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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93화 (93/250)

93화. 오매불망 장미(1)

휘이익~!

브라보!

땅꾼과 뱀돌이의 무대를 지켜본 다른 참가자들은 무대가 끝나자 큰 박수를 보냈다.

나 또한 있는 힘껏 박수를 치며 외쳤다.

“잘했다! 진짜 잘했어!”

땅꾼과 뱀돌이는 이제 인사를 하고 강단 아래로 내려왔다.

와락!

일석이는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날 와락 껴안았다.

“헉! 숨 막혀!”

“덕후야아~!”

기덕이와 종권이도 빙그레 웃으며 날 껴안았다.

세 사람은 날 꼭 안고서 동동 뛰었다.

“왜들 이래?”

일석이는 껴안은 채로, 내 어깨에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고마워~ 덕후야.”

옆에 있던 기덕이도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덕후야. 나 솔직히 감탄했어. 앞으로 나, 정말 너한테 잘할 거야.”

“응? 언제는 뭐 나한테 못했었니?”

기덕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못했던 거는 아니지만, 솔직히 좀 시샘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

“근데, 넌 우리와 다르다는 거…… 좀 전에 네가 강단 아래에 우리 무대 응원하는 거 보고 확실히 느꼈다.”

“야…… 좀 오글거린다. 뭐 그런 말을 대놓고 하냐. 그냥 알아서 잘해 주면 되는 것이지.”

그럼에도 기덕이는 가슴을 두들기며 뻔뻔하게 말했다.

“내 스타일이야.”

“아, 그래.”

종권이도 웃으며 말했다.

“덕후 아니었으면 완전히 망쳤을 거야. 고마워.”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나온 것뿐이었다. 장기간 열심히 연습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기 망치는 걸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아직 애들이라 분위기에 쉽게 휩쓸린다.

땅꾼과 뱀돌이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단체 + 분장’ 컨셉이 겹치는 ‘태권하리’ 팀이 올라왔고.

그분들은 정말 굉장한 퍼포먼스를 보여 줬다. 땅꾼과 뱀돌이는 바로 그다음 차례라 분위기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멜로디 없는 반주에 노래 부르는 것도 아직 익숙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난 응원하는 듯하면서,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박자를 찾도록 도와줬던 것이다.

“긴장해서 그래~ 다음엔 잘할 거야.”

옆에서 카우보이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반칙이야, 반칙.”

난 못 들은 척했다.

“얘들아~ 어서 앉아서 쉬어.”

난 아직도 다리를 미세하게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일석이는 내 옆자리에 앉으며 다정하게 날 불렀다.

“덕후야아~”

“응?”

“만약에 우리 본선에 진출하게 되면 말이야.”

어째 너무 다정하게 부르니 불안하다.

“그때도 지금처럼 해 주면 안 되겠니? 무대 아래서 함께 춤추고 노래 불러 줘.”

“…….”

난 대답하지 않았다.

* * *

이후로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나와 땅꾼과 뱀돌이 사이에 합격자가 꽤 많았었고.

그들의 2차 예선이 지루하게 이어졌는데,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함~!”

난 크게 하품을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찬우가 눈에 들어왔다.

“…….”

이찬우 주위에는 사람도 없고,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야~ 너는 하품이 나오냐?”

그런 말을 하는 카우보이는 신발에 양말까지 벗고 다리 뻗고 쉬고 있었다.

“하암~ 나오네요. 오래 기다리니까.”

난 또 하품을 하며 말했고, 카우보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입 찢어지겠다. 넌 긴장도 안 되나 봐?”

“긴장이요? 2차 예선 시작할 때쯤에는 좀 긴장했었는데, 지금은 뭐…… 하도 기다리다 보니깐. 제 참가 번호 호명하면 다시 긴장되겠죠.”

“자신감이냐? 익숙함이냐?”

“뭐…… 글쎄요, 하하.”

난 대화하면서 여전히 이찬우를 주시했고.

내 시선을 느낀 카우보이가 말했다.

“보지만 말고 궁금하면 말 걸어 보지 그러냐?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동기인데.”

