탔고.
결국 친구들도 얼떨결에 차에 탔다.
부우웅―!
우리가 타자마자 차는 곧 출발했고.
한참 가다가, 난 김 부장에게 물었다.
“근데 왜 안 물어봐? 결과 안 궁금해?”
김 부장은 이 말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 아들이 예선 따위에서 떨어졌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