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87화 (87/250)

87화. 1차 예선전(2)

우리는 주섬주섬 카우보이 아저씨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

옆자리에 앉으면서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힐끔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땡, 땡, 땡, 합격…….”

그렇게 한동안은 가만히 옆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예선은 1인당 30초~1분 정도만 보는데, 잠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무대 위를 지나갔다.

“에이, 선곡을 잘못했다, 땡. 연세가 많으시네, 합격. 춤이 어설퍼, 땡. 사연이 너무 길어, 땡. 어디서 발라드를? 땡!”

카우보이는 심사 위원과 동일한 평가를 계속해 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자리에 앉은 참가자들도 이쪽을 힐끔거리며 바라봤다.

카우보이가 심사 위원에게 지시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놀라운 적중률이었다.

“안녕하세요.”

난 살짝 말을 걸어보았다.

“응?”

카우보이 아저씨는 기다란 챙 사이로 눈빛을 빛내며 날 바라보았다.

“참가자?”

“네.”

그는 잠시 내 주변을 스캔하고는 물었다.

“조금만 더 어렸으면 합격할 확률이 높았을 텐데. 준비한 곡은?”

“네?”

대뜸 물어봐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꽃을 문 남자입니다.”

“음…… 선곡 좋고. 춤도 추나?”

“가볍게 춥니다.”

“그럼 좀 아쉬운데.”

“노래도 좀 부를 줄 압니다.”

순간 ‘전국민노래자랑 점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합격할 수 있을지 미래를 봐 달라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특히 1차 예선에서는.”

“…….”

카우보이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뭔가 생각하는 듯싶었다.

긴 챙에 가려져서 그의 눈빛이 보이지 않았다.

약 5초 후.

그는 모자챙을 올리고 안광을 쏘며 말했다.

“합격률 70%.”

“아…… 네.”

“합격할 확률이 높은 거니까, 힘내도록 해.”

“감사합니다.”

고작 합격할 확률 70%.

이건 곧 떨어질 확률이 30%라는 뜻인데.

카우보이 아저씨의 말이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왜냐면 지금까지 다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옆에서 지켜보던 일석이도 밝게 인사를 했고.

그 옆에 앉아 있던 기덕이와 종권이도 따라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흠…… 너희도 참가자?”

“네~”

“혹시 팀이냐?”

“맞아요!”

“오~!”

카우보이 아저씨는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3명이 팀이라는 거지? 팀명이 뭐냐?”

“땅꾼과 뱀돌이예요~!”

“오호~ 선곡은?”

“진남 아저씨의 ‘똬리’입니다!”

순간 카우보이 아저씨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기획사 피디가 유망주를 만난 것 같은 분위기랄까.

“춤도 추고?”

“당연하죠!”

“설마…… 의상까지 준비해 왔어?”

일석이는 대답 대신 의자 아래에 놓인 커다란 짐 바구니를 가리켰다.

“곧 변신할 예정입니다.”

“맙소사! 이번이 첫 출연 맞지?”

“네? 아, 네.”

카우보이 아저씨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일석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네…… 네?!”

“본선 진출을 축하한다.”

“……!”

* * *

1차 예선도 아니고, 본선 진출을?

일석이는 좋아서 입을 씰룩거렸다.

그만큼 지금 카우보이 아저씨가 보여 주고 있는 족집게 적중률 덕에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카우보이 아저씨는 일석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선곡 좋고, 컨셉 좋고, 팀명 좋고, 의상 준비까지.”

그리고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완벽하다.”

“…….”

“짜식들, 부럽네. 나도 본선 진출은 몇 번 못 해 봤는데.”

몇 번이라는 말은 한 번이 아니라는 뜻인데?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닌가.

“누가 가르쳐 줬냐? 어디서 필승 족보라도 구한 거 같은데?”

일석이는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기획과 컨셉은 여기 덕후가 해 줬어요.”

“덕후?”

카우보이 아저씨는 나를 보며 물었다.

“본명이니?”

“네…….”

“풉!”

젠장! 이젠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아, 미안. 근데 차라리 너도 함께 팀으로 하지 그랬냐? 왜 어려운 길을 택했어? 본선 진출 훨씬 편하게 했을 텐데.”

이 질문에 일석이가 대신 대답했다.

