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2차 예선(2)
“얘들아, 다녀올게.”
카우보이의 표정은 비장했다. 1차 예선전과는 달랐다.
그때는 표정이 가볍고,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 같았다.
“아저씨, 화이팅!”
“힘내세요!”
난 친구들과 함께 열렬히 응원하였다.
카우보이는 긴장해서일까. 우리 응원 소리에도 한 번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일석이가 옆에서 말했다.
“덕후야, 아저씨 손 떨린다.”
강단을 향해 걸어가는 카우보이의 각오가 느껴졌다.
“전국민노래자랑 20년을 했어도, 그렇게 긴장이 많이 될까?”
일석이의 말에 난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본선 진출은 몇 번 없었고, 오늘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잖아. 로또 번호 5개 맞춰 놓고, 마지막 번호 기다리는 기분일 거야.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 긴장이 많이 되시겠지.”
“로또? 그게 뭐야?”
난 입술을 깨물었다.
‘아…… 적절하지 않은 비유였다. 애들 앞에서.’
“몰라~ 그냥 중요한 순간이라는 의미야.”
“로또…… 중요한 순간……. 멋진데? 외워 둬야지.”
“…….”
항상 아이들 앞에서는 표현에 조심하려고 신경 쓰는데.
지금처럼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간혹 깜빡하는 경우가 있다.
“아, 아, 참가 번호 22번 하재춘입니다.”
어느덧 강단 위에 올라온 카우보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네, 선곡은요?”
“신청서의 1번 선곡으로 하겠습니다.”
“네, 그럼 ‘보삐보삐’요.”
대부분의 2차 예선 참가자들은 1차 예선과 동일한 곡으로 불렀다.
후우―!
카우보이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는 두 손을 모으고 무대에 섰다.
―화이팅!
―아저씨! 멋있어요!
전주 나오기 전, 나와 친구들의 응원 소리가 체육관에 울렸다.
카우보이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살짝 미소 지었다.
삐봉~ 삐봉~ 삐봉~ 삐봉~
삐봉~ 삐봉~ 삐봉~ 삐봉~
보삐보삐의 전주, 발랄하면서도 반복되는 기계음이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댄스곡이라 그럴까. 무반주와는 차이가 많이 났다.
“안녕하십니까아~ 전국민노래자랑 20년 지킴이~!”
카우보이는 전주 중에 갑자기 멘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하아~ 재에~ 추운~ 인사 올립니다~!”
옛날 DJ처럼 목소리를 깔고, 말끝을 엿가락처럼 늘렸다.
삐봉~ 삐봉~ 삐봉~ 삐봉~
전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하재춘의 멘트는 계속됐다.
“선택해 주세요오~ 이 하재춘이~ 노원구 편 재밌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아! 시청률 올려 드릴게요~!”
툭! 다라다닷 툭탁!
멘트와 동시에 전주는 끝났고.
화내지 말고 웃어 줘.
그만 화 안 풀면 쏴 버릴 거야.
하재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자는 기가 막혔다. 가창, 음정, 성량, 이런 건 다 모르겠지만 적어도 박자만큼은 완벽했다.
1차 예선 때처럼 카우보이는 몸을 삐그덕대며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는데.
달라진 게 있다면 가사 끝마다 ‘하! 하!’, ‘호우!’, ‘컴온!’ 등 추임새를 붙였다.
그리고 뭔가 필사적이었다.
오늘 무대 위에서 죽자는 마음으로 덤벼드는 것 같았다.
“와! 완전 신나!”
강렬한 사운드!
카우보이의 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보삐 보삐! 보삐! 찍!”
이 대목부터는 난 자리에 일어나서 몸을 흔들며 따라 불렀고.
옆의 일석이, 기석이, 종권이도 함께 따라서 일어났다.
“보삐 보삐! 보삐! 찍!”
이런 우리를 향해 카우보이 아저씨는 활짝 웃었다.
오늘 만난 이후 본, 가장 밝은 미소였다.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 * *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짝짝짝.
카우보이는 큰 박수를 받으며 강단 아래로 내려갔고, 최 피디는 피식 웃으며 조연출과 대화했다.
“하재춘 아저씨 정말 열정이 대단하다, 그치?”
“그러니까요, 우리보다도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더 깊은 것 같아요.”
