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94화 (94/250)

94화. 오매불망 장미(2)

무대 위.

은은한 불꽃이 타고 있었다.

슬프도록 희미한 레드(Red).

혼자만 밝게 빛나서, 얼핏 보면 레드인데.

자세히 보면 핑크빛이다.

하지만 지금은…….

슬프도록 흔들거리는 희미한 붉은색에 가깝다.

눈을 꼭 감고, 손으로 마이크를 어루만지며 김덕후는 노래 불렀다.

달콤했던 장미 인생.

눈보라에 꺾이니.

반주 소리가 줄어들면서, 김덕후의 목소리만이 체육관을 울렸다.

읊조리듯, 탄식하는 목소리.

체육관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홀로 남은~ 빛 잃은~ 장미야아~!

김덕후의 절규가 체육관에 메아리쳤다.

‘흐읍!’

흐느끼던 사람들도 숨을 틀어막았다.

엄청난 긴장감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숨죽이다 못해, 숨 막혀 버릴 것 같은 강약 조절.

김덕후는 보는 사람들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는데.

배 속에서 나오는 강렬한 고음이 폭발했다.

오랜 세월! 사진 속에! 그의 모습 만나니~

참가자 중 일부 아주머니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나 어떡해!

―쟤 어쩌려고 저래!

―아니,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흔들어 놓으면…….

언제쯤! 그이 숨결! 느낄 수가 있을까―!

‘후우―!’

클라이막스를 무사히 끝낸 김덕후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떴다.

―엄마야!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다. 김덕후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김덕후는 그 여자의 눈길을 붙잡았다. 아무 데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리고 낮고 잔잔하게 노래를 마무리 지었다.

오매불망 장미는~

오매불망 장미는~

잊지 않으리라.

‘드디어 노래가 끝나나 보다.’

숨넘어갈 뻔한 관객들이 방심할 찰나.

통뼈가 들어간 듯 단단한 목소리가 다시 천장을 뚫을 듯 기세를 올렸다.

잊~~~ 지~~~

고요한 체육관.

모두가 김덕후의 마지막 한 소절만 기다렸다.

잠수부 뺨치는 호흡으로 음을 끝없이 이어 가더니…….

않~~ 으~~ 리라~~~!

빰바밤~ 빰!

마지막 전주가 끝났다.

“…….”

잠시간 정적이 흘렀고.

김덕후가 살며시 웃으며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자…….

“감사합니다, 김덕후였습니다.”

우와아~!

체육관이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헉!”

일석이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숨 멈추고 보게 만든 무대.

노래는 잘 모르고, 더욱이 트롯은 더 모르지만.

사랑 같은 건 안 해 본 이제 13살 6학년이지만.

일석이와 친구들도 김덕후의 무대에서 무언가 느꼈다.

“와…… 좀 전에 우리 옆에 있던 덕후 맞냐?”

“…….”

기덕이의 말에 일석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박이다, 진짜.”

종권이도 옆에서 한마디 했지만.

박수갈채 속에 초연히 서 있는 덕후를 보며 일석이는 그저 얼떨떨했다.

학교 끝나고 함께 아이스크림 사 먹고 놀이터에서 구슬치기 하던 그 김덕후가 맞는지, 실감이 잘 안 났다.

그냥…… 다른 사람,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현실감이 잘 안 느껴졌다.

카우보이는 옆에 기립하여 박수를 치고 있었다.

“뭐 하냐? 안 일어나고?”

활짝 웃으며 손이 부서져라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일석이는 멍하니 앉아서 그를 바라봤다.

“얀마, 원래 진짜 가수는 무대 위에 서면 달라지는 거야.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 네 친구 김덕후 맞으니까.”

“…….”

“함께 기뻐하자. 무대 기가 막혔잖아?”

카우보이는 일석이를 일으켜 세웠고.

이제야 무대 위에 있는 김덕후가 보였다.

손을 흔들며, 환히 웃고 있는데.

분명 일석이 친구 김덕후가 맞았다.