“덕후는 우리랑 달라요. 저희는 TV 출연이 목적이지만, 덕후에게 ‘전국민노래자랑’은 과정일 뿐이거든요. 그리고 이미 가수인데.”

“가수?”

“네~ 방울형제라고 엄청난 히트곡도 있는데, 흙장……!”

난 재빨리 손을 들어 일석이의 입을 막았다.

“일석아!”

“…….”

카우보이 아저씨는 이런 우리를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뭐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아니에요.”

난 일석이에게 하지 말라고 눈짓을 보내었고.

그는 거북목을 하고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흠!”

카우보이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대충 분위기 보니까 노래 좀 했던 모양인데, 전국민노래자랑은 가창력만으로 본선 가기 진짜 어렵다. 그 정도는 알고 있지?”

“…….”

“아, 물론 가수 뺨칠 정도로 잘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러긴 쉽지 않잖아.”

신바람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라도 어쩔 수 없다. 가수라면 결국엔 실력으로 승부 봐야지.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난 귀를 쫑긋 세웠다.

“어떤 노래를 하든 감정을 듬뿍 담아라. 노래로 승부 볼 거라면 그게 키 포인트다. 음정이나 박자는 좀 흔들려도 돼. 여기서는 감정이 중요해.”

오…… 생각지 못했던 좋은 조언.

지금 들은 말은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감사합니다.”

“엇?!”

카우보이는 갑자기 전방을 가리켰다.

‘200~220번’

스태프가 화이트보드에 지금 막 적은 대기 명단을 본 것이다.

“아저씨는 내려가 봐야겠다.”

그는 검은색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챙겼다.

“다녀오마.”

아저씨가 일어나자, 우리 네 사람은 다 함께 소리쳤다.

“아저씨, 화이팅!”

“휘이익―!”

“카우보이 커몬!”

“화이팅~~!!”

카우보이 아저씨는 씩 웃으며, 우리를 향해 권총을 쏘는 시늉을 한 후 강단을 향해 내려갔다.

“아, 좀 전에 권총 포즈…… 오글거렸어.”

“그러게, 박수 칠 때 그냥 가시지.”

권총 포즈에 닭살이 살짝 올라왔지만.

그래도 우리는 활짝 웃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참가 번호 222번! 하재춘입니다!”

최 피디는 그를 보고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아…… 또 왔어?”

옆의 조연출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요즘 열심이네요. 본선 나가기 어렵다는 거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카우보이 남자 하재춘은 담당 피디보다도 ‘전국민노래자랑’ 경력이 더 길다.

아마 심사 위원이나 고정 밴드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하재춘의 경력에 비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전국민노래자랑’에 있어서 모든 스태프가 인정하는 고인물이다.

“오늘은 뭐 준비해 왔을까요?”

조연출의 물음에 최 피디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전국민노래자랑’에 맞는 거 준비해 왔겠지. 어르신들 좋아하는 트롯 아니겠어? 자주 나오는 사람인데, 합격 족보대로만 해 오니까 식상해.”

“글쎄요…… 오늘은 좀 다를 거 같은데요?”

“응?”

“표정 보세요, 뭔가 각오한 거 같지 않으세요? 왠지 심상치 않아 보여요.”

“소개는 거두절미하겠습니다. 다들 저 잘 아시잖아요, 사연도 아시니까 스킵하고요. 심사 위원님~ 잘 지내셨죠? 3주 만이네?”

카우보이는 심사 위원에게 손을 흔들었고, 심사 위원도 피식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전국민노래자랑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카우보이는 마이크를 스탠드에 꽂은 후 양손에 소품을 꺼내 들었는데.

형광색 물총이었다.

한 손에 하나씩 권총을 들고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부를 노래는 ‘보삐보삐’입니다!”

50대 중반의 카우보이는 노래 시작부터 몸을 경쾌하기 흔들기 시작했다.

화내지 말고 웃어 줘.

그만 화 안 풀면 쏴 버릴 거야.

카우보이는 형광색 물총을 들고, 온몸을 삐그덕대며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에 조연출은 깜짝 놀라서 박수를 쳤다.

“푸하핫! 뭐야? 와~ 아저씨 변신하셨네! 그것도 걸 그룹 노래를?!”