“흠…… 네. 그러려고요. 잠깐 다녀올게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이찬우에게 다가갔다.

걸어가는 김덕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카우보이는 중얼거렸다.

“얼굴은 곱상하게 생겨서는 숫기가 넘친단 말이야. 요즘 초등학생은 다 저런가?”

난 대뜸 이찬우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강단 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형.”

“응?”

부르는 소리에 이찬우는 그제야 날 바라봤다.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나 부른 거야?”

“응, 나 6학년인데. 형 맞지?”

“어…… 그렇긴 한데.”

“형, 몇 살이야?”

“15살. 중2야.”

“응~ 반가워. 난 김덕후라고 해. 형이랑 얘기하고 싶어서 왔어.”

이찬우의 시선은 다시 무대 위를 향했다.

“미안한데, 이 무대 끝나고.”

“응?”

“좀 기다려라.”

“아, 알았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나왔나 싶어서 나 또한 무대 위를 봤다.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음정 박자도 안 좋고, 특별한 부분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찬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무대 위를 지켜봤다.

짜자잔~!

무대가 끝나자, 이찬우는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난 궁금해서 힐끗 바라봤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잘 보이진 않았다.

“형 뭐 해?”

필기가 끝났을 즈음 난 다정하게 물었다.

“저분 선곡이 좋길래. 노래 부를 때 손끝 동작도 좋고. 그렇지 않았냐?”

“…….”

난 가창력이 별로라서 눈여겨보지 않았다.

“배우지 않은 분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동작들이 있거든. 난 그런 게 좋더라고. 게다가 선곡도 좋았고. 나중에 나도 불러야지. ”

이런 허접한 무대에서도 배울 거리를 찾는 건가?

이찬우는 계속 뭔가를 떠올리다가 적고, 떠올리다가 적고. 이 행동을 반복했다.

매우 진지해 보였다.

“자, 이제 됐어. 무슨 얘기 하러 온 거야?”

이찬우는 수첩을 덮고 내게 물었다.

“너, ‘꽃을 문 남자’ 불렀잖아. 이름은 김덕후고.”

“엇, 기억하는 거야?”

“당연히 기억하지. 1차 예선에서 잘했잖아. 음…… 두 번째 정도로 잘했던 거 같은데.”

“두 번째?”

난 궁금하여 물었다.

“첫 번째는 누군데?”

“나지.”

이찬우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혀, 형이라고?”

엄청난 뻔뻔함에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러자, 이찬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왜? 넌 그렇게 생각 안 하냐?”

“…….”

“난 내가 너보다 좀 더 나았던 거 같은데? 아닌가?”

난 말똥말똥 그를 바라봤다.

대화 내용만 봤을 때는 경쟁자로서 경계하는 듯했지만.

그의 표정과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별다른 의미 없이 본인이 느낀 대로 얘기하는 듯한…….

처음엔 뻔뻔하다고 느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 생각엔…… 내가 형보다 좀 더 나았던 거 같아.”

“그래?”

난 일부러 이렇게 말해 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엇비슷하긴 해. 너, 꽤 잘하더라. 너 노래 연습 어떻게 했니? 트롯 하는 거지?”

그리고 우리는 잠시 서로의 연습 방식과 좋아하는 곡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는 말.

새삼 실감한다.

어딜 가도 잘한다는 소리만 듣고, 주목만 받았었다.

게다가 2회차 인생이기도 하고.

적어도 미성년자 중에서는 내가 대한민국 최고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평생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 수는 없으니, 좀 자랄 때까지 나 자신을 누르고 실력을 쌓는다는 생각이었다.

내 또래의 이런 인재를 만난 것도 충격이기도 했지만, 미래의 트롯 스타 이찬우가 어렸을 적부터 트롯을 해 왔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다.

“7살? 너도 일찍 시작했네. 난 6살 때부터 했는데.”

심지어 나보다도 1년 빨리 입문했다.

살아온 방식이나,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니 얘기가 잘 통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진중하고 성실해 보였다. 이찬우도 2회차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확실히 될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형 2차 예선에서도 같은 곡 부를 거야?”

이 말에 이찬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런 건 물어보는 거 아니야.”