“참가자가 시청률을 다 걱정하고 말이야.”
최 피디는 2차 예선 참가자 명단을 쭉 살피며 말했다.
“하아…… 하재춘 씨가 오늘 괜찮긴 한데.”
“…….”
“오늘 잘하는 참가자들이 너무 많아서…… 좀 아쉽네.”
“그러게요, 아쉬워요.”
카우보이는 활짝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하하!”
그는 크게 웃었다.
“아저씨! 진짜 잘하셨어요!”
우리는 그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 후회는 없어! 떨어져도 괜찮아! 재밌게 놀았어!”
카우보이는 후련하다는 듯이 웃었다.
난 그 말이 납득이 안 되어 말했다.
“떨어지긴 왜 떨어져요? 진짜 잘하셨는데. 분위기 못 보셨어요? 난리 났었는데.”
카우보이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에이~ 이 정도로는 15팀 안에 들긴 힘들어~”
“15팀이요?”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 본선 진출 팀이 15팀이야. 항상 그랬어.”
“아…… 겨우 그거밖에 안 뽑아요? 2차 예선 150팀 중에 15팀…….”
좀 빡세 보이는데?
그래도 난 자신이 있지만, 옆에서 이 얘기를 들은 일석이와 친구들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뉴페이스를 선호하거든. 압도적으로 앞서지 않는 한 어려워~ 아저씨는 몇 번 출연을 했으니까 재출연은 쉽지 않지.”
스스로의 운명을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어서일까.
남의 일 말하듯 너무 덤덤해 보였다.
다시 가라앉은 분위기로 참가자들의 공연을 보는데.
“우와~ 대박!”
고대 무장 복장을 입은 7명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중계동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태권하리’입니다~!”
그리고 공중 발차기를 하는데, 퍼포먼스가 엄청났다.
“아니, 왜 이런 팀을 처음 본 것 같지?”
1차 예선 때 본 기억이 없다. 내 말에 일석이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우보이가 말했다.
“뱀돌이들 나가서 대기 중일 때 나왔던 팀들이야. 뱀돌이들은 줄 서 있으니까 몰랐을 거고, 덕후 너는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친구들 응원하느라 정신 없더만.”
“아…….”
그래서 못 봤구나?
일석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그럼 저 형들이 우리 바로 앞 순서야?”
“…….”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땅꾼과 뱀돌이와 컨셉이 겹친다.
순서도 붙어 있고, 이러면 두 팀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태권하리’ 7명은 무대에서 날아다니고, 여기저기 송판 파편이 튀고 아주 난리였다.
다만 노래는 많이 아쉬웠다.
박력 있는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새침한 남자’를 불렀는데.
음정, 박자 다 개무시했다.
그리고 7명이 나와서 왜 1명만 노래를 부르는지……. 나머지는 뒤에서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송판이나 부수며 날아다녔다.
그냥 대놓고 퍼포먼스 팀.
“감사합니다!”
어쨌든 퍼포먼스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참가 번호 322번!”
“헉!”
일석이는 놀란 얼굴로 사색이 되었다.
하필 순서가 바로 붙어 있네.
짝! 짝! 짝!
난 크게 박수를 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자자, 파이팅! 가자! 땅꾼과 뱀돌이 가자!”
기덕이와 종권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기가 팍 죽어서는…….
“1차 예선 때처럼 하면 돼! 반주에 현혹되지 말고, 반주를 탈 수 없으면 무시해 버려! 그냥 너희들 페이스대로 가는 거야~!”
“참가 번호 322번!”
일석이가 안 올라오자, 다시 호명되었다.
“일석아, 어서 가.”
“응? 어어.”
얼빠진 표정으로 일석이는 강단을 향했고.
“야, 야, 터번 가져가야지!”
“아……”
“기덕아! 뱀 탈!”
“아, 맞다!”
정신이 나간 땅꾼과 뱀돌이는 어리바리하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 * *
“참가 번호 322번, 땅꾼과 뱀돌이 팀입니다.”
일석이는 떨리는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1차 때보다 떨림이 더한 것 같다.
조연출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네, 바이브레이션은 노래할 때 해 주시고요.”
―와하하!
조연출의 농담에 다른 참가자들은 웃었지만, 일석이는 여전히 웃지 못했다.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자, 긴장 풀고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1차 때 보니까 아주 잘하던데요?”
