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90화 (90/250)

90화. 핑크빛의 향연(2)

살랑살랑~

김덕후는 온몸을 살랑이며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몸에서 봄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단순한 동작임에도 어찌나 리드미컬한지.

보는 사람은 애간장이 녹는 듯했다.

활짝 핀 당신의~~ 꽃잎을 물어요!

사랑을 새길 수 있게~

고개를 살짝 틀어서, 눈을 흘겼다.

‘사랑을 새길 수 있게’라는 가사에서는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는데.

―어메~ 쟤 뭐여?

―어머…….

―심장아, 나대지 마!

그 손짓 한 번에 참가자들. 특히 아주머니들은 이마를 잡고 쓰러졌다.

꽃 같은 당신 향기가 마음을 휘저어 놓으며

온통! 나를! 유혹하네요.

가사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힘을 줬다 풀었다 하며 부르는데.

능청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어서 새빨갛게 농익은 섹시한 사십 대 남성이 부르는 것 같았다.

지켜보는 여성 참가자들은 얼굴이 빨개져 갔고.

남성 참가자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 김덕후를 지켜봤다.

나는야 그대 몸 위로 영원히 날고 싶어라~

천천히 곱씹으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가사였는데.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더티섹시’

실제 이 노래의 원곡 가수는 사십 대 중반의 느끼한 아저씨다.

하지만 김덕후의 몸짓과 화사한 핑크빛 옷이 ‘더티 섹시’에 ‘큐티’라는 한 단어를 추가해 주었다.

‘큐티한 더티 섹시’

체취에 취해 눈빛에 취해 보다 못해 물어 버린

아주머니들은 나 좀 물어 달라며, 무대 위로 난입할 기세였다.

노래가 계속될수록 몰입도가 엄청나서 환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몰입한 관중들로 체육관 전체가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는 듯했다.

엉덩이와 손을 살랑거리며 무대를 휘젓고 있는 김덕후.

이제 노래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노래의 절정은 도적같이 찾아왔다.

무대를 끝까지 보고자, 겨우 정신 줄 잡고 계시던 아주머니들은 김덕후의 마지막 소절에 끝내 가 버렸다.

나는 나아는~~~~

길게 쭉~ 뽑아내더니.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쏙 꺼냈다.

새빨간 장미꽃이었다.

꽃을! 문~~ 남즈아아~~~!

노래를 끝마치면서.

꺼내듯 장미꽃을 입에 쏙 물어 버렸다.

―어…… 머.

―어떡해, 어떡해! 미쳤나 봐.

―나 어떻게, 어떻게 좀 해 줘 봐.

―쟤를 어떻게 해야 할까…….

노래는 끝났다.

박수 치는 것도 잊고 웅성거리는 소리만 체육관에 가득 찼는데.

‘어떻게’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들렸다.

짝짝짝!

최 피디가 크게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브라보~!”

이를 시작으로 체육관에 안에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

* * *

―우와아~!

헉. 헉.

속 울렁거려서 혼났다. 중간에 음정이 좀 떨리긴 했지만…….

우와아~!

반응을 보니, 무사히 잘 끝낸 거 같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많이 어색했다.

어쨌든 정진과 무대에 많이 서 봤으니, 이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대는 무사히 끝마쳤지만,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난 빨리 무대 아래로 내려오려 했다.

“감사합니다~!”

무대를 내려가려다가……

‘근데 나 합격이야, 불합격이야?’

아직 판정이 안 내려진 것 같은데.

내가 못 들은 건가?

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마이크를 들고 물었다.

“저…… 그런데 제가 결과를 못 들은 거 같아서요.”

“아, 앗차!”

김덕후를 멍하니 보고 있던 심사 위원은 그제야 큰 소리로 외쳤다.

“합격!”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우와아~!

짝짝짝.

난 빙그레 웃었다. 다행이다.

2차 예선 참가 신청서를 받으러 최 피디에게 갔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최 피디는 무슨 이상한 동물 보듯 내게서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난 손을 쭉 내밀며 물었다.

“주세요.”

“응? 어어.”