“…….”

그렇게 정색하고 대답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난 살짝 민망해졌다.

“나중에 또 대화하자. 형 무대 좀 봐야겠다. 그리고 네 차례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아, 그래.”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기 전에 이찬우를 향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화이팅~”

하지만 이찬우는 피식 웃고는, 나처럼 파이팅을 외쳐 주지는 않았다.

대신 살짝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해라.”

* * *

자리로 돌아와서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는 내내.

좀 전에 이찬우와 나눈 대화 내용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 20분 얘기했나?

겨우 나보다 두 살 위인데, 굉장히 어른스럽고,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자기 확신…….

13년간 살아오면서, 아니, 전생 35년 합쳐서 48년간 살아오면서도 느껴 보지 못한 신선함이었다.

난 전생에 너무 평범하게만 살아서, 이찬우 같은 인간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참가 번호 512번.”

엇! 드디어 내 차례구나!

난 자리에서 일어났고.

힐끔. 날 보는 이찬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날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주었다.

“김덕후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1차 예선 때와는 달리 일석이는 안 자고 있었고.

기덕이와 종권이는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었다.

2차 예선 무대를 거친 이후로, 태도가 확 달라졌다.

“화이팅!”

난 카우보이와 아이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무대로 올라갔다.

―오~ 나왔다!

―핑크 정장 나왔네.

―1차 때 장난 아니었잖아.

―봉숭아 연정 부른 아이와 얘 중에 최우수상자 나올 거 같아.

다른 참가자들의 술렁거림이 엄청났다.

내가 강단 위로 올라오자, 심사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심사 위원들은 자세를 고쳐 잡았고.

카메라도 여러 대가 켜졌다.

―와 씨, 참가자 차별 대우하네.

―나 노래 부를 때는 카메라도 안 켜더니.

―근데 얘가 우승할 거 같지 않아?

―글쎄 난 봉숭아 연정 부른 애가 좀 더 낫던데.

나와 이찬우를 저울질하는 소리도 들렸는데,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비슷했다.

―핑크는 무대 매너가 좋잖아.

―그래도 난 묵직한 트롯이 좋더라. 봉숭아가 구수해서 좋았어.

―핑크는 잘생겼잖아.

―봉숭아도 나쁘지 않던데.

“자, 자, 다른 참가자분들은 조용히 해 주세요.”

결국 조연출이 주의를 주었다.

무대를 올라간 지 좀 됐는데도, 주위가 너무 소란스러워서 진행을 못 하고 있었다.

“부르실 곡이…….”

“네, 선곡 1번입니다.”

“1번이요……?”

조연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진짜 1번 맞죠? 곡을 바꾸는 거 맞나요?”

“맞습니다.”

“네…… ‘오매불망 장미’.”

이 말에 사람들은 또 술렁였다.

―오매불망 장미?

―그거 엄청 오래된 노래 아니야?

―1960년대 곡일 텐데?

―그 절절한 노래를 전국민노래자랑에서……?

‘오매불망 장미’

전쟁 중, 남편 잃은 설움을 담은 편지에 곡을 붙여서 만든 노래다.

절절한 노래.

1차 예선에서 불렀던 ‘꽃을 문 남자’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난 서민의 애환이 듬뿍 담긴 정통 트롯을 꼭 부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곡이다.

짠자자잔 잔잔. 짠자자잔 잔잔.

은은한 노래방 전주가 흘러나온다.

워낙 옛날 곡이라 반주도 단조롭다. 여러 악기가 사용되지 않았다.

흐읍~ 휴우~

전주가 끝날 무렵. 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첫 소절을 떼었다.

정 주셨던 밤에 눈물 흘렸네.

이별의 물로 이불 적셨네.

체육관을 울리는 목소리.

난 다시 한번 감정을 담아, 아랫배에 힘을 주고.

목에 힘을 빼고, 횡경막을 올리며, 목소리를 담아 내었다.

그 겨울 추운 바람. 그 겨울 추운 바람.

눈보라와 가시었네.

단 4마디만에…….

체육관은 완전히 고요해졌고.

‘흑…….’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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