―네…….
“그냥 놀다 가면 되는 겁니다. 선곡은 동일하죠?”
“맞습니다.”
“네, 그럼 ‘똬리’ 틀겠습니다. 준비하세요!”
흐읍~ 휴우~
일석이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무반주로 했던 1차 예선에서도 전주에서 입으로 반주를 넣었었다.
반주까지 고려한 연습을 한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얼어 버리니, 몸도 얼어 버려서.
그저 뻣뻣하다.
바로 앞 순서에 날아다니던 ‘태권하리’ 팀 때문에…….
안 그래도 무대가 생소하고 어려운 아이들은 그냥 얼어 버린 것이다.
“엇?!”
밤바바밤~ 바바바바밤~
밤바바밤~ 바바바바밤~
빰빰! 빰빰!
반주가 시작과 함께, 일석이는 놀랐다.
세 사람은 허둥댔지만 연습했던 동작대로 왼발과 오른발을 왔다 갔다 하며 박자를 맞추다가.
미, 미끈한 너는 뱀 같은 여자.
결국 노래를 반 박자 늦게 들어갔다.
원래 가창은 개판이었지만, 허둥대며 부르니 더 정신이 없었다.
너는 더 이상 땅을 기지 마.
비벼 대지 마.
여기 똬리를 틀어.
허둥대며 노래를 부르며 준비한 춤도 제대로 못 추다가, 결국 킬링 파트에 들어갔는데…….
전혀 흥이 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최 피디가 말했다.
“얘네들 왜 이러지? 원래 이랬었나? 신났던 거 같은데.”
“긴장을 좀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면 본선에 못 올리는데. 괜찮은 출연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지켜보시죠.”
움직이지 마. 자세 잡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 편하게 쉬어.
다 내가 알아서 할게. 우~!
‘우~’에서 일석이가 격렬하게 한번 허리를 튕긴다.
이번에도 튕기긴 했지만, 영~ 어설펐다. 남자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바밤~ 바밤~ 밤바바밤!
1절이 끝난 후, 간주 중.
땅꾼과 뱀돌이는 고개를 숙이고 춤을 췄다.
최 피디는 인상을 찡그렸다.
“멘탈이 약하네.”
“아무래도 애들이라…….”
“본선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불러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시켜?”
“…….”
조연출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다셨다. 그만큼 땅꾼과 뱀돌이는 1차 때 아주 인상적이었다.
결국 최 피디가 사인을 내렸다.
“노래 끊어, 더 안 봐도 되겠다.”
“네…….”
조연출이 노래를 끊으려 하는데.
유후~!
핑크빛 옷을 입은 한 아이가 갑자기 강단 앞으로 나왔다.
“이야~ 신난다! 와싸!”
강단 바로 아래서 반주에 맞춰서 신나게 춤을 추는 아이.
김덕후였다.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심지어 손가락 박수까지 쳐 가며, 어깨춤을 추는데.
막춤 같아 보이지만, 질서가 있으면서도 격이 있었다.
“싸~ 싸~ 호르르르~! 와싸~!”
다년간의 각종 특산물, 지방 무대에서 쌓은 댄스 실력.
갑작스러운 김덕후의 등장. 그리고 그의 춤사위에 놀란 조연출은 노래 끄는 것도 잊어버렸고.
최 피디도 멍하니 김덕후를 바라보았다.
반주가 끝나갈 무렵.
“일석아~! 이번엔 제대로 들어가는 거야!”
김덕후의 외침에 땅꾼과 뱀돌이들은 힘차게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박자에 맞춰서.
왼발을 오른발 뒤꿈치에 찍고.
오른발을 왼발 뒤꿈치에 찍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김덕후가 크게 구령을 붙였다.
“둘! 셋! 바밤~ 바바밤~!”
너는 더 이상! 땅을 기지 마!
비벼 대지 마아~!
여기 똬리를 틀어! 와싸!
땅꾼과 뱀돌이들은 완전히 돌아왔다.
뱀돌이들은 은색 빛을 내며 뒤에서 꿀렁이고.
땅꾼의 발재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짝! 짝! 짝!
김덕후는 이제 춤추는 걸 멈추고, 강단 바로 아래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박수만 췄다.
여기 똬리를 틀어!
여기 똬리를 틀어 봐~!
바바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