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진심이 닿다(1)
심사를 하는 최 피디의 표정이 심각했다.
이번 노원구 편에서 사상 최대의 참가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참가자들의 실력도 역대급이었다.
최 피디뿐만이 아니라, 심사 위원과 스태프들 모두 비슷한 생각이라서일까.
뛰어난 참가자가 많아서, 쉽사리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전국민노래자랑의 메인PD, 최영수 PD가 입을 열었다.
“뭐…… 다들 비슷한 생각이신 듯한데.”
“…….”
“우선 출연진 구성은 평소처럼 각 분야별 3팀씩 나눠서, 총 15팀으로 합니다.”
<전국민 노래자랑 출연진 구성>
총 15팀.
1) 특별 3팀
2) 가족 구성 3팀
3) 어르신 3팀
4) 단체 구성 3팀
5) 개인 3팀
최 피디는 화이트보드에 적은 후, 스태프에게 물었다.
“우선 쉬운 것부터 가죠. 특별 3팀은…….”
<특별 3팀>
‘노원구청 관리팀 박 주임.’
‘공릉119 김정석 소방관.’
‘상계백병원 이정미 간호사’
“이건 뭐 이의 없으시죠?”
특별 3팀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조연출이 살짝 손들고 말했다.
“간호사보다 월계지구대 경찰관이 더 나았던 거 같은데…….”
최 피디는 조연출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래, 경찰관이 조금 더 잘 부르긴 했어.”
“…….”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팀은 119와 겹치잖아. 공릉 119와 월계지구대와 비교해 보면 어디가 더 나았지?”
“그야 물론…… 공릉 119가 더 잘하긴 했죠. 선곡도 신나고, 복장까지 제대로 맞춰 입었고.”
“그래, 그래서 이렇게 가는 게 나을 거 같아. 이견 있는 사람 있습니까?”
최 피디의 설명이 끝나자, 더 이상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케이, 그럼 특별 3팀은 이렇게 구성하고, 그다음 가족 구성 팀 보죠.”
이상하게도 이번 노원구 편에는 대가족 참가 팀도 많았다.
세 자녀 이상의 다둥이 팀만 해도 10팀이 넘을 정도여서, 조부모까지 함께 나오지 않으면 대가족이라고 명함 내밀기 어려울 정도.
가족 구성 팀은 인원수로 승부 보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어야 한다.
많은 논의 끝에…….
<가족 구성 3팀>
‘8공주의 첫째 딸.’
‘세쌍둥이 셋째.’
‘편부모 팀의 아빠’
가족 구성으로는 이렇게 3팀이 최종 선정되었다.
여기까지 정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크게 고민할 거리가 없었다.
“자…… 이제부터가 좀 고민되는데.”
‘어르신 팀’
이 파트에서도 3팀을 선정해야 하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어르신들은 컨디션이 자주 바뀌어서, 본선 무대에서 어떨지 예측하기가 조금 어렵다.
두 번째는…….
“하재춘 씨를 어르신으로 봐도 될까요?”
카우보이 아저씨, 하재춘.
오늘 그는 정말 멋진 무대를 보여 줬다.
‘보삐 보삐’를 멋지게 소화했는데, 신나는 무대에 재밌는 춤동작까지.
물총 들고 찍찍 쏘는 퍼포먼스는 포기하기 아쉬웠다.
하지만 ‘개인’ 파트로 들어가기엔 실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선 진출을 세 번이나 했던 참가자다. 그 이력이 최 피디를 망설이게 했다.
“요즘 55세를 어르신으로 보나요?”
답이 너무 뻔한 질문이어서, 조연출은 대답 대신 이렇게 반문했고.
“나를 어르신으로 본다면 서운해~ 나 아직 젊어~”
50대 중반의 심사 위원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흠…… 그래, 하재춘 씨를 어르신 구성으로 넣기엔 좀 그렇지.”
최 피디는 아쉬운 표정으로 썼던 이름을 지웠다.
조연출이 옆에서 살며시 한마디 했다.
“참가자들이 많잖아요.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그래…… 하지만 하재춘 씨 같은 참가자는 없지. 그래서 아쉬워.”
“…….”
* * *
어르신 팀은 70세 이상으로 구성했고.
이제 단체 구성 팀 차례다.
‘나리 초등학교 2학년 3반 팀.’
‘노가다 팀.’
최 피디는 위의 두 팀을 먼저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이 두 팀에 대해서는 이의 없죠?”
“네.”
“심사 위원님들께서도 좋은 평을 주셨고, 초등학교 팀은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나와 무대를 꾸몄죠. 노가다 팀은 사회적 약자 계층이 나와서 무대를 만드는 거니 의미가 있고요. 물론 노래도 잘하셨고.”