멍하니 있던 최 피디는 어색한 몸짓으로 신청서를 건네며 말했다.

“이야~ 너 진짜 잘하더라.”

“감사합니다.”

“너, 원래 노래하는 친구니? 옷도 그렇고.”

이걸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노래하는 사람 맞고요, 옷은 이번에 맞춘 거예요. 전국민노래자랑 나오려고요.”

“아~ 그래? 옷 너무 멋지다. 근데 뭘 1차 예선에서 이렇게까지…… 너 정도면 가볍게 했어도 충분히 합격했을 텐데.”

난 이 말에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무대에 최선을 다해야죠. 결과를 떠나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야 행운이 따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분이 계셔서요.”

“오~ 훌륭하네. 누가 그런 말을 해 주니? 선생님?”

선생님? 아니다. 김 부장이 내게 종종 하는 말이다.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난 피식 웃고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직장 상사요.”

“뭐어?”

최 피디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난 큰소리로 웃고는 물었다.

“근데 심사 위원님이 전 따로 안 부르시네요.”

“할 말이 없어서 그럴 거야. 이런 무대에 무슨 할 말이 있겠니. 2차에서도 이렇게만 해라.”

“헤헤, 2차 때는 다른 곡 부를 건데. 그럼 저 갈게요~ 합격 고맙습니다~”

난 손을 흔들며 자리로 돌아갔다.

최 피디는 김덕후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조만간 대한민국이 들썩이겠어.”

조연출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요, 역대급 ‘전국민노래자랑’이 될 것 같은데요?”

똘망똘망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외모.

청아한 목소리에 아직 소년티가 물씬 풍기는 중성적인 매력까지.

거기다가 음악적 소양도 엄청났다.

반주 없이 불렀음에도 마치 세션 밴드가 옆에서 사운드를 맞춰 주듯 음정 박자가 완벽했다.

무엇보다도 무대 몰입도.

단신으로 몸짓과 표정 몇 번에 이런 몰입도 있는 무대를 만들어 냈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최 피디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봐.”

“네.”

“방금 걔 이름이…….”

“핑크요? 김덕후입니다.”

무대 위로는 이미 다른 참가자 5명이 넘게 지나갔지만, 계속 김덕후 얘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 덕후. 걔한테 카메라 하나 붙여.”

“네? 아 네!”

처음엔 놀랐다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조연출은 고개를 끄덕였다.

“덕후의 전국민노래자랑 과정 전체를 담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최 피디는 한숨을 쉬었다.

“아~ 아쉽네. 도착했을 때부터 찍어 놨으면 더 좋았을 텐데.”

* * *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데.

주변의 시선이 너무 뜨겁다.

온몸을 스캔당하는 기분.

특히 여성분들의 열정이 대단했는데.

흘겨보거나, 곁눈질로 보거나, 대놓고 보거나.

여튼 다들 쳐다보는데, 그래도 막 나서서 말을 걸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괜찮네.

―13살이라고 하지 않았어? 초등학생이 왜 이렇게 멋진 거야.

―나 두근거려도 돼?

―돼~ 돼~ 무대에 선 사람 보고 두근거린 건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수군거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재킷이라도 먼저 벗고 자리로 올라올 걸 그랬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겨우 자리에 도착했다.

“덕후야~!”

나갈 때만 해도 자고 있던 일석이는 일어나서 나를 반겼고.

기덕이와 종권이는 부동자세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갈 때 먼저 합격했다며 으스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기덕아, 종권아. 평 좀 해 줘. 뭐 부족한 거 없었니?”

난 그런 두 친구의 반응이 재밌어서 장난스럽게 물었고.

내 물음에 두 아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일석이 너는~ 내가 나가든 말든 잠만 자고 있더니.”

내가 살짝 핀잔을 주자, 일석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야아~ 깨우지 그랬어. 무대 오를 때 잔뜩 긴장했던 게 풀리기도 했고, 너무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헤헷.”

“웃지 마. 나 삐쳤어.”

토라진 모습을 보이자, 일석이는 내 팔장을 끼며 아양을 불렸다.