최 피디도 미소를 지었다.

“혁신하셨네, 혁신.”

예선을 지켜보는 다른 참가자도 카우보이의 춤사위와 노래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와…… 아이돌 노래를 이렇게?

―푸핫! 저 아저씨 대박이다!

―예전에 봤던 분 같은데…….

후렴에 가까워질수록 카우보이의 춤사위는 점점 더 격해졌고,

드디어 ‘보삐보삐’의 킬링 파트.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물이 ‘찍’ 나왔다.

카우보이는 양팔을 옆으로 뻗고는 형광색 물총을 진짜로 쐈다.

벌려서 쏘고.

X자로 꺾어서 쏘고.

물총 들고 온갖 똥폼은 다 잡았다.

그는 원래 가사 ‘앙’을 ‘찍’으로 바꿔서 불렀다.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보삐 보삐 보삐 보삐 보삐 찍!

체육관 안은 뒤집어졌다.

어이없게 웃기면서도 이상하게 신이 났다.

여기저기 물총 쏘며 벌이던 격렬한 춤사위는 끝이 났고.

배꼽 잡고 웃느라 정신없던 조연출이 말했다.

“와~ 대박인데요? 아저씨 이번에 칼 갈고 나오셨네.”

“하하, 그러게.”

최 피디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무반주로도 이 정도인데, MR 틀어 놓고 하면 장난 아니겠는데요.”

“흠…….”

“어쩌면 이슈가 될지도.”

최 피디는 합격을 받고 체육관 좌석 위로 올라가는 카우보이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확실히 장인은 달라, 전국민노래자랑 장인.”

* * *

“우와아~!”

나와 일석이. 기덕이와 종권이 모두 일어났다.

자리로 돌아온 카우보이 아저씨를 향해 격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굉장히 어설펐는데 묘하게 짜임새 있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흥겨운 무대였다.

새삼 대단한 경쟁자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하하!”

카우보이 아저씨는 우리와 차례대로 하이파이브를 했고.

우리 넷은 그를 향하여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보삐 보삐”

“찍~ 찍~”

갑자기 좌석에서 카우보이 아저씨를 포함한 우리 다섯 명은 ‘보삐보삐’에 맞춰서 춤을 췄다.

흥이 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 자, 조금만 정숙해 주세요!”

결국 스태프의 안내 방송을 들은 이후에야 멈추었다.

“와~ 아저씨, 대단하세요.”

자리에 앉은 카우보이 아저씨는 뒷주머니에서 화려한 무늬의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진한 ‘쾌남’ 스킨 냄새가 났다. 목욕탕 냄새 같기도 하고.

“대단하긴, 근데 연구 많이 하긴 했어. 출연을 자주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합격 족보가 안 통하더라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휴우~ 진짜 모험이었는데 다행이다, 반응이 괜찮아서. 너희들이 크게 호응해 준 탓도 커. 고맙다.”

카우보이는 웃으며 나와 일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들 순번에는 아저씨도 열심히 응원해 줄게.”

“네! 감사합니다.”

카우보이 아저씨가 불어넣은 열기.

50여 명의 참가자가 지나가니 곧 그 열기도 사그라들었다.

합격자는 잘 나오지 않았다.

체육관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고.

그럴수록 합격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다 달라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 비슷해 보인다.

점점 지루해지고.

스태프들의 눈빛도 길을 잃었다.

구세주를 찾는 눈빛.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데…….

정말 그럴까?

‘320~340번’

화이트보드에 대기 참가 번호 숫자가 바뀌었다.

“후우~!”

일석이는 크게 심호흡을 하였고.

우리 뱀돌이들, 기덕이와 종권이도 표정이 굳어졌다.

“갔다 올게.”

‘땅꾼과 뱀돌이’는 322번.

드디어 차례가 온 것이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박수 치며 소리쳤다.

“자자! 화이팅! 화이팅! 표정 풀고! 가서 재밌게 놀다 와!”

카우보이 아저씨도 일어났다.

“오~ 너희들 이제 나가는구나? 화이팅이다!”

일석이는 터번을 쓰고.

기덕이와 종권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뱀 탈을 옆구리 꼈다.

“가자!”

일석이의 외침과 함께 세 사람은 강단을 향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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