최 피디는 조연출에게 말했다.
“아, 노가다 팀한테는 본선에서는 술 마시면 안 된다고 꼭 안내해 줘.막걸리 냄새 나더라.”
“그 냄새는 아마 안 마셔도 날 걸요?”
“아, 그래?”
“네, 그냥 그분들의 체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왜 이렇게 잘 알아?”
“어릴 적에 경험 삼아 알바로 노가다 좀 뛰어 봤거든요.”
“흠, 별 경험을 다 했네.”
최 피디는 두 팀 아래에 살짝 칸을 띄우고 두 팀의 이름을 적었다.
‘태권하리’
‘땅꾼과 뱀돌이’
“단체 구성에 한 자리가 남았는데…… 뭐, 이 두 팀 중에 하나가 들어가야 한다는 건 모두 인정하시죠?”
모두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큰 의견 충돌 없이 진행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땅꾼과 뱀돌이가 들어가면 초등학생이라는 게 겹치지 않아요? 나리 초등학교 팀이 있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태권하리가 들어가면 노가다 팀이랑 성인이라는 점이 겹치는데요?
―에이~ 억지다~
―그러니까 나이는 보지 마시고, 무대를 보자고요. 땅꾼과 뱀돌이는 흥겨웠고, 보는 재미가 있잖아요.
―저는 보는 재미는 태권하리가 더 좋았는데요? 무대에서 날아다니는데, 완전 멋져.
―노래가 안 되잖아요. 퍼포먼스는 다 함께하면서, 노래는 한 명이 다 부르고…… 여기가 서커스장은 아니잖아요.
―뭐요? 서커스? 에이~ 비유가 좀 그렇다~ 그리고 땅꾼과 뱀돌이도 혼자 부르지 않았나?
―걔들은 코러스도 넣었죠.
스태프와 심사 위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최 피디도 고민이 되었다.
두 팀 모두 뚜렷한 장점이 있어서,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최 피디님, 그냥 태권하리로 가시죠.”
옆에서 조연출이 살며시 말했다.
“왜?”
“땅꾼과 뱀돌이들은 나이가 어리잖아요. 앞으로 더 기회가 있겠죠.”
“그럼 뭐 태권하리는 나이가 많나? 이유라고 말하는 거 하고는 참…….”
태권하리는 20대로 구성되어 있다.
계속 갑론을박 중이었고, 그 두 팀 얘기만 하다가 10분이 지나갔다.
계속 고민하던 최 피디는 뭔가 떠오른 듯 조연출에게 물었다.
“예전에 태권도팀 장기 자랑에 올라온 적 있었지?”
“네.”
“그때 순간 시청률 확인해 봐, 관객석 반응 화면이랑. 지금 가능한가?”
“네, 가능합니다.”
최 피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태권하리와 땅꾼과 뱀돌이는 제가 과거 자료 화면 보고 판단해서 결정할게요.”
<단체 구성 3팀>
‘나리 초등학교 2학년 3반 팀.’
‘노가다 팀.’
‘태권하리 or 땅꾼과 뱀돌이’
최 피디는 화이트보드를 지우면서 말했다.
“자, 마지막 개인 3팀 얘기해 볼까요.”
말 시작하자마자, 심사 위원이 말했다.
“김덕후죠. 그 녀석 엄청나더만. 제가 장담하는데, 걔 분명 엄청난 가수가 될 겁니다. 정통 트롯이 단조로워 보여도, 그렇게 부르기 정말 어려운 거예요.”
좀 젊은 여직원이 말했다.
“이찬우도 정말 잘하던데요. 웃으면서 노래 부를 때 꼭 강아지 같은 게…… 완전 귀여워. 그 우렁찬 목소리 어쩔 거야? 15살 된 애가 어쩜 그리 남자다워요?”
찰싹.
옆에서 잠자코 있던 30대 여성 작가가 여직원의 어깨를 때리고는 말했다.
“얘가 아직 남자를 모르네. 우리 덕후가 ‘꽃을 문 남자’ 부를 때 눈빛 못 봤어?”
여작가는 살짝 몸을 떨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거…… 여자를 미치게 만드는 거야. 하여간 어린 것들은 진짜를 몰라봐.”
“어머, 뭘 미쳐요? 초등학생 상대로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거예요?”
이 말에 여작가는 얼굴이 벌게졌다.
“뭐, 뭐어?! 내가 뭘 어쨌다고? 왜 생사람 잡어? 그리고 내 머리 가지고 내 맘대로 상상도 못 하냐?”