“덕후야! 잘했어!”

정신 번쩍 듯 일석이는 이제야 방방 뛰며 손을 흔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크게 김덕후를 향해 환호했다.

최 피디는 할 말을 잃었다.

“…….”

―휘이익~!

―브라보! 나이스! 판타스틱!

―와~ 전설의 탄생이다! 진짜!

전국민노래자랑을 가요 대전으로 만들어 버렸다.

빠른 곡을 불러도 이 정도 호응을 이끌어 내는 건 어려운데.

1960년대의 정통 트롯 곡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가만히 서서 노래 부르는 데도,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완벽한 무대.

“저…… 최 피디님?”

“…….”

충격에 휩싸인 그는 조연출의 부름이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쟤는 뭐지? 뭐 하는 애일까?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게 말이 돼?’

“최 피디님!”

“응? 어어?”

“참가자 위에서 기다리잖아요. 내려가라고 사인 보내셔야죠.”

“어…… 그래.”

흐흡~ 휴우~

최 피디는 진정하려고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었다.

“무대 어떻게 봤어?”

보통 노래하는 중에 참가자의 출연 가능성을 평가하는데.

김덕후의 무대에서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냥…… 넋 놓고 감상해 버렸다.

“말해 뭐 해요? 보셨잖아요, 역대급인데.”

“그렇지?”

“근데 전국민노래자랑 취지에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해요. 아마추어들이 나와서 노래자랑 하는 프로인데, 저 아이는 전문 가수처럼 해 버리니까…….”

최 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괜찮아, 그래서 진짜 가수가 된 선례도 있잖아.”

최 피디는 마이크를 잡았다.

“참가 번호 522번. 이제 내려가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덕후는 인사한 후 내려갔다.

“엥? 안 부르시네요?”

조연출은 최 피디가 김덕후를 따로 부를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최 피디는 시계를 한번 보고 말했다.

“궁금한 거야 많지만…… 지금 시간도 너무 늦었고, 나중에 시간 따로 내서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무대에 대해선 딱히 할 얘기도 없고. 완벽했잖아.”

“아…… 네.”

* * *

“김덕후! 김덕후!”

난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김덕후! 김덕후!”

계속 이곳저곳을 향해 묵례를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와~ 너 진짜 잘하더라!

―혹시 진짜 가수 아니니?

―전국민노래자랑에서 ‘오매불망 장미’를 듣게 될 줄이야.

“하하, 감사합니다!”

이건 뭐 초대 가수가 관객석에 난입한 것 같은 분위기랄까.

너무 반응이 뜨거우니 당혹스럽다.

―최우수상은 너야! 화이팅~

―오빠! 짱! 멋져!

오빠? 짱?

옛스러운 단어에 뭔가 싶어서 바라봤더니.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내가 황당해서 바라보자, 아주머니는 혀를 쭉 내밀고는 익살스럽게 말했다.

―노래 잘하면 오빠여~ 오빠! 따봉~

따봉……?

풉!

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하하, 네~ 고맙습니다!”

다음 참가자가 강단 위로 올라왔는데도, 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 때문에 산만하여 진행이 안 되고 있었다.

“정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조연출이 말했고, 그제야 좀 잠잠해졌다.

카우보이는 가만히 내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고.

일석이는 옆에서 내 손을 한번 꼭 잡아 주었다.

이제야 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무대 위에 오른 순간부터 지금까지. 폭풍이 지나간 것 같다.

무사히 무대는 끝난 것 같은데, 감정 이입을 너무 해서일까, 속이 좀 울렁거렸다.

후우~!

“얀마, 그러게 적당히 좀 하지. 누가 보면 본선 무대인 줄 알겠다.”

내 반응을 알아챈 카우보이가 한마디 했고, 내가 뭐라고 대답하려 하자 그는 손을 들어 막았다.

“정성을 들여야 행운이 따른다는 말 하려는 거지?”

“엇?”

귀신인데?

“그냥 쉬어~ 나도 말 안 걸 테니까. 쉬면서 무대 보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일행은 모든 무대가 끝났고.