“야아~ 미안해~”

피식.

내가 살며시 웃자, 일석이는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

난 일석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언제 깬 거냐? 이제 안 졸리냐?”

“네 첫 소절에 번쩍 깼어. 꽃을! 문 남자아아~ 할 때. 하하.”

“하하, 그래? 그럼 나 노래 부르는 건 다 봤겠네?”

“다 봤지!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잘하더만. 진짜 멋졌어.”

그러면서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 가수!”

일석이와 얘기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요?”

카우보이 아저씨였다.

“그래~ 김 가수! 일로 와 봐.”

카우보이 옆자리로 가서 앉자,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척 올리고는 말했다.

“뭐야? 왜 사람을 놀래고 그래?”

“네?”

“하하. 이 정도로 잘하면 말을 해 줬어야지!”

“하하.”

예상하지 못한 극찬에 난 멋쩍어서 웃었다.

“너,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운 거니? 무대 매너도 그렇고, 며칠 연습해서 나올 수 있는 실력이 아닌데.”

“아…… 네, 앞에서 인터뷰했던 그대로예요. 어릴 적부터 트롯이 좋아서 한길로만 가고 있어요. 연습하고, 노래하고, 지방 무대에 서기도 하고요.”

“아…… 역시.”

카우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본선에서도 이 노래로 가는 거지? 잘하면 진짜 ‘대상’도 가능하겠는데? 아직까지는 분명히 네가 눈에 가장 띄었어.”

“아니요, 2차 예선부터는 다른 곡으로 갈 생각이에요.”

“그래? 무슨 곡?”

그래도 같은 참가자인데…… 카우보이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선곡을 알려 주는 건 좀 불편했다.

“그냥 정통 트롯이요.”

난 뭉뚱그려서 대답했다.

“아…….”

카우보이는 약간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이 곡으로 가지. 지금이 딱인데.”

난 피식 웃고 대답했다.

“지금 곡도 좋은데요~ 제가 바랐던 무대를 하고 싶어서요.”

“흠…… 결과보다는 소신이라는 말이지?”

“네.”

카우보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 사인 한 장 해 주라.”

“네?”

“미리 받아 두고 싶네. 왠지 나중에는 받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20년간 전국민노래자랑 참가자의 촉이야.”

옆에서 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런 우리를 바라봤다.

내가 머뭇거리자, 카우보이가 졸랐다.

“어서~”

난 얼떨결에 펜을 들었고.

카우보이가 말했다.

“내 이름 하재춘 꼭 써 주고, 오늘 날짜도 꼭 써 줘. 이런 건 날짜가 중요해.”

난 어떻게 쓸지 잠시 생각하다가, 아래와 같이 썼다.

[To 하재춘.]

‘오늘, 우리의 열정을 기억합니다.’

김 덕 후.

2010년 9월 2일. 전국민노래자랑.

하재춘에게 건네었다.

“와~ 아주 마음에 든다. 문구도 좋고. 너, 조그만 게 참 대단하다? 하하.”

나도 덩달아 웃었다.

그렇게 1차 예선은 끝나 갔고.

눈에 띄는 출연자는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 경쟁력이 될 만한 사람은 안 보였다.

너무 참가자가 많아서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동안에는 그랬다.

“참가 번호 700번.”

1차 예선이 끝나갈 무렵.

“안녕하세요. 이찬우입니다.”

어딘가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이찬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 봤더라?

“불러 드릴 곡은 봉숭아 연정입니다~”

그리고 사골 뚝배기 국물 같은 구수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첫 소절을 들으니, 바로 떠올랐다.

2019 미스터 트롯잔치의 3위. 이찬우.

분명 그 사람이다.

봉숭아라 부르리~~

구수한 얼굴로 걸쭉하게 노래를 뽑아내는데, 무대 매너도 좋았다.

미래의 트롯 스타. 이찬우.

나보다 두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중학생이 되어 나타났다.

“와, 이 사람이 왜 노원구에…….”

생각지 못한 경쟁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난 불안함보다는 기쁜 마음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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