“작가님, 그러지 마요…….”
“아, 내 맘이야!”
개인 구성 평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 여자가 말싸움을 하고 있다.
듣다 못한 최 피디가 나섰다.
“자, 두 분 주책 좀 그만 떠시고.”
“…….”
“김덕후와 이찬우. 두 참가자 본선에 올리는 건 이견이 없을 것 같네요. 맞죠?”
“네!”
이구동성으로 모두 대답했다.
“두 사람 간에 출연 순서 정하는 게 좀 고민이 되는데…….”
전국민노래자랑에서는 최우수상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마지막 순서로 배정한다.
최 피디는 김덕후와 이찬우의 무대를 떠올렸다.
‘난 김덕후가 좀 더 나았던 거 같은데…… 이찬우도 괜찮긴 했지. 아…… 모르겠다.’
“두 사람 간에 출연 순서는 다수결로 합시다. 이찬우가 더 잘했다, 손!”
번쩍.
“자, 다음. 김덕후가 더 잘했다!”
이번엔 최 피디도 함께 손을 올렸다. 그는 손든 사람 수를 세어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김덕후 6, 이찬우 4네요. 마지막 순서는 김덕후로 하겠습니다.”
짝짝짝.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피디님, 개인 한 자리 남았는데요?”
김덕후와 이찬우가 너무 특출나서, 다른 개인 참가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샤우팅 락발라드 부른 회사원과 ‘어머!’라는 곡을 부른 여대생이 좀 인상적이었다.
“그 회사원과 여대생 중에 한 명이 낫겠지?”
“네, 뭐…… 그나마.”
다른 스태프들과 심사 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구성상 여성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이것도 전년도 자료 화면 보고 결정할게요.”
<개인 3팀>
‘김덕후’
‘이찬우’
‘회사원 or 여대생’
2~30분 예상했었는데, 어느덧 40분이 지났다.
“많이 늦었네요. 이걸로 심사 마치겠습니다. 10분 내로 정리해서 발표할게요.”
* * *
심사결과 기다린 지, 1시간째.
나와 친구들은 모두 초조한 얼굴로 강단 위만 바라봤다.
카우보이만 얼굴이 평온했는데, 아무리 봐도 체념한 듯했다.
저벅. 저벅.
최 피디가 종이를 들고, 강단 위로 올라왔고.
술렁이던 심사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꿀꺽.
고요한 가운데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최종 본선 진출 팀 호명하겠습니다!”
―…….
새벽 1시.
체육관 안은 싸늘한 정적만 흘렀다.
“오늘 긴 시간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선 본선 진출자 호명해 드리고요. 그 후에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자, 그럼…….”
최 피디는 들고 나온 종이를 높이 들며 진출자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노원구청 관리팀 박 주임.]
―와싸~!
―우와악!
호명받은 팀은 괴성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공릉119안전센터 김정석 소방관]
[상계백병원 이정미 간호사]
[8공주]
[세쌍둥이]
…….
―우아악!
―꺄아악!
―만세! 만세!
호명되는 팀이 많아질수록 체육관 안은 난리였다.
최 피디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릴 정도였는데, 익숙한 장면이라 그럴까. 최 피디는 당황하지 않고 더 목소리를 높여서 호명을 이어갔다.
[나리 초등학교 2학년 3반 팀.]
―선생님! 됐어요!
―축하해~ 얘들아~ 힝.
이쯤 되자, 카우보이가 말했다.
“이제 단체 구성 팀 호명하나 보군. 땅꾼과 뱀돌이가 들어갔으려나…….”
레퍼토리를 잘 알고 있는 그가 중얼거렸고, 나와 일석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다음 멘트를 기다렸다.
심사 위원들도 그다음 팀 호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체 구성 한 팀은 못 정했었다.
[태권하리 팀.]
“아……. 역시 저 팀이 됐네.”
노래는 많이 부족했지만, 퍼포먼스가 뛰어난 태권하리가 되었다.
“땅꾼과 뱀돌이 아쉽네. 난 아무리 생각해도 걔네가 더 낫던데.”
그때 최 피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땅꾼과 뱀돌이 팀!”
“응? 뭐야?”
“노가다 팀은?”
옆에 있던 조연출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술 냄새 때문에 좀 불안하다고요. 이렇게 결정했어요.”
“아~ 잘했네. 잘했어.”
김덕후와 친구들은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
―우아악~!
―덕후야! 덕후야!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땅꾼 화이팅! 뱀돌이 화이팅!
방방 뛰는 몸짓에 은색 뱀 비닐이 찰랑거렸고.
머리에 터번을 쓴 일석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