이제 편한 마음으로 남은 참가자들 무대를 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기다리던 사람이 호명되었다.

2차 예선의 마지막 참가자.

“참가 번호 700번. 나오세요.”

이찬우, 그가 일어났다.

* * *

강당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봉숭아 연정 부른 아이잖아.

―어머~ 훈훈해.

―아주 구수하게 생겼어~

―2차 예선 클라이막스는 뒤쪽에 몰렸네~

이찬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강단 위로 올라왔다.

아까 대화해 봤을 때는 그렇게 잘 웃는 성향은 아니던데.

무대에 오르자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그 모습에서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참가 번호 700번 이찬우입니다.”

―와아~!

이찬우가 소개가 끝나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1차 예선에서 너무 잘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찬우는 강단 위에서 인사를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날 향해 싱긋 웃었다.

나도 그를 향해 활짝 웃어 주었다.

“부를 곡은요?”

“네, 신청서의 선곡 1번으로 하겠습니다.”

“아…….”

조연출은 참가 신청서를 보고 말했다.

“1차 예선과 곡이 다르네요? 맞나요?”

“네, 맞습니다.”

오…… 이찬우도 다른 곡을?

“네, 그럼 시작하세요.”

챙챙 체체쳉 챙챙! 챙챙 체체쳉 챙챙!

경쾌한 꽹과리 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1차 예선에서는 느린 곡을 하더니 2차 예선에서는 빠른 곡으로?

나와는 정반대네?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너희들~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이찬우는 전주 중 멘트를 쳤다.

아까는 경상도 사투리를 하더니, 이번엔 충청도 사투리를?

그때, 사골 뚝배기 터지는 목소리가 체육관을 들었다 놨다.

신토불이여어~~!

우와아~!

목청 장난 아니네.

‘신토불이’ 한마디에 전 참가자가 일어섰다.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굴까~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지만.

난 춤출 정신이 아니었다.

이찬우가 잘 보이도록 서서 그를 세심히 관찰했다.

빠른 곡을 부르면서도 그는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다리 스텝만 살짝 찍었다.

움직임이 크진 않았다.

오로지 목소리의 힘만으로 군중들의 흥을 최고조로 이끈 것이다.

중간 빠르기의 흥겨운 노래가 그의 목소리와 참 어울렸다.

목소리가 마치 장구 같았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 불이여~

땅꾼과 뱀돌이도 일어나고.

태권하리도 일어나고.

카우보이는 말 타고 있고.

이찬우의 노래에 체육관의 모든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미칠 것 같은 흥겨움이 아니라, 살랑거리는 흥겨움.

모두를 기분 좋게 하는 리듬을 이찬우가 만들어 냈다.

‘역시 대단하네. 2019 미스터 트롯 잔치에서 3등 한 사람다워. 떡잎부터 달라.’

이제 분석은 그만하고 나도 함께 어울려 춤을 췄다.

“싸~ 와싸~”

카우보이와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일석이와 등을 맞대고 부비부비 클럽 댄스도 추고.

방송 댄스 학원에서 배운 셔플 댄스를 출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다.

이찬우의 무대에 방해를 주는 것 같아서, 셔플 댄스는 바로 관두었다.

신토불이를 부르는 약 3분간.

정말 정신없이 재밌게 놀았다.

분명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오늘 하루.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이찬우에게 고맙다.

“수고하셨습니다! 노래 너무 좋네요~!”

조연출도 스텝 좀 밟았는지, 숨이 약간 가뿐 목소리로 말했다.

“이로써 전국민노래자랑 예선전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모두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휘이익~!

―수고하셨어요!

조연출은 참가자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시계를 본 뒤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자정이 좀 넘어서 12시 10분인데요.”

“…….”

“2~3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시면, 본선 출연자 호명하겠습니다.”

“헉!”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옆에서 일석이의 탄식이 들렸다.

“최대한 빨리하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심사 위원들과 스태프들은 최 피디의 